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09일] - “전 세계적으로 자전거 품귀 현상이 극에 달한 요즘,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중 접이식 자전거 브랜드 ‘브롬톤’은 웃돈 주고 거래될 정도로 남다른 인기를 과시하는 분위기에 되팔이(매점매석해 비싼 값에 매매하는 이를 지칭) 족까지 등장했다. 그래도 없어서 못 구한다는 푸념이 들리는데, 비시즌임에도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는 모습은 기존에는 없던 현상이다.”
코로나19가 일상화시킨 사회적 거리두기. 한 전문가는 “극단적으로 아예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안전하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접촉이 곧 ‘죄’가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스키장 개장일에 몰려가 스키를 즐겼던 사람들은 각 언론과 커뮤니티로부터 ‘개념 없고 상식 없는’ 사람들로 집중포화를 맞았다. 영업 정지 대상에 들어갔다가 얼마 전 다시 열었지만 가는 것이 죄가 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하다.
이와 동시에 헬스장, 학원, 결혼식장 등 각종 시설도 영업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급기야 이들 사업자는 정부가 거리두기 때문에 영업을 막는다고 하면서 정작 거리가 가장 가까운 식당이나 대형 할인점은 문을 여는 모습에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호소한다.
사실 초점을 ‘거리’로 좁혀보면 현실적으로 가장 위험한 곳은 누가 뭐래도 대중교통이다. 어쩌면 감염 확률도 가장 높을 수 있는 장소다. 특히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이나 버스는 코로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전히 지옥이다. 다들 마스크를 잘 착용하지만, 방역 당국이 권고하는 2m는 고사하고 2cm 떨어지기도 어렵다. 이러한 실상은 무시하고 하루에 수백 명 넘게 확진자가 발생하는 현실에 동선을 파악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모습이 더 아이러니한 형국이다.
당국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아무리 재택근무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극히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매일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근로자는 드물다. 급기야 출퇴근이 직접적인 위협이 되면서 요즘 거리에는 ‘초보운전’을 붙인 차가 부쩍 늘었다. 돈이 없다고, 회사에 주차장이 없다고, 운전하기 무섭다고, 지하철이 편하다고 자가용 통근을 꺼리거나 미뤘던 이들이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로 나오기 시작했다.
81년 첫 출시작 ‘마크원’ 올해가 40주년
자동차와 더불어 특히 출퇴근 시간에 부쩍 늘어난 것이 바로 자전거다. 세계 최대 자전거업체 자이언트는 관세 때문에 중국 생산라인을 대폭 줄이고 본사가 있는 대만으로 옮겼다가 코로나 이후 폭증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관세를 감수하고 중국 공장을 다시 가동했다. 작년 2분기 자이언트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증가한 6억 5,894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시장조사 업체 NPD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6월 미국 자전거 판매 규모는 지난해보다 63% 증가했다.
자전거의 수요가 폭발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뻔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안감을 덜어주는 출퇴근의 대체제도 되지만, 헬스장이나 체육관과 같은 야외 시설에서 운동할 수 없게 된 현실 속에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한 채 그나마 안전하게 실외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도 된다. 실제 WHO(세계보건기구)는 재택근무로 인해 신체활동이 줄어들 수 있다며 자전거 타기를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자전거 마니아들은 “투자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브랜드가 하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게 접히는 자전거로 불리는 ‘브롬톤(Brompton)’이다. 접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의 궁극적인 클래식이자 소유욕을 자극한 명품 브랜드다. 더구나 올해는 지금의 브롬톤이 있을 수 있게 한 ‘마크 원’ 등장 40주년이다. 분위기만 이렇지 않다면 특별한 에디션을 선보였을 시기다.
영국인 발명가 앤드루 리치가 1976년 창업한 브롬톤은 전 세계 자전거 마니아는 물론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로망 목록 1위에 오른다. 코로나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좁은 도로, 꽉 막힌 자동차로 가득한 일상에서 10초면 완성되는 접이식 소형자전거가 삶의 질을 극적으로 개선해 줄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어찌 그 매력을 마다할 수 있을까!
브롬톤을 타고 캠핑을 하는 것을 ‘브롬핑’이라 부르고, 가족이 브롬톤을 타면 ‘가족톤’, 여자친구가 타면 ‘여친톤’, 아내가 타면 ‘아내톤’ 등 각종 수식어도 등장했다. ‘시작은 브롬톤’이라는 서적도 등장했고, 매거진B가 분석한 브랜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면서 인기가 검증됐다.
