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 시인들은 게 섰거라- 송아지, 아이 생각/김정옥, 오직 한 시람/ 황희자
그럴 때가 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턱 턱 막혀오고, 가슴은 조여오고, 마음의 창에는 성애가 낀다. 신체의 배기구는 이내 막혀버리고,입은 바짝바짝 말라 오며, 손바닥에는 만져 지지 않는 땀으로 범벅이다.
절절한 글을 읽을 때 그러하다. 굳이 시 이론과 어휘를 곱씹을 시간도 없다. 그저 글쓴이의 글 한자 한자를 따라 읽으며, 같이 발걸음을 맞추어 걸으며, 그와 한 몸이 된다. 먹물일 수 없는, 먹물들지 않은 이들의 글이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이번에 접하게 된 글들이 그러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누구나 시심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을. 시심은, 어쩜 배우고 먹물드는 삶의 과정에서 희미해지고 사라진다는 것물. 그냥 그대로 놔두어야, 시심이 발휘된다는 것을. 글은 펜과 잉크로 쓰는 것이 아니고, 연필 심에 침을 발라가며 꼭꼭 눌러 쓰는 것이라는 걸. 먹물이나 간서치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걸. 글은 머리도 아닌, 가슴도 아닌, 몸으로 쓰고, 몸으로 느낀다는 걸, 굳이 꾸미고, 장식하고, 틀에 맞추어 쓰지 않는 것이 더 시심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그래서 가슴을 울리는 시는, 어린이나, 어르신에게 더 많이 나 온다는 것을.
지리산 산내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이 백일장에서 쓴 시라고 한다. 단 세 줄의 글이지만, 어린이의 관찰과 솔직한 마음과 갈등하는 심리를 어쩜 이렇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바로 이 시가 아주 잘 쓴 '생태시"라 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송아지
송아지의 눈은 크고 맑고 슬프다
그런데 소고기 국물은 맛있다
난 어떡하지?
- 지리산 산내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이 백일장에서 쓴 시
다음은 복지관 글쓰기 강좌에서 어르신이 쓰신 시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난 그 아픈 기억과 상처를 글로 옮겨 쓴 것이라고 한다. 어미의 절절한 마음이 가득 차 있다.
아이 생각 -김정옥-
한해가 또 저문다.
무릎 안의 아이야!
얼마나 컷을까.
보고픈 아이야!
얼마나 떨었을까.
꼬옥 잡아야 할
네 여린 손을
목덜미에서 느낄 때마다
지난 서러움 삼키며
마음을 철장 속에 가둔다.
우만 복지관, <이 나이에도 꿈은 있기에> 문집 중에서
한글 깨친 섬마을 할머니, ‘오직 한 사람’에게 시를 쓰다 [이 순간]
박종식기자
수정 2023-01-30 05:00
황화자 할머니가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화 ‘오직 한 사람’을 들어보이고 있다. 완도/박종식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택배로 하늘나라 남편에게 보내주련다”
나이 일흔에 한글을 깨친 황화자(83)씨는 책이 발간된 기쁨을 서문에 썼다. 전남 완도군 고금면 장중리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고향은 옆옆 섬인 완도군 생일면 생일도다.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할머니는 그 시절 여성이 그렇듯 ‘국민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부모님을 도와 밭일과 김 양식을 도왔다. “옹찰옹찰한(조그맣고 조각난) 밭에서 호미 쥐고 밭일하고, 김발 해 오면 김 떠서 건장에다 널고 했었지.” 먹고사는 게 먼저이던 시절이다 보니 할머니에겐 배움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황화자 할머니가 툇마루에서 자서전을 소리내어 읽고 있다. 완도/박종식 기자
“시집와서 보니까 못 배운 게 후회되고 그래 갖고 내가 인자 한 자 한 자 배우러 댕기는 거여.” 2013년 마을 할머니의 권유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고금비전한글학교에 다녔다. 한평생 호미 들고 땅을 파던 할머니의 손에 처음 연필이 들렸다. ‘기역, 니은’ 한 자, 한 자 알아가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숙제인 일기도 70년 만에 처음 써보기도 했다.
남편은 한글 공부하는 황씨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돼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초등학교 6년을 다녀도 한글 모르는 사람은 모른디 자네는 잘한 사람이네.” 그렇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남편이 201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학교 선생님의 제안으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지극한 사랑이 담긴 시 ‘오직 한 사람’을 썼다.
오직 한 사람 / 황희자
유방암 진단 받은 나한테
남편이 울면서 하는 말,
“5년만 더 살어.”
그러던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손주 결혼식에서 울었다.
아들이 동태찜 사도 눈물이 났다.
며느리가 메이커 잠바를 사 줄 때도
울었다.
오직 한 사람 남편이 없어서.
황화자 할머니가 배웅인사를 하고 있다. 완도/박종식 기자
황씨의 자서전과 일기 등이 한글학교 30여명 학생의 시화작품과 함께 묶여 시화집 <할 말은 태산 같으나>가 지난 2021년 1월 발간됐다. ‘2019 전라남도 문해한마당 시화전’에서 전라남도평생교육진흥원장상을 수상하기도 한 황씨의 소원은 시인이다.
‘눈이 많이 와 꼼짝도 못했다. 너무 추웠다.’라고 짧은 일기를 쓴 황화자씨는 “새해에는 또 뭔 새로운 말이, 글자가 생길 테지. 그러면 또 한 자 한 자 써봐야지”라며 새해 소망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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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형편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스티븐 킹-
출처
원호남의 생각&감각
https://naver.me/GcWPjsxk
한겨레 신문 https://share.google/BKdWtYizFVA9eDT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