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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북쪽 외곽, 안강읍 옥산리. 경주보다는 영천, 포항에 가까운 이곳에는 한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고택이 우뚝 서 있다. 이 고택은 여주여강 이씨 가문 옥산파의 종손이 거주하고 있는 종갓집으로 이름은 ‘독락당(獨樂堂)’이다. 이번 여름휴가 땐 홀로 가고 싶은 숨은 명소, 독락당으로 떠나보자.
독락당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황과 함께 ‘동방5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현자 중 1인이자, 한국적 성리학의 토대를 만든 학자이며, 성리학 ‘회퇴(晦退)학파’의 창시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과 연관이 있다. 그는 당시의 실력자 김안로의 영의정 재임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을 박탈당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정치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 치중하기 위해 고향 마을에서 가까운 산자락에 독락당이란 이름의 집을 짓고 두문불출의 은거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회재 이언적 선생은 독락당에서 물외에 노닐며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 주위에 펼쳐진 자연 속에서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공부하고, 주변 법당과 절을 찾아 불가, 도가의 말씀을 연구하는 등 학문과 사상을 닦았다. 그런 그의 학문의 정수는 독락당에 들어있다. 현재 그 유산은 회재 선생의 종손들의 각고한 노력과 관리로 아직까지 온전히 보관되어있다. 그 결과 독락당은 보물 제413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물 중 약 130점도 보물도 지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되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독락당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문화재라는 느낌이 확 풍겼다. 솟을대문에는 여주여강 이씨의 문패가 붙어있었고 그 옆에는 독락당에 대해 설명해주는 게시판이 서 있었다. 독락당은 크게 여섯 채의 집과 서고와 유물을 모아 놓은 ‘어서각’과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을 들어서자 넓은 마당과 한옥 건물 여러 채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택에 들어왔지만, 내부에는 낮은 담장이 있었다. 각 건물은 담장 덕에 독립적인 형태를 띠었다. 이렇게 담장과 여러 협문으로 인해 미로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독락당의 특징.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이곳에 은거하겠다는 회재 선생의 굳은 심지가 엿보였다.
대문의 우측 담장에 딸린 문을 들어가면 '별채'가 나온다.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부엌, 마당이 따로 있었다. 독락당과는 대문만을 공유한다. 아예 다른 집이라 해도 믿을 정도. 별채의 좌측, 대문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은 ‘경청재’이다. 경청재는 예전에는 행랑채(주거 바깥 부분에 해당하는 주거공간)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한다. 청백리로 지정된 회재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청렴(凊)은 공경(敬)에서 나온다는 뜻에서 경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경청재의 뒤쪽과 마주하고 있는 '역락재'는 ‘안채’와 ‘ㅁ’자 형태를 이루며 안채를 가로막은 듯 서 있다. 역락재는 논어 학이편의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먼 데서 벗이 찾아오니 이것 또한 즐겁고 기쁘지 아니한가)’의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이름이 설명해주듯 손님이 오면 묵도록 하던 이곳의 편액은 석봉 한호 선생이 직접 쓴 것이다.
역락재와 안채를 지나 드디어 회재의 얼이 깃든 '독락당'에 도착했다. 넓은 대청과 방으로 이루어진 독락당은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마당에는 하늘을 가릴 듯이 무성한 향나무와 산수유나무가 있었고, 뒷마루에는 회재 선생이 직접 길렀다는 약 쑥밭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독락당 대청마루에서는 옥산리 주변의 산새가 훤하게 보였다. 대청의 여닫이창을 여니 좌측 담장에 있는 살창을 통해 흐르는 계곡까지 볼 수 있다. 담장을 세워 외부와 소통을 끊은 회재 선생이지만, 그래도 자연만큼은 더욱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진정 그는 이곳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길 바랐을 것이다. 독락당에는 ‘독락당’과 ‘옥산정사’라고 쓰인 편액(그림 혹은 글씨를 써서 방 안과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이 있다. 전자는 아계 이산해 선생의, 후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이다.
