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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총독의 집 객실
어느 날 헤스터 프린은 벨링햄 총독의 저택으로 총독이 주문한, 가장자리에 수를 놓은 장갑을 전하러 갔다. 무슨 중대한 행사 때 착용할 것이었다. 그는 보통 선거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최고 지위에서 두어 계단 물러난 전 총독이었지만 식민지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명예와 권세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 식민사회에서 이처럼 권력을 지고 활약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날 헤스터가 면회를 요청하게 된 것은 수 놓은 장갑을 전하는 일 말고도 좀더 중요한 용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고장의 원로들 사이에서 종교와 정치에 좀더 엄한 원칙을 세우기 위해 헤스터 프린으러부터 아이를 빼앗으려는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밀했듯이 그들은 펄이 악마의 핏줄을 이어받았다고 여기고 있었으므로, 선량한 그리스도 교도다운 관심으로, 그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서 그녀의 앞길을 막고 있는 아이를 그녀에게서 떼어 놓아야 한다고 논의한 일은 무리는 아니었다. 또 한편 아이가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언젠가는 구원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면, 헤스터 프린보다도 훨씬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였다. 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벨링햄 총독이 가장 적극적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요즘 세상 같으면 행정위원 정도의 재량에 맡겨질 이런 일이 공적인 일로써 논의되고 저명한 정치가까지 찬반 양론에 나선다는 것은 기묘하고 우습게 여져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때와 같이 모든 것이 단순하고 소박하던 시대에는 헤스터 모녀의 문제보다 공적인 흥미가 훨씬 적을 뿐 아니라 대수롭지 않은 여러 문제가 입법자의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고, 나라의 법령 속에 명시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는 돼지 한 마리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식민지의 입법자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대립을 불러일으켰을 뿐다러 입법 조직 자체에까지 중대한 개혁을 단행케 한 그런 시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대였다.
그래서 헤스터 프린이 외딴 오두막을 나선 것인데, 근심으로 머리는 아팠으나 자신의 권리에는 확신이 있었으며, 한편으론 일반 대중과, 또 한편으론 자연의 정이 지지해 주는 고독한 여성과의 승부는 쌍방이 서로 5대 5의 승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펄은 어머니와 함께였다. 어머니 곁을 펄쩍펄쩍 뛰어다닐 만한 나이가 되어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다녔으므로 총독 저택까지의 거리쯤은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응석을 부리고 싶은 마음에서 곧잘 안아 달라고 조르는가 하면, 곧 또 내려 달라고 하고서는 헤스터를 앞질러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냅다 줄달음질치다가는 넘어지고 고꾸라지곤 했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펄의 빼어난 용모는 앞에서 말한 대로이다. 싱싱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혈색, 환한 살빛, 깊고도 강렬하게 빛나는 두 눈, 벌써부터 윤기가 흐르는 짙은 갈색 머리는 어른이 되면 새까만 색이 될 듯 하였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활기가 넘쳐 있어서 정열적인 순간에 예고 없이 낳은 사생아 같았다. 게다가 헤스터가 지은 아이의 옷 또한 그녀의 화려한 취향에 따라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특색있는 스타일에 금실로 아름답고 화려한 수를 놓은 빨간 비로드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얼굴빛이 나쁜 아이였다면 오히려 파리한 느낌을 주었을지도 모를 만큼 강렬한 색조가 펄의 아름다움에는 멋있게 어울려 마치 지금까지 지상에 나타난 일이 없는 불꽃덩어리 같았다.
