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 동문 홈페이지에 올렸었는데 목사님 요청에 따라 여기도 올립니다.
지난 스승의 날에 선생님 생각이 나서 썼던 글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으면서 초등학교 시절 조ㅇㅇ선생님 생각이 난다.
두번의 유학과 세번의 대학원 공부를 포함해서 비교적 많은 공부를
했지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담임을 하신 적이 없지만 늘 많은 사랑을 주셨던 분이시다.
어린 시절, 어려웠던 시절 나는 중학교조차 갈 형편이 못되었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항상 꿈과 용기를 심어주셨다.
입시준비를 하도록 참고서도 사서 주셨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도록 하셨다.
화가이신 선생님은 내게 그림지도를 해 주시고 본인이 사용하시던
여러 개의 붓도 주셔서 실기대회때 마다 상을 받아왔고 아시아 대회에
출품도 하도록 해 주셨다.
전교 어린이 회장 출마 때 연설문도 지도를 해주시고 회장으로서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신 덕분으로 1,2학기
모두 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6학년 때 수학여행시 여행비가 없어 갈 수가 없었는데 선생님이
모든 비용을 대 주시고 출발 직전에 호주머니에 용돈도 넣어주셨다.
당시 비로도(벨벳:Velvet)치마가 유행이어서 모든 여선생님들은 수시로
비로도 치마를 입고 오셨지만 조선생님은 비로도 치마를 입지 않으셨다.
시골이라 교사와 학생이 다 집에가서 점심을 먹고 오는데 어떤 여선생님은
그 새 옷을 바꿔 입고 오셔서 우리가 칠면조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조선생님은 며칠씩 같은 옷을 입고 오시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조선생님이 가족을 부양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런 여건속에서도 내게 물질적으로 도와주신 분이다.
학년이 끝날 때 학적부 정리를 댁에서 도와 드리면 그 당시 가장
맛있던 "비과(Vigor)"도 사주시고 늦으면 선생님과 같이 자고도 왔다.
처녀 선생님의 향기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선생님께 학교생활을 보고하고 충고도 들었다.
대령 함장때 거제도에 있는 대우조선에서 보증수리를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 가족을 초청해서 호텔에 모시고 VIP차량으로 대우조선을
구경시켜드리고 대우조선 브리핑룸에서 설명도 듣게 해 드렸다.
내가 지휘하는 구축함을 견학하신 후에 함상오찬을 대접해 드리기도 했다.
차로 모시고 옛날 근무하셨던 학교에도 가고 자취하셨던 집과 방도
보여드렸더니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따님이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자식에게도 무척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 인생길에서 진정한 스승이셨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리며 카네이션을 달아 드립니다.
첫댓글 눈물겹도록 감동적입니다. 그런 선생님이... 저는 초등학교 4~5년 시절 정 모 선생님이 그렇게 저를 사랑해 주셨는데 매일 낮에 선생님의 친누님이 경영하시는 식당에 가서 따뜻한 점심을 싸서 선생님께 갖다 드리는 심부름을 했답니다. 세월이 지나 선생님이 뵙고 싶어 수소문하여 찾았더니 모 여중 역사선생님을 거쳐 목사님이 되셨더군요. 내외분을 63 빌딩 뷔페에서 저녁을 모시고 선물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시골기도원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선생님 아니 목사님은 소천하셨습니다. 얼마나 슬펐던지요!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 담임선생님,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정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목사님도 이런두견새 우는사연이 있으셨군요. 저도 도시락 심부름 한기억이..도시락 심부름이요?, 아무한테 안맽깁니다. 특별히 마음가는 아이한테 맡기지요. 아니그렇습니까? 저는 불행히도 이런선생님을 만나본 기억이없습니다. 그저 얻어맞던 기억밖에는 없습니다. 학예회 독창할때마다 저는 지금의 조용남스타일로 노래를 하고 싶어했지요, 하지만 그음악선생님은 꼭 하남석 같이 노래를 하라고 강권하며 손바닥을 자로 때렸습니다. 10살때얘기입니다. 그이후 저는 수십년동안 노래하고는 담쌓았지요. 그리고 다시 처음 부른노래가 찬송가였답니다. 선생님 한사람으로 인해 한아이의 인생이 이렇게 달라 질수가 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지요?
장로님 그 때 손바닥 맞으신 덕에 오늘날 찬송가를 많이 부르시게 된 셈이니 그것도 은혜네요.
어쨌든지 제가 바라는 선생님 상은 한 마디로 학생들을 격려하는 화이팅 형의 선생님입니다.
세상엔 우리의 화이팅 소리를 기다리는 외로운 영혼들이 많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사회, 세상....
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정말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이런 훌륭한 선생님한테서 이런 귀한제자가 나옵니다. 저같이 선생님에 대해 좋지않은 기억을 가진사람이 교사가 돼보세요. "욕하면서 닮아간다" 는 말 있지요. 분명 기억속에 남아 있는 좋지 않은 선생님의 모습 꼭같이 닮아 갔을 겁니다. 저요? 그래서 선생님 된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본의아니게 한때 교관을 한적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당시 정말 군기 엄청 잡았던 것 같아요. 마치 실미도 영화에 나오는 허준호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어렸을적 뇌에 각인된 폭력적인 현상의 영향이 아니었나 지금에야 생각이 되네요. 고등학교때도 폭력교사를 만나....다음에 말씀...
누가 뭐래도 장로님은 예리하시면서도 인정이 넘치시는 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장로님을 통해 수 많은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주께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성령님을 교사로 모신 훌륭한 장로님 선생님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실 줄 믿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뚝! 뚝! 눈물 떨어지는 소리 들리지않습니까? 정말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군요.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것도 큰축복이지요. 한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선생님을 선생님이 아니라 천사라고 부르고 싶네요. 요즘에도 이런 선생님이 계실까요? 글쎄요 어디엔가는 있겠지요? 함장이 되어있는 제자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우리 비스카페에서 선생님께 비로도 옷한벌 사드립시다. 그리고 비과(나마가시?)도 한트럭쯤 사드립시다. 선생님 지금은 몇살쯤 되셨지요? 할머니? 그러나 이 선생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섬마을 선생님(이미자노래)으로...
어느 새 제 답글 바로 뒤에 쓰셨네요. 몇 초 차이로.
예 저도 비로도 옷 한벌에 동참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조 선생님은 이미 어린 시절의 장로님을
한 눈에 보신 겁니다. 결국 해군의 제독이 되시고
지금은 교회 장로님과 가르치시는 일로 선생님의
뒤를 잇고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선생님의 역할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님들의 역할도 그렇구요.
어른들의 격려(부모 역시) 한 마디가 아이들을 뛰게 합니다.
참 감동이 됩니다. 그 선생님의 그 제자이군요...
저도 그런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선생님이 되어야 겠습니다.
예수님을 롤 모델 선생님으로 모시고 우리도
그런 선생님이 되자구요.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인 듯합니다.
인생에 소중한 것 중 하나가 스승을 잘 만나는 겁니다.
스승을 잘 만나야 청출어람도 가능한 것이고 스승을
잘 만나야 비전을 품고 달려갑니다. 목사가 아니었다면
선친처럼 선생님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많은 학생들을 격려하는 이 땅의 스승들이 많아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