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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직필, 영월 관련 지은 시(詩)
삼월 사일 근친하기 위해 영월(寧越)로 출발할 적에 말 위에서 입으로 불러주다 경진년
〔三月四日發覲行向越中馬上口占 庚辰〕
〔삼월사일발근행향월중마상구점 경진〕
서풍 불어와 먼 길 가는 사람 전송하니 / 西風吹送遠征人 서풍취송원정인
긴 둑으로 말을 몰매 풀빛이 싱그럽네 / 驅馬長堤草色新 구마장제초색신
온갖 나무 태양을 향하니 붉음이 난만하고 / 萬木傾陽紅爛漫 만목경양홍란만
온 산 비를 맞으니 푸름이 우뚝하네 / 千山得雨碧嶙峋 천산득우벽린순
명승지에는 곳곳마다 좋은 자취 전하고 / 名區處處傳勝躅 명구처처전승촉
여관에서 아득히 병든 몸 맡기노라 / 逆旅悠悠寄病身 역려유유기병신
밤낮으로 어버이께 가려는 생각 간절하니 / 日夕庭闈關寸念 일석정위관촌념
내 이번 걸음 봄놀이 하려는 것 아니라오 / 我行非是爲尋春 아행비시위심춘
[각주]
경진년(庚辰年) : 1820년(순조20)으로, 홍직필의 나이 45세 되던 해이다.
어버이께 …… 간절하니 : 원문의 ‘정위(庭闈)’는 어버이가 거처하시는 곳을 이른다. 진(晉)나라 속석(束晳)이 가사가 없어져버린 《시경(詩經)》 〈소아(小雅) 남해(南陔)〉의 시를 보완하여 만든 〈보망시(補亡詩)〉에 “어버이 계신 곳 돌아보며 생각하느라 마음이 편안할 틈이 없다오.[眷戀庭闈, 心不遑安.]”라고 하였는데, 당나라의 학자인 이선(李善)이 “정위는 어버이가 거처하는 곳이다.”라고 주하였다. 《文選註 巻19 詩》 원문의 ‘촌념(寸念)’은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작은 생각이고, ‘관(關)’은 마음에 깊이 간직함을 이른다.
고전번역서 > 매산집 제2권 / 시(詩) ⓒ 성신여자대학교 고전연구소ㆍ해동경사연구소 | 성백효 (역)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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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에서 현판에 있는 외구의 시에 차운하다
錦江亭謹步外舅板上韻 금강정근보외구판상운〕
노릉의 소나무와 측백나무 바라봄에 서글퍼지니 / 魯陵松柏望悽然 노릉송백망처연
봄밤 두견새 소리 듣기를 기다리지 않네 / 不待春宵聽杜鵑 불대춘소청두견
낙화암 아래 오열하는 강물 / 嗚咽落花巖下水 오인낙화암하수
도도히 흘러 슬픈 한을 사람들에게 전하네 / 滔滔哀恨向人傳 도도애한향인전
[각주]
금강정(錦江亭) :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영월읍에 있는 정자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6권 〈강원도 영월군〉에 “금강정은 금장강(錦障江)의 언덕 절벽 위에 있다. 선덕(宣德) 무신년(戊申年, 1428)에 군수 김부항(金復恒)이 세운 것이다. 동쪽으로는 금장강에 임하였으며, 남쪽으로는 금봉연(金鳳淵)을 바라본다.”라고 보인다.
외구(外舅) : 장인을 이른다. 장모는 외고(外姑)라 칭한다.
노릉(魯陵) : 단종의 능(陵)이다. 단종이 폐위되어 노산군(魯山君)에 봉해졌으므로 노릉이라고 칭하였는데, 1698년(숙종24)에 위호(位號)를 회복하여 묘호를 단종으로, 능호를 장릉(莊陵)으로 하였다. 《端宗實錄 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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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은 금강의 가에 있으니, 바로 단종(端宗)의 궁인들이 순절한 곳이다.
그 위에 민충사를 지어 궁녀들을 제사하였는데,
사당을 지키는 자가
“밤중이면 궁인들이 패옥을 차고 사당 가운데 바위 가를 왕래한다.”고 말하므로,
듣고서 기이하게 여겨 금강정 현판의 시에 차운하여 그 일을 서술하였다
〔落花巖在錦江上卽端廟宮人殉節處也其上建愍忠祠以祭之守祠者云常夜環珮往來於祠中巖際聞而異之步錦亭板上韻用述其事〕
〔낙화암재금강상즉단묘궁인순절처야기상건민충사이제지수사자운상야환패왕래어사중암제문이이지보금정판상운용술기사〕
금강의 가을빛 참으로 신선한데 / 錦江秋色正鮮新 금강추색정선신
한이 어린 물 도도히 흘러 만 년 동안 오열하네 / 恨水滔滔咽萬春 한수도도인만춘
바위의 꽃 모두 떨어졌으니 어느 날에 다시 필까 / 落盡巖花何日發 낙진암화하일발
달 가운데 패옥 울리며 돌아가는 사람 있다오 / 月中環珮有歸人 월중환패유귀인
[각주]
낙화암(落花巖) : 창렬암(彰烈巖)으로, 1457년(세조3)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寧越)에 유배된 단종이 승하하자, 단종을 모시던 시녀들이 금장강(錦障江)에 투신하여 죽으니, 마을 사람들이 이를 슬프게 여겨 투신한 곳을 낙화암(落花巖)이라 부르고 단을 설치하여 이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그 후 1742년(영조18)에 왕명으로 이곳에 사당을 건립하고 민충사(愍忠祠)라는 사액을 내려 이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1746년에 부사 조하망(曹夏望)이 낙화암을 창렬암으로 개칭하였다.
