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의 경쟁력 평가에서 단골 1위국이자 대표적 복지 국가인 핀란드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선 아래 기사를 참고로 복지 강국 핀란드의 복지 실태를 느껴 보자.
핀란드의 복지는 KELA(켈라)로 통한다. 한국 성인들의 지갑에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가 있다면 핀란드인들의 지갑에는 켈라 카드가 있다. 켈라 카드의 존재 유무에 따라 핀란드에서 누리는 삶의 질이 달라진다.
사회보험 기관인 켈라는 기초 연금과 장애인 연금, 저소득층의 주택 보조금 지급, 보육비 지원, 아동 수당과 가족수당, 학생 수당, 건강보험 등 핀란드 사회보장 전반을 책임지는 기구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현지에서 도와주고 있는 곽수현 씨(34)의 지갑에는 모두 세 장의 켈라 카드가 들어 있다.
핀란드인과 결혼해 9년째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곽 씨는 6살, 3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지갑에는 딸 두 명의 켈라 카드와 자신의 켈라 카드가 들어 있다. 지역 보건 센터가 아닌 병원에 가면 이 카드를 제시해야 하고, 약을 처방받을 때도 필요하다. 카드 앞에는 거주 지역과 한국의 주민번호처럼 고유 번호가 부여돼 있다.
켈라 카드는 핀란드인뿐 아니라 EU 회원국 노동자가 핀란드에 일하러 올 경우에도 제공된다. EU 회원국이 아닌 경우, 핀란드에서 세금을 내는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는 켈라 카드를 제공받는다. 2009년 기준으로 500만 장의 켈라 카드가 발급됐다.
곽 씨는 매달 통장으로 두 딸의 아동 수당 210.5유로(31만 5000원)를 켈라에서 지급받는다. 아동 수당은 핀란드에 태어난 아이에게 만 17세까지 지급된다. 아이가 하나인 집에는 100유로, 두 번째 아이에게는 110.5유로, 세 번째 아이에게는 141유로, 네 번째 아이에게는 161.5유로를 제공한다. 한 부모 가정일 경우에는 아동 수당이 추가된다. 다섯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면 182유로가 지급된다. 다섯 번째 아이 이후부터는 무조건 182유로가 추가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유인책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아동 수당은 세금이 면제다. 2009년 기준으로 101만 6865명의 아동이 혜택을 받고 있다. 곽 씨는 “매달 통장으로 들어오는 아동 수당 210.5유로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저금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의 옷을 사 주는 등 생활비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펀드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피르요 투오멜라(45, 헬싱키 시 동쪽 라아야 살로 지역 거주)는 얼마 전에 이혼을 했다. 그는 수입의 48~50%를 세금으로 내는 고액 연봉자(월 7000만~8000만 원 내외의 수입)다. 이혼한 남편은 파일럿이다. 고액 연봉자라고 해도 14살(종합학교 8학년), 12살(종합학교 7학년) 두 딸이 함께 살고 있어 아동 수당 210.5유로에 이혼한 한 부모 가정이기 때문에 10유로 정도를 추가해 220유로 정도를 받고 있다.
이 집은 아동 수당을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투자한다. 투오멜라는 “이 돈을 모았다가 아이들이 방학 때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어를 배우거나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데 보탠다”고 말했다. 문화생활을 위해 쓰고 있는 셈이다.
고액 연봉자이지만 두 명의 딸에게 매달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버스 카드(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이용 가능)가 지급된다.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에게 무료 버스 카드가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난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두 딸은 4km 떨어진 종합학교에 다니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3만 1835명의 학생들이 교통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다. (중략)
켈라에 33년 동안 근무해 온 리서치 센터 수석 연구원 우르요 마틸라(64)는 아동 수당과 학생 수당을 지급하는 이유가 “빈부 격차 없이 아동이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켈라에서 1년간 지급하는 수당은 핀란드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6.9% 수준이다. 물론 이런 것이 높은 세금 부담률과 투명한 세제 관리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핀란드의 조세 부담률은 GDP 대비 44.5%이지만 우리는 19.3%(2010년 기준)에 불과하다. 마틸라는 또한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복지를 제공하는 데 밑바탕이 되지만 국가에서 세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 2010년 12월 13일자, 〈유러피언 드림, 교육 강국 핀란드의 힘 4: 카드 때문에 20대 초반 동거도 가능했다〉 중에서
기사 내용을 보면 핀란드의 삶의 질이 한국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높은 복지 수준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세금이다. 기사에도 언급됐지만 핀란드의 조세 부담률은 매우 높다. 하지만 세금을 재산의 과다 정도에 따라 철저히 누진적으로 걷고 있다. 언론에도 소개됐지만, 교통 범칙금조차 차등적으로 내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한 재벌 아들의 경우 교통 범칙금을 우리 돈으로 2억 6000만 원, 노키아 부사장의 경우 1억 8000만 원가량 냈다고 한다. 핀란드에선 웬만한 소득자들이 소득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렇지만 세금을 공평하게 걷고 제대로 써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삶의 질을 누리기에 불만이 거의 없다. 물론 핀란드가 지금처럼 복지 대국이 된 것은 여야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협력 및 노사정 3자 합의라는 사회정치적 기반과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인적자원 등에 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활력이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처럼 핀란드인의 삶의 질이 높은 것은 소득과 조세 부담률이 한국보다 크게 높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상태에서 세금을 많이 거둬서 많이 쓰고 있으니 복지 수준도 높은 것이다. 하지만 차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금의 사용처가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체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 가운데 공공 지출의 비중을 보면 핀란드의 경우 100%에 육박하는 데 비해 한국은 겨우 20%를 넘는 수준이다. 또 공공 의료 지출 규모는 핀란드의 경우 GDP 대비 6%를 넘지만 한국은 3.5% 수준이다. 공공 사회복지 지출은 핀란드의 경우 25%를 넘지만 한국의 경우 2005년 기준 6.9% 수준으로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 그런데 정부 재정 지출 가운데 총고정자본형성(기업이나 정부 등이 지속적인 생산 능력 유지 및 확대를 위해 노후 설비를 교체하거나 설비를 신설, 증설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본재를 구입하거나 생산하는 것을 일컫는다. 기업의 설비 투자나 건설 투자와 비슷한 개념인데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그 비중이 대체로 높은 편이다.)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GDP 대비 4.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2.52%인 핀란드에 비해서는 두 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한국은 복지, 공공 의료, 교육 등에 지출하는 비용이 핀란드뿐만 아니라 OECD 평균 수준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반면 기업 설비나 건설 투자 등에 개발도상국 같은 수준의 과도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주로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에 예산을 과도하게 책정하는 반면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투자하는 데는 매우 소홀한 것이다. 사실 한국은 핀란드뿐만 아니라 OECD 국가들 대부분과도 동떨어진 개발도상국형 재정 배분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식이다 보니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그 과실이 소수 대기업과 부유층에 집중되는 반면 서민들은 제대로 된 삶의 질도 누리지 못한 채 높은 교육비와 보육비 등에 등골이 휘고 노후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다. 같은 세금이라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은 확연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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