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그리고 한국 교회
지금 우리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거대한 영적 도전의 실체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이름으로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부릅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 '무슬림'이라는 그 밑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물론 옳은 이야기이며 필요한 접근방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 속 이슬람을 거론하며 폭넓은 이해를 주문합니다. 이 역시 일부분 타당하며 이슬람의 실체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학자도 아니고 전문적인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른, 교회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오늘도 한 걸음 더 바른 신앙인으로 서려고 노력하는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입니다. 왜 우리는 대한민국 안의 이슬람을 파악해야 할까요?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할까요? 정확한 정보에 의거하여 반드시 이해해야 할 이슬람의 실체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왜 그것을 영적 도전의 실체로 정확히 인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 만만치 않은 의문들을 주제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1. 대한민국 안의 이슬람
이슬람은 이미 우리 곁에 밀접하게 다가와 있습니다. 풍문에도 들리고 구체적인 정보로도 들리는 것처럼 우리나라에는 이미 정식 모스크(아랍어로 게먀, 대규모 이슬람 예배처를 이름 - 필자 주)만 서울의 중앙사원부터 부산, 경기도 광주, 안양, 전주, 대구, 파주, 안산, 인천 부평에 9곳이 있습니다.
이슬람을 알리고 포교하기 위해 설립된 '이슬람문화센터'의 이름으로는 광주광역시, 대전, 포천, 송파구 거여동, 부평, 제주, 김포 등 개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임시 예배소(아랍어로 마스짇, 소규모 이슬람 예배처를 이름 - 필자 주)는 서울에만 5군데 등 전국에 60여 개가 존재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입국해 있는 외국인 근로자 중에서 이슬람이 국교이거나 주요 종교인 나라에서 입국한 숫자는 86,165명입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지식층으로 훗날 활동하며 이슬람의 확산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은 무슬림 유학생은 2,802명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슬림 남성과 한국인 여성의 결혼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누적된 무슬림 남성-한국인 여성 커플은 혼인신고 건수 기준으로 3,642쌍에 이릅니다. 결코 허투루 볼 수 없는 것이 혼인신고 없이 사실혼 관계에 있는 무슬림 남성-한국인 여성 커플은 실제로 얼마나 될지 실증적인 조사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단순히 숫자로 파악한 한국 사회 내의 계량적 정보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분야와 경제분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며 확산 일로에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한-아랍 소사이어티(Korea-Arab Society)의 발족입니다. 당연직으로 한국무역협회장이 이사장을 맡게 되어 있습니다. 한-아랍 소사이어티는 한국과 아랍 국가 22개국의 민/관 합동 단체입니다. 한국 내 아랍관련 단체를 통솔하는 역할을 하며 외교통상부가 직접 참여하여 재정과 행정을 지원합니다.
한-아랍 소사이어티의 활동 목적은 한국 내 이슬람 확산에 기여하는 것이 제1의 설립 목적입니다. 각 대학이나 고교에 아랍어 관련 학과와 아랍어과목 신규 설립 및 확산에 주력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친 이슬람적 사고를 심어 주어 장기적으로 한국에 든든한 뿌리를 내리려는 시도입니다. 가장 주목해야할 한-아랍 소사이어티의 활동 내용은 이슬람 이미지의 개선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해 "코란 아니면 칼" 등 이슬람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서양에서 일방적으로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불식시키고 "평화의 종교" 또는 "완전한 종교"로서의 장점을 홍보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정, 관계에 폭넓은 네트워크 구축을 시도합니다.
한국-중동협회 역시 민간차원에서 가동되는 또 하나의 친 이슬람 조직입니다. 한국외대의 한덕규 교수를 회장으로 유력기업들과 개인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한국-중동협회는 한-아랍 소사이어티와 달리 보다 구체적인 활동을 목표로 합니다. 기업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한국 경제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뿐만 아니라 균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와 기업들의 아랍어 홈페이지 가동을 지원합니다. 정부 측에는 중동진출을 위한 정책자문과 자료를 제공하고 아랍어 서적 출판 및 번역작업을 후원합니다.
다양한 출판물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친근한 이해를 높이는 작업을 수십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슬람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는 이미 일정 부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4년 김선일 형제의 순교사건과 2007년 아프가니스탄 봉사단원 납치 순교사건 사이에 고작 3년만에 달라진 대한민국 사회의 이슬람에 대한 시각의 변화에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07년 8월 서울 한남동 이슬람 사원 내에 개원한 유치원 "프린스 술탄 마드라사(The Prince Sultan Madrasa)"는 대표적인 이슬람 교육기관입니다. 코란을 가르치고 이슬람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이 기관을 기반으로 하여 2009년 3월에는 이슬람 초등학교 개교를 시도하였으나 학생 모집이 여의치 않아 일단 개교가 연기된 상태입니다. 용인 지역에서는 1979년 13만평의 토지를 확보하여 이슬람을 교육하는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꾸준히 추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해당 부지를 용인시에서 휴양림 용도로 매입, 경기도 연천군에 9만평의 토지를 새로 구입하며 조만간 "이슬람 문화대학"이라는 명칭으로 개교하기 위해 준비 작업 중입니다.