라인프렌즈는 브롬톤과 협업으로 한정판 샐리 에디션을 공급했고, 모험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익스플로어 에디션은 출시 전부터 완판 행렬로 유명했다. 인기에 힘입어 브롬톤의 클래식함과 어울리는 고급 안장, 통가죽 가방, 전용 보관함 등 수많은 써드파티 시장이 생겨났고, 이는 브롬톤 마니아가 컬렉팅에 푹 빠지게 만드는 재미를 준다.
스마트폰이 인기를 끌면 케이스, 보호필름 등 수많은 파생상품이 생기는 것과 같은 논리지만, 희소성이 더욱더 높기에 훨씬 고급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그 기간만 무려 40년 세월이다. 이 기간동안에 브롬톤은 단순한 자전거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안착했다. ‘브롬톤 문화가 되다’라는 거창한 제목을 차용하고 글이 쓰인 배경이다.
40년 전 그 방식 그대로 수제 자전거 원조
‘휴대가 가능한 자전거’라는 아이덴티티에도 불구하고 브롬톤은 매우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고집한다. 자전거 시장의 대세라 여겨지는 경량화의 대표 주자 카본 소재 도입은 관심도 없고, 보편화 된 스테인리스는 어림도 없다. 흔해진 티타늄조차도 쥐꼬리만큼 쓰인다. 그 것도 앞쪽 포크, 뒤쪽 리어 등 극히 일부만 선보이며 호사라는 꼬리표가 달리니 기가찬다. 티타늄을 일부 적용했을 뿐인데 가격 차이는 100만 원을 훌쩍 넘겨버렸고, 한때 선보였던 싯포스트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다시 스틸 소재로 대체됐다. 당최 속내를 알 길은 없지만 브롬톤이니 대수롭지 않다.
자전거 제작에 무난하게 쓰였던 동시에 저가 자전거에 쓰이던 소재 ‘스틸’을 사용한 기본 버전의 몸값은 200만 원대를 호가한다. 비싼 건 둘째 치고 휴대성이 돋보여야 할 자전거가 무겁고 심지어 야외에서 타는 제품이 습기에 노출되면 부식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전통 수제 제작의 정수이자 무심한 자전거다. 그런데도 전 세계 자전거 애호가는 물론 입문하는 사람조차 최소한 브롬톤 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단순히 잘 접힌다는 것 이상의 의미에 매료된 탓이다.
브롬톤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잘 팔리지만, 영국 현지 독점 생산만을 원칙으로 내세운다. 한때 대만에서 제조되던 시기도 있으나 품질이 본사 기준에 미달하고 기술 유출 문제가 불거지면서 계약 종료를 끝으로 철수됐다. 그 무렵 출시된 제품은 오늘날 ‘대만톤’이라는 명칭으로 부활을 시도하는 모습이 종종 커뮤니티에 등장한다. 새로 사는 것이 더 싸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지만…
이렇듯 최상의 철학은 곧 ‘품질’이라고 들릴 만큼 제품의 완성도를 향한 집착 그리고 집념이 강한 브랜드다. 무겁지만 제대로 접히는 방식 덕분에 뛰어난 휴대성이 돋보였고, 16인치에 불과한 작은 바퀴를 가진 자전거가 험로를 가리지 않는 강력한 주행력이 인상적인 특징은 불친절한 접이식 브롬톤이 자전거로써 명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게다가 없어서 구매를 못 한다는 말이 들리는 요즘, 수요가 폭발했을 법한 시기임에도 무리하지 않는다. 구하기 어려운 제품에 본능적으로 소유욕이 폭발하는 건 당연한 모순이겠지만 전 세계에서 똑같은 현상이라면 많이 파는 것에 무심한 것이 전략이지 않을까를 의심케 할 정도다.
고가에 희소성이라는 두 가지 불친절함을 내세운 브롬톤이 일관된 방식으로 하이엔드 브랜드의 반열에 오른 과정 또한 인상깊다.
