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처음 보는 얼룩소가 마냥 신기한지 아이는 자꾸만 다가가 쓰다듬어 본다. 용인 청계목장을 찾은 한 가족이 가을 햇살 아래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다. /영상미디어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아래 오른쪽)토담촌 삼계탕.
느티나무가 양옆으로 도열한 길을 따라 400m쯤 걸어 올라가면 얼룩소가 생긋 웃는 간판이 손님을 맞는다. 단순한 목장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목장 체험을 즐길 수 있는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 23일 첫 손님은 서울 강남 압구정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48명. 오전 11시, 예정보다 조금 늦게 전세 버스가 도착하자 목장 주인 조근우(34)씨가 저만치서 달려나왔다.
목장이라고 해서 똥 딱지가 더덕더덕 붙은 소가 눈곱 낀 눈을 껌벅거릴 거라고 생각한다면 깜짝 놀라게 된다. 소들은 꼬마 손님을 위해 새벽부터 목욕재계하고 기다린다. 아이들이 돌아볼 곳곳마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청계목장은 경기도와 용인시의 밀크 스쿨(milk school) 사업대상자로 선정됐고, 낙농진흥회의 체험목장 인증심사를 통과했다. 인증을 받은 목장 중에서 국내에서 30만평(약 99만㎡) 규모의 당진 태신목장 다음으로 크다.
20만 평(약 66만㎡) 목장에는 젖소 220마리, 어른 한우 250마리, 한우 송아지 100마리, 토끼 20마리, 말 2마리, 사슴 2마리, 염소 3마리, 개(웰시 코기) 10마리가 아이들을 기다린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은 '밀크 스쿨' 전용 건물로 향했다. 치즈 만들기부터 도전. 새벽 일찍 목장에서 짠 우유로 만든 치즈 덩어리를 뭉치고 늘리면서 결을 만드는 과정이다.
탁자 위에 손가락 마디만한 크기로 준비된 치즈 덩어리를 체에 넣어 뜨거운 물로 녹인다.
찬물에 식힌 손으로 쫄깃쫄깃 탱탱한 덩어리를 잡아당긴다. 아이들은 당기며 노느라 정신이 없고 엄마들은 그 모습을 동영상에 담느라 분주하다. 주욱 늘어나는 덩어리를 8회 정도 늘였다줄였다를 반복하면 안쪽에 결이 생긴다. 결 따라 찢어서 준비된 피자 빵 위에 얹어주면 끝. 작은 손으로 찢어낸 치즈를 잔뜩 얹은 피자는 오븐으로 들어간다.
이제 소젖을 짜볼 차례다. 올해 나이 여섯, 젖소로서는 은퇴할 시기가 지난 '물음이'가 언덕에 섰다. 눈 주위 얼룩이 물음표 모양 같아서 이름이 물음이다. 고령(高齡)에 다리도 성치 않지만, 아이들의 손길에 불평 없이 몸을 맡긴다. 작은 손가락이 조몰락조몰락 쉬지 않고 젖을 만져대는데도 담담한 눈빛은 적의(敵意)를 모른다.
줄 서서 젖을 짜보는 아이들. 다가가는 손길이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덥석 젖을 잡고 나서는 거침이 없다. "무조건 힘줘서 잡아당기지 말고…, 손가락을 감싸주듯이…" 조씨의 시범을 따라 손가락을 놀리다 우유가 치익 발사되는 순간, 손등에 끼쳐지는 온기에 까만 눈이 동그레진다. "우유 냄새 나요, 큭큭", "부들부들해요, 헤헤." 학교 스카우트 대원들과 함께 온 박지호(망우초등 6년)양은 "찰흙 만지는 것 같다. 신기하다"며 우유에 젖은 손을 비볐다.
청계목장은 1985년 50평(165㎡) 남짓한 땅에서 출발했다. 대기업에 전자 부품을 납품하던 조성환(62·현 용인축협조합장)씨가 땅을 사들여 낡은 우사(牛舍)에 취미로 젖소를 키웠다. 그 소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늘면서 땅도 넓어지고 소도 늘었다. 20년간 나무도 1만그루 넘게 가꾸었다. 아들 조씨는 "어릴 때는 아버지가 소를 기르는 것이 창피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옷에 밴 소똥냄새가 싫었다.