심각한 것은 이 외에도 다양한 이슬람 문화축전 등 대규모 이슬람 행사를 개최하여 국내의 일반인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훗날 한국사회의 지도층이 될 사법연수원 연수생 대상 특강, 헌법재판소 특강 등 유력기관에 이슬람 학자들이 특별 강연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이슬람에 우호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슬람을 이해하고 서구의 시각을 벗어난 본모습을 알린다는 허울 좋은 이유로 이미 상당 부분 이슬람의 이미지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간단히 정리만 해도 한참을 나열해야 할 만큼 이슬람의 활동은 한국 사회에 이미 뿌리를 내린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조만간 줄기가 튼튼히 자라고 굵은 주목으로 성장하면서 차차 이슬람화의 열매가 나타날 것입니다. 서구사회에서 익히 경험한 것처럼 이슬람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이슬람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라는 형태로 드러나게 됩니다. 학계에서, 경제계에서, 정치계에서, 일반 사회에서 이슬람과의 다양한 접촉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한국은 이슬람이 활동하게 좋은 토양으로 변질되어 갈 것입니다. 영국이 경험했고 프랑스와 독일이 전전긍긍하고 네덜란드가 심각하게 받아들일만큼 이슬람은 "이슬람의 정치세력화 통한 국가의 지배"라는 수 천년 동안 드러난 그들의 전략을 이 땅 대한민국에서도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 무슬림 지도자 - 그들이 한국인이든 외국인든 간에 - 그룹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손사래를 내저으며 적극 부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타께야(Taqeya, 알라와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이행하고 이슬람의 목적달성을 위한 과장과 거짓은 용인될 수 있다는 이슬람의 가르침 - 필자 주)전략의 일환입니다.
이 중 대표적인 예가 최근에 급격히 증가하는 한국 고등학생들의 제2외국어 선택의 아랍어 치중현상입니다. 분명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아랍어 시험은 매우 쉬운 난이도로 출제됩니다. 실력이 비슷한 그룹의 학생들 사이에서 의외로 큰 차이를 가능케 하는 제2외국어 출제 난이도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쉽게 출제되는 아랍어로 학생들의 쏠림 현상과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코란(Qur'an, 이슬람교의 유일한 권위를 가진 경전)의 단어와 표현들을 동원하여 이슬람 측 사람들이 우리의 젊은 영혼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은연 중 배우게 될 이슬람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으로 무장된 젊은이들이 성장하여 우리 사회의 주축을 이루는 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심히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가?
답은 매우 분명하며 정확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6장 7절 말씀에 무슬림, 즉 이슬람을 믿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이사야 6:7)'
흔히 선교전문가들의 표현대로 이슬람을 국교로 하거나 주요 종교로 하는 나라들은 위도 10도와 40도 사이에 분포합니다. 또한 '이슬람'이라는 명칭을 구사하여 선교전략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창의적 접근지역, 제한적 접근지역 혹은 전방개척선교 등 여러 가지 응용된 표현과 전략들을 그동안 연구하고 구사해 왔습니다.
요점만 살피면 이러한 선교전략은 모두 이슬람권을 주요 대상으로 다룹니다. 그러면서도 대놓고 '이슬람' 혹은 '무슬림'이라는 표현을 선뜻 사용하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마냥 이슬람의 정치적 저항이나 무슬림들의 폭탄테러가 두려워서일까요? 그들과의 정치적인 갈등을 초래하여 분란을 일으키기 겁이 나서일까요? 이미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이나 제먀 이슬라미야(Jemya Islamiya)등 이슬람 테러단체의 보복이 두려워서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이슬람에 대한 전쟁과 화해, 갈등과 공존으로 이미 지칠대로 지친 서구사회의 피로감과 이슬람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피해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최근에 출판된 일본 출신의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의 책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상, 하 2권)"은 제3자의 시각에서 로마세계가 멸망한 이후 이슬람 측의 준동이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얼마나 심각하고 위협이었는지를 과감하고 실증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반드시 일독을 권합니다.
