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에게 위치추적장치 휴대폰을!
“형! 아버지, 진접읍 오남리에 계신다는데!”
“어딘데?”
“남양주야! 구리에서 한참 더 가야 해!”
“거긴 또 어떻게 가셨대?”
“몰라! 30분 전에는 상봉동에 계신다고 나왔으니까 또 시외버스라도 타고 뱅뱅 돌고 다니시나보지!”
“버스 기사들은 사람도 안 보고 태운대? 치매노인을 무작정 태우고 돌아다니게!”
“밤인데 어떡해? 그 양반들 노선이나 돌지 일일이 타는 사람 확인하나?”
밤 10시 30분경에 셋째 동생과 나눈 휴대전화 내용이었다. 치매가 심하신 팔순 노인을 아버님으로 모신 죄로 우리 가족은 늘 살얼음판을 걷듯 조마조마하게 살아야 하였다.
“그래도 어디야! 위치추적이 된다는 게! 최소한 어느 동네에 계신다는 건 알 수 있잖아!”
동생은 중증 치매에 귀까지 어두우신 아버님께 휴대폰을 장만해드린 장본인이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정도의 작은 소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님께는 전혀 소용이 닿지 않을 것만 같은 휴대폰을 뽑아왔을 때, 가족 모두 쓸 데 없는 일을 했다고 타박을 주었는데 정작 셋째가 생각한 용도는 따로 있었다. 위치추적 서비스를 해드려서 아무 때나 경황없이 집밖으로 나가곤 하시는 아버님의 종적을 중계하는 것이었다.
“또 상봉동이야! 시외버스를 타신 게 확실해!”
“거기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지? 누구 가볼 사람 없나? 쌍문동 애들더러 전화해 봐!”
“형이 해! 형이 대장이잖아!”
11시 5분경의 대화였다. 아버님을 모시고 사는 본집이 의정부이고 셋째 동생은 평택에 사는 탓에 쌍문동의 둘째에게 전화를 하여 조카들을 시외버스 터미널로 보내라고 하였다.
“또 움직이셨나 봐! 종암동으로 나오는데!”
11시 35분이었다. 휴대폰의 위치추적 서비스는 30분마다 한 차례씩 자동으로 통보가 오는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자정을 넘으면 자동 통보는 끝나고 일일이 체크를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하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쌍문동 애들에게 가르쳐 줘! 종암동으로 가보라고! 거기 버스 종점이 있나?”
“택시를 타셨나 봐! 또 미아리 가시는 건가 본데……”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30여 년 전 아직 정신이 좋으셨을 때 미아 삼거리 근처에서 한동안 장사를 하셨는데 그 기억이 남으셨는지 택시를 타면 미아리로 가시곤 하여, 가족들 모두 미아리 근처에 계신다 하면 반쯤 안도하는 분위기가 되곤 하였다.
“여기 종암경찰서 솔샘지구대인데 ㅇㅇㅇ 어르신 댁이 맞나요?”
아니나 다를까, 자정을 30분쯤 넘긴 시간에 집전화가 울렸다. 가슴에 치매 명찰을 달아드렸는데 그걸 본 택시기사가 지구대로 모시고 왔더라고 하였다.