그러나 옷차림뿐만 아니라 아이의 전체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그 아이를 보는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달린 표시를 연상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은 형태를 달리한 주홍 글씨였으며, 생명을 지닌 주홍 글씨이기도 했다. 헤스터 또한 빨간 치욕의 표시가 뇌리에 꽉 박혀 무엇을 생각하든 그 형태로 뒤바뀌기라도 하는 듯이 그녀가 만든 아이의 옷은 모두 주홍 글씨를 연상케 하는 바가 있었다. 몇 시간이나 병적일 만큼 궁리한 끝에 애저의 대상과 죄업의 표시 사이에 어떤 유사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펄은 애정의 대상인 동시에 죄업의 표적이기도 했으므로 이 동일성이 있으므로 해서 헤스터도 제 자식의 모습 속에 주홍 글씨를 이렇게 훌륭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마을 구역 안으로 들어서자 청교도 아이들은 놀이를 멈추고 짓궂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것 봐, 저기 주홍 글씨를 단 여자가 간다. 게다가 옆에 ㅜ띠러가고 있는 아이도 주홍 글씨하고 똑같지? 그렇지? 우리 가서 진흙이라도 던져 주자!
그러나 펄은 지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얼굴을 찡그려 보이기도 하고, 두발을 쾅쾅 구르기도 하고, 작은 주먹을 흔들어 위협하는 몸짓을 하더니 갑자기 적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 모두 쫓아 버렸다. 이렇게 상대방을 맹렬히 쫓아가는 모습은 어린아이들의 조를 벌하는 일을 직책으로 하는 아이들의 역신, 즉 성홍열같은 그러한 천벌을 가져다 주는, 날개도 채 안 난 천사와 같았다.
펄은 무시무시하게 고함을 질러 댔으므로, 도망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공포에 떨게 했을 것이다.
승리를 거두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펄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뒤로는 별일 없이 벨링햄 총독의 저택에 이르렀다. 큰 목조 건물인 이 집은, 이런 구조의 집은 지금도 미국의 오래된 도시에는 그 견본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이끼가 끼고 다 허물어져 가는데다 어두운 방안에서 일어났다 사라진 사건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거나 잊혀진 수많은 슬프고 즐거운 사건 때문에 완전히 음산한 집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당시 이 집의 모습엔 신선한 맛이 있었고, 죽음이 한 번도 찾아든 적이 없는 생활의 산뜻함이 햇볕 잘 드는 창문을 통해 비쳐나오고 있었다. 참으로 즐거워 보이는 집이었다. 벽 전체에는 깨어진 유리조각이 많이 섞인 회를 발랐기 때문에 태양광선이 건물 정면을 비껴 쬐면 마치 한 움큼의 다이아몬드 가루를 잔뜩 뿌려 놓은 듯이 반짝였다. 그 광채로 이 집은 완미한 쳥교도의 노지배자 저택이라기보다는 알라딘 궁전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등시의 괴상한 취미에 맞추어 벽면에는 보기에도 신비할 만큼 기묘한 무늬와 도형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런 그림들은 백회가 마르기 전에 그려 넣은 것이었는데 단단히 굳어져 후세 사람들이 구경하며 찬사를 보내게 된 것이다.
펄은 이렇게 휘황찬란한 집을 보자 기쁜 듯이 깡충깡충 뛰며 저택 전체에 비치고 있는 햇빛을 몰래 떼어서 장난감으로 만들어 달라고 졸라 댔다.
안돼요, 펄! 하고 어머니는 타일렀다. 너는 네가 햇빛을 모아야 해. 엄마는 네게 줄 햇빛이 없어!
모녀가 다가선 현관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었고, 그 양쪽에는 저택의 좁다란 탑이랄까, 튀어나온 부분이 마주 보고 있었으며, 어느 쪽에나 다 살창문이 달려 있었는데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덧문에 대어져 있었다. 현관에 달려 있는 철제 해머를 들어 문을 두드리자 총독의 시종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 사나이는 영국 태생의 자유민으로서 지금은 7년 기한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자였다. 이 기간 동안은 주인의 사유물과 같아서 소나 의자처럼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 노예가 입고 있는 푸른 웃옷은 그 당새만이 아니라, 영국에서는 아주 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귀족 문중에서 평상시에 하인들에게 입혔던 옷이다.
벨링햄 총독님은 계신가요?
헤스터는 물었다.
네, 계십니다.