지금도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자살폭탄테러가 주로 발생하는 지역이 이슬람권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 없이 심각한 종교적 핍박이 자행되는 지역도 주로 이슬람이 지배하는 지역이라는 데에도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실제 현상에 대한 지적과 고발을 모두가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것일까요? 우리도 서구의 경우처럼 서구사회가 경험한 것을 고스란히 공유함을 인정해서일까요? 아니면 막연하게 이슬람포비아(Islamphobia)과 같이 잘못된 진단을 우리 내부에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오해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이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도 아닐뿐더러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조차 15억 명이 15억 개의 답을 다 다르게 내놓을만큼 복잡다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들을 바로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반드시 사랑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기본적으로 고등종교라면 갖추어야할 덕목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 용서, 화해, 평화, 상호 이해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매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상대 종교에 대한 존중이며 상대 종교의 핵심교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일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이슬람을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정보, 즉 이슬람의 창시자인 선지자 무함마드가 계시했다고 전해지는 그들의 경전 코란과 검증된 정보에 의거하여 다음 항에서 이슬람의 실체를 밝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신성모독을 감히 도전해 오는 이슬람의 교리들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정하고 십자가 사건을 뒤틀며 가장 중요한 대속(代贖, Atonement)의 은혜를 전면 부정하는 그들의 가르침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건,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일절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주장 앞에 우리는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까요? 그냥 마냥 이해하고 품고 사랑을 베풀기만 하면 될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최소한 알아야 할 것은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또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해야 그들을 품고 사랑하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차이점, 절대 그 경계를 허물어서도 안되고 허물 수도 없는 부분까지 양보하면서 사랑을 베풀 수는 없습니다. 검은 물감을 아무리 물에 풀어 희석시켜도 그 색깔은 검습니다. 아예 바다에 흩어져 알아볼 수 없을지라도 그 영적인 속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검은 색 물감임을 알면서도 하얀 셔츠 위에 일부러 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은 일면 무조건적이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사랑이며 그 끝이 없는 다함 없는 절대 사랑이지만 영적인 경계, 즉 선한 영과 악한 영의 구분 자체를 양보하라는 말씀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막대한 양의 맑은 물, 한없이 맑은 사랑을 검은 물감 위에 퍼부어 결국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맑고 투명하게 인도하는 의미의 사랑을 베풀라는 명령일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슬람을 정확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과 정확한 기도,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절대 물러설 수 없고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말아야 할 기준들을 명확하게 세워두고 품어야 합니다. 이러한 바탕위에 그들을 위한 눈물의 중보와 순교의 피를 하나님의 허락 하에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명령은 말로 표현하는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진실한 관계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슬람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려면 그들의 속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들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깊은 이해와 함께.
3. 이슬람의 실체
(1) 정치적, 군사적 측면
이슬람의 실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슬람의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속성들입니다. 이슬람 측의 역사 기술과 이슬람 학자들의 자료도 상당 부분 이 분야를 다루고 있음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함마드는 이슬람의 창시자면서 대규모 상단을 소유한 부유한 미망인의 남편이었고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특히 군사지도자의 특징들은 그의 생애 중반부터 후반부를 관통하여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유대인 여성 레이하나(Reihanah)가 살았던 유대민족들을 점령했던 이야기 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역사에 의하면 무함마드가 친히 전쟁을 지휘했던 12차례의 출정 중에 한 번인 레이하나가 속한 부족 점령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라비아 반도 꾸라이쉬 족속의 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던 유대부족중 성인 남자가 700명에 이르는 부족이 있었습니다. 유대교를 믿으며 구약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던 그들에게도 무함마드에 대한 소문이 퍼집니다. 자세한 기술은 역사서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이 부족은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정복 대상으로 지목하게 되고, 무슬림 전사들을 친히 이끌고 침공작전을 펴게 됩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해당 부족으로부터 승리한 무함마드는 잔인한 보복을 결행합니다. 깊고 넓은 구덩이를 파게 한 후 해당 부족의 800명가량의 성인 남성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노약자와 여인들, 어린이들이 보는 앞에서 차례차례 목을 쳐 죽인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피의 보복을 행한 후 무함마드는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여성 한 사람을 지목합니다. 선택된 여인은 두려움에 떨며 무함마드의 명령을 기다리는데, 잔혹하게도 무함마드는 이렇게 명령합니다.
"남자들이 죽어 쌓여 있는 구덩이를 한 바퀴 돌아라!"
거의 충격으로 인해 실신하기 직전인 여인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땅에 주저 앉아 흙을 움켜 머리에 뿌리며 울부짖습니다. 구덩이 속에 아버지도, 남편도, 이웃사촌들도 죽어있음을 보며 차마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함마드는 울부짖는 여인 역시 한 칼에 베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더니 두 번째로 또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을 지목합니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레이하나(Reihanah)입니다. 눈 앞에서 목숨을 잃는 여인을 본 레이하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구덩이를 한 바퀴 돕니다. 아마도 눈물은 볼을 타고 연신 흘러내리고 심장은 견딜 수 없을만큼 뛰었을 것이지만, 끝내 그녀는 구덩이를 다 돌게 됩니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무함마드는 이윽고 한 바퀴 돌아 자신 앞에 선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용기 있는 여인이로다! 저토록 마음이 강한 여인은 마땅히 내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도다!"
