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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토라와 성령의 절기(출19, 행2)
오순절에 하늘에서 부터 받은 것은 토라와 성령이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될 것일까? 우리에게 성령이 있으므로 토라가 필요없다면 성경 수많은 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반대로 토라가 있으므로 성령이 필요없다고 한다면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성령이 없이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토라가 없이 땅에 뿌리내리고 든든이 세워질 수 없다. 상반된다면 말씀으로 말씀을 폐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상호 보완적이며 온전케 하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리라. 바로 토라가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졌을 때 놀라운 추수가 있었던 것과 같다.
이제부터 오순절의 정신인 토라와 성령에 대해 알아보자.
1. 토라를 받기 전에 스스로 성결케하라
시내산에 3월 월삭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순절에 토라를 받기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법)을 지키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될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준비할 것이 있었다. 바로 옷을 빠는 것이었다. 이것은 옷을 빠는 것을 포함하여 거룩하게 심신을 준비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모세는 아내에게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셋째 날이 되자 여호와께서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강림하셨고 온 백성은 두려워 떨었다. (출19:5~16)
그러면 왜 우린 거룩하고 성결하게 준비되야 했을까? 여호와께서 강림하시니까? 그럼 왜 강림하셨는가? 그건 바로 토라를 주기 위해서 이다. 토라를 받는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어서 여호와께서 직접 강림하시고 성결케하라고 준비하라 했을까? 이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율법이 성결하고 거룩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볼 수 있다.
2.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사도바울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고백했다. 예슈아께서 "자신에게 선하다고 하지 말라 오직 아버지밖에는 선한 이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계명은 선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사도바울은 자신의 속 사람,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육신은 죄의 법을 따르는 것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롬7:12~24) 하나님의 법은 당연히 율법을 가르키는 것이다.
로마서 8장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고 말한다. 그건 바로 성령을 통해 마음이 죄성을 이긴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3. 공의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결혼하였다
우리는 이미 여호와 하나님과 결혼한 상태이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장가든다고 말씀하고 있다.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로 장가드셨다. 여기서 공의는 판결, 법령, 특히 거룩한 율법을 의미한다. 또한 정의는 자연적, 도덕적, 법적으로 올바른, 공정한, 의로운 등의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의로움과 율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가 든 것이다.(호2:16~20) 그래서 오순절을 결혼 식의 절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혼을 서약하는 절기이고 토라를 지켜 행하면 마침내 우린 하나님과 하나되어 장막절에 하나님의 장막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 결혼의 절기를 통해 우린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다.
4 다윗은 토라를 사랑했다.
그런데 우리의 신랑은 예슈아가 아니었나? 맞다. 3위 1진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리로 결혼하신 것처럼 예슈아께서도 진리로 결혼하실 수 있다. 다윗은 "율법은 진리로소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보다 자신이 처한 어떤 상황보다 토라를 사랑했다 (시119:131~143)
5. 간음하지 말라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과 우리가 결혼했기 때문에 간음은 큰 범죄이다. 영적 간음은 육적 간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영을 지옥에 던질 수 있는 큰 범죄이다. 음란한 마음으로 보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눈이 죄를 짓게 만들면 차라리 빼내고 천국가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짓는 통로를 차단하라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이는 손도 마찬가지이다. 오른손이 죄짓게 하면 차라리 없는게 낫다고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은 간음, 음란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고 지옥으로 두번이나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음행은 이혼 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우상숭배라는 간음을 하나님께 짓는 다면 하나님께 이혼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5:27~32)
6. 간음으로 이혼하게 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간음을 행하였고 결국 이혼당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버리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 죄를 자복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렘3:8~13)
7 음녀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있다.
