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과 빗값.
빗값, 이런 말이 있을까?
오래 비가 많이 내린다.
냇물이 냇가를 덮고 냇둑을 넘본다.
흙탕물이 다리를 덮치려 들어도 이건 해마다 오는 위협이 아니라, 냇물과 멀리 떨어져 사는 내겐 어쩌다 한 번, 일생에 몇 번이나 볼지 모르는 어마어마한 장관일 뿐!
그러나 내가 사는 집 낡은 벽을 타고 흘러드는 빗방울은 그게 하루 한 바가지를 못 채워도 공포다.
어느 깊은 두메산골 땅 한 평과 땅 한 평이 수억 나간다는 서울 중심지 값이 다르듯, 비도 내리는 곳마다 값이 다르다.
가물에 내리는 단비,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이다가, 큰물을 일으켜 재앙이기도 하다.
비 피해!
비가 피해를 줄까?
비 피해는 비를 피해 살라는 말이다.
비는 늘 그렇게 내린다.
가문 땅에 보슬보슬 내려 이슬처럼 적시고 때론 소나기를 퍼부어 땅과 내, 모두를 말갛게 씻긴다.
자연은 늘 그러하고 우리는 역사를 산다.
역사를 배운다.
비는 이름이 있다.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 여우비, 소나기, 안개비, 장대비 들들.
그리고 철마다 봄비, 여름비, 장마, 가을비, 겨울비로 내린다.
이렇게 이름을 가진 비가 내려온 내력이 비 역사다.
비 피해는 없다.
언제 얼마나 내리고 또 큰물이 나면 어느 곳이 잠기는지, 비가 내려온 역사를 배워 비를 피해 살라는 말, '비를 피해' '비 피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겪는 물난리에 천재지변이 얼마나 있나?
거의 인재다.
비는 늘 그렇게 내리며 물길을 낸다.
우리가 한두 해 산 것도 아니고, 그냥 오천 년이 아닌 무려 반만년을 산 역사고, 그만큼 비를 맞았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삶이 버겁듯이 비 역사를 무시한 결과도 버겁다.
비는 돈다.
어느 먼 하늘에서 끌어오는 게 아니다.
어느 샘에서 나온 물이 내와 강으로 흘러 바다를 이루다가 해를 바라 날아오른 물기운이 구름으로 뭉쳐 하늘을 날다 어디 가문 땅 만나 비로 내린다.
내려온 비는 땅속에 스몄다가 샘물로 다시 솟아나 내와 강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모두를 살린다.
비는 돌고 돈다.
돌려줌이다.
비 걱정은 엄청나게 퍼붓거나, 오래 가무는 것에만 있지 않다.
산성비, 방사능비, 황사비, 하늘에 쌓인 독 먼지를 실어 되돌려 준다.
비가 되돌려주는 것은 하늘을 떠도는 독 먼지만이 아니다.
땅 위를 흐르거나 고인 물이 물기운으로 하늘에 올라 구름을 이룰 때 맑은 물기운만 걸러내 오르지 않는다.
내와 강, 못과 바다에 쌓인 독이 그대로 오른다.
우리가 더럽힌 물 그대로 비로 돌려준다.
소나기를 샤워 shower라 하지. 내리는 비를 주저함 없이 시원하게 맞고 싶다면, 또 맑은 물을 마시고 싶으면 물을 더럽히지 말자.
비는 올라간 그대로 돌아온다.
질량 불변이다.
깨끗한 비를 맞고 싶으면 물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비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비 피해!
비는 피해 사는 것이다.
비옵니다, 비 오나니, 비나이다.
고맙게 맞아들이는 것이다.
냇가에 무덤을 짓고 우는 청개구리도 비 피해는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