라고 하며 자신의 겉옷을 벗어 여인의 어깨에 덮어주며 자신의 노리개로 삼아 자신의 천막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이것이 이슬람 역사에서도 인정하는 유명한 "레이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군사지도자로 적지 않은 회수의 친정을 행하며 정복전쟁을 주도한 무함마드는 정복전쟁을 수행하며 서기 622년 메카에서 메디나로 천도(遷都)합니다. 이슬람의 공식적인 시작으로 보는 "헤지라(Hejirah)"사건입니다. 이후 메카를 다시 정복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던 무함마드는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후 조약을 어기고 메카를 공격, 결국 메카를 정복하기에 이릅니다.
무함마드는 전쟁을 통해 정복한 땅을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의 지배체계를 공고히 구축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앞길에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모조리 짓밟아 나갑니다. 대표적인 예로 코란(Qur'an)에 나타난 코란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기독교와 유대교에 대한 입장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슬람에서는 '만수크(Mansukh) 교리'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코란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뜻이 상충될 때 나중에 온 더 강한 가르침이 앞에 온 덜 강한 가르침을 자동으로 취소시키고 대체된다는 교리로서, 코란의 실체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2) 사회 문화적 측면
고유의 이슬람 문화와 사회통념들은 이슬람이 창시되기 이전부터의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모든 국가와 민족들이 고유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보유하고 있음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이 창시되기 이전부터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지역을 중심으로 유목민족(일명 베두윈족(族), 일정한 거처 없이 양과 염소 등 가축을 유목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일컬음 - 필자 주)들이 살아왔던 삶의 기준들을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가르침으로 재해석한 것이 지금의 이슬람 생활문화하고 하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즉 이슬람이 생기기 이전부터 그들이 살아왔던 배경과 역사적인 부분이 이슬람 창시 이후 소위 "이슬람 문화"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종교적인 특성이 가미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A. 이슬람에서의 여성들의 삶
가장 예민하면서 이슬람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이슬람 국가들에서의 여성들의 삶입니다. 정말 비참하고 힘든 삶을 하루하루 이어나가는 무슬림 여성들에게 있어서 상식수준의 '인권'은 정말 하나의 사치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슬람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음란성인데, 겉으로는 대단히 건전하며 성적인 타락을 매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슬람의 여성들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그 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여성들의 삶이 이토록 비참한 이유는 '단기계약결혼(Contract Marriage)'과도 같은 이슬람 사회의 독특한 제도 때문입니다. 일정 금액으로 보상만 해주면 1시간 짜리 결혼부터 일주일짜리, 한달짜리 등 정하기에 따라 남성의 마음대로 계약기간을 정해 결혼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계약결혼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의 남성은 상대 여성을 떠나기 때문에, 임신 등 남겨진 모든 책임은 여성 홀로 짊어져야 합니다. 잘 알려진 또 다른 제도들, 여성 할례, 여아 생매장, 명예살인 등 이슬람 사회에서도 골치 아파하는 아이러니한 부분들로 인해 여성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TV에서 방영된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 씨의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폭로된 북아프리카 이슬람 지역에서의 어린 소녀들의 할례 전통을 보고 겪은 충격적인 이야기가 시중에서 높은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이슬람이 정말 여성들을 보호하고 지키는데 치중하는 종교이고 사회라면 이러한 현상들은 왜 통제가 되지 않고 21세기인 현대사회에서 버젓이 횡행하고 있을까요? 여아 생매장이나 명예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여성학대는 지금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매우 잔혹한 행위들입니다만 이슬람 측에서는 문화일 뿐이라고 한 발 빼면서 우리도 골치 아프다하는 식으로 대충 넘어갑니다. 어느 선까지 이해해야 좋을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B. 이슬람이 말하는 '문화'로서의 이슬람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슬람의 일방성에 반항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미약하나마 감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방송선교가 매우 영향력이 있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일정한 기간마다 모든 일반 가정의 위성TV 수신안테나를 정부가 철거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수거해 들여놓은 고철과도 같은 위성안테나가 다시 뒤로 흘러나와 저렴한 중고제품으로 다시 유통, 가정집마다 새로 달립니다.
가정에서 외출 한 번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은 주로 TV시청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최근에 중동 이슬람국가들에서 한국 드라마와 노래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사회적인 배경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이미 이슬람권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슬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발했던 이란 대선을 둘러싼 소요사태 역시 1979년 호메이니가 이뤘던 이슬람 혁명 이후 30년의 세월 동안 잠복해 있던 불만이 일거에 터져나온 사건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이슬람국가들에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자아를 찾기 위해 해외로 해외로 밀려나오는 현상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교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큰 전략적 기회를 제공합니다. 방송선교를 비롯하여 교육을 통한 선교 등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접근이 절실한 때입니다.
