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인양읍내 1
당시 안양의 중심지는 시장이었다. 두 곳의 시장, 남부시장과 중앙시장. 시내 한복판에 중앙시장이 차지하고 예전에 마부들이 일터였으며 삼영운수 종점이기도 했던 곳에 청과물을 취급하는 남부시장이란 곳이 나중에 생겨났다. 중앙시장을 그 당시는 새시장이라 불렀는데 구시장이라는 곳을 밀치고 1961년도에 새로 생겨난 시장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구시장은 철도 길 건너 비산동에 가까웠다. 중앙시장은 한때 단일시장으로 전국 최고의 매상을 자랑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 시절에는 현재의 안양 천주교성당 주변까지는 차지하지 않았는데 밀려드는 인파로 그 구역도 포함하여 지금 그곳은 특성화가 되어 최신식으로 규모가 엄청 나다.
당시 뻥튀기를 튀기려 하면 안양극장 뒤 카바레를 지나 천주교 성당 뒤편으로 가고 제일교회 앞은 늘 땅콩가게나 기름집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북으로 향하면 청바지집이 장사진을 이뤘고 포목점이 몰려 있는 구역을 지나 시장 안 깊숙하게는 돼지국밥집이 무더기로 있었다. 수없이 늘어난 점포들, 성당 건너편의 근로자회관이란 곳 주변에 전문 순대골목이 늘어난 것 말고는 지금도 그 형태는 변함이 없다.
아버지 장사를 그대로 물려받아 지금도 시장 안에 사는 돌배라 불렀던 아이부터 해서 친구들이 그곳에 제법 많다. 시장은 풍성함과 더불어 맛의 고소함에 갖은 볼거리로 지금도 어디에서든 시장이라면 마음이 들뜬다. 어쩌다 안양을 가면 나는 그 시절의 돼지국밥 집으로 향한다. 대학시절 자주 들르던 나의 명소다.
고정점포들 말고 행상이 더 많았던 그 시절, 긴 막대기에 검고 노란 고무줄을 늘어뜨려 세워서 들고 다니면서 “고모 줄이요 이모 줄이요”하며 외치던 고무줄 장사가 있었다. 그들은 운동회 때도 바람과자 장사나 번데기 장사하고 나타나 끈질긴 구애를 하였다. 따뜻한 불을 피워 놓고 아교를 녹여 집에서 쓰던 상다리를 붙여주거나 하얀 고무풀을 비치해 놓고 구멍 뚫은 양철을 동그란 원형 나무토막에 감아 고무조각이나 가죽조각 면을 그것으로 문질러 풀이 잘 붙게 한 다음 고무신이나 구두를 수선해 주던 수선 전문 장사도 있었다.
또 약봉지만 한 비닐에 라이타 돌 10개씩 포장하여 길게 늘어뜨린 채 “돌,돌,돌 라이타돌이요!”하고 외치는 라이타돌 장수도 있었다. 그 라이타돌 장수는 라이타 용 소형 휘발유통도 함께 팔았다. 그 때의 라이타는 하이칼라나 부잣집에서만 쓰는 물건이었고 대개는 UN 마크나 화랑표 통 성냥 아니면 비사 표 휴대용 갑 성냥을 썼다.
각종 식재료를 파는 가게들 사이사이 우산을 고쳐 주는 사람, 고무풀로 신발을 수선해 주는 사람, 요란한 가위 소리를 내는 엿장사. 땡그랑 종치며 다니는 두부장사. 리드미컬하게 육성으로 외치는 아이스 케키장사, 사주 보는 사람, 하풍단을 파는 돌팔이 약장사, 가발 재료로 쓰기위해 여자들 비녀 꽂은 낭자 머리를 잘라가고 돈을 주는 떠돌이 달비장사.
보따리로 이고 생필품이나 옷을 파는 방물장수 아주머니에 괜한 염불을 외우는 땡중에 구걸을 하는 거지들까지도 ...거지왕 김춘삼이 엄연히 있던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가짜 꿀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 또한 많았던 것인지. 우리 집도 여러 번 가짜 꿀을 사 신주단지 모셔두듯 했다.
장터에 가까운 공터는 남아나지를 않았다. 화장품 상자를 지고 앞에는 작은 북을 멘채 ‘둥둥둥’ 북을 치면서 다니는 소위 ‘동동 구리무 장사’ 그리고 약장수들. 동동동 북을 친다 해서 ‘동동’이고 영어로 크림을 구리무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했기에 굳이 해석한다면 ‘’북치는 크림 장수’를 우리는 ‘동동 구리무 장수' 라고 불렀다. 화장품이라 해봐야 분, 크림, 볼연지가 전부였는데 입술을 칠하면 술집여자라 부를 정도로 폐쇄적이었던 사회라 예뻐지고 싶어 하는 여자 마음은 늘 조심스러웠다.