고전번역서 > 매산집 제2권 /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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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사 선루에서 현판 위의 시에 차운하다
〔報德寺禪樓次板上韻 보덕사선루차판상운〕
차가운 구름과 노을빛에 시름겨운데 / 冷雲殘照使人愁 냉운잔조사인수
소나무와 측백나무 울창하여 늦가을을 견디네 / 松栢蕭森耐九秋 송백소삼내구추
늙은 승려도 진찰에 보답할 줄 아니 / 老宿能知塵刹報노숙능지진찰보
백 년 동안 종과 풍경이 주구를 보호하네 / 百年鍾磬護珠丘 백년종경호주구
절의 이름이 보덕(報德)이니, 장침(莊寢)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이름 한 것이라 한다. 절에 최담(最淡)이라는 승려가 있는데 나이가 93세였다. 단종이 손위할 때의 일을 말하면서 슬픈 한을 견디지 못하여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각주]
보덕사(報德寺)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발봉산(鉢峰山)에 있는 사찰로, 옆에 장릉(莊陵)이 있다. 668년(문무왕8)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지덕사(旨德寺)라 하였는데, 1457년(세조3)에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 유배되자 노릉사(魯陵寺)로 개칭하였으며, 그 뒤 단종 장릉의 원찰(願刹)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늦가을 : 원문의 ‘구추(九秋)’는 9월의 깊은 가을을 이르고, 또 가을철 7월ㆍ8월ㆍ9월의 약 90일 동안을 이르기도 한다.
老宿能知塵刹報 늙은 ~ 아니 : 원문의 ‘노숙(老宿)’은 나이가 많고 오랫동안 수행하여 덕이 높은 인물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93세의 노승(老僧)인 최담(最淡)을 가리킨 것이다. 진찰(塵刹)은 본래 불교에서 국토(國土)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티끌에 비유한 것으로 곧 무한한 세계를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불가 밖의 세계인 속세를 이른 것으로 보이는바, 노승이 단종이 손위될 때의 정황을 제대로 알고 있으므로 말한 것이다.
주구(珠丘) : 왕릉을 가리키는 말로, 순(舜) 임금을 창오(蒼梧)에 장사 지냈을 때에 참새처럼 생긴 작은 새들이 입에 푸른 사주(砂珠)를 물고 와 구슬 언덕을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拾遺記 虞舜》
고전번역서 > 매산집 제2권 /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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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중현을 장릉의 재실로 방문하여 함께 금몽암에 갔다.
다음 날 심중현이 시를 짓고 화답을 요구하므로 삼가 재거시를 지어 올려 한번 웃게 하다. 신사년
〔訪沈仲賢于莊齋偕至禁夢庵翌日仲賢有詩要和謹呈齋居用博一粲 辛巳〕
〔방침중현우장재해지금몽암익일중현유시요화근정재거용박일찬 신사〕
그윽한 골짝에 두 마리 말 지나가고 / 幽谷雙騶度 유곡쌍추도
빈 숲에 새 한 마리 울고 있네 / 空林一鳥鳴 공림일조명
구름 사이로 공활한 하늘 바라보고 / 披雲望寥廓 피운망요곽
환한 곳에 앉아 눈을 구경하노라 / 觀雪坐虛明 관설좌허명
측백나무는 뜰 앞에 빼어나고 / 柏樹當庭秀 백수당정수
자단(紫檀) 향 연기 자리를 돌아 피어 오르네 / 檀烟繞榻輕 단연요탑경
풍류 넘치는 흥국사(興國寺)의 모임 / 風流興國會풍류흥국회
서글피 바라보니 남은 정이 있구나 / 悵望有餘情 창망유여정
[각주]
심중현(沈仲賢) : 심헌영(沈獻永, 1776~1835)으로 중현은 자이고, 호는 장재(莊齋),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오희상(吳熙常)의 문인이다. 1813년(순조13) 증광 생원시에 합격하고 벼슬이 정읍 현감(井邑縣監)에 이르렀다. 1819년 장릉 참봉(莊陵參奉)에 재직 중이었으므로 장침랑이라고 한 것이다. 본집 권37에 홍직필이 지은 묘지명이 있다.
신사년(辛巳年) : 1821년(순조21)으로, 홍직필의 나이 46세 되던 해이다.