(3) 이슬람의 역사
이슬람은 서기 570년에 태어난 무함마드가 창시하였습니다. 25세에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카디자(Khadija)에게 장가 든 그는 인생의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극복해보고자 홀로 동굴에 들어가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던 중 지브릴(가브리엘 천사라고 주장함 - 필자 주)이 계시하는 알라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면서 종교적 가르침을 설파합니다. 대표적인 주장이 알라만이 유일신이며 자신이 알라에게 선택받은 유일한 선지자라는 주장입니다.
종교라고만 하기도 어렵고 정치체제라고만 하기도 어려운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 무함마드의 세력은 그 후 급속도로 정복전쟁을 수행, 13세기 이르면 지중해 남부 중근동 지역과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까지 이르는 엄청난 판도를 자랑하기에 이릅니다.
무함마드 사후 권력을 이어받은 신정일치의 지도자 칼리프(Khalif)들은 서로 죽이고 죽이면서 이슬람의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합니다.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던 이슬람세는 지금의 스페인땅과 포르투갈땅을 짓밟고 동진, 유럽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동프랑크 왕국을 다스리던 탁월한 지도자 샤를마뉴 대제가 이슬람 군대를 회전에서 대파하면서 다행히 유럽을 지키게 됩니다. 이후 이슬람은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훗날 동남아시아까지 전파되며 단일 종교로는 이미 세계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4) 종교로서의 이슬람의 가르침
A. 기독교의 핵심교리를 부정하는 이슬람
기독교의 핵심 중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는 이슬람에서는 9명의 유명한 선지자 중 한 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도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아랍어로 "이싸 알 마시(Isa Al Masi)"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Jesus the Prophet" 쯤 되는, 그저 선지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 사건 역시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가 깨어나셨을 뿐이라는 기절설, 12제자 중 한사람을 지목하여 얼굴을 바꾸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게했다는 변조설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신성모독적인 주장을 서슴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학의 요체 중의 요체인 삼위일체 역시 이슬람은 뿌리부터 부정합니다. 알라(Allah)는 유일무이한 존재요 기본적으로 인간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완전한 존재입니다. 절대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는 주장을 매우 구체적으로 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이시면서 완전한 하나님이신 기독교의 핵심을 정면조준한 것입니다.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다 보면 가장 구체적이고 어려운 지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씩 웃으면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고 그저 훌륭한 한 분의 선지자이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동격이 될 수 있느냐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무슬림 형제들의 당찬 반박 앞에 눈물 흘리지 않은 전도자는 없을 것입니다.
구원론으로 보면 가장 황당한 주장으로 기독교의 신학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바로 원죄(原罪)가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 인물의 죄를 다른 인물이 대신 속박하거나 용서를 빌 수 없다, 즉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고 운명하시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사망을 이기신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몽땅 부정하는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도전입니다.
또한 이 뿐만 아니라 코란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방황하는 자", 유대인들을 "저주받은 자"라고 가르치며 이슬람이야말로 완전하고 고대의 믿음, 즉 아브라함의 믿음의 모습을 가장 완전하게 전하고 있는 우월한 종교라고 주장합니다. 유대교는 비유하자면 386컴퓨터요 기독교는 486쯤 되고 이슬람이야말로 586 펜티엄급을 넘어선 완전한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B) 이해하기 쉬운 이슬람의 현실적 가르침들
몇 가지 특징을 기준으로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르침들과 교리를 비교해 보면 매우 현실적이고 현세적인 이슬람만의 독특한 사고체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표-1,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르침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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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이슬람(무슬림) |
기독교(크리스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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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의 대상 |
유일신 알라(Allah) - 절대 자존하며 인간과 그 어떤 언약도 맺지 않음, 기독교의 하나님과 완전히 다른 신 |
삼위일체 하나님(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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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원에 이르는 길 |
(1) 선행과 알라에 대한 충성도 (2) 성전(Jihad)를 통해 죽어야 함 |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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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전의 성격 |
가브리엘의 계시를 무함마드가 구술함 |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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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전의 지위 |
무함마드를 통해 단 23년 동안 주어진 알라의 메시지 |
유일무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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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지자의 자리매김 |
독점적 지위를 갖는 선지자(Prophet) 이면서 단순한 메신져로서의 무함마드 |
구원의 유일한 길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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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삼위일체에 대한 시각 |
알라, 예수, 마리암(Maryam 혹은 Marium) |