시종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신대륙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처음보는 주홍 글끼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총독 각하꼐선 댁에 계십니다만, 목사님 두 분과 또 의사 선생님도 함께 계십니다. 지금 바로 만나 뵐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들어가야겠어요. 라고 말하는 헤스터 프린의 아주 단호한 태도와 가슴에 빛나는 주홍 글씨가, 헤스터를 이 나라의 귀부인이라고 여기게 했던지 시종은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서 헤스터와 펄은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벨링햄 총독의 저택은 건축자재의 질이라든가, 기후의 차이, 그리고 사교생활 등을 고려해, 조국 영국에 있는 상류층 저택처럼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현관 안 널찍한 객실은 천장도 높고 건물 안쪽까지 계속되어 있어 다른 모든 방과 직접 통할 수 있는 복도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이 널따란 방 한쪽에는 현관 양쪽에 움푹 들어가서 작은 방을 이루고 있는 두 탑의 창문으로부터 광선이 비쳐들고 있었고, 그 일부가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다른 쪽의 창은 흔히 옛 책에서나 볼수 있는 궁형 창이었는데 , 거기로부터는 더 강한 광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방에는 푹신한 쿠션이 깔린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 쿠션 위에는 <<영국의 연대기>>같은 이절판 크기의 목직해 보이는 문헌들이 놓여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 금박을 입힌 책을 놓아 두는 것과 같은 식이었다. 객실의 가구류는 등받이에 참나무꽃의 화환을 정성껏 조각한 몇 개의 묵직한 의자와, 같은 취향의 테이블이 하나 있을 뿐이었으나, 이것들은 모두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것이든가 그 이저의 물건으로써 총독의 본집으로부터 가져온 대대로 물려오는 유물들이었다. 테이블에는 백랍의 큰 맥주 잔이 놓여 있어는데, 헤스터나 펄이 들여다보았더라면 그 잔 바닥에서 조금 전에 마시고 난 맥주의 거품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벽에는 벨링햄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조상 대대의 초상화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가슴에 흉갑을 두른 무인도 있었고, 주름깃에 위엄을 떨치고 있는 무인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옛날 초상화의 특징인 냉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초상들은 망령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향락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객실의 벽을 이루고 있는 참나무 널의 한가운데에는 갑옷 한 벌이 걸려 있었는데, 초상화에 나오는 선조의 유물이 아니라, 극히 최근에 만든 물건이었다. 벨링햄 총독이 뉴잉글랜드로 건너오던 해에 런던의 숙련된 무구사가 만든 것이었다. 강철로 만든 투구.흉갑.후갑.경갑, 그 밑에 늘어진 장갑 한 켤레와 칼 한 자루-이 모든 거이 다 그러했지만, 특별히 투구와 흉갑은 광택이 날 정도로 잘 손질되어 있어 마룻바닥이 온통 번쩍이고 있었다. 이 눈부실 만큼 빛나는 갑옷은 한낱 장식품으로 놓아 둔 것이 아니라, 총독 자신이 엄숙한 열병식이나 연병자에서 여러 차례 입기도 하였으며, 피쿼드 전쟁에서는 이 갑옷을 입고 연대의 선두에 서서 활약한 일도 있었다. 법률가로 교육을 받았고, 베이컨, 코프, 노이, 핀치 들을 허물업싱 벗할 수 있던 총독이었으나, 이 새로운 나라의 긴박한 사태는 그를 정치가이면서 동시에 군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펄은 빛나는 이 저택의 정면을 보았을 때 못지않게 번쩍이는 갑옷을 보고 몹시 기뻐했는데, 잠시 뒤에는 거울같이 닦은 흉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펄이 외쳤다.
엄마, 엄마가 여기 비쳐요. 자, 이리 와 봐요!
