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까이서 밝혀주던 여섯 개의 촛불 중 한 개 빛이 스러지는 중이다. 어쩌냐 어쩌냐 오빠와 언니들은 한숨만 쉬셨다. 나도 따라서 한숨만 쉬었다.
큰언니가 여든여섯, 둘째언니가 여든 셋이시다. 건강하신 편이다. 세째인 여든이 되신 큰오빠가 아프시다. 바지런하게 열심히 사셨다. 칠남매의 장남으로, 직장인으로, 가장으로 그리고 오십이 넘어서는, 열심히 불경을 공부하시는 스님으로, 거기다가 총무님으로 일하셨다. 쉴 틈이 없으셨다. 인정 많으시고 상냥하시고 정다우셨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였다. 치매라는 병마가 큰오빠에게 찾아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서둘러 병문안을 갔다. 여섯명만 가능하다고 하여 나이가 많으신 큰언니와 둘째언니가 빠지셨다. 예전대로 다정하고 상냥한 음성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정말 치매에 걸리셨을까 의심스러울만큼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조금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셨고 몰라 몰라를 되풀이 하셨다. 안타까웠다. 그림 한 장을 내미셨다. 꽃과 잎사귀가 그려져있고 그 위에 색칠을 한 유치원 아이들 수준의 그림이었다. 치매환자를 위한 색칠공부시간에 색칠을 하신 것이다. 아들 정운에게 주실 거란다.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슬퍼졌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안돼! 안돼! 2024 4 26일이었다.
반야심경을 한번 외워보시라고 작은오빠가 주문을 하였는데 술술술 안정된 목소리로 이어나가시더니 어느 순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셨다. 나 괜찮아 바로 나갈 거야 여기는 잠깐 온거야. 모두 함께 울었다. 그러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라. 말씀이 어눌하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지만, 몸은 건강해 보이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모두들 착잡하고 어두워져서 말을 잊었다. 아재아재 바라아재 큰오빠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강원도쪽으로 형제자매 여행을 나설때면 큰오빠, 스님이 계신 절을 방문하거나 속초나 양양쪽에서 만나 얼굴을 뵈었다. 칠남매가 모여 왁자지껄하게 보냈다. 이보다 즐거울수는 없었다. 모두 건강함을 감사했다. 양평에서 만난 적도 있었다. 큰언니는 자식들과 강원도 여행할 때는 꼭 큰오빠를 불러내어 먹고싶은 것을 맘껏 사 주신것으로 알고있다. 큰아버지 집에서 큰언니와 큰오빠가 학교를 다녔으므로 그때부터 큰언니는 엄마같은 누나였다. 몸이 불편하신 작은오빠 역시도 강원도 쪽을 지나가게 되면 꼭 형님을 뵙고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형제애가 남달랐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도 하였다. 아버지를 닮아 부지런하시고 알고 계신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으셨다. 앞장서서 다니셨고 가이드에게 질문을 많이도 하셨다. 스님이라면 말없이 조용히 뒤따라다녀야 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다르셨지만, 그만큼 매사에 빠릿빠릿하시고 의욕이 넘치셨다. 치매라니, 말도 안된다.
9월이 되었고 큰오빠가 코로나에 걸리셨단다. 치매 요양 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리다니.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나을줄 알았단다. 이틀째 갑자기 열이 오르고 의식이 흐려져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엑스레이 사진에서 이미 양쪽 폐가 하얗게 나왔단다. 급성 폐렴이란다. 중환자실로 옮겨졌단다. 가족과 형제자매만 면회가 가능하고 화목토 12시에서 20분까지 딱 한사람씩 면회가 가능하단다. 토요일에 작은오빠가 서둘러 다녀오셨다. 너무 많이 마르셨어 가슴이 아프구나. 차라리 뵙지 않은만도 못해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실 그런 오빠를 뵐 자신이 없어 처음에는 전전긍긍하였으나 뵙지 못하면 후회하게 될 일이다. 화요일에 뵈러 가려던 중이었다.
다시 이틀 뒤 산소 포화도가 낮아지고 있어 위험하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경우에는 가족과 형제자매가 한꺼번에 면회가 가능하단다. 마지막으로 오빠를 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언니들과 달려갔다. 함께 간 조카부부도 내 남편도 혈육이 아니라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오직 형제자매와 자식과 아내만 가능하단다. 2024 9월 8일 12시 큰오빠를 뵈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법정스님 큰오빠를 위한 기도문
봄날 햇살 빛으로
이 사람 저 사람 그리고 나 환히 밝혀주던
촛불 하나
숨결 안타까이 흔들리네
무엇으로 바람 막아준다해도
어떤 불로 불 붙여준다해도
소용없다 하네
그 눈빛 그 목소리 그 몸짓
우리에게 남겨놓고
기어이
가시렵니까 가시나이까
마지막으로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자식이 울며 애타게 신신당부하였듯이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읊조리고 읊조리어
서방정토로 극락세계로
평안히 가십시요
무슨 말을 할까? 무슨 말이 필요할까? 눈물만 나온다. 코에 입에 무지막지한 관들이 연결되어 있어 입을 벌리고 계신다. 강제로 목숨을 붙잡는 기계들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 약에 취해서 그냥 눈을 감고 숨만 쉬고 계신다. 큰오빠의 어깨가 밖으로 나와있어 가만히 만져보았다. 따끈하다고 할 만큼 따스한 체온이다. 체온으로 봐서는 벌떡 일어나셔서 막내 왔니? 반갑게 맞이하실 것 같다. 편안히 가십시오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가볍게 떠나십시요. 오빠의 아들이 울면서 애타게 부탁하던 말처럼 꼭 꼭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읊조리며 평안히 가십시오.
오늘 2024 9 10일 10시 58분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을 넘기기 힘드실거 같아요. 오호 애재라 오호 애재라! 장남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님과 동생들을 위해 뭐든 다 나눠주셨으면서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씀이셨는지요. 막내인 나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셨던 그 목소리 귓가에 쟁쟁합니다. 아내와 자식 둘에 여동생 셋을 건사하셨으니 애쓰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병원비로 월급봉투에 한 푼도 남지 않은 적이 많으셨다구요. 지붕을 고친다 겨우내 쓸 연탄을 들인다 등 시골에 목돈이 필요할 때면 아버지는 큰오빠에게 전화를 하셨지요. 네네 알겠어요 매번 긍정적으로 대답하셨던 큰오빠!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얼마나 무거우셨습니까? 모두 내려놓으시고 다 내려놓으시고 날개를 단 듯 가볍게 훨훨 날아가십시오.
2024년 9월 10일 3시 12분 운명하셨습니다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불쌍해서 어쩌나? 먼저 가서 자리잡고 누나 기다려라.
나무아미타불 좋은 대로 가서 엄마 아빠 만나서 행복하게 살게나 . 큰언니 염원이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미아무타불 극락왕생하옵소서 둘째언니 간절한 마음이시다
극락왕생 하세요 편안한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세째언니 지극한 말씀이시다.
편안한 세상으로 잘 가세요 멀리 살아 큰오빠를 가장 많이 보고 싶어하셨던 네째언니의 간절함이다
평안히 가십시요 참으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막내인 내 인사다.
아랫쪽 파일은 치매요양병원에서 오빠를 만났을 때 반야심경을 독경하시던 오빠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