당시 서민들은 병원에 간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다. 큰돈이 들기 때문이다. 안양에는 제일의원하고 김 외과가 고작이었는데 그래서 돌팔이 약장사들이 꽤 많았다. “증상’을 나열하면 모든 사람이 다 해당되는 말을 하기에 결국 사게 된다. '약장사'하면 유랑극단인 "나이롱 극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말로 표현한다면 국악인이요 악극단인 예술가들의 집단이지만 그 때는 그저 광대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금성방직 터에 하얀 무명천으로 대형 천막을 만들고 그 안에는 멍석(덕석)을 깔아 손님을 양반자세로 앉게 한 다음(그 때는 의자가 엄청 귀해서 개념 자체가 없었음) 앞에 간단한 무대를 만들어 공연을 했다. 그들은 안양에 들어오면 북치고 노래 부르며 시장 통을 한 바퀴 먼저 돌며 입성을 알렸다. 품바의 각설이타령을 기억하고 동춘 서커스단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공연은 장화 홍련이나 심청전 같은 연극도 했고 서커스도 했으며 판소리, 민요등 창도 불렀다. 공연 사이사이에 많은 종류의 약을 판다. 이를 없애는 이약부터 무좀에 바르는 두꺼비 기름,여자들 머리 손질용 동백기름, 구충제, 입으로 불어 뿌리는 파리약 등등....내 기억에 남는 약은 만병에 좋다는 "만병수"라는 약이다.
지네나 불개미에 이상한 약초 뿌리를 파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시절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를 끄는 것은 뱀 장사였다. 저음으로 목소리를 깔고 ‘애들은 가라’하면서 ‘화초 밑에 땀 차는 분으로 시작하는 구성진 코멘트는 훗날 코미디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나는 뱀 장수가 한 열변을 글로 따로 모아 본 적이 있다.
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연정이라고 할까. 목청을 돋우어 그 글을 읽으면 몰래 끼어들어 원숭이도 보고 차력사도 보고 노래도 듣고 그 시절의 말꾼인 뱀장사를 다시 만난 듯 정겹기 그지없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자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냐~! 바로 그 구성진 소리는 그 시절의 장터를 맞는 풋풋한 설렘이며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진귀한 볼거리였다.
달이면 달마다 오는 것도 아냐~!.기회는 딱 한 번 지금뿐야. 아주머니 아저씨 시집 못 간 처녀 아가씨 부끄러워 말고들 이리 가까이 와 봐. 눈이 말똥말똥한 애들은 무서운 독사를 보면 꿈에 나타나. 애들은 가라~ 애들은 집에 가라. 저기 뚱뚱한 아지매 다리 아프면 애기 깔고 앉아도 괜찮어! 자아~~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니 잘 들으셔. 잘 들어서 남 주는 것 아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삼각산에 올라가 봐! 시커면 어둠 속에서 뭔가 아가리 쫙 벌리고 있는 거이 있어.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비얌이야 비얌! 심심산골 산삼 먹고 열 받아 몸이 하얗게 변한 백사~모가지 따고 입 벌려도 독물이 자동으로 발사되는 살모사~ 뱀이 새끼 낳는 거 봤어? 이놈(살모사)이 새끼를 낳는 거여. 몸이 화사해서 뱀계의 꽃 뱀 화사~시꺼면 점 일곱 개가 있다 해서 칠점사~까치랑 사돈에 팔촌인지 몰라도 물리면 황천 가는 까치독사~
시골집 마루 밑에 사는 능글능글한 능구렁이~하여간 비암 종류도 부지기수여. 요즘 학생들 공부하랴 컴퓨터 하랴. 눈이 아주 나쁜 학생들 천지야~자기는 못 봤는데 선배한테 인사 안했다고 오뉴월 똥개 마냥 흠씩 두들겨 맞고 폐인된 아그들 숫해봤어. 그런 학상들 이거 한마리 갖다 고아줘 봐. 길가는 여자 치마속까지 다 보여.
휴게실 남자 화장실서 오줌 누는 아저씨 봐 바. 잘 봐~! 저 아저씨 바지가랭이에 신발 다 젖어. 그럴 때 이거 서너 마리 푹 고아 잡숴 봐. 화장실 변기 금가도 나 책임 못져. 열 댓 마리 잡숴봐. 오줌이 담장을 넘고 자갈이 튕겨져 나가~요즘 복분자 술 선전하는데, 전봇대가 넘어가고 변기에 구멍나는 거 그거 다 뻥이야. 피부가 푸석푸석한 저 할머니 한번 잡숴봐. 그럼! 이 막강 효험의 비얌이 얼마냐? 말만 잘하면 거저 줘. 저기 공짜 좋아하는 대머리 아저씨 .공짜로 먹으면 약 효험이 없어~딱 한 장으로 모시것어. 자~ 비암이 왔어요~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그런 약장수는 뱀만 들고 약만 파는 게 아니다. 지금 공개 오디션에 나가도 될 만한 실력의 무명가수와 무희. 차력사, 마술사등등 아무런 재미도 없던 시골동네에서 약장수 출현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요즘의 종합엔터테인먼트주식회사였다. 웃을 일이 적던 시절 동네에 풍성한 웃음거리를 제공한 그들은 자타가 인정한 개그맨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에게 웃으면 복이와요.' 라는 마음의 약을 판 진정한 약장수였는지도 모른다. 막걸리에 취하고 약장수 말에 취한 할배가 한바탕 웃음을 안고 바로 후회할 만병통치약을 주섬주섬 담아들고 장터를 빠져나갈 무렵은 어느 새 수리산 서편에 붉은 노을이 곱게 물들고 장터는 이내 적막하여 연극이 끝난 공연장 같은 썰렁한 분위기로 남았다. 과거를 그리는 나의 회상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