‘세상에서 가장 작게 접히는 자전거’라는 그들이 잃지 말아야 할 핵심 가치는 변함없이 계승되었고, 지켜내는 것이 곧 철학이라 여겨질 정도로 고집불통다운 면모가 지금까지 핵심으로 전수됐다. ‘최신’이라는 수식어조차도 사치스럽게 만드는 브롬톤의 오묘한 분위기는 왜 접이식 자전거는 브롬톤이어야 하는가? 대한 의문을 남기지만, 동시에 그 속에 답이 담겼기에 사용자는 굳이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브롬톤의 공고한 입지를 상대로 스트라이다, 다혼, 버디 등 경쟁사가 앞다퉈 제품을 쏟아내지만, 폴딩 능력만큼은 브롬톤이 최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매년 1~2회 출시하는 한정판은 마치 나이키 조던이나 슈프림처럼 발매 즉시 완판되고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다. 지난해 하반기에 등장한 챕터3 한정판은 420만 원이라는 높은 발매가를 비웃듯 순식간에 팔렸고, 이제는 최대 520만 원까지 이뤄진 중고 거래 흔적이 누군가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무쇠 자전거에 빠진, 당신도 브롬토너 인가?
원작의 인기는 아류작의 기회가 되곤 한다. 특유의 접이 방식은 시간이 흘러 특허권이 만료됨에 따라 소위 ‘유사 브롬톤’, 즉 모방 제품 시장 형성에 기여했다. 사바 파이크, 루트 그루 등의 제품은 브롬톤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자전거 기술까지 섭렵하더니 자신이 붙어 겉으로 봐서는 원작과 동일한 브롬톤 관련 호환 부품을 연일 찍어내고 있다. Aceoffix가 선보인 메인, 포크, 리어는 색상까지 브롬톤 그것을 따라잡았다는 평이 들린다.
그러나 우려스럽지 않다. 이런 모방 제품의 등장은 접이식 미니벨로 시장의 크기를 키우면서 결과적으로 브롬톤을 향한 호기심과 열망을 더 키우는 단초다. 모방 제품이 미니벨로의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일반 대중의 눈에 쉽게 띄게 되었고, 그렇게 대중을 상대로 접이식 자전거 호기심을 자극해 발을 들이게 되면서 브롬톤이라는 이름은 가방에서의 샤넬보다 더 많이 듣게 되는 이름으로 성장하는 계기로 진화했다.
넥타이를 갖춘 정장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축제화 한 브롬톤 사용자의 넉살 좋은 면모는 브롬톤 월드 캠피언십(BWC)으로 불리며 하나의 문화가 됐다. 누가 더 먼저랄 것도 없이 완전히 접힌 상태의 자전거를 재빨리 펴고 목적지까지 달리는 속도를 따지며, 이 들 중 한 명을 가리는 모습이 희열을 안긴다고 표현한다. 여기에서의 조건은 절대 프레임 변경은 용납하지 않는데, 안전에 관한 한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영국다운 고집에 기초한다.
코로나19로 자전거 시장에서 브롬톤은 더 유명세에 시달리고 있다. 비대면 시대에 바깥 공기를 비교적 안전하게 맡으면서 운동도 되는 도구는 사실상 자전거가 유일하다시피 하기에 자전거의 인기는 예고된 수순이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에서 브롬톤만큼이나 신뢰받는 브랜드가 드물다는 건 지극히 드문 현상이다.
브롬톤이 다른 카테고리에 비해 훨씬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엄청난 헤리티지를 보유한 현상은 결국 브롬톤이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단지 자전거였을 뿐인데 첫 제품 출시 이후 40년이 지나 브롬톤은 문화로 안착했다. 한 브랜드가 오랜 시간 고수했던 품질 우선주의라는 고집이 걸어온 길을 다시금 조명받게 했다. 대중을 고려하기보다는 그들만의 뚜렷한 철학을 밀고 나간 탓이다.
덕분에 브롬톤은 대중의 인정과 수많은 팬을 동시에 거머쥔 브랜드로 통한다. 한 달 급여와 맞먹는 금액. 200만 원 이상에 달하는 거금을 마련코자 최근 1년 동안은 바라만 보다가 결국 구매했다는 것을 알린 구매행렬은 커뮤니티를 통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그들 사용자는 오랜 팬더믹이 끝나도 꾸준히 브롬톤을 타며 자랑스러움을 표출할지 모른다.
한편, 44년에 설립한 삼천리자전거 역사가 올해로 77년이다. 브롬톤은 이보다 늦게 32년 뒤인 76년에 설립됐다. 이조차도 첫 제품이 출시되기까지 4년이 더 걸렸다. 자전거라는 카테고리에서 출발한 회사의 서로 다른 운명은 2021년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적당히 타다가 고장이 나면 새로 사지~ 라는 모습이 애초에 추구했던 대중성일까?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명품이 된 브롬톤의 가르침은 올해 40주년을 맞아 더욱 의미가 깊다.
“그나저나 매년 찔끔찔끔 오르던 가격, 더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출처 : 위클리포스트(weeklypost)(http://www.weekly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