헤스터는 아이를 즐겁게 해 줄 작정으로 하라는 대로 해 보였다. 그러자 그 볼록거울에 비친 주홍 글씨가 묘하게 크게 과장되어 나타나서 그녀의 외모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처럼 보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헤스터의 모습은 주홍 글씨 뒤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펄은 또 투구에 비친 그 비슷한 영상을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있었는데, 그 작은 얼굴에 자주 떠오르는 영리한, 요정 같은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 심술궂은 미소 역시 아주 그럴 듯하게 흉갑 거울에 비쳤으므로 헤스터 프린은 그게 자기 자식의 모습이라기보다 퍼의 모습을 닮으려고 애쓰는 작은 악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온 펄! 하고 헤스터는 아이를 그곳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했다. 저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하자. 꽃이 피어 있을지도 몰라. 숲에서 보는 것보다 더 고운 꽃들이 말야.
마침내 펄은 객실 반대쪽에 있는 궁형 창 쪽으로 달려가더니 정우너의 경치를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짧게 깎은 잔디가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그 양쪽으로 절반쯤 심은 채 손질이 안 된, 관목이 늘어선 산책길이 나 있었는데, 정원을 꾸미는데 영국식 취미는 아예 살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 저택 주인은 흙이 단단해서 식물이 자랄 것 같지 않은 이곳 대서양 쪽에서는 그것은 도저히 무리라고 단념한 모양이었다. 그대신 양배추가 보란 듯이 자라고 있었으며, 저만큼에 뿌리를 내린 호박이 벽면 가까이 덩굴을 뻗어 객실 창문 바로 아래에 커다란 호박을 하나 매달고 있었다. 이 황금빛의 호박이야말로 뉴잉글랜드의 토질이 줄 수 있는 가장 푸짐한 장식품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대륙에 처음으로 건너온 블랙스턴 목사가 심은 나무의 후예로 보이는 장미 덩굴과 사과나무 몇 그루도 보였다. 블랙스턴 목사란 반신화적인 인물로서, 미국 초기 연대기 등을 보면 늘 황소 드에 올라타고 다녔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펄은 장미 덩굴을 보더니 빨간 장미꽃을 꺾어 달라고 졸라 대며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조용히 해요, 펄! 어머니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울지 마, 펄! 정원에 사람 소리가 나잖아.
총독님이 계신단 말야! 다른 분들도 함께!
그때 산책길 저쪽으로부터 몇 명의 나자들이 저택을 향하여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펄은 어머니의 달래는 말은 아랑곳없이 악을 쓰며 울어 대다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아이의 변덕스러운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8.어린 마녀와 목사
헐렁한 상의에 가벼운 모자를 쓴 벨링햄 총독은 앞장서서 집터를 안내하며 집의 개조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임스 왕조풍의 구식 옷이기는 했지만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주름깃이 반백이 된 턱수염을 둘러싸고 있어 큰 쟁반 위에 놓인 세례 요한의 목을 연상케 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세월의 서릿발을 맞은 것 같은 아주 완고하고 엄격한 그의 인상은, 있는 힘을 다하여 자기 주위에 잡아 두려고 한, 세속적인 즐거움을 위한 갖가지 설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근엄하고 충실한 우리의 선조들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쉽게 잡을 수 있는 안락이나, 풍요를 거부하는 것이 양심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믿는다면 그건 큰 잘못이다.
이와 같은 신조는 지금 벨링햄 총독의 어깨 너머로, 흩날리는 눈발처럼 흰 턱수염을 나부끼고 있는 존 윌슨 노목사도 그런 설료는 한 적이 없었다. 이 흰 턱수염의 주인공은 그때 배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뉴잉글랜드의 풍토에서도 자랄 수 있을지 모르며, 자색포도도 또한 햇볕 잘 드는 정원 앞담장에서라면 무성하게 자랄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을 말하는 중이었다. 노목사는 영국 교회의 풍족한 품에서 자랐으므로 모든 쾌적하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확고한 취미를 지니고 있었다. 설교단 위에 섰을 때나, 헤스터 프린이 저지른 것 같은 죄를 대중 앞에서 비나하거나 할 때는 매우 엄격해 보였지만, 사생활에서는 온정이 넘쳐 흐르는 관대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 무렵의 목사들 가운데서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애정을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었다.
