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첩 1 | 김바다
나풀나풀 분홍 웃음을 봄바람에
〼 시인으로서 좋은 동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동시란? 읽고 난 뒤, 마음에 오랫동안 남는 동시라고 생각합니다. 동시 한 편을 다 마음에 담고 있을 수도 있고, 동시의 한 문장을 되새김질 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한 단어가 마음속에 맴돌고 또 맴돌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해인 수녀님의 산문집의 한 문장인지, 시에서 읽은 문장인지 구분이 안 가는 문장을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장독간의 장도 푹푹 익어야 맛이 난다. 장이 익을 때까지 답답해도 기다려야 한다.’는 문장입니다. 제가 인정받지 못할 때면 아직 숙성되지 않은 장독간의 장처럼 기다리며 푹푹 익혀야 한다며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습작기의 막막했던 긴 기
다림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이해인 수녀님의 장독간의 장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
어릴 적 시골집 장항아리는 아주 컸습니다. 어린이 서너 명은 너끈히 들어갈 정도였지요. 초봄에 메주와 소금물로 장을 담그고, 된장을 건져 내고나면 그 커다란 항아리에 까만 간장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간장을 작은 항아리에 덜어 놓고 먹긴 했지만, 그 항아리의 뚜껑을 열라치면 항아리 속으로 풍덩 빠질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그 큰 장항아리는 햇볕 잘 드는 장독간의 중심에 자리 잡고 1년 동안 식구들의 요리를 책임졌습니다. 간장도, 된장도, 고추장도 장독간에서 숙성을 거쳐야만 제대로 된 장맛을 낼 수 있습니다. 동시도 빛을 발하려면 장독간의 장처럼 푹푹 익어서 그윽한 맛을 내어야 좋은 동시가 됩니다.
김바다
2000년 월간 <어린이문학> 동시 추천. 지은 책으로 동시집 『수리수리 요술 텃밭』, 『소똥 경단이 최고야!』, 『안녕 남극!』, 창작동화 『지구를 지키는 가족』, 『시간 먹는 시먹깨비』, 『꽃제비』, 정보책 『우리 집에 논밭이 있어요!』, 『내가 키운 채소는 맛있어!』, 『북극곰을 구해 줘!』 등. 제8회 서덕출문학상을 수상. 5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동시 「곤충 친구들에게」 수록.
작가 수첩 2 | 남찬숙
내 안을 채우는 기다림
〼 작가로서 좋은 동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어른이 되어서 읽은 책들은 제가 어릴 적 읽었던 책들처럼 단순하지 않았고, 그 안에 인물들 역시 선과 악이 분명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 세상이,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살면서 깨닫기도 했습니다. 또 지금은 제가 어릴 때보다 세상이 훨씬 복잡해졌고, 아이들의 삶도 더 복잡해지고, 아이들의 문제 역시 제가 어릴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제가 어릴 적에 배우고 중요하다 생각했던 그 기본적인 가치들을 꼭 붙잡고 그런 가치를 추구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남들보다 좀 가난하고, 좀 덜 출세하고, 어쩌면 조금은 손해를 보면서 사는 것이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생각하는 좋은 동화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들이 책장을 덮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는 동화입니다.
남찬숙
1966년 생, 2000년에 『괴상한 녀석』으로 작가활동 시작. 안동에 내려와 살면서 아이들 마음에 오래오래 남을 동화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받은 편지함』, 『사라진 아이들』, 『누구야 너는』, 『니가 어때서 그카노』, 『혼자 되었을 때 보이는 것』, 『가족사진』, 『할아버지의 방』, 『안녕히 계세요』 등이 있다.
작가 수첩 3 | 임근희
행복을 어떻게 생산할 수 있을까?
〼 작가로서 좋은 동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몇 년 전, 처음 동화작가의 길로 접어드는 문학상 시상식 자리에서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었다. 앞으로 크게든 작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몸을 움직이게 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아직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그런 작품을 쓰고 싶고 그게 내가 좋다고 판단하는 동화다. 독자에게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들거나 마음을 고쳐먹도록 하거나 뭐든 느끼고 깨닫게 한다면 그런 게 좋은 동화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의 변화로 행동의 변화까지 끌어낼 수 있으면 더없이 좋고. 결코, 교훈적인 동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감동적인! 독자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동화를 말하는거다. 그리고 감동을 주기 위해 작품에서 절대 필요한 덕목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진정이 고스란히 작품 속 인물들에 스민다면 그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짜가 아닌 진짜로 독자들의 가슴에 가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모름지기 진실은 통하는 법이니까. 요컨대 나는 기술을 앞세우기보다 정서를 잘 담아낸 동화! 흔한 말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작품을 좋은 동화라 여기는 듯하다.
(……)
나는 동화를 읽을 때 성인 소설을 읽을 때의 마음가짐과 달리하지 않는다. 애써 어린이의 마음으로 읽어야지!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숱한 동화들이 어른인 내 마음을 움직였다. 공감할 수 있었고 고민하게 했으며 잔상을 남겼다. 좋은 동화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것이라야 하지 않나 싶다.
임근희
2009년 <어린이동산> 중편동화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2011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내 친구는 외계인』, 『금지어 시합』, 『내가 제일 잘나가!』, 『무조건 내 말이 맞아!』, 『김홍도의 물감』, 『달려라 불량감자』(공저), 『도둑 교실』, 『달곰쌉쌀한 귓속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