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죄인들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우리도 회개하는 죄인들을 기쁘게 영접하자
(찬송122장)
2022-12-21, 수
맥락과 의미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해 주십니다. 죄인인 우리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너무나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죄 가운데 잃어버린 자들 (4,4,6,8,9, 17,24,32절)은 사실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 하나님은 아버지 로서 기뻐하십니다. 또한 친구들, 아들들이 함께 기뻐하기를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기쁨을 위해 아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죄 가운데서 죽었다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계속 그리스도와 교회로 돌아오고 있는 죄인들을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으로 환영해야 합니다.
비유의 배경: 죄인들을 환영하는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이 불평(1-2절)
1. 비유1: 잃은 양을 찾아 즐거워하는 한 사람(1-7절)
2. 비유2: 잃은 돈을 찾아 즐거워하는 한 여인(8-11절)
3. 비유3: 회개하며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시는 아버지, 큰아들은?(11-32절)
비유의 배경: 죄인들을 환영하는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이 불평(1-2절)
15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세리와 죄인들이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죄인들, 죄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켜 주셔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의인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의에 빠진 그들은 회개하고 오는 죄인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세 가지 비유를 하십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왜 환영합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이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비유로 대답하십니다.
1. 비유1: 잃은 양을 찾아 즐거워하는 한 사람(1-7절)
먼저, 들에서 일하는 남자들의 생활과 관련한 이야기를 비유로 사용하십니다. “양을 백 마리 키우는 사람이 한 마리를 잃었으면 그것을 찾으러 다닌다. 그러다 발견하면 너무나 기뻐서 친구들과 즐거워할 것이다.” 결론은 7절에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 의인 한 사람보다도 죄인을 더 좋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과장법으로 말하고 계십니다. 죄인을 불러서 회개하고 천국으로 들어오게 하시며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사역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2. 비유2: 잃은 돈을 찾아 즐거워하는 한 여인(8-11절)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들의 경험과 관련한 이야기를 비유로 사용합니다. “동전을 잃은 여인이 그것을 힘껏 찾다가 결국 찾으면 즐거워한다. 그처럼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기뻐한다” (10절). 저와 여러분이 죄인이었습니다. 죄인인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들었습니다. 내 죄를 깨닫고서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어디로 나아왔습니까? 교회로 나아왔습니다. 교회로 나와서 예배 드리며 하나님 은혜를 감사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너무나 즐거워하십니다.
언제든지 죄를 발견하면, 회개하고 돌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으면 자기 죄인됨을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즐거워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회개하고 교회로 나오는 다른 죄인들을 우리도 환영합시다.
3. 비유3: 회개하며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시는 아버지, 큰아들은?(11-32절)
그런데 세 번째 비유가 제일 길고 중요합니다. 형제가 있었습니다. 동생은 아버지를 졸라서 재산을 먼저 상속받았습니다. 동생은 그것을 다 팔아 가지고 먼 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재산을 낭비했습니다. 음행과 다른 죄를 지었습니다. 재산이 떨어졌습니다. 그 나라에 흉년까지 들었습니다. 굶어 죽게 되어서 후회합니다. 회개하면서 자기 아버지 곁으로 돌아옵니다. “돌아 가자.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품꾼으로 사용해 주십시오”(19절). 라고 하며 마침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멀리서 그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오는 길을 매일 쳐다보고 있었던 듯합니다. 아버지는 달려 나갑니다.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받아들입니다. 아들은 말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 죄를 지었으니까 저를 일꾼 중 한 사람으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움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21절) 아버지는 아들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앉고 종들에게 명령합니다. 옷을 갈아 입히고 즐거워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이다.”(24,32절) 귀한 소까지 잡았습니다. 즐거워하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아버지 옆에서 성실히 일해 왔던 그 형이 들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사정을 알고는 무지무지 화를 냈습니다(노했다, 28절). 그러면서 집안으로 들어오기를 싫어합니다. 그냥 바깥에 서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 바깥으로 나가 큰 아들에게 들어가자고 간청합 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불평하며 말합니다. “나는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평생 일했는데 나에게는 이런 잔치를 베풀어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재산을 먹어 치운 이 동생, 죄 지은 동생에게 이렇게 잘해 줄 수 있습니까?”
아버지께 화를 내는 큰 아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바로 예수님께 불평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압니다. 율법대로 행동하여 칭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가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죄인들과 같이 할 수 없다. 저런 죄인들을 용서하는 것은 부당하다.” 세리와 죄인들이 먼저 들어와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된 죄인들이 모여 계속 은혜를 누리는 교회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 바깥에 서 있습니다.