총독과 윌슨 목사의 뒤에는 다 사람의 손님이 뒤따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독자들도 기억하는, 헤스터 프린의 치욕적인 장면이 벌어졌을 때 과히 내키지 않는 역할을 맡았던 아더 딤스데일 목사였고, 그와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은 요 이삼 년 동안 줄곧 보스턴에서 살고 있는 의술에 뛰어난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었다. 그는 젊은 목사의 주치의인 동시에 친구이기도 했다. 젊은 목사는 교회 관계의 일이나 자신의 의무에 너무 희생적인 봉사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최근에 와서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는 소문이었다.
손님들 앞에 서서 계단을 하나 둘 딛고 올라온 총독이 객실의 커다란 창문을 양옆으로 활짝 열어젖히자 정면으로 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헤스터 프린은 커튼 그늘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았다.
이게 누구지? 벨링햄 총독은 눈앞에 있는 아이의 새빨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솔직히 말해서 이 같은 모습은 나의 화려했던 청춘 시절 이후 처음 보는 거시야! 궁정 가면무도회에 참가하는 것을 다시없는 영광으로 생각했던 옛날 제임스 왕 시절에는 축제 때가 되면 이런 어린 요정 같은 것들이 많아서 우리는 그 애들을 축연경 아이라고 불렀었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손님이 우리 객실엘 들어왔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착한 윌슨 목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요 빨간 깃털을 단 새는 무슨 새일까요? 멋있게 채색된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마룻바닥에 금색과 진홍색의 그림자가 비쳤을 때 이와 똑같은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죠. 그런데 너의 이름은? 넌 그리소도 교도의 아이냐? 교리 문답은 아느냐? 아니면 천주교의 유물과 함꼐 메리 잉글랜드에 남겨 두고 온 장난꾸러지 요정의 친구란 말이냐?
난, 우리 엄마 딸이에요. 주홍 색 요정이 대답했다. 내 이름은 펄이고요!
펄이라고? 펄이 아니라 루비겠지, 그렇지 않으면 코럴인가? 아니 그 색깔로 보면 아무래도 빨간 장미라고 해야겠군! 그렇게 말한 늙은 목사가 손으로 펄의 볼을 만지려고 하자 아이는 살짝 피해 버렸다.
그런데 네 엄마는 어디 있지? 아, 여기 계시군. 목사는 벨링햄 총독 쪽을 보며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이 애기 지금껏 우리가 의논했던 문제의 아이입니다. 그리고 저기 불행한 어머니 헤스터 프린도 와 있군요!
불행한 어머니라고? 총독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런 애 어머니라면 당연히 주홍 색의 여인 이고 바빌론 여인의 좋은 표본이라 해도 좋을거요! 어쨌든 저 여자는 마침 좋은 때 와 줬군. 곧 그 문제를 의논하기로 합시다.
객실로 들어온 벨링햄 총독을 뒤따라 나머지 세 사람도 들어왔다.
헤스터 프린! 총독은 엄한 시선으로 주홍 글씨의 여인을 보며 말했다. 요즘 그대에 대해 말이 많았소이다. 요점인즉, 저 아이 속에 든 불멸의 영혼을 속세의 구렁텅이에 빠져 타락할 대로 타락한 그대에게 맡겨 둬도 과연 우리 당국자가 양심껏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소. 이 아이 어머니로서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소! 그대 곁을 떠나서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엄격한 교육에 의해 하늘과 땅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 이 애의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위해 보다 나은 길이라고 생각지 않소? 이 점에 대하여 그대는 이 아이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소?
헤스터 프린은 주홍 글씨를 손가락질 하며 대답했다.
저는 이 글씨에서 배운 것을 펄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뭐라고, 그건 수치의 표시가 아니오! 총독이 엄격하게 말했다. 우리가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하는 것은 그 글씨가 나타내는 오점 때문이오.
말씀은 그렇습니다만. 안색은 창백했지만, 어머니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이 표시가 저에게 가르쳐 준 것은-매일,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나 자신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이 아이에게는 좀더 슬기롭고 좀더 좋은 아이가 될 수 있는 교훈입니다.
