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자살자 7만여명 전수조사를 비롯해 6개 분야 54개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2022년까지 자살률을 인구 10만명당 25.6명에서 17명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7개 부처와 경찰청·소방청·우정사업본부가 참여한다. 양두석 안전실천시민연합 자살예방센터장은 "올해는 '자살과의 전쟁' 원년이다. 대통령 직속 자살예방위원회를 설치해 학생·주부·독거노인·군인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민관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포털기사를 검색하면서 이런 정보를 얻어 들었다.
1996년인가? 공주의료원 응급실장으로 초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교통사고, 자살시도로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들이 종종 있었다. 특히 자살은 농촌 지역이라 그라목손 음독이 많았다.
의식이 있고 음독한지 시간이 얼마 안된 경우는 위 세척을 하는데 보통 위내시경하는 줄의 두 배는 되는 굵기의 삽입관으로 환자의 식도로 집어 넣는다. 그리고 물을 양동이 양 만큼 집어 넣어 물이 물처럼 넘쳐 나올때가지 세척을 시행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안한다. 그냥한다. 인정사정없이. 그렇다고 환자가 저항하나? 안한다. 왜그럴까?
의료인의 무의식에는 자살에 대한 동정심 같은 것이 없다. 환자에게는 자살에 대한 죄의식이 있다. 그러니 한쪽은 철저하고 한쪽은 무력하다.
자살은 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며 공포다. 괴롭고 고통스럽다. 줄에 목을 매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구원해 주기를 비는 것이 자살이다. 자살 시도 직전에 날아가는 새를 보고 자살을 멈추는 것. 핑계다. 살고 싶은 본인의 무의식적 사고. 살고 싶다는 그 것을 날아가는 새에 은유한 것이다. 그런게 자살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자살한다.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자살할까? 자살을 시도할까? 왜 유족 한국 사회에는 자살이 많을까? 그 것도 앞도적으로. 첫째는, 눈치사회다. 과시 사회다. 성과에 자신입네 자랑떠는 사회이고, 실패에 모든 것을 한 곳에 떠 넘기는 사회다. 둘째, 어렵다. 승자독식의 사회.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 부의 독점과 빈곤의 세습. 해결해야 할 팩트들이다. 세째,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의 길이 아직 멀기 때문이다. 촛블이 광화문 광장에 있었지만 보령의 원형로타리에는 아직 없는 거다. 큰 이념과 정의에 정권의 부조리는 씻어낸 바 있지만 지역공동체의 적폐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 안의 적폐는 여전히 숨어 있다. 지역이 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또한 할 수 있다. 그럴만한 선한 의지의 시민이 다수 있고, 자원도 많다. 적어도 지역에서의 자살을 적게라도 하자.
그러나 한 편, 자살은 대단히 높은 철학적 행동이다.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철학자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책으로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레빗도 자살했다. 카뮈도 자살했고, 매천 황현도 자살했다. 수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물론 맥락은 다르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차원에서 다 같다. 본질은. 그러니 자살을 도매급으로 봐선 안 된다. 맥락을 따져 개별 사안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8년 1년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1월의 마지막 날에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낫다. 다들 잘 사시길 오늘.
첫댓글 타인의 죽음앞에서 다시 삶을 뒤돌아보듯 1월의 마지막날 2월을 맞이할 힘을 얻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16년 앎 3부작이 떠오르는 밤이네요 내일은 더 맛난 밥 먹고 밥심으로 화이팅 해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