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詩人들
정현종,이해인,양전형,R·M릴케
삼척장미공원의 아침 이슬 먹음은 아름다운 장미
2015,5,12,/6,15. 05:20~06:00 글·사진|정연휘 시인
삼척장미공원은 84,730㎡ 규모로 수 백종의 아름다운 장미가 핀다. 전체 품종은 16만주, 222종이며,하이브리드티, 프로리분다, 미니어쳐 덩굴성, 드스케이프 등 장미를 모두 볼 수 있다. 삼척 오십천변에는 1,000만송이 장미향기로 사람들을 사랑에 빠뜨린다.이 공원은 매년 5월20일경이면 1천만송이의 1/2 수준인 5백만송이쯤 활짝피다가 6월 초순이면 일제히 1천만송이가 피어나며 그윽한 장미향이 사방으로 진동한다.공원의 장미는 5월초에 피기시작하여 11월 하순 엄동이 올때 까지 계속 피고진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의 내부
어디에 이런 내부를 감싸는
외부가 있을까. 어떤 상처에
이 보드라운 아마포亞麻布를 올려놓는 것일까.
이 근심 모르는
활짝 핀 장미꽃의 내부 호수에는
어느 곳의 하늘이
비쳐 있을까.
보라,
장미는 이제라도
누군가의 떨리는 손이 자기를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모르는 양
꽃이파리와 꽃이파리를 서로 맞대고 있다.
장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다. 많은 꽃들은
너무나 충일하여
내부에서 넘쳐나와
끝없는 여름의 나날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점점 풍요해지는 그 나날들이 문을 닫고,
마침내 여름 전체가 하나의 방,
꿈속의 방이 될 때까지.
6월의 장미
이해인 <시인 1945~>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양전형
아내는 장미꽃
아내는 장미화다
가끔 화花를 낸다
곱지만
잘못 건드려 가시에 찔린다
아내여,
자꾸 피지 마라
릴케도 장미가시에 찔려
눈꺼풀 완전히 닫았대
라이나 마리아 릴케(1875-1926)
사랑하기
시:라이나 마리아 릴케,
해설:정일남 시인,
5월의 하루를 너와 함께 있고 싶다
오로지 서로에게 사무친 채
향기로운 꽃 이파리들의 늘어진 불꽃 사이로
하얀 자스민 흐드러진 정자까지 거닐고 싶다
그곳에서 5월의 꽃들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면 마음속 온갖 소망들도 잠잠해지고
피어나는 5월의 꽃들 한 가문데 행복이 이뤄지리
내가 원하는 그 커다란 행복이...
릴케의 시집 <꿈의 왕관을 쓰고> 중에서
5월은 하루하루가 아깝다. 금쪽같은 나날이다. 모든 꽃이 제 모습을 뽐내지만 역시 오월의 여왕은 장미가 아닌가 여긴다. 장미를 떠올리니 릴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릴케일까. 릴케만큼 장미를 사랑한 시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릴케는 그의 시집 속에 무려 250 번이나 장미란 말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릴케 하면 장미를 떠올리고, 장미하면 릴케다. 릴케는 오로지 시와 산문과 장미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시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릴케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철도원으로 근무했으며 어머니는 고급 관리의 딸로 전해진다. 릴케는 태어날 때 미숙아였다. 그래서 병약했다고 한다. 9세 때에 부모가 이혼을 했고 릴케는 군사학교에 입학했으나 몸이 쇠약해 중퇴했다. 릴케는 독일로 생활터전을 옮겼고 국적도 독일 국적을 소유했다. 릴케는 니체, 발레리, 보들레르 등과 교류했다. 조각가 로댕 밑에서 비서로 지내면서 예술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저 유명한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와의 사랑이 릴케로 하여금 위대한 시인으로 성장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릴케는 살로메와 러시아를 두 번이나 여행했다 한다. 니체와 루 살로메와 릴케의 삼각관계도 일화로 전해진다. 니체가 살로메에게 구혼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한다. 실의에 빠진 니체가 그 보복으로 쓴 글이 저 유명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란 명저를 썼다는 설이 있다. 1926년 이집트의 여자 친구가 릴케를 방문했는데, 그 여자 친구에게 주려고 울타리에서 장미를 꺾다가 가시에 찔렸다 한다. 처음엔 상처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상처가 잘 아물지 않고 파상풍으로 번지고 다시 백혈병으로 옮겨가 불치병이 되었다 한다. 릴케는 치료차 알프스 어느 산장으로 갔으며, 거기서 생의 종말을 맞고 있을 때 발레리가 알프스로 찾아갔다. 발레리에게 마지막 한 말은 ‘난 장미 때문에 죽지만 그래도 장미를 사랑한다.’그런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과연 릴케가 장미 가시가 원인이 되어 죽었는지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릴케의 죽음이란 시에서 장미 이야기가 나와서 와전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릴케는 말년에 프랑스어로 시를 썼다. 발레리의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위대한 시인. 릴케는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
위의 시가 릴케의 묘비명으로 새겨져있다. ‘이리도 많은 눈꺼풀’은 장미꽃의 잎이 여러 겹인 것을 비유한 절구로 여겨진다.
<정일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