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락'
'좌절'
오늘 보랩과 연관된 기사에 뜬 단어들로
가슴이 아파
꿈의 기록 천만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어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는 맘이었는지
아님 오늘이 지나면
영원히
극장에선 안녕이란
절박함 때문이었는지
종일 상영시간표를 동동거리며 확인
허나 집안일로 어정대다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16시 10분 타임 놓치고
바둑 대국 마친 아들 저녁 사먹이느라
롯데시네마 동래 18시 타임도 간발의 차로 패싱
식후 대국 3차전을 위해 또 탁구장으로 향하는
아들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가능성인
cgv 동래 18시 50분 타임 앞에서
또 답답한 고민을 시작
고민의 이유는
바로 싱어롱
언젠가처럼
싱어롱이란 말이 무색하게 관내가 고요하든
아님 싱어롱이란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광란의 그것이 되든
둘중 하나이기만 하면 좋겠으나
혹시나 어정쩡
옆사람 눈치나 보며 어리석은 이별을 하게 될까
심히 두려워
그러다
자주 아들 기다리며 글을 쓰고 음악을 듣던
투썸플레이스
그 화장실에서 보게 된
거울 속 나의 낯선 모습
한동안 덥수룩
어머니로부터 '반란군' 같다는 핀잔을
반복해 듣다
참지 못해
오전에 짬을 내어 찾은
아파트 상가 미용실
겨울이라 목폴라에 어울리게
깔끔하게 해주겠다 해서
안경을 벗고 안심하며
그러시라
했더니
이윽고 안경을 되낀 내 눈에
추억의 영구 머리 혹은
몽실 언니 스타일이 떡하니 들어옴
그러니까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우스꽝스런 형상이
찻집 화장실 거울에서 부활
그것이 찬물, 혹은 아이스버킷이 되어
내 모든 고민과 들뜸 위로 쏟아져 내림
어울리지 않아 도무지
프레디완
그 어떤 면에서도
갑자기 밀려드는 슬픔과 함께
그는 그대로
몇백 광년 너머의 별이 되어 멀어짐
아득히
어쩜 제자리로
이로써
천만이 되든
아니든
이제 그를 보내야 할 때
그를 바짝
내 애인으로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속 그 애인으로
삼은 시간 동안
난 기꺼이
또 다른 나
나 아닌 절대의 나로 행세하기 위해
거울을 보지 않았던 것
아니 머리를 자르지 못했던 것
숏커트에 대한 트라우마는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
김문주 선생님
처음으로 총각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
더구나
교대가 2년제였고
확실히 기억나진 않으나
군면제의 특혜까지 주어졌었던 것 같은 당시
신규로 부임한지 갓 3년차였던
스물 네다섯의 파릇파릇했던 그
거짓말처럼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희고
약간 반곱슬 머리에
와이셔츠 또한 눈부시게 깨끗했던
교과서를 펼쳐쥔 왼손
그 손목뼈 아래 걸쳐져 있던
은빛 시계며
반듯하게 달려나가 제때 마침표를 찍곤하던 판서
오르간을 치며
약간 쑥스러운듯 떨려나왔던 노랫소리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나중엔 옆반 여선생님한테
음악 수업만 대신 해달라 부탁
그러면서 역시 남자라 체육에 제일 자신이 있었던 듯
그 시간만 되면
유독 당당해 보였던
호루라기를 그 견고한 입술에 물고
콧날에 신비로운 그림자를 드리우던 캡모자부터
한벌 체육복까지
온통 새하얗던 그의 코앞에서
늘 어설프게 매트 위를 구르고
뜀틀 위를 나르다 허무히 걸터 앉기도 하며
정말 죽고 싶었던 나
체육 시간에 대한 지독한 트라우마가
아마 그때 생긴 게 아닐까 싶은
어쨌든 어렵게 단발을 결심했던 것도
바로 그 즈음
그러니까 매트 위를 굴렀다 하면
이내 귀신처럼 흐트러져 입술에까지 척 들러붙고 하던
치렁치렁 긴 머리칼
그래서 묶으면
이번엔 못생기고 젖비린내 나던 남자애들이