독락당 뒤쪽에는 이곳의 백미인 '양진암'과 '계정'이 있다. 두 건물은 ‘ㄱ’자 형태로 지어있다. 양진암은 두 칸의 방이고 그에 붙어있는 두 칸의 방과 정자가 바로 계정이다. 양진암의 편액은 퇴계 이황, 계정의 편액은 석봉 한호 선생의 친필이다.
계정에서는 독락당 옆을 흐르는 자계천이 바로 보인다. 푸른 나무와 맑게 흐르는 계곡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참고로, 회재의 소실인 석씨 부인이 계정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회재 선생의 17대 종손이자 현재 독락당의 당주 이해철 선생님은 “회재 할아버지께서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에서 쉼 없는 수양의 필요를 느끼고, 막힌 곳은 돌아가고, 고여있다가도 이내 흘러가는 물의 지혜를 배웠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양진암의 우측에는 ‘어서각’과 ‘사당’이 있다. 어서각에는 회재 선생이 직접 쓰고, 모은 서적이 있다. 조선 중기 경상도 관찰사 박경신이 서책불출문외(어서각 내의 책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말 것)이라는 명령을 내린 덕에 지금까지도 많은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곳에 혼자 여행을 왔다는 김영숙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는 김 씨는 “독락당은 문헌정보학 방면에서 거의 성지로 불린다”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자료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 김 씨는 “이 자료를 해석하고 계속 잘 보관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는 말을 남겼다.
어서각 뒤편에는 회재가 심은 약 450년 된 천연기념물 제115호 조각자나무가 있다. 조각자나무는 굉장히 크고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나무였다. 큰 가지가 멀리까지 뻗어 어서각과 안채를 덮었는데, 그 모양이 지붕 같았다. 마치 나무가 독락당을 보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혹시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락당을 지킨 산신령이 나무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여기까지 기사를 읽은 독자라면 독락당이 전통 깊고 많은 이야기를 지닌 곳인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피서를 유적지로 가는 것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기도 할 텐데, 기자가 이 독락당을 여름 휴가지로 추천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바로 독락당 옆을 흐르는 계곡, '자계천' 때문이다.
여름휴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물놀이지 않는가. 계정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자계천은 독락당과 연결돼 있다. 별채를 지나 역락재로 들어가는 문의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바로 계곡이 나온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와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공간과 어울리며 주위를 가득 채운다.
자계천은 멀리서 보아도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와 개구리가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바위 곳곳에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다슬기도 붙어있다. 또, 물의 깊이가 발목부터 턱밑까지 다양했다. 주변의 바위는 넓고 큼지막해 누워 쉬기에도 좋다. 자계천에서 계정을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참고로, 독일 베를린 북동부 마르찬 지역에 있는 ‘세계의 정원’ 중 ‘서울정원(Koreanischer Garten)’은 바로 이 계정과 자계천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독락당을 찾아 타이완에서 온 매트 잔(Matt Zahn, 48), 메이 린 호(May Lin Ho, 40) 부부는 서울, 안동 등 한국의 여러 지역을 여행 중이다. 그들은 단연 이곳은 가장 특별한 곳으로 꼽았다.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다.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단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 오게 되면 독락당에서 묵으며 좀 더 이곳을 즐길 것이다.”
독락당을 휴가지로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 지난 2013년 8월부터 한옥 내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는 것! 독락당을 찾아왔다면 반드시 자고 가라는 것이 경주 사람들이 전해준 특급 정보였다. 경주시와 신라문화원과의 협약으로 독락당은 작년부터 한옥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위에 설명했던 역락재, 경청재, 별채, 독락당, 그리고 계정까지 모든 곳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가격은 2인 기준으로 5만 원~30만 원가량. 이 중 독락당과 계정은 독락당의 당주이자 종손인 이해철, 김춘란 선생님과의 통화 후 예약이 가능하다(예약문의: http://sillaculture.cafe24.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잠을 자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독락당에 방문하면 관련 문집, 브로슈어와 DVD 등을 볼 수 있다. 예약 시 종갓집의 예절 체험, 제사 체험도 할 수 있다. 한옥이어서 시설이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은 금물. 깨끗한 화장실과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케이블 TV까지 전부 준비되어있다. 다만 문화재 보호를 위해 취사와 흡연 등 불과 관련된 행위는 할 수 없다(혼인 관계가 아닌 남녀의 경우, 혼숙이 불가능하다).