신중히 생각한 뒤에 이 일을 처리합시다. 벨링햄이 말했다. 윌슨, 이 아이를 좀 시험해 보십시오. 이 나이 또래에 알맞은 그리스도 교도로서의 교육이 되어 있는지 어떤지를 말입니다.
늙은 목사는 안락의자에 앉더니 펄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 이외의 사람이 손대 본 적이 없는 이 아이는 창문으로 뛰어나가 계단 있는 데까지 도망쳐 버렸다.
화려한 빛깔의 깃털을 단 열대 지방의 들새가 창공을 향하여 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윌슨 목사는 펄의 이 돌연한 행동에 적이 당황했다. 그는 평소에 인자한 할아버지 같아서 아이들이 퍽 잘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계속 시험해 보려 하였다.
펄! 그는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 말 잘 들으면 진짜 펄(진주)을 가질 수 있어. 너는 누가 만들었지? 대답해 봐라.
펄은 자기를 만든 것이 누구라는 것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엇다. 신앙이 돈독한 가정의 딸이었던 헤스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열심히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줄곧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펄이 생후 3년 동안에 배운 것은 정말 대단한 야이어서 뉴잉글랜드 신앙 입문서나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집의 제1문쯤은 비록 그 유명한 책의 겉모양조차도 몰랐지만 쉽게 통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아이들은 다소 심술궂은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펄은 열 배나 더 심술궂었기 때문에 입을 꽉 다물어 버리거나 뚱딴지 같은 말을 지껄였다. 펄은 아주 기분나쁜 듯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대답하기를 거절하다가 자기는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감옥문 옆에 핀 찔레꽃 덤불에서 어머니가 주워 왔노라고 말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떠오른 것은 펄이 서 있는 총독댁의 창문 밖에 빨간 장미가 피어 있었고, 오는 도중 감옥 앞에서 찔레꽃 덤불을 본 것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저 칠링워드 노인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젊은 목사의 귀에다 뭐라고 속삭였다. 헤스터 프린은 이 의사를 쳐다보자, 자기 운명이 어떻게 변할는지 모를는 긴박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달라진 노인의 얼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지내던 때에 비하면 너무도 흉한 얼굴이었다. 침울한 안색은 더욱 어두워 보였고, 몸은 전보다 더 불구가 된 것 같았다. 한순간 시선이 마주쳤지만, 헤스터는 다시 눈앞에 벌어진 사태에 주의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야단났군! 펄의 대답을 듣고 어이가 없어진 총독이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는 세 살이나 되었다는데 누가 자기를 만들었는지도 모르다니! 자기의 영혼이라든가 현세에서의 타락이라든가 내세의 운명 등에 대해서도 역시 모르리라는 것은 뻔한 노릇이오! 어떻습니까, 여러분. 더 이상 시험해 볼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헤스터는 펄을 붙잡더니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몹시 사나운 기세로 청교도의 늙은 총독을 쏘아보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외로운 처지로 오직 하나의 보물인 딸애만을 보람으로 여기고 살아 온 헤스터로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덤빈다 해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는 권리였고, 죽어도 이것만은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하느님이 이 아이를 내게 주셨습니다! 헤스터는 외쳤다. 당신들이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대신 하느님이 아 아이를 주신 것입니다. 이 아이는 나의 행복입니다! 나의 가책이기도 합니다! 또 펄은 내게 벌을 주기도 합니다! 보지 못하십니까? 이 아이는 주홍 글씨입니다만, 사라을 받기만 하는 주홍 글씨이기에 그만큼 나의 죄를 벌 주는 힘이 백만배나 더 큰 것입니다!
가엾은 여자군. 인정 많은 늙은 목사의 말이었다. 이 아이는 잘 돌봐질 것이오. 그대 이상으로.
하느님이 이 아이를 제게 맡겨 주셨습니다. 헤스터 프린은 되풀이했으나 그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이 아이를 내줄 순 없어요!