우린 오순절을 통해 이미 결혼한 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은 음란한 아내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다. 큰 음녀는 마지막 때 종교의 머리가 되어 큰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음한다면 우리도 같은 영으로 이들과 함께하게 된다. 음녀의 반대는 어린 양의 신부들입니다. 결혼식에 마땅히 결혼 예복을 입는다. 그 예복의 이름은 옳은 행실이다. 영어로는 의로움, 헬라어로는 법령이나 결정, 심판, 공의등이다. 즉, 하나님의 법 율법과 의로움이라는 옷을 유일하게 입을 수 있다. 그래서 진리가 빠진 연합은 음녀들의 연합인 것이다. (계19:2~8)
8 칠칠절(샤부옷)의 배경 (이스라엘 밥 아카데미, 이스라엘 투데이에서 발췌)
초실절부터 오순절까지 노심초사하며 ‘오메르 계수’에 들어가는 7주의 기간은 이스라엘에서 비구름을 동반한 ‘북서풍’과 사막의 ‘남동풍’이 교대로 부는 기간이다. 올리브는 이 때 뜨겁고 건조한 사막의 남동풍이 불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올리브 꽃가루는 바람에 날려 주변에 있는 암술과 만나 꽃을 활짝 피우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포도, 석류, 대추야자 등 이스라엘의 여름 과실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이맘때쯤 1/3 정도 익은 밀은 이 기간에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야 전분이 가득한 밀 이삭으로 영글게 된다. 이 때 만약 뜨거운 남동풍이 불면 밀 수확은 격감하게 된다.
비구름의 북서풍이 불면 여름 과실 농사를 망치게 되고, 사막의 남동풍이 불면 밀 농사를 망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가나안 농부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오메르 계수의 첫 주간에는 북서풍이 불고 나머지 6주간에는 남동풍이 부는 것이다.
오메르 계수가 끝나는 칠칠절 즈음은 이스라엘에서 밀 추수기에 속한다. 만약 밀 수확기인 칠칠절 즈음에 비구름을 동반한 북서풍이 분다면 한 해의 밀농사는 완전히 망치게 되고, 그 해에는 수많은 아사자들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날씨와 농부들의 애타는 심정을 이해할 때, 여호와를 버리고 왕을 구하는 악을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한 사무엘의 메시지가 와 닿는다. 당시는 밀을 수확하는 칠칠절 즈음이었고, 하나님은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비구름을 동반한 북서풍을 불게 하셨다. 이 때 사무엘의 경고는 가장 참혹한 심판의 경고였다.
이런 모습만 보아도 농부들이 칠칠절 기간에 얼마나 마음을 졸이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농작물을 의지해서 일년을 먹고 살아야 했던 농부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이 기간을 지내야 한다.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뢰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삼상12:17-19)
하나님께서는 칠칠절의 기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필요와 양식을 걱정없이 공급해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시다.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이렇게 긴장과 불안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곡식과 여름 과실들의 풍성한 수확을 성소의 구조를 통해 약속하셨다고 한다. 성소 안의 기구들은 동쪽에서 들어가면서 왼쪽에 등대, 오른쪽에 진설병, 중앙에 금향단이 배치되어 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남쪽에 등대를 놓음으로 올리브 꽃이 잘 수정되어 많은 양의 기름을 짜서 등대에 담을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고, 비와 수분이 오는 북쪽에 진설병을 놓음으로 밀이 수분과 비로 인해 더 풍성해지고 더 많은 수확 물을 거두게 됨을 기원한다고 한다.
9. 오순절은 바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람이 적절하게 잘 불어주어야 우린 100배의 수확을 거두게 된다.
바람은 히브리어로 영 '루아흐'로 성령과 같은 단어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신 것이고 성령의 열매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 뜻은 바람, 호흡, 생명, 용기, 정신 특별히 이성적인 존재에게만 사용한다고 한다. 즉, 이성에 가까운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욕망대로 살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짐승이라고 부른다면 이성을 사용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즉, 성령의 사람은 이성적인 사람이다.
마음은 가슴에 있을까? 머리에 있을까? 우리의 마음은 사실 뇌에 있다. 그래서 마음에 이성적인 요소가 더 크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 지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람이다.
