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강민서의 사무실 창밖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전신줄 위에서 날개를 접고 아침 하늘을 바라보다가, 폴짝— 날아올랐다. 그 평화로운 모습이 사라진 지 채 10분도 안 되어 문이 두드려졌다.
의뢰인은 5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해운회사 임원이라고 했다. 양복은 단정했지만 눈 아래 그늘이 짙었다. 밤새 잠을 못 잔 사람의 얼굴.
"우리 배가 공격받았습니다. 청해 9호. 호르무즈 해협에서."
"뉴스에서 봤습니다. 이란의 봉쇄 작전—"
"그게 아닙니다."
의뢰인 박지영 상무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공식 발표는 이란의 포격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선장이 마지막으로 보낸 신호가 있습니다. 공격 직전에 온 것인데…"
봉투 안에는 해상 통신 수신 기록이 들어 있었다. 강민서는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청해 9호 / 최후 교신 기록 / 06:17 UTC
발신 : 청해 9호 선장 윤재호
수신 : 본사 관제센터
"포격 아님. 식별 불명 선박 접근 중. 우리 측 깃발 달고 있음. 좌표 26.5N / 56.2E — "
거기서 신호는 끊겼다.
"우리 측 깃발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습니다, 탐정님."
강민서는 사흘을 움직였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부산 남구의 해운 브로커 사무실이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화물선들의 항로와 보험, 화물 정보가 이런 곳에 집약된다. 브로커 오태석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었지만, 강민서가 보여준 좌표 앞에서는 잠깐 표정이 굳었다.
"그 좌표, 봉쇄 구역 외곽입니다. 이란 해군이 공식 작전을 펼치는 구역이 아니에요."
"그러면 누가?"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고요."
그가 말을 잘랐지만, 눈이 잠깐 창 쪽으로 향했다. 강민서는 그 시선의 방향을 기억해두었다.
단서 1. 청해 9호는 이란 공식 봉쇄 구역 밖에서 공격받았다. 공격 주체는 이란 정규 해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단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해양수산부 산하 분석관 출신의 제보자가 익명으로 연락해왔다. 만남 장소는 인천 연안 부두의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호르무즈 봉쇄가 시작되기 사흘 전부터 특이한 움직임이 있었어요. 선박 AIS 신호가 간헐적으로 끊기는 구간이 있었거든요. 그 구간이 청해 9호가 공격받은 좌표랑 겹칩니다."
"AIS를 끈다는 건?"
"누군가 보이지 않으려 했다는 거죠."
단서 2. 공격 선박은 자동 식별 장치를 끄고 접근했다. 계획된 작전이었다.
세 번째 단서는 서울 용산구의 한 민간 싱크탱크에서 나왔다. 중동 해역 에너지 안보를 연구하는 김형준 박사. 그는 강민서의 질문을 듣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우리나라 원유 수입의 70퍼센트 가까이가 그 해협을 통해 옵니다. 해협이 막히면 우리 경제는 72시간 안에 타격이 가시화됩니다. 누군가 그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이용하려 했다면—"
"누구를 향해서요?"
김 박사는 대답하는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국이 거기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걸 세상이 알게 되면, 다음번엔 더 대담해지겠지요."
단서 3. 표적은 선박이 아니었다. 표적은 한국의 침묵이었다.
강민서는 칠판에 이름들을 적었다.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용의자 목록 / 강민서 메모
1. 이란 비정규 세력 — 동기: 명확. 수단: 가능. 그러나 방식이 너무 정교하다.
2. 제3국 민간 용병 — 동기: 의뢰인 존재 가능성. 누가 돈을 댔는가?
3. 내부 — 화물 정보 유출 경로 확인 필요. 누가 항로를 알고 있었는가?
공통 질문: 왜 하필 한국 선박인가?
그는 세 번째 항목에 밑줄을 그었다. 내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는 내부가 있다. 정보가 새는 방향이 있다.
청해 9호의 항로는 출항 전날까지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선사 내부, 해운 브로커, 그리고 — 보험사.
강민서는 첫 번째 단서를 다시 꺼냈다. 브로커 오태석이 창 쪽으로 향했던 시선. 창밖에는 보험회사 간판이 보였다.
"오태석 씨."
그날 오후 다시 찾아간 강민서 앞에서 브로커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보험금 수령자가 누굽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선사 쪽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태석은 창밖을 보았다가 다시 강민서를 보았다.
"이걸 알게 되면 탐정님도 위험해집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왔습니다."
보험금 수령자는 유령 법인이었다. 역외 금융망을 거쳐 세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과하면 — 끝에 하나의 이름이 나왔다. 강민서는 그 이름을 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동기는 단순했다. 한국이 호르무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자들. 한국을 고립시키고 싶은 자들. 동맹이 흔들리면 이익을 얻는 자들. 선박 한 척의 피격은 그 증명을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계획에는 허점이 있었다. 선장 윤재호가 마지막 순간에 신호를 보냈다는 것. 그리고 그 신호를 의뢰인 박지영이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것.
"이걸 국방부에 넘겨야 합니다."
강민서는 박지영에게 말했다.
"넘기면 어떻게 됩니까?"
"선택을 해야 할 사람들이 올바른 근거로 선택을 하게 됩니다."
"파병 말입니까?"
"그건 제 영역이 아닙니다. 저는 진실이 어디 있는지 찾는 사람입니다. 진실은 — 누군가가 한국이 침묵하기를 원했다는 겁니다. 그 침묵을 이용하려 했다는 겁니다."
박지영은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항구가 있었고, 항구 너머에는 바다가 있었고, 그 바다의 끝 어딘가에 호르무즈가 있었다.
"선장은 왜 끝까지 신호를 보낸 걸까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했겠지요."
사건이 마무리된 것은 그로부터 두 달 뒤였다. 국방부는 구축함을 호르무즈로 파견했다. 공식 발표문에는 국제 연대와 자국민 보호라는 말이 나란히 적혔다. 진실의 윤곽은 보도되지 않았다. 그런 것은 대개 보도되지 않는다.
강민서는 사무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전신줄 위에 까치가 다시 와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한동안 앉아 있다가 — 폴짝, 날아올랐다.
그 평화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민서는 이제 안다. 저 가벼운 날갯짓 아래에 얼마나 많은 계산과 용기와 선택이 쌓여 있는지를.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끝까지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탐정 강민서와 등장인물들은 가상이며, 실제 인물 및 사건과 무관합니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이 우리 에너지 안보에 갖는 실질적 의미, 그리고 그 해협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의 질문은 오늘도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