이렇세 말한 그녀는 발작이라도 하듯이 젊은 목사 딤스데일 씨 쪽을 돌아다 보았다.
저를 위해 말씀 좀 해 주세요! 헤스터는 외쳤다. 당신은 제 목사님이셨고 제 영혼을 책임지셨던 분이니까, 여기 계신 분들보다는 저를 더 잘 아실 거 아녜요. 이 아이만은 빼앗길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변호해 주세요! 당신은 제 마음을 알아 주실 거예요. 이분들에게는 없는 동정심을 지니고 계시니까요. 제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머니의 권리가 어떠한 것인지 당신은 알고 계실 겁니다! 부탁입니다! 이 아이를 빼앗길 순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이 격하고 절박한 호소는 그녀가 금방이라도 미쳐 날뛰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자아냈다. 이 말에 젊은 목사는 곧 앞으로 나섰는데, 얼굴은 창백히지고 특히 그의 신경질적인 기질이 흥분할 때마다 하는 버릇대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목사는 헤스터가 군중 앞에서 욕을 당할 때 소개됐던 것보다 훨씬 더 초췌하고 수척해 보였다. 건강이 쇠약해진 탓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는 탓인지는 모르지만 크고 검은 그의 눈 깊숙한 곳에는 무한한 괴로음이 서려 있었다.
이 여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목사의 음성은 부드럽고 떨리는 듯 했으나, 넓은 방 안이 쩌렁쩌렁 울리어 속이 텅 빈 갑옷이 공명할 정도였다. 헤스터의 말에도, 또 그렇게 말하는 심정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그녀에게 이 아이를 주신 것이고, 보기에 괴팍스럽게 생각되는 이 아니의 성질이나 요구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힘도 아울러 주어졌을 테니 어느 누구도 이 여자만큼 이 아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 모녀 사리에는 뭔가 머리가 수그러질 만한 신성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딤스데일 목사님? 총독이 목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목사는 말을 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창조자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조의 행위를 가볍게 보시고, 더러운 육욕과 신성한 애정과의 구별을 무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비와 죄와 어미의 수치 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감화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손을 통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고, 그리서 어머니 역시 저렇게 열심히, 또 저렇게까지 애타는 마음으로 이 아이를 보호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축복, 그것도 이 여자의 생애에 있어서 단 하나의 축복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게다기 그 어머니 자신도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죄를 벌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이 아이는 그 어머니가 생각지도 않은 수간에 불현 듯 가슴을 찌르는 고통이며 괴로움 종에도 간혹 기쁨을 맛보는 때에 새삼스레 느끼는 가책이며, 늘 되살아나는 번민입니다! 그 흔적은 이 아이의 옷차림에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여인의 가슴에 낙인찍힌 저 붉은 표적을 뚜렷이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윌슨 목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여인이 자기 아이를 협잡꾼으로 만들까 봐 걱정하고 있었죠.
아니,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딤스데일 목사는 말을 이었다. 저 아이의 존재를 통해 하느님이 엄숙한 기적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이 여인이 깨닫고 있다는 것을 저는 보증합니다.
게다가 이 여인이 믿고 있는 것은 보다 암담한 구러에 빠뜨리려고 꾀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하느님께서 저 아이를 내리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불멸의 영혼을 지닌 아이, 영원한 기쁨과 또한 슬픔을 맛보게 하는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는 일은 이 가엾은 죄많은 여인을 위해 좋은 일입니다. 그녀는 이 아이를 통해 정의를 체험할 것이며, 자신의 타락을 되새겨 명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녀가 이 아이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창조주의 신성한 약속에 의해 아이 또한 어머니를 천국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이 여인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점으로 보아 죄많은 어머니 쪽이 죄많은 아버지보다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 헤스터 프린을 위해서나 이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나 이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나 하느님의 섭리가 처리하신 대로 두 사람을 놔 두도록 합시다!
