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강론>(6.25.일)
*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화해하고 일치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워낙 급변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전국체전에 참석하기 위해 매년 입국하는 영국의 교포 부부는 매년 한국에 와도 바뀐 것들이 많아서 적응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무튼 10년에 한 번 강산이 변한다 해도, 6.25 전쟁이 73년 전에 일어났으니, 강산이 7번 이상 바뀌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일어난 6.25 전쟁은 3년 1개월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되고서야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데, 벌써 70년이 지났습니다.
2. 지난 5/7(일) 교중미사 후, 어버이날 행사 때, 올해 100세 배수용(요한 칸시오) 할아버지는 73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27세 되던 해에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950년 8월, 대구에서 살고 있었는데, 대구역 앞에서 모병할 때 그냥 있지 못해서, 모병 장소에 찾아가 자원입대했습니다. 1주일간 밀양에서 훈련받고, 제 고향인 영덕으로 갔는데, 포항에서 24km 정도 떨어진 장사 상륙작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장사해수욕장에 가보면, 저희가 타고 갔던 배와 똑같은 모형이 5년 전에 만들어져 있는데, 그쪽에 가시면 둘러보십시오. 그 안에 들어가면 저의 참전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군대 가서 죽을 고비를 몇 번 겪었지만, 장사 모래사장에 상륙할 때 바다를 제외한 삼면에서 인민군들이 총알을 쏘아댔습니다. 하선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배에서 안 내려올 수 없어서, 밧줄을 타고 겨우 상륙했습니다.
그런데 모래사장에 엎드려서 총을 쏘려고 했지만, 너무 컴컴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고, 불이 번쩍여도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포복해서 손으로 모래를 파고 겨우 구멍을 만들어서, 몸을 숨겼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전투에 참여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전쟁은 무조건 없어야 합니다. 남북통일이니, 온갖 소리 다 하고 있지만, 북한 정권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북한은 절대 핵을 놓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겪고, 지금까지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인민군이 온다면 나는 그놈부터 죽이고, 그 자리에서 죽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6.25 전쟁 때, 북한군의 기습적이고 빠른 진군 때문에 남한 대부분 지역이 함락되었고, 이에 대한 국제적 대응으로 유엔군이 남한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유엔군과 아시아 국가들의 참전군이 북한군과 전면전으로 맞서 싸웠고, 전투는 3년 1개월이나 계속되었으며, 결국 1953년 남북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전쟁이 중단되었습니다.
배수용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목숨 걸고 이 나라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의 박수!
7년 전, 부산 UN 묘지에 갔을 때, 무덤을 살펴보니 여러 나라에서 참전한 17-22세 청년들의 무덤이어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렇게 선뜻 참전시킬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모가 가라 해서 참전할 청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6.25 직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근면성실하고 악착같이 경제개발 해서 세계 10위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조받아야 했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들을 원조해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통일입니다.
3. 2012년 9월 12일, 어느 초등학생이 출품한 통일 포스터 제목이 “그리기 지겹다. 통일해라.”였습니다. 매년 그리라고 하니까 억지로 그리긴 했지만, 그리기 싫은 아이가 이렇게 자기 마음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그 외에도 2) 7천만이 하나 되는 그날까지, 3) 전쟁의 아픔, 통일로 치료하자! 4) 적이 아닌, 우리는 한 가족, 5) 통일의 문 열려라!
우리나라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 상황을 극복하며, 우리 민족이 화해하고 일치하며, 통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정주영 회장의 일화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 회장이 어느 날 사장단을 모아놓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 소 떼 몰고서 평양에 가려고 한다.” 그러자 사장단은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봤습니다.
정 회장은 17세 때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했을 때, 아버지가 누이를 시집보내기 위해 소 판 돈을 몰래 훔쳐 가출했습니다. 소 한 마리 값에 대한 죄책감은 아버지에 대한 불효로 평생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이북 땅에 소 떼를 몰고 가려 했던 것은 부친에 대한 불효를 500배, 1,000배 갚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소를 몇 마리나 갖고 갈까? 한 500마리로 할까? 아냐, 500마리가 뭐야? 이왕 하려면 501마리로 해야지.” 그러자 사장단은 “500이면 500이지, 왜 501마리입니까?”라고 묻자, 정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한 마리를 더 보탠 것은 이번으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 더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야. 여운을 주는 게 멋지지 않겠어?” 결국 그는 1998년 10월 27일, 서산농장에서 키운 501마리의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정 회장은 통일을 위한 초석을 놓겠다는 마음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독립,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를 이뤘지만, 아직 통일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통일이기에 작은 것부터 해야 할 게 참 많습니다. 독립운동은 목숨을 걸어야 했고, 민주화 운동은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했지만, 통일운동은 목숨 걸 일 없고, 감옥에 갈 일도 없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아주 작은 일, 통일을 위한 기도부터 시작합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