조씨 가족은 이북 출신이다. 함경남도 살던 할아버지는 6·25가 터지자 흥남부두에서 피란선에 올랐다. 거제도에서 어부들이 버린 생선을 주워 생선죽을 만들어 팔며 연명했다. 원래 엔지니어 출신이라 전선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전쟁 후라 돈이 많이 벌렸다. 철이 든 손자는 목장 일을 물려받았다. "목장이라고 하면 더럽고 파리 꼬인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조씨는 "인연으로 방문한 분들이 기분 좋게 즐기다 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낳고 먹고 자라고 다시 태어나는 생명의 기운이 땅을 가득 채운 탓인지, 목장에서는 어떤 동물이든 새끼를 잘도 낳는다. 번식을 잘 하지 않는 애완용 토끼도 이곳 식구가 되기 무섭게 새끼를 낳기 시작해서 20마리로 불었다. 쫑긋 솟은 두 귀에서 영리함이 넘치는 웰시 코기도 두 배 넘게 식구를 늘렸다. 조씨 본인도 예외가 아니다. 딸이 셋이나 되는데, 내년에 넷째를 볼 예정이다.
사료용 옥수수를 기르는 땅만 해도 2만평(6만6000㎡)이나 된다. 가을걷이 끝난 옥수수밭에는 알타리 무가 큰다.
아이들은 '트랙터 타기' 체험에서 옥수수밭 주위를 돌면서 목장을 둘러본다. 메타세쿼이아가 두 팔을 벌린 길을 따라 10분쯤 돈다. 비포장길이라 차가 덜컹거린다. 세게 덜컹거릴수록 아이들은 청룡열차라도 탄 듯 비명을 지르며 좋아한다. 그런 나이다. 타는 것에 관심 없는 아이들은 축사에서 젖소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순한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말 없는 대화를 나누는 아이도 있다.
조랑말 타기도 인기다. 키가 1m쯤 되는 영국산 셰틀랜드 포니(Shet land pony)는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다. 저 짧은 다리로 어찌 무게를 지탱할까 싶은데, 아이들을 태우고 몇 바퀴나 씩씩하게 잘도 돈다.
조씨는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목장 문화'를 만들어 가는게 꿈이다. "내년 여름부터는 '목장 재즈음악회'를 열어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여·행·수·첩
☞ 가는 길(서울 기준) 영동고속도로 양지IC를 빠져나와 17번 국도로 12㎞ 직진한다(약 20분 소요). 백암사거리를 지나 전방 1㎞ 지점에서 BA비스타골프장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 약 50m 직진 후 좌회전하면 1㎞ 전방 오른편이 목장 입구다.
☞ 목장 안에서는 음식을 팔지 않는다. 대부분 방문객은 음식을 미리 준비해 온다. 도시락을 꺼내놓고 주변 경치를 즐기며 둘러앉아 먹을 의자가 240석 마련돼 있다. 목장 인근에는 주변 골프장 손님을 위해 오리 요리와 장어 요리를 파는 곳이 많다. 아이들과 함께 먹기에 부담스럽다 싶으면 한식당도 있다.
☞ 청계목장 낙농 체험에 참가하려면 예약이 필수다. 1인당 2만4000원. 미취학 아동은 2만원, 36개월 미만은 무료다(조랑말 타기는 5000원 추가). 체험은 오전 10시 30분~오후 2시 30분까지 진행된다. 연중무휴. 단 옥수수 수확 시즌(8월 10일부터 약 보름간)이나 퇴비 뿌리는 날(7월 초나 12월 초)에는 쉰다. 비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을 경우, 전날 오후 10시 예보의 강수 확률과 강수량에 따라 신청자들에게 문자로 진행 여부를 알려준다. 치즈 만들기와 아이스크림 만들기는 실내 체험이며, 야외 체험장에는 천막이 있어 아주 큰 비가 아니면 무리 없이 진행 가능하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270-4, (031)322-3266, www.cheonggye f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