風流興國會 풍류 ~ 모임 : 흥국사(興國寺)는 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로 북송(北宋)의 수도인 개봉(開封)에 있던 사찰인데, 북송의 대학자들인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횡거(橫渠) 장재(張載)가 이곳에서 종일 학문을 강론한 일이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二程遺書 卷2 上》
고전번역서 > 매산집 제2권 /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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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산(蓬萊山)으로 가는 이여직을 전송하다
〔送李汝直入蓬萊 송이여직입봉래〕
강호에서 늙어가는 일 쓸쓸하기에 / 江湖白髮自蕭然 강호백발자소연
꿈속에서 헛되이 동천으로 들어가네 / 魂夢徒勞入洞天 혼몽도로입동천
이날 풍악으로 가는 그대 전송하니 / 此日送君楓岳去 차일송군풍악거
비로봉 정상에서 신선의 자취 밟으리 / 毘盧頂上躡飛仙 비로정상섭비선
[각주]
봉래산(蓬萊山) : 신선이 살고 있다는 바닷속에 있는 산으로, 영주(瀛洲)ㆍ방장(方丈)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金剛山)을 봉래, 한라산(漢拏山)을 영주, 지리산(智異山)을 방장이라 칭한다.
풍악(楓岳) : 금강산의 이칭이다.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 제47권 〈강원도〉에 “금강산은 이름이 모두 다섯 가지이니, 금강(金剛)ㆍ개골(皆骨)ㆍ열반(涅槃)ㆍ풍악ㆍ기달(怾怛)로, 백두산의 남쪽 줄기이다.”라고 보인다.
고전번역서 > 매산집 제3권 /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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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으로 돌아가는 엄시중 성무 과 엄양중 성규 을 전송하다 두 수
〔送嚴時仲 星茂 陽仲 星葵 還蔚山 二首〕
〔송엄시중 성무 양중 성규 환울산 이수〕
단종에게 만고의 충신이 있었으니 / 莊陵萬世有純忠 장릉만세유순충
일월과 밝음을 다툴 만한 호장공이라오 / 日月爭光戶長公 일월쟁광호장공
한 줄기 심향을 내 올리고자 하니 / 一瓣心香吾欲薦 일판심향오욕천
둥근 뫼 높은 곳에 사당이 엄숙하네 / 圓岡高處儼明宮 원강고처엄명궁
산의 나무에 바람 부니 멀리 기러기 날아가고 / 風吹山木遠鴻流
서리가 강리에 내리니 자던 백로 시름겨워하네 / 霜落江蘺宿鷺愁
한 곡 석별 노래에 가을이 저물려 하니 / 一曲勞歌秋欲老
떠나는 배에 가득한 이별의 아쉬움 견디기 어렵네 / 不堪離恨滿行舟
[각주]
호장공 : 엄흥도(嚴興道)로, 단종이 영월에 안치되었을 당시 아전인 호장(戶長)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본관은 영월,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단종이 시해되자, 그는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신을 수습하고 관을 마련하여 아전과 백성들을 모아 영월의 북쪽 5리쯤 되는 동을지(冬乙旨)에 장례하였다. 숙종 때 공조 참의에 추증(追贈)되고, 뒤에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圓岡高處儼明宮(원강고처엄명궁) : ‘둥근 뫼 높은 곳에 사당이 엄숙하네’ 로 해역 하였으나 글자의 내면은 이러하다. 1817년 원강사(圓岡祠)를 세운 엄흥도의 후손 석헌(碩憲)이 울산에서 한양으로 홍직필(洪直弼)을 찾아와 기문을 청하였기에 찬술하여 준 기문<嚴戶長旌閭記 丁丑 엄호장정려기 정축(1817년, 순조 17)>이 있다.<梅山先生文集卷之二十八 記>에 원문이 있다. 또한 원강사에는 울산원강사비(蔚山圓岡祠碑)가 세워져 있다. 비문은 1820년에 홍문관제학 조진관(趙鎭寬)이 찬술하고 동부승지 이익회가 글씨를 썼다.<柯汀遺稿卷之六 碑>에 원문이 있다. 원강사(圓岡祠)`원강서원(圓岡書院) 내력은 1799년(정조 23) 기미(己未)년에 울산에 살던 엄흥도의 후손들이 울산에 원강사(圓岡祠)를 세워 엄흥도를 배향하여 1817년(순조 17)에는 원강서원(圓岡書院)으로 승격되었다.
강리(江蘺) : 향초(香草)인 천궁(川芎)의 별칭으로, 강리(江離)로도 표기한다.
석별 노래 : 원문의 ‘노가(勞歌)’는 석별의 노래로, 당나라 때의 시인인 허혼(許渾)이 지은 〈사정에서 송별하다[謝亭送別]〉 시에 “석별의 노래 한 곡 부르고 떠나는 배 놓아 주니 붉은 나무 푸른 산에 물이 급히 흐르네.[勞歌一曲解行舟, 紅葉青山水急流.]”라고 보인다.
고전번역서 > 매산집 제3권 / 시(詩)
ⓒ 성신여자대학교 고전연구소ㆍ해동경사연구소 | 성백효 (역)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