몇 칠전 조용한 아침을 깨는
남편의 목소리에 잠을깼다.
엄마와 아들의 대화소리는 닫힌 문을 통과하지 못했고 무슨 내용의 대화인지는
나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거실 바닥의 기온은 냉골이었서니 말이다.
그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긴 한숨과 왜이리 오래 살아
아침마다 일어나면 꿈에 식탁앞 내가 서 있고
아들은 요양을 보낸다는 똑같은 이야기 였다.
살얼음을 걷는 듯
남편과 나의 말투 표정하나에도 불안감이 밀려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는 것도
이제는 집을 도피하듯 나서는 일이 나에게는 당연해졌고 그 당해지는 만큼
두렵다기 보다 당당한 내인생을 찾으려고 애쓴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럴때 마다
나는 과연 홀연히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
죽음을 맞지 할 준비
우리는 얼마나 준비하고 살고 있는가를 되뇌인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하였기에 그럴까
오래 살아 뭐해
왜 이리 안 죽어
듣다 못해 볼멘소리를 해버렸다
무엇이든 먹지 않아야 죽는 것이라고 해더니
그래 먹긴 먹어야지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며느리가 한 말보다
아들이 한 말이 더 무섭고 서러운 것은
내 배속으로 낳은 내자식이라고 철통같이
믿고만 사는 부모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 나도 그입장이 된다는
그렇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이들 수록 이쁜말만 더 하고
말은 아껴야하는 법이다.
짧은 인생
짧은 인연의 삶인데
이리도 질긴 인연
긴 삶이란 생각을 나는 문득문득 하면서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나는 잘 한다고, 더 잘하겠다고
이런 선택도 나는 하지 않았건만
또 내가 선택해버린 것이 되어
원망의 화살은 나를 향하고 있고
당신이 선택한 삶은 아닐지라도 딸 자식들 선택한 삶은 그럴 수 있다니
이 어찌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신세계를 만나면 살고 있는 세상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고
딸이 며느리가 될 수 없을 증명하는 것이지 않는가?
나의 생각이 이런 것이지
내가 보고 들은 이세상에는 딸같은 며느리가 있었고 엄마같은 시어머니가 있었다.
누구나 꽃처럼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지고 태어나
꽃이 피고 지듯
세월의 나이를 더하면서 아름답게 노년의 결실을
기대하면서 살기 마련이지만
이 또한 무한 노력이 멈추지 말아야하는 법
그럼 나는
어떤 부모로
어떤 며느리로 살아가려고 끝임없이
노력은 하고 있는 것일까?
카페 게시글
하늘의 인연
아들의 한마디, 노력은 하고 있는 것일까?
푸른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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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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