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초 빠진’ 추어탕은 상상하기 어렵다. 경상도 사람들은 산초의 향 짙은 매운맛을 유독 사랑한다. 그러나 전국화된 맛은 아니다. 최근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중식 ‘마라탕’의 매운맛을 통해 산초가 맛 감초로 급부상하고 있다. 명실공히 경남의 대표 향신료인 산초! 주산지인 의령을 찾아 제대로 맛 한 번 보자.
산초, 재피, 초피 다 같나? ‘아니오’
천연 향신료 산초는 초피, 재피로도 불린다. 그런데 다 같은 게 아니다. 초피와 재피는 같은 나무이다. 재피는 초피의 경상도 방언이다. 하지만 산초는 다른 나무다. 산초와 초피는 비슷한 듯 다른 나무이다. 산초나무는 작은 가시가 어긋나고, 초피나무는 억세고 큰 가시가 마주난다. 열매가 맺히는 자리도 다르다. 산초는 가지 끝에 조롱조롱 달리지만, 초피는 한 가지의 여러 곳에 성글게 열린다. 꽃피는 시기도 초피는 4~5월 봄이고 산초는 6월 이후 여름에 핀다.
향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 잎을 만졌을 때 아리게 훅 쏘는 것은 초피, 은은한 허브향이 나면 산초다. 코끝에서 매운 내가 감돌고, 입술이 저릿할 정도로 맵싸한 추어탕용 가루는 대체로 초피를 쓴다. 물론 산초가루도 추어탕과 매운탕에 쓴다. 초피에 비해 약하면서 역하지 않은 매운 향을 내며 덜 자극적이다.
시골 어르신들은 맵고 싸한 냄새를 풍기는 초피나무를 ‘진짜 산초’, 만져도 향이 덜한 산초나무를 오히려 ‘가짜 산초’라 부르기도 한다. 향신료로서 더 진한 냄새를 풍기는 나무를 진짜로 여겨서 생긴 ‘진짜와 가짜 산초 구별법’이라고 할 수 있다.
누린내·비린내 잡는 특급 향신료
의령 화정농원 장은하(51) 대표의 도움으로 산초음식 한 상을 차렸다. 장 씨는 “산초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유익한 나무”라면서 “산초 맛이 좀 더 대중화돼서 우리나라 대표 향신료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장 대표가 처음 내온 음식은 ‘산초’ 하면 떠오르는 추어탕. 열매 껍질을 빻은 산초가루를 후추처럼 뿌려 먹는다. 산초가루는 어탕, 매운탕 등 비린내가 나는 탕에 특급 처방으로 쓰인다. 잡내뿐만 아니라 생선의 독소를 없애는 작용도 한다.
산초가루로 매운맛을 더하고 입맛을 돋우는 음식도 있다. 겉절이 종류다. 생김치처럼 배추겉절이에도 쓰이고, 열무나 깍두기, 샐러드에도 쓴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껍질을 잘 밀봉했다가 쓸 때마다 가루로 빻아 먹는 것이 좋다”고 장 대표가 보관법을 알려준다.
돼지수육은 작년에 수확해서 냉동해 두었던 열매를 통째 넣어 삶았단다. 누린내를 잡은 것은 물론 옅게 풍기는 산초향이 고급 중식 레스토랑 고기 맛을 낸다. 산초잎 겉절이와 함께 먹으니 지금껏 맛보지 못한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산초 새순은 맛보기 어려운데, 날을 잘 잡아오셨다”는 장 대표의 말에 “산초농원에 흔하디흔한 것이 산초잎 아니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단다. 산초 생잎을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새순이 올라오는 5월 초순경 열흘 정도라는 것. 잎이 더 자라면 거세져서 먹을 수가 없단다. 오징어순대, 쇠고기전골, 숙채 등 산초 새순으로 만든 음식이 밥상 위를 가득 채운다. 삶은 고기는 묵은지와 함께 김치찜으로도 선을 보였다.
산초기름, 피부ㆍ위장 등 항염효과 ‘탁월’
손님상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고소한 전. 장 대표가 산초새순전과 두부전을 내놓았다. 산초기름에 부친 두부는 산초향과 고소함이 배어 생전 처음 맛본 별미였다.
“산초기름은 약으로 많이 씁니다. 식용으로 쓰기에는 아깝지요. 산초 약성(藥性)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어요.”
열매씨앗을 압착해 짠 산초기름은 독소 제거와 노폐물 배출에 도움을 준다. 특히 아토피, 알레르기, 습진 등 여러 가지 피부염에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따뜻한 성질로 위와 폐, 기관지에 좋고 꾸준히 섭취하면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강한 맛의 초피를 젖히고 산초가 주목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먹기 편한 향과 탁월한 약성 때문이다. 초피의 얼얼한 매운 향과 맛에 고개를 젓던 사람도 산초는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거기다 약성이 알려지면서 산초기름은 없어서 못 파는 귀한 농가공품이 됐다.
장아찌, 효소, 술, 차 등으로 먹어
기름 외 산초의 영양성분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장아찌다. 8월쯤 산초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따서 장아찌를 담근다. 새콤매콤한 맛에 오독오독 씨가 씹히는 산초장아찌의 맛은 그 어떤 음식에도 빗댈 수가 없다. 한여름 식은밥에도, 라면에도 어울릴 법한 반찬거리다.
산초가루, 열매, 잎, 기름까지 밥상에서 맛보고 나니, 입가심용 산초차가 나왔다. 산초가 맞나 싶을 정도로 향긋한 허브차다. 껍질을 우려냈다는데,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맛이다. 껍질을 덖고 말려 차로 마시는데, 끓이지 않고 우려서 향을 잔잔하게 만들었다. 더운 여름에는 차갑게 마실 수 있는 효소차도 있다. 매실진액처럼 발효액으로 냉수에 타서 먹는다.
11월 수확, 한두 달 사이 동나는 ‘인기’
현재 의령군에는 100여 농가 60ha에서 산초를 재배한다. 지난해 3t을 수확해 250㎖ 3000병 분량의 산초기름을 생산했다. 열매 1kg에 기름 1병씩이다. 의령산초산업발전연구회 강모제(66) 대표는 “11월 전후로 기름을 짜면 이듬해 1월에 다 팔려나간다. 의령산 산초기름은 전처리 과정 없이 생과를 압착해서 생산하므로 타 지역 기름보다 성분에서 월등하다”고 말했다.
씨앗을 볶거나 찌는 전처리 과정을 거쳐 기름을 짜면 생과 압착유보다 15% 많은 양을 추출할 수 있어, 농가소득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냄새와 맛이 강해 먹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의령군 산초농가는 생과 압착방식을 쓰고 있다. 강 대표는 “산초기름뿐만 아니라 장아찌, 효소액, 술 등 다양한 산초 가공품이 판매되고 있다”며 “독특한 맛과 향, 그리고 약효를 직접 느껴보시라”고 권했다.
취재협조
의령산초산업발전연구회
‘천년산초’ ☎ 055) 574-5522
의령 화정농원 ‘산애산초’ ☎ 010-2398-9867
글 황숙경 기자 사진 김정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