비유의 마지막에서 아버지가 큰 아들을 설득하는 것이 비유의 절정입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어 왔다. 내 것이 네 것이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잃었다가 얻었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32절). 이렇게 설득합니다. 비유는 여기서 끝납니다. 형이 집 바깥에 있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형이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로 끝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도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는 물음표를 던지십니다.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섬겨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인정하지 않으시는가? 교회에서 나는 이렇게 많이 섬겼는데 왜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가? 하나님을 섬겨도 나에게는 왜 복을 주지 않는가?” 이렇게 불평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회개합시다. 감사하지 않는 마음을 버립시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우리도 기뻐합시다. 죄인들이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을 기뻐합시다. 이렇게 생각합시다. “이 사람들은 잃었다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다.” 새롭게 우리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교회로 옵니다. 사람들의 외적인 환경으로 우열을 가리지 맙시다. 가난하거나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도 우리 교회로 오는 것을 환영합시다. 죄인으로 소문난 사람도 환영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돌아오는 그들 모두는 우리와 동등한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모든 성도들을 기쁘게 환영합시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온 우리들, 이 말씀을 들읍시다. 31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온 우리들, 이렇게 살아온 것을 감사합시다.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을 감사합시다. 죄인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찾을 때 기쁘게 맞아들입시다. 비유 속 형과 같은 마음을 버리고, 죄인들을 불쌍히 여깁시다. 자녀들이나 가족들이 회개할 때에 그들의 잘못을 허물을 덮어줍시다. 기쁨으로 받아들입시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온 것을 기뻐하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기뻐한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감사하도록 합시다. 또 다른 죄인들이 우리 곁에 오고,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잘 해주실 때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뻐 즐거워합시다.
우리 관악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즐거워하면서 순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삶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입술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 죄인들을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의 일에 같이 참여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우리를 기쁘게 환영하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지금 어떻게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까요? 또 회개하고 돌아오는 교인을 어떻게 환영해야 할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성실한 형과 탕자 동생의 이야기(15장)과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10:38-42)
서기관 바리새인= 섬기는 큰 형= 섬기는 언니 마르다
세리와 죄인=동생 탕자=마리아
15장의 세가지 비유와 마르다/마리아 이야기는 아주 비슷합니다. 다음 표가 잘 보여줍니다.
언니 마르다는 자기 집에서 아버지를 잘 섬겨온 큰 아들과 같습니다. 동생 마리아는 일을 하지 않는 탕자 동생과 비슷합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잘 섬겨 왔습니다. 섬기지 않고 해를 끼친 작은 아들을 정죄하고 아버지에게 불평합니다. 그는 잔치하며 기뻐하는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바깥에 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식사 대접을 하기 위해 종으로 섬깁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냥 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앉지 않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도 하지 않았고 식사 대접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말씀만 듣습니다. 그런 마리아를 보고서 마르다는 마리아를 정죄하고 예수님께 불평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큰 형이 동생을 받아들이기 원합니다. 예수님도 마르다에게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시면서 마리아를 변호합니다. 동시에 마르도다 마리아처럼 앉아서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도 세리와 죄인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세리와 죄인을 환영하기 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집 바깥에 서 있지 말고 그 집안으로 들어 갑시다. 예수님이 앉아서 말씀을 가르칠 때, 일로 섬기기 위해 서 있지 말고 앉아서 말씀을 들읍시다. 큰형은 바깥에 서 있는 것으로 끝납니다. 마르다는 그냥 서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아직 서서 일하기만 하고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하지 않는 우리 모두를 위한 열린 초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15장)과 마르다/마리아(10장) 비교
내용 | 죄인들이 돌아오는 세가지 비유(15장) | 마르다와 마리아(10:38-42) |
말씀들음 (아쿠오) | 15;1 세리와 죄인이 말씀을 들으려 가까이 오니 | 10:39 마리아라는 자매가 그의 말씀을 듣더니 |
내버려 둔다 (카타-레이포) | 15:4 마리를 들에 두고 | 10:40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 |
필요하다 (크레이아) | 15:7 회개할 것(필요, 크레이아)이 없는 99마리 양 | 10:42 한가지만으로 족하니라(크레이아) |
돌보다 (멜레오) | 15:8 부지런히(에피-멜로스) 찾음 | 10:40”나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멜레오) 아니하나이까? |
하나(헨) | 15:4,7 한 (헨) 마리의 양 | 10:42 한 가지(헨)만이라도 족하니라. |
분깃/쪽 | 15;12 분깃(메로스) | 좋은 편(메리스)를 택했다. |
들어가지 않음/서 있음 | 15:28들어가지 않고 바깥에 서 있음 | 10:40 마르다는 앉지 않고 서 있음 |
종으로 섬기다 | 15:22,26 종들(둘로스), 15:19 “나는 종으로 섬김”(둘로오)종으로 섬겨 | 10:39 마르다는 준비하는(디아코니아) 일이 많아 10:40 나혼자 일하게 (디아코네오) 두는 것 |
형제/자매 | 15:27,32 동생(아델포스) | 10:39,40,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음, “내 동생”(아델페, 여자 형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