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 원작, 신유청 연출의 「시련」
정통 연극의 격조를 과시한 연극
4월 9일(수) 저녁 7시 30분,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Arther Miller)의 「시련」(The Crucible) 개막 공연이 있었다. 극작가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연극인들의 대부였고, 그의 공연작은 연극인들에게 경전의 의미였다. 이 작품은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2019년 2월 26일부터 3월 3일까지 초연된 바 있다.
아서 밀러(1915~2005)는 매카시즘 선풍을 보고 희곡 「시련」(The Crucible, 1953)을 썼다. '세일럼의 마녀들'을 토대로 장 폴 사르트르 각본, 레몽 룰로 감독의 「시련」(1957)이 탄생되었다. 밀러 각본, 니컬러스 하이트너 감독의 「The Crucible」(시련, 1996)이 영화화되었다. 뮤지컬 버전 ‘마녀사냥’은 초연 이듬해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1948)의 작가이기도 한 밀러는 남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마가 되어가는 인간 군상의 묘사가 뛰어나다. 「시련」은 1660년대에 마녀사냥에서 아내를 변호하다 악마로 몰려서 희생당한 한 농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의 죄와 집단적인 광기가 인간을 파멸시켰다. 주인공은 끝까지 자존감을 지키고 처형당한다.
진지한 열정의 세 시간 러닝타임(인터미션 20분)의 공연은 2부 구성이며 4월 27일까지 공연된다. 이 작품은 1692년 매사추세츠의 보스톤 근교의 어촌 세일럼에서 일어난 ‘세일럼 마녀재판’(Salem witch trials)을 다루고 있다. 극은 청교도 목사 새뮤얼 패리스의 딸 베티와 조카 애비게일이 발작 증세와 이상 행동을 보이며 전개된다.
개인을 억압하는 청교도 사회의 경직성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코튼 매더 목사는 광기의 재판을 주도한다. 뉴잉글랜드 청교도 도시들은 목사 지배의 신정 왕국에 가깝다. 과학에 해박했던 코튼 매더는 일명 '매더 왕조' 가문 출신이다. 그는 허깨비 증거가 재판에 도입되는 것을 경고하면서도 이 재판을 민중의 신앙심을 회복할 기회로 이용했다.
세일럼의 유력 가문들은 마녀재판을 정적 제거에 이용했다. 앤 퍼트넘은 딸인 앤 퍼트넘 주니어와 다른 마을 소녀들을 법정에 세워 마녀의 저주 연기로 남편의 정적을 처리하려고 했다. 1706년까지 마을에 남아있던 앤 퍼트넘 주니어는 이때의 행동에 대해 당시 자신이 사탄에게 홀린 상태였다면서 불가피한 눈물을 흘리고 참회 수준을 밟았다.
세일럼 주민들은 서로 불신하고 온 도시가 불안에 떨었다. 내부 분위기는 진정되지 않았고, 주민 일부는 외부에 도움을 청했다. 1692년 10월, 매사추세츠 총독 윌리엄 핍스(William Phips)는 허깨비 증거를 금지하고 마녀재판 법정을 해산시킨다. 10년 뒤 세일럼의 마녀재판을 불법으로 선언한다. 이전에 재판으로 죽은 사람들도 사면받았다.
유럽의 마녀사냥 보다 훨씬 뒤에 터진 미국에서의 이 사건은 재판 자체보다 마을이 처한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영국과의 전쟁, 원주민들과의 대립, 전염병, 농사의 흉작, 기존 개척민들과 새로 이주한 개척민들과의 갈등 등이 마녀사냥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세속화된 북부 청교도보다는 남부의 복음주의 교회의 근본주의 사상의 영향이 크다.
3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57년,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1692년 세일럼의 마녀재판’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종교적,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재판 불개입, 고문으로 인한 자백의 무효, 자백이나 다른 사람의 증언도 객관적 물증 없이는 증거로 불채택의 증거주의 재판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사례가 되었다.
미국의 역사나 문학 시간에 배우는 ‘마녀사냥’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톨이가 되거나 부당하게 몰리는 숱한 상황과 연관 지으면, 이 작품이 결코 낯설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시련」은 정극으로서의 품위를 지킴으로서 관객에게 시련을 안긴 작품이었다. 2부로 가면서 작품은 정갈함을 안겼다.
느릿한 봄바람을 타고, 연극을 전공한 연기자, 연출자. 인접 장르의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쌉쌀한 추위가 조금씩 녹는 것을 느꼈다. 김수로가 총괄 프로듀서로 나선 「시련」, 자일즈 코리 역의 주호성 연기자의 구수한 입담과 더덕술 중심의 주류가 인기를 얻은 날의 뒷담화는 ‘밤으로의 긴 여로’를 생각나게 했다. 정극을 완극한다는 것은 연극에 대한 예의와 연극을 사유한다는 것이고 제작할만한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일임을 의미한다.
장석용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Chang Seok-Yong, Chairman Of The Committee Of Korean Arts Cri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