“어디라고 집 주소를 말씀하시지 않고 자꾸 가자고만 하셔서……”
경찰관에게 수화기를 건네받은 택시 기사 분이 설명을 하시는데, 이십 분 이상을 미아 삼거리 주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애가 많이 타셨던 모양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치매 노인네가 타셔서 무작정 가자고만 하시니 승차거부를 할 수도 없고 하여, 결국 경찰 지구대를 찾았다고 하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연세가 높으셔서 가끔 그렇게 정신을 놓으실 때가 있어요. 저희 집이 의정부인데 괜찮으시면 모셔다 주시면 좋겠는데……”
택시비도 없이 타고 돌아다니셨음이 확실해서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드릴 방법을 겸해 모셔다 주기를 청했다. 인심 좋은 기사분이 쾌히 허락하셔서 그 날의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고……
휴대폰의 위치추적 서비스를 받기 전에는 속상하는 일들이 많기도 하였다. 아버님의 치매는 발작성 치매라서 평소 정상적으로 보이다가 갑자기 판단력을 잃으시고 전국을 헤매고 다니셨기 때문에 가족들은 언제나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바심 속에서 살아야 하였다. 새벽 두 시, 세 시까지 들어오지를 않으셔서 경찰 지구대에 신고를 하고 전국 수배를 하여 밤새 애를 태우다가 “춘천에 있는 아무개 경찰 지구대인데 주민 신고로 노인네를 모셔 왔는데 의정부 쪽에서 수배가 되어 있네요. 어떻게 모셔 드릴까요?”하거나, “대전입니다. 관할 파출소에서 노인네를 보호하고 있다고 보고가 들어 왔는데 직접 모시러 오시겠습니까?”하고 연락을 받는 등으로 전혀 생각지 못한 곳까지 돌아다니시는 게 아버님의 병이셔서 가족들이 받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셋째 동생이 위치추적 서비스를 생각해 낸 건 어린이 실종 예방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고 힌트를 얻어서였다고 했다. 어린이들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단 핸드폰 서비스를 통신회사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하였지만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아버님의 실종 소동이 잦아지자 방법을 찾다가 그 기사를 보고 무릎을 쳤다고 하였다. 여든 셋 되신 귀가 어두운 노인에게 핸드폰이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지만 동생의 눈동냥이 늦게나마 그 물건을 장만해 드리게 하였고, 고비 때마다 신통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이 예순을 넘겨 조그만 책가게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도 서툴러 조카들에게 놀림을 받곤 하던 내가 위치추적 서비스의 덕을 입어 아버님을 신속히 찾곤 하는 요행을 얻은 뒤로 오시는 손님들에게 자랑꺼리가 생겼다.
“비싼 스마트폰은 못 써도 이 구식 핸드폰이 대단한 일을 한다니까요. 글쎄, 어제도 아버님을 모신 택시기사가 치매명찰을 보고 전화를 해왔더라고요.”
치매명찰은 핸드폰 대리점에서 구입을 할 때 위치추적 서비스 신청의 용도를 말했더니 아이디어로 가르쳐 주어서 달아드리게 된 것인데, 집주소와 아들들의 전화번호를 큼지막하게 써서 비닐 코팅을 한 것이었다.
“댁에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계시면 위치추적 서비스를 꼭 해드려요. 아직 치매가 아니시라고 해도 핸드폰 하나는 꼭 가지고 다니시게 해드려야겠더라고요. 물론 귀가 어두우셔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침을 튀기며 자랑을 하면서도 정작 가지고 있는 구식 핸드폰이나마 기능을 다 누리지 못하는 구세대 중늙은이가 나였다. 다만 ‘그래도 전파의 덕을 입고 있는 건 사실’인 만큼 전자문명시대에 사는 다행을 기리는 의미에서 금세 비가 올 듯 흐린 일요일 오후를 빌어 이 글을 끝맺고 있다.
첫댓글 그렇군요..치매 어르신에게는 위치추적기가 반드시 필요하군요...그렇지 않아도 집나간 부모님 찾는 현수막이 걸린걸 자주 보는데 왜 그런생각을 진작 못했는지 마음이 아프군요..좋은 정보 감사.....
아버님이 직접 신통한 효과를 보신 덕택에 교훈이 되어 올려보았습니다. 읽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힘든세상이지만 아직은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군요.....글 감사합니다 ~
제일 고마운게 경찰관님들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실종되실 때마다 몇 차례인가 신세를 졌어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정보입니다. 혹시 치매의 우려가 있는 부모님을 위해 차후 위치추적용 휴대폰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치매인 부친 때문에 형님 가족들이 고생을 많을 하시는 군요.
워낙 연세가 높으셔서요. 노인 모시는 댁은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힘드네요. 고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어머니께서 갖고계신 핸드폰에 적용해야겟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계시군요. 속히 신청을 하세요. 사람의 일이라는 게 언제 무슨 일을 만날 지 모르는 것이라서....
핸드폰이 현대인의 정서를 메마르게 한다고 비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고 편리한 면이있군요.
사물의 앞과 뒷면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의 경우 핸드폰은 은인입니다. 여러 차례 덕을 입었어요. 치매가 심하시기는 해도 핸드폰은 꼭 챙기고 다니시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핸드폰 화면 사진에 동생 부부를 넣어 드렸더니 그게 신기해서 손에서 놓으려고를 않으시더군요.
좋은글 갑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신다면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