기자가 방문한 날, 독락당의 별채에는 신혼여행을 온 신혼부부가 있었다. 모두 해외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독락당을 찾은 그들이 신기해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봤다. 부부는 평소 한옥에 관심이 많아 한옥스테이를 돌아다니며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 중 독락당이 제일인 것 같아요. 서로 독립적으로 배치되어있는 듯하면서도 조화롭게 하나로 묶여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는 없는 종갓집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남편 오명훈(33) 씨는 훗날 한옥을 직접 디자인하고 그곳에서 사는 것이 목표라고도 말했다. 유네스코에서 잠을 자고 우리나라 최고의 풍경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곳. 이 정도면 특급 피서지다.
독락당, 이것만은 알고 가자!
1. 교통
▲ 하루에 10번밖에 운행하지 않는 203 버스, 시간을 미리 확인하자! (출처 : 네이버 지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이토록 좋은 독락당의 가장 큰 단점은 교통이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신경주까지 기차로 2시간 5분, 그 뒤로 약 50분가량 버스를 타고 가야 도착할 수 있다. 독락당을 거치는 버스는 경주 203번 버스가 유일하다. 이 버스는 하루에 오직 10번밖에 지나가지 않으니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택시로는 약 30분이 소요되며 이때 택시비는 3만 원 정도가 나온다(비.싸.다). 혹시 택시 기사가 독락당을 모른다면, 옥산서원으로 가 달라고 하면 된다.
2. 먹거리
주변에는 작은 슈퍼마켓뿐 생필품 등을 살 곳이 없다. 따라서, 경주 시내에서 만반의 준비를 한 후 독락당으로 들어서야 한다. 게다가, 독락당 내에서는 취사가 안 되니 주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독락당 주변 음식점은 맛과 양에 비해 비싼 가격이 흠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시내에서 식사를 마친 후 독락당으로 향하는 게 좋겠다.
돈과 상관없이 그래도 난 독락당 주변에서 식사하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자계천과 옥산천에서 직접 잡은 다슬기로 만든 고디(다슬기)탕을 추천한다. 시원한 국물과 함께 다슬기를 쏙쏙 뽑아 먹는 재미가 일품일 것이다.
출출한 밤에 먹을 야식은 꼭 사가기 바란다. 독락당 바로 앞에 작은 슈퍼마켓이 있긴 하지만, 쿨한 주인아저씨께서 정해진 시간 없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문을 닫으시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는 출출한 배를 잡고 슈퍼로 향했지만, 굳게 닫힌 문 앞에 발걸음을 돌려 굶주린 채로 잠을 청해야 했다. 경주 터미널 근처에 농협 하나로마트, 홈플러스 등 경주에서 가장 큰 마트가 자리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식량을 확보하도록 하자.
3. 그 외 볼거리
경주 외곽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는 법. 하룻밤을 묵은 다음 날, 독락당에서 500m 거리에 회재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인근 지역의 선비들이 세웠다는 ‘옥산서원’에 들렀다. 옥산서원에서는 주말마다 다도 체험과 다례 예절을 배울 수 있다. 신청자가 20명 이상일 경우에는 선비복 체험, 투호, 제기차기 등의 다양한 전통 체험도 가능하다. 독락당에서 203번 버스로 15분 거리에는 민속마을이자 회재 선생이 태어난 ‘양동마을’도 있다. 옥산서원과 양동마을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두 곳 모두 구경하기를 추천한다. 다른 서원, 민속마을과는 다른 규모와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문화유산과 문화 체험에 대해 알고 싶다면 경주 터미널 근처에 있는 신라문화원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독락당(獨樂堂), 홀로 즐기는 곳이라는 이름이다.
이곳을 방문한 기자는 독락당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혼자만(獨) 즐기고(樂)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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