성부, 성자, 성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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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죄에 대하여 |
알라의 징벌을 피할 수 없는 요소. 회개의 개념은 단순한 실책에 대한 용서, 알라의 자비를 구하는데 초점 |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입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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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천국관의 차이 |
여자는 갈 수 없음. 선행이 무거울 때, 알라의 가르침에 성실했을 때, 성전(Jihad)를 통해 알라와 무함마드를 위해 죽었을 때 |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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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 앞에서의 사람의 지위 |
종(Servant). 언제나 신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 종속적 존재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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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생활에서의 신앙 |
외식적이고 드러내는 경건생활 인격적 변화는 관심 사항 아님 |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중심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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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남녀의 지위 |
여자는 남자에게 속하는 종속물이자 소유물. 성적인 유희의 대상임 |
동등한 영적 지위를 누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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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으로부터의 사랑의 성격 |
조건적 물질적 자애로움 (알라-주인, 인간-종) |
무조건적 영적 사랑 (독생자의 보혈로 인간을 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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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축복에 대하여 |
조건부 축복, 알라의 일방적 권위에 불과함 |
축복의 언약을 지키시는 거룩한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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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람에 대한 섭리하심의 정의 |
종에 대한 주인의 심판과 권세, 인간에 대한 절대적 권위 강조 |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인내하시는 마음 |
(C) 일체의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
무슬림은 다른 종교, 특히 기독교로 개종할 수 없습니다. 아예 개종을 꿈꿀 수 없게끔 가르치기도 가르치지만 사회의 분위기도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회적인 조건은 움마(Ummah)라고 불리우는 이슬람 특유의 사회관(觀)입니다.
여전히 명예살인을 포함한 말도 안되는 전통이 이슬람의 특징으로 존중받고 이행되는 사회분위기도 한 몫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다른 종교에 대한 비관용적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궤변으로 변명하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D) 형평성에 어긋난 이슬람의 이중적 태도들
이슬람은 서구사회를 포함해 비 이슬람권에서 마음껏 이슬람을 알리고 자신들의 세력확장을 위해 혈안이 되어있지만, 대표적으로 오늘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한 보복성 공격과 추방은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축구로 예를 들면 한 쪽 팀의 골은 철문으로 걸어잠궈두고 경기를 벌이는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대한 핏빛 보복을 망설이지 않으니 이래저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영적 도전의 실체로서의 이슬람
(1) 코란에서 가르치는 무슬림의 최대 덕목
간단히 비교해 보아도 기독교의 가르침, 즉 성경말씀과 이슬람의 가르침, 코란의 내용은 정말 이렇게 다른가 싶을 만큼 큰 차이를 보입니다.
단적인 예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살아가면 점점 예수님과 닮아가며 사랑과 화평이 함께하는 모습으로 발전함을 우리는 익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란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무슬림이라면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슬람의 사상적 핵심이자 무슬림의 생활양식을 대변하는 지하드, 곧 성전(聖戰, Holy War)입니다.
이것은 이슬람 측의 주장에 의하면 대 지하드와 소 지하드로 나뉜다고 합니다. 대 지하드는 무슬림으로서 알라를 숭배하고 무함마드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는 삶의 전반적인 측면에서의 성전이요 소 지하드는 어쩔 수 없이 이슬람의 권익과 존엄이 무너질 때 폭력을 동반하여 대항할 수 있다는 구분입니다.
이야말로 참으로 교묘한 논점흐리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즉 폭탄테러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이들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십중팔구 격렬한 분노와 함께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에게 도전합니다.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라고, 소수의 이슬람을 잘못 이해한 못된 인간에 불과하다고 비난을 퍼붓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슬람의 깊은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이슬람 지도자로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격렬한 지하드, 성전을 독려하고 이슬람의 특성을 폭력적인 지배와 전쟁을 빼고는 거론할 수 없다는 선명한 입장을 견지하게 됩니다.
(2) 기독교를 향한 이슬람의 이중적 태도
흥미로운 사실은 무슬림들이 의외로 기독교인들에 대한 존중과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낸다는 사실입니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교리 중 하나인 "만수크(Mansukh)"교리를 통해 비록 꾸란의 일정 부분 구절이 자동 취소된다는 황당한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창시자 무함마드도 초기 계시에서는 기독교를 존중하고 "나는 알라의 가르침(구약성경을 이름 - 필자 주)을 다시 이 땅에 확증하러 왔노라(꾸란 46:9,12)"라고 꾸란에서 밝힐 정도로 일부분 친 기독교적 접근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대해 거부 일변도의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입니다.
① 성경은 변질되었다. 꾸란만이 창조주의 진정한 계시이다.
②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유일신 알라와 인간인 예수가 어떻게 동일한가?
③ 예수는 십자가에서 부활한 적이 없다. 기절했거나 변장하여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이다.