말꼬리니 개꼬리니 하며 놀려대던
하필 그의 코앞에서
내 이것을
당장 싹둑 잘라 없애리라
어머니는
그때의 내 중대 결심에 쌍수를 들어 환영
안그래도 대가족 먹여 살리느라
새벽부터 동동거리던 당신이
아침마다 딸내미 머리를 묶고 땋는 일이
어디 만만했을까
그렇게 찾은 미용실
주인장의 거침없던 가위질에
뭉텅뭉텅 잘려져
바닥에 툭툭 떨어져내리던 내 검은 머리카락
서서히 현실이 되어가던
내 낯선 모습
이윽고 어깨에 둘러쓴 보자기까지 벗겨지며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된
돈을 지불하고 인사하며 나올 때까진
가까스로 참아냈던 눈물이
길거리에서부터 터지기 시작
온통 뿌연 세상을 원망스레 지나쳐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울 앞에 서서
그대로 통곡
가장 큰 절망이
당장 내일 이 흉한 꼴을 보게 될
내 담임을 상상하는 일
우리 음악 수업을 대신 해주곤 하셨다던
옆반 선생님이
아마도 우리 담임과 같은 학번이었던 모양
가끔 사석에서나 썼음직한
달콤한 "문주씨"
그 호칭이 때로 학교에서 실수로
그녀 입에서 튀어나왔을 때
마침 청소가 끝난 후
다음날 아침 자습 문제를 칠판에 베껴 적곤 했던
내 귀에 충격적으로 감겨들었던 기억
그래서 어느 날인가 작정하고 집으로 돌아가
거울 앞에서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문주씨"
그러곤 이내 큰 죄를 지은 양
얼굴이 붉어졌던
돌이켜보면 그런 발칙한 상상과
흠모의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 긴 머리카락 때문이었던 모양
어깨까지 드리운 머리칼을
때론 귓뒤로 쓸어넘기며
때론 한술 더 떠
돌돌 말아 올림머리 흉내를 내며
난
나이도
처지도
현실도 잊고
그를 몰래 흠모할 수 있었던 것
단순히 머리카락 길이란 것이
혹은 헤어 스타일이란 것이 그렇게나
큰 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가
그제서야 비로소 알게된 나는
짧은 머리의 선머슴애 같았던 그 꼴로는
이제 더이상
나의 문주씨를 "문주씨"라 부를 수가
없게 된 것임
문제의 다음날 아침
이 머리론 도저히 학교에 갈 수 없다고
밥상 앞에서 떼를 쓰며
내 단발 결심에 쌍수를 들었단 이유만으로
엄마를 원망
그 철없던 등짝을 한대 후려쳐도 모자랐을텐데
성격 좋은 울 엄마는
머리는 또 곧 자란다는 위로의 말로 나를 살살 달래어
학교로 보냄
조회를 위해 들어온 담임 얼굴을 차마
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려깔고 있는데
변함없는 그의 목소리에 실린 낯선 멘트
지금도 너무나 또렷한
"머리 자르니 예쁘네."
아!
이런
예쁘대
나더러
선생님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빈말이나마
애써 그렇게 말해주셔도
이제 소용없답니다
이 꼴로는 더이상
난 당신을
문주씨라 부를 수 없기에
달콤했던 내 상상의 나래는 이미
무참히 꺾여 버린 채
난 다시
이 차가운 현실로 돌아왔답니다
이렇게 웃픈 내 기억이
혹시 조금이나마
스님, 수녀님들의 출가삭발식의 의미나
즉 속세 혹은
속세의 욕망과 연을 끊는다는
지금도 눈물의 삭발식으로
절박한 요구와 의지를 대변하는 경우와
감히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난 그 후로
그를 선생님 이상으로
바라보진 못했던 것 같음
40여 년이 지나 다시 미장원에서
졸지에 영구, 몽실이가 되어버린 지금도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주어진 삶을 뚜벅뚜벅 살아갔던 그들
영구, 몽실이로 이제는 돌아와
나의 "프레디"를
퀸의 프레디 머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할 때
초등 5학년 아이였을 때보단
더 많이 쓸쓸하고 힘들지만
어차피 그래야 할 일
그래도
내 인생의 멋진 남자 어른들에게
마지막 인사는 잊지 말아야
고마워요, 김문주 선생님
땡큐, 프레디 머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