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집태우기, 대한문학세계 객원기자 소운/박목철
오늘(2.19)이 정월 대보름날이다.
해를 기준으로 만든 달력(태양력)에 의존해 살아가는 요즘 세대에게는 달을 기준으로 정한 음력에 대해
해마다 날짜도 바뀌고 체감되는 기온까지 사뭇 다르니 음력은 고루한 구세대의 향수쯤으로 치부할 것이다.
실제로 입춘(2, 4)을 봄이라고 하기에든 너무 추운 것도 사실이고 입동(11, 7)을 겨울의 시작이라고 하기에
는 너무 이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분들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음력을 기준으로
농사 계획이나 어업계획을 세우고 있어 음력이 기재된 달력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영덕 게도 달의 영향에 따라 속이 비기도 하고 살이 꽉 차기도 한다)
달력이 없으면 농사나 어로 계획을 세우기도 불가능하기에 해마다 통치자는 이를 만들어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통치의 중요한 기본이기도 했다. 옛 조선에서는 해마다 중국에 보낸 사신을 통하여 天子로부터
새로 작성된 달력을 받아와 이를 기준으로 만든 달력을 백성에게 배포하여 계절의 기준으로 삼게 하였다.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만든 태양력을 쓰는 서구는 해 문화권이라 하지만, 달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을
쓰는 우리나라는 달 문화권에 속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옛이야기들도 달에 관한 얘기가 대부분이지 해에
관한 얘기는 찾기 어렵다. (아이들은 달에 사는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있다고 듣고 자란다)
인공조명이 보잘것없던 예전의 삶에서 어둠은 인간의 활동을 많이 제약하였다.
년 중 가장 밤이 밝을 때를 들라 하면 단연 정월 대보름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실제도 다른 달의 보름달과 정월 대보름의 달이 다른지의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대보름은 최고의 달이라는
심정적 믿음에는 다른 해석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정월 대보름의 달빛은 환하게 누리를 비취고 있다.
겨우내 추위와 어둠에 외출을 삼가고 움츠렸던 모든 이들은 정월 대보름의 환한 달빛이 반가운 은혜였을
것이고, 더구나 달은 나약한 인간에게 기댈 수 있는 신앙의 상징이기도 하니 말이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들라 하면 정월 대보름의 놀이일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달이 뜨면 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이 환하다. 깡통에 철삿줄을 매달아 돌리는
쥐불놀이도 그렇고 달집태우기의 멋진 불꽃도 어린 정서에 고운 추억으로 남을 만한 충분한 볼거리였다.
한 해의 액운을 저 멀리 날려 보낸다는 액막이 연, 액막이 연 날리는 구경도 신나는 볼거리였다.
꼬마들은 아까운 연을 끊어서 날려 보낸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어른들이 날려 보내는 연이
가물가물 멀리 사라지는 모습은 보노라면 저 연이 어디까지 날아갈까 하는 상상도 좋은 추억이다.
윷놀이 판의 떠들썩함, 농악패의 신나는 사물놀이, 정월 대보름날은 달이 뜨기까지 신나는 구경거리
가 가득한 떠들썩한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추수가 끝난 논이나 밭의 빈 자락은 멋진 놀이의 장을
펼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공터 가운데 높이 쌓아 놓은 달집태우기의 나뭇더미에는 온갖
소망을 담은 종이쪽지가 축제장의 만국기처럼 펄럭이며 어린 동심이 더욱 들뜨게 하였다.
-언제 불을 붙이는지, 애타게 기다리게 하던 달집태우기,-
* 양평읍 덕평리 주민들이 마련한 달집태우기에 피어오르는 불꽃, 주민들의 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아득하던 정월 대보름의 추억을 다시 일깨운 건 새로 삶의 둥지를 튼 양평읍 덕평리에서였다.