④ 아브라함이 모리야 산에서 산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것은 이삭이 아니라 장남 이스마엘이다. 장소도 모리야 산이 아니라 지금의 메카 지역이었다.
⑤ 이슬람이야말로 구약시대의(아랍어로는 토라 - 필자 주) 가르침을 제대로 계승한 신앙이다. 신앙의 참모습이야말로 이슬람 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진리로 이해하고 있는 대부분의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제시하고 기독교로의 회심을 이루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 대표적으로 어려운 선교지가 이슬람권이 될 수 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이슬람이 바라보는 기독교 세계, 그리고 한국
가장 먼저 짚어보아야 할 것이 일부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Back To Jerusalem" 선교운동입니다. 소위 세대주의적 신학이론을 적용하여 실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회복, "알 아끄사" 모스크가 차지하고 있는 솔로몬의 성전 터를 재건하는 것이 복음의 서진운동의 완성으로 보는 운동입니다.
Mike Evans 목사가 이끄는 "JPT(Jerusalem Prayer Team)"가 미국의 대표적인 세대주의적 신학이론을 주창하는 단체입니다. 예루살렘의 실지 회복과 이스라엘을 돕는 미국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시온주의자"들로 평가받는 이들은 골수 공화당 지지자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 인구의 15% 정도 되는 견고한 보수주의자들입니다. 대표적인 교단으로 남침례교단(Southern Baptists)이 있습니다. 직전 미국 대통령을 연임하여 역임한 부시대통령이 바로 이러한 신앙, 즉 시온주의적 보수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토록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향한 폭탄테러를 일삼고 적대적인 시각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문제는 한국 내에도 이러한 시온주의적 신학관이 무비판적으로 유입,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몇몇 단체와 교회들이 복음의 서진운동이나 백투예루살렘을 외치고 있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온주의는 엄밀히 말해 기독교와 그 뿌리가 다릅니다. 시온주의자들의 대부분이 당연히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이며, 전세계 곳곳에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아가면서 그 사회의 지도층이자 경제력을 보유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존재근거로 삼는 사상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와는 별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진정한 예루살렘의 회복은 육지에 있는 예루살렘을 정치적,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머리로 하여 세워진 소중한 우리들의 "교회"를 이르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근에 터져나온 "시온주의자인 한국기독교 선교사들의 문제" 운운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일부분만 부각된 잘못된 이해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건전한 선교사들의 신학관은 시온주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모든 한국 선교사들이 시온주의자로 매도되어 이슬람을 선교할 기회가 완전히 가로막히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위험한 시도들이며 절대 대내외에 공표되어서도 안되는 편향적인 시각입니다.
일부분 유대인들의 삶이 회복되는 것이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능하다 할지라도 대표적인 시온주의자였던 헤르츨(Hertzl)이 중심이 되어 2차 대전 후 1948년에 건국된 지금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모든 성경의 예언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전천년설 중심의 접근은 매우 극단적이고 큰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건전하고 광범위한 이해를 얻는 무천년설 중심의 복음주의적 접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그리스도를 머리로 세워진 교회가 순수한 믿음을 지키다가 재림의 때에 믿는 자들을 중심으로 복음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개혁주의 보수신학이야말로 우리가 이 혼란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준입니다.
(4) 앞으로 다가올 영적, 물리적 충돌
안타깝게도 이슬람의 한국 진출은 현실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이슬람 금융과 OIC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을 믿는 국가들의 현실적 영향력, 그리고 석유를 보유한 자원의 힘과 타종교 및 타문화권에 대한 관용(Tolerance)을 강조하는 세태 속에서 건강한 기독교만의 흥왕을 이루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적 도전 앞에 담대히 맞서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완성은 대속(代贖, Atonement)의 제물로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분의 보혈로 세워진 유일한 완성체인 교회를 통해서만이 완성을 이룰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건전한 기독교인들은 혼란스러운 현재의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분명한 복음주의적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앞뒤 사방에서 비무슬림들을, 특히 기독교인들을 압박해 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나라나 지역에서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 거꾸로 서구와 우리나라 등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는 이슬람의 전파시키기 위하여 갖은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곳이 이슬람권 국가들입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심지어 고속도로에 비무슬림 전용 회차로를 만들어 놓고 그들의 성지이자 수도인 메카 지역에는 비무슬림이 단순 관광으로라도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그렇습니다. 사우디 국영 항공사를 이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공고문을 공항과 비행기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사우디 국영 항공사에서 알려드립니다.