10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추수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예슈아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랍비이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되묻고 계신다. 여기서 물은 말씀이다. 말씀만이 아니라 분명 성령도 함께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요3:3~10) 오순절에 바로 이 두가지가 내려왔다. 말씀인 토라와 성령이다.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토라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온전치 않았다. 반드시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토라는 말씀의 씨다. 거기에 성령의 바람이 불 때 풍성한 추수가 있을 것이다.
11 태초부터 성령이 있었다.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성령은 수면위에 운행하고 계셨다.
12 성령은 여러가지 재능으로 나타난다
성령의 사람은 어떤지 살펴보자.
브살렐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부어주어 성막을 짓게 하셨다.
성령 충만함은 여러 가지 기술로도 나타난다.
13 성령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사용하신다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품이다. 이러한 감정을 악하게 사용하는 인간이 나쁜 것이니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니다. 율법도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율법에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악하게 사용하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 여기서 보면 성령은 사울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어 분노하였고 소를 잡아 각을 떠서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보냈다. 이때 이 소를 받은 백성들에게 두려움이 임하였다. 바로 여호와의 두려움이었다. 이와 같이 성령은 분노나 두려움도 이용하셔서 선을 이루신다. 그러나 분노는 잘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으므로 정말 신중해야 한다. (잠19:11, 약1:20, 전7:9)
14 성령은 율법을 세우는 모세를 돕게 하셨다
모세에게 임한 성령을 70장로들에게도 부어주어 함께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민11:24~25)
15 지혜의 영으로 모세의 후계자가 되게 하셨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을 때 지혜의 성영이 충만하게 부어져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한것처럼 여호수아에게 순종했다. (신34:9)
16 여호와의 영이 왕이 될 다윗에게 임하셨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찾아내어 하나님의 뜻대로 기름을 부었고 다윗은 성령에 크게 감동되었다. 그러나 사울은 불순종함으로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신으로 인해 번뇌하게 되었다. 여기서 번뇌의 뜻은 두려워하고 쉽게 놀라는 마음이다(삼상16:12~14)
17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신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함과 의로움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움을 선택할 때 즉, 생사화복 중 생명과 복을 선택할 때 하나님의 영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이 되어 죄의 종이 될 때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 임마누엘 하실 수 없다.(창6:1~3)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돌이키고 회개해야 한다.
18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한다
육신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다. 아니, 굴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안에 성령이 있다면 우린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다.(롬8:7~14)
18 성령을 거스르는 자들을 책망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이다. 스데반은 이들을 율법을 받았으면서도 지키지 않는다고 책망하였다. 즉, 성령을 따르는 자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다. 스데반을 죽인 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성령을 거스르는 자들이었다.(행7:51~54)
20 불법자들이 예슈아를 죽였다
예슈아를 죽이려하는 자들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다. 오히려 예슈아께 귀신이 들렸고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 귀신의 왕이라고 비난했다. (요7:19~24) 마찬가지로 할례자들도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었다. (갈6:13)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불법하는 자들과의 전쟁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21 모세와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율법이 요한 때까지이고 율법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인가? 바로 다음 구절은 혹시라도 그렇게 오해할까봐 율법의 한 획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못박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제시하기 전에 또 다시 간음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예슈아께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한 것이 율법이 요한의 때까지라고 말한 이후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슈아께서 부자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율법과 선지자가 요한의 때까지라서 이제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눅16:16~31)
22. 성령 충만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충만함이다.
여호와의 영은 일곱영으로 되어있다. 은사에 따라 부어짐이 다를 수 있다. 여호와의 영,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다. 이러한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공의로 허리띠를 삼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지게 된다.
즉, 성령 충만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충만함이다.
23 왜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시는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려고... (마28:18~20)
그러나 인간의 계명(전통)이 너무 많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보화를 발견한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지 않으면 결코 보화를 얻을 수 없다.
24 왜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을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신10:13~!6) 율법을 지키는 행복을 알게 된다면 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하면서 까지 율법을 지켰는지 수전절의 역사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왜 예슈아와 제자들이 생명다해 지켰는지 왜 생명보다 나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