굉장히 열성적으로 말씀하시는구요.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 젊은 동료의 말씀에는 중대한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윌슨 목사가 덧붙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벨링햄 총독님? 불쌍한 여인을 위하여 그가 훌륭히 변호해 주지 않았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총독은 대답했다. 이 문제는 일단 보류하기로 합시다. 이 여인이 더 이상 추문을 퍼뜨리지 않는다는 조건부라면 하여간 선생이나 딤스데일 목사의 손을 빌든가 해서 이 아이를 위해 규칙대로의 교리문답 시험을 치르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 아이를 학교에도 보내고 교회의 모임에도 나갈 수 있도록 책임자들에게 일러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젊은 목사는 말을 마치자 사람들 앞에서 몇 발짝 물러서서 두터운 커튼자락 뒤에 반쯤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었다. 햇빛에 비치어 마룻바닥에 던져진 그의 그림자는 애소의 흥분 때문에 아직 떨리고 있었다. 사납고 변덕스러운 요정 펄은 살며시 목사 옆으로 다가가더니 자기의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자기 볼에다 갖다 댔다. 아주 상냥하고 자연스러운 애정의 표시였다. 이를 본 어머니는 저 아이가 정말 펄이란 말인가 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헤스터도 이 아이의 마음에 애저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격한 감정으로 나타내기가 일쑤여서, 이렇게 부드럽고 훈훈하게 표현된 적은 지금까지 거의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목사는 오랫동안 그가 동경해 오던 여인의 애정을 제외한다면, 이 어린아이의 애정만큼 감미로운 것은 없었다.
그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엊고 잠시 주저하다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러나 펄의 그러한 부드럽고 다정한 기분은 오해 계속되지 않았다. 아이는 웃으면서 객실 저편으로 뛰어갔다. 그 모양이 어찌나 가볍고 경쾌한지, 늙은 윌슨 목사는 저 아이의 말끝이 대체 마룻바닥에 닿은 것인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저 장난꾸러기는 아무리 봐도 요술을 알고 있는 것 같군요. 하고 그는 딤스데일 목사에게 말했다. 저 아이라면 마귀 할멈의 빗자루가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겠어요.
참, 이상한 아인데!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 말참견을 했다. 어머니를 닮은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 아이의 성격을 분석해서 아버지를 추측해 보는 것은 학자의 연구 범위를 벗어난 일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습니다만, 이런 문제를 세상의 학문에 의뢰한다는 것은 죄가 되는 일입니다.
윌슨 목사가 말했다. 단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로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 이상, 비밀은 비밀대로 놓아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모든 기독교인은 아버지 없는 이 불쌍한 아이에게 어버이와 같은 친절은 베풀 의무가 있습니다.
일이 잘 해결되었으므로 헤스터 프린은 펄을 데리고 그 저택을 나왔다. 둘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을 때 어떤 방의 격자 창문이 열리더니 벨링햄 총독의 심술궂은 누이동생-사오 년 뒤에 마녀로 처형된-히빈스 부인의 얼굴이 햇빛 속으로 불쑥 나타났다.
이것 보라고! 하고 부르는 부인의 불길한 모습은 이 산뜻한 저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 주는 듯했다. 당신들 오늘 밤에 나하고 같이 가지 않겠소? 숲 속에서 재미있는 모임이 있는데 아름다운 헤스터 프린도 같이 갈 것이라고 마왕에게 약속까지 했는데.
나 대신 미안하다고 말이나 전해 주세요. 헤스텉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집에서 펄을 돌봐 줘야 합니다. 이 아이를 빼앗겼다면 당신을 따라 숲 속에 들어가 마왕님의 장부에 내 피로 서명을 하겠소만!
머잖아 꼭 데리고 갈 테야!
마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창문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 히빈스 부인과 헤스터 프린과의 대면이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있었던 일이라면, 이것만으로도 타락한 어머니와 또 그로부터 생겨난 아이와의 관계를 끊어서는 안 된다는 젊은 목사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되는 셈이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펄은 어머니를 악마의 손길로부터 구해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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