본 비행기는 사우디 아라비아 상공을 통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다 윗의 별, 성경, 십자가 그리고 기타 기독교를 상징하는 일체의 물건도 지참할 수 없습 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점이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 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너무나도 일방적인,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배타성에 대해서 아무도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그 어떤 세력, 국가도 이슬람의 이러한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자세에 적극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뿐 아니라 조만간 도입될 이슬람 금융과 2014년 아시안게임, 이슬람 각국의 투자청을 통한 대대적인 투자, UN내의 이슬람세의 확산 등 의미를 두고 면밀히 관찰해야할 변화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듯 수많은 선지자들의 목숨을 던져가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민족들의 회개와 믿음의 회복,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성 회복을 외쳤지만 이스라엘의 타락과 쇠망, 그리고 간신히 회복했다가 또 망가지고 마는 역사의 반복을 지금의 서구와 우리나라를 포함한 기독교 국가들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강국들 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이슬람의 확산 앞에 속수무책으로 속만 끓이고 있습니다. 무슬림 인구가 급증한 영국의 지방도시들 - 맨체스터, 글래스고우 등 - 에서 매 해 12월에 열리는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기념일이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에드 알 에다라고 부르는 이슬람 종교축일 행사는 매 해 12월 8일~10일 사이에 행해지는데, 메카 인근 지역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을 산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는 날을 기념하는 그들의 종교축일입니다.
집집마다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 고기를 이웃과 나누고 하마터면 희생될 뻔했던 이스마엘을 기념하는 이 때가 되면 모든 도시에서 수많은 가축들이 아무런 위생처리가 되지 않은 채 무슬림 가정에서 도축됩니다. 당연히 비위생적일 수 밖에 없어서 현실법으로 제재가 가해지는 것이 맞지만, 세상의 법 위에 존재하는 이슬람식 율법 샤리아(Shariat) 때문에 그 어떤 법률도 명령도 도무지 소용이 없습니다.
결론 : 이슬람 그리고 한국사회
앞에서 거론한대로 이슬람식 율법 샤리아로만 통치되고 무슬림들만 사는 세상이 이슬람에서 표현하는 그대로 "다르 알 살람(Darl Al Salam, (무슬림들만의) 평화의 집이라는 뜻 - 필자 주)"이라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는 서서히 다르 알 살람이 실현되어 가고 있습니다. 심각한 현실이지만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서구사회의 무너져 내려 형편없는 모습으로 참담해진 유럽과 서구 교회의 현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합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로 "영혼구원"에만 관심과 목적이 있는 기독교와는 달리 이슬람식의 이슬람교 포교는 "이슬람만이 통용되도록 정치체제와 사회법질서의 전복"을 그 최종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신정일치체제(神政一致體制)인 이슬람권의 정치세력들은 이슬람만의 신정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합니다. 그 때문에 이슬람의 진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이 인정됩니다. 따키야(Takiyah)교리를 통하여 알라와 무함마드를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용인되는 것이 이슬람의 가르침입니다.
조만간 한국 내에서도 이슬람의 준동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소수'로 자신들을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사실은 때가 되면 자신들의 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내어 한 사회를 뒤집고 이슬람만의 통치체제를 구현하려 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채 송두리째 나라를 내어주고 기독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은 무참히 짓밟혀 일체의 자유를 빼앗길 것입니다.
깨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무슬림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소중하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지만,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종교이자 사상이자 정치체제인 이슬람은 악한 영이 지배하는 영적 대적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보다 정확한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절실합니다. 이슬람은 현실적 존재로서, 거대한 세력으로서 한국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영적 전면전이 불가피합니다. 복음의 핵심을 부정하며 들어오는 교묘한 거짓의 영이면서 이슬람이 거짓이라는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과 조직을 각종 폭력으로 위협하며 다가옵니다.
무슬림들에게도 보다 적극적인 복음 전파가 필요합니다. 미리 우리가 움츠러들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도 21세기 역사는 이슬람으로 대변되는 도전 세력과 그에 응하는 기독교 및 기타 세력들간의 종교세력간 각축전이 사회 전반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영적-물적 갈등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버나드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로 인해 제국붕괴가 재촉되었듯이 지금의 유럽은 이슬람 세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다. 앞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이슬람이 유럽화 되거나 유럽이 이슬람화될 것이 분명한데, 전자인 이슬람의 유럽동화는 가능성이 매우 적다. 그렇다면 유럽이 이슬람화되는 현상 외에는 기대할 수 없는 유럽의 현실이 매우 심각하다."
이제 이슬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각오가 새로워집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함께 할 수 없는 "영적 대적"임이 분명합니다. 언젠가 세상의 모든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YES!!" 혹은 "NO!!" 둘 중의 한 가지 대답만을 반드시 해야할 때가 온다면, No!라고 외칠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가 이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의 공중권세는 하나님의 영이 주관하든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이 주장하고 있음을 성경에서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속히 깨어 이슬람의 다양한 형태와 분야, 색깔등을 연구하고 이해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인 영적 대응을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그 이후에 제대로 알고 나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으로 품어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의 피라도 아낌없이 흘릴 수 있는 많은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