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앞(7:14-25)에서 선을 원하되 실제로는 원치 않는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실제로는 죄의 종으로서 죄의 법을 따르므로 죽게 된 인간(육신)의 탄식을 논한 바울은, 이제 구원의 방도와 구원받은 자의 성결의 삶에 대해 논하고 있다.
바울은【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아라, ἄρα)는 가깝게는 7:25을 받는 것이고, 멀게는 3:21 이하의 내용을 받는 것이다.
죄 아래 팔린 육의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죄와 죽음의 법에 얽매여 있다. 그런데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해 죄(롬 6:2)와 율법(롬 7:6, 갈 2:19) 그리고 자기(고후 5:14-15)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그리스도 예수 안(6:11의 주석을 보라.)에 있는 자가 되었으므로 결코 정죄함(카타크리마, κατάκριμα)이 없는 것이다. 즉, 유죄 판결을 받음이 없는 것이다.
바울은 더욱 구체적으로 정죄함이 없는 이유에 대해,【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를 (1) “해방하였음이라”와 관련짓는 설,2) (2) “생명”과 관련짓는 설,3) (3) “생명의 성령의 법”과 관련짓는 설4) 등이 있다. (3)설이 보다 나은 듯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1절 끝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의 형용구로서 “육신을 좇아 행하지 않는”(μὴ κατὰ σάρκα περιπατούσιν)이 첨가된 사본들(A, Db, Ψ, 81, 629, 2127)이 있고, 또한 “육신을 좇아 행하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μὴ κατὰ σάρκα περιπατούσιν ἀλλὰ κατὰ πνεύμα)이 첨가된 사본들(א*, B, C2, D*, G, 1739, 1881)에는 없으므로”(K. Aland, et al., ed.) 형용구는 후대의 삽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2) “H. A. W. Meyer”(in 黑崎幸吉), W. Sanday & A. C. Headlam, C. E. B. Cranfield, E. Ka"semann, 이상근. 3) “Zahn”(in 黑崎幸吉), “Denney, Lagrange, Moffatt, Michel”(in C. E. B. Cranfield), H. Alford, J. Knox, 조선출. 4) “Godet”(in 黑崎幸吉). J. Calvin, 黑崎幸吉, 泉田 昭.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생명의 성령의 법”에 대해 무라이(Murray)는 “생명의 영으로서 성령께서 규정하시고 활동하시는 능력을 의미한다.”1)라고 하였고, 산데이와 헤들람(W. Sanday & A. C. Headlam)은 “생명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 의해 실시된 권위를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녹스(J. Knox)는 “법을 원리, 규칙, 양식, 체계를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결국 생명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요 6:36, 고전 15:45, 고후 3:6)의 원리, 즉 사랑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창조(창 1:2)와 거듭남(요 3:5)과 부활에 있어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의 능력의 결실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2)해방하였음이라”로 표현된 것이다.
여기의 “죄와 사망의 법”에 대해 (1) 죄와 그 결과인 사망의 원리 또는 사망의 권위라는 설(7:23),3) (2) 모세의 율법이라는 설,4) (3)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이라는 설(7:23)5) 등이 있다. 바로 앞의 “생명의 성령의 법”과 7:23 이하의 내용 그리고 8:3을 보아 (3)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역 안에서 생명으로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우리 지체들 속에 있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의 법에서 해방된 것이다. “죄의 법은 마음의 법을 정복하여 나를 자기의 포로로 만들었으나, 성령의 법은 죄의 법을 정복하여 포로가 되었던 나를 해방시켜 준 것이다”(이상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in 김선운. 2) “‘너’(σε)는 א, B, G, 1739 사본 등을 따른 것이고; A, C2vid, D, K, P, 81, 88, 104 사본 등에는 ‘나를’(με)로, Ψ 사본에는 “우리를”(ἡμας)로 되어 있다”(K. Aland. et al., ed.).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어느 것을 취해도 무방하다. 3) A. Barnes, W. Sanday & A. C. Headlam, C. E. B. Cranfield, F. F. Bruce, “Shedd”(in 김선운), 泉田 昭. 4) E. Ka"semann, M. Henry, J. Calvin, J. Wesley, 조선출. 5) “Gifford, Godet, H. A. W. Meyer”(in 김선운), J. Barmby, J. A. Bengel, 이상근.
<필자의 www.newrema.com의 ‘로마서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