편의점에 살 게 있어 다녀오던 길에 달집태우기 준비에 여념 없는 주민들의 떠들썩함을 보고 차를
세우고 물었다. 덕평1리, 2리 3리, 마을 공동으로 여는 대보름 잔치라 했다.
(이사하던 날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대충 한 술 뜨자고 기대 없이 들어갔던 주민 자치 식당이
예상외로 맛이 좋아 그 후로 몇 차례 들르는 과정에서 안면을 익힌 주인장이 보여, 여러 상황을 물어볼 수
있었다) 김신연 이장을 위시한 이장 단이 덕평리 주민의 안녕을 비는 달집태우기 행사를 준비했다며
준비한 떡이며 고기에 막걸리까지 오가는 사람에게까지 인심 좋게 제공하고 있었다.
* 행사장은 20사단 신병 교육대로 올라가는 초입 길가에 마련되었다. 넉넉하게 구운 삼겹살을 지나는 모든 이에게 대접한다.
* 부녀회에서는 고사상에는 빠지지 않는 시루떡을 넉넉히 장만하였다.
* 교육대 초입에 위치한 덕평리 마을 자치식당, 오리 주물럭이나 삼겹살 등 음식 맛이 일품이지만 특히 밥맛이 아주 좋다.
"몇 시에 달집태우기를 시작할 예정입니까?"
빨리 보았으면 하는 기대에 했던 질문을 까마득한 세월 너머에서 그때와 똑같은 심정으로 물었다.
"7시쯤" 요즘 술을 잘 마시지 않으니 현장에서 멋없이 기다리기가 그럴 것 같아 다시 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현장을 떠났다.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상에 어디서 달집태우기를 볼 것인가,
걸어 내려가려면 15분쯤 걸릴 터이니, 하는 마음에 천천히 가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좀 일찍 나섰다.
어디에도 달이 보이지 않아 달이 떴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 멀리 보이는 양평읍의 불빛이 곱다고
생각하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아래로 보이는 달집태우기 현장에서 불을 붙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일곱 시라 하더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찍 나서지 않았다면 하늘을 치솟는 성한 불꽃을 놓칠 뻔
했다는 생각을 하며 줄달음을 쳤다.
타오르는 달집을 배경으로 고사상도 보이고, 장구 소리에 징, 꽹과리 소리가 흥을 돋우우고 있었다.
흥에 겨운 주민 몇 분이 한대 어우러져 춤도 덩실덩실 추고 있었다.
세월의 변화는 농악 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세상에 누가 장구나 징이나 꽹과리를 배우려
할 것인가? 엇나가는 징 소리와 꽹과리 소리에 서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냐?
타오르는 달집 불꽃을 따라 한해의 액운이 다 스러졌으면 하는 모두의 바람이 간절하지 않은가,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더니 소방차가 여러 대 현장에 도착했다. 방염 복에 마스크까지 완전히 갖춘 소방
대원이 내리더니 화재 신고로 출동했다며 차를 돌렸다. 인근 도로를 지나던 시민이 차에서 소방서로
화재 신고를 했단다. -도시 사람들은 달집태우기를 몰라요-현장을 떠나며 소방대원이 남긴 한마디,
도시 사람들, 험한 세상을 살며 그들이라고 태워 없앨 액이 없지는 않을 터인데,
* 각자 소박한 소망을 담은 사연들이 달집에 가득 달려 있다.
* 화재 진압 복장을 갖춘 소방대원을 태운 소방차가 여러 대 출동했다. 달집태우기는 사전 신고가 필요하단다.
* 멀리 보이는 불빛이 양평읍의 불빛이고, 오른쪽에 보면 다른 곳에서도 달집태우기를 하는 듯 불길이 보인다.
달집태우기 소운/박목철
달랑 빈손으로 왔는데
집요하게 얽어맨 온갖 번뇌(煩惱)들
태고(太古) 이래 늘 그 자리 달님이시여
우러러 비나이다 거둬가소서
기세 좋게 타오르는 달집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