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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지은 집(1)(마 7:24-29)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가르쳐 주신 산상보훈의 마지막 결론부분입니다. 산상보훈은 마태복음 5,6,7장을 말합니다. 이 산상보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주제 아래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설교의 목적은 지식만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잘 전달하여 듣는 자로 하여금 말씀에 순종하여 변화된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긴 산상보훈을 살펴봤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고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결론부분에서 집을 짓는 사람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말씀을 듣는 자의 자세와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삶의 변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을 건축가에 비유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집을 짓고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초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고 어떤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똑같지만 보이지 않는 기초가 다릅니다. 또 집을 지을 때의 수고를 생각해보면 어느 집이 더 쉽겠습니까? 당연히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일 것입니다. 모래위에 집을 지었다는 것은 기초를 파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물가에 있는 모래 땅위에 집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반석위에 지었다는 것은 기초를 깊이 팠거나 큰 암석을 찾아서 그 위에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수고가 많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눅 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그냥 반석 위에 지었다고 하지 않고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위에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비교할 때 훨씬 빨리 지었을 것입니다. 반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은 그 반석 위에 기초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애를 먹었겠습니까? 얼마나 땀을 흘리고 노력했을까요? 아마 반석 위에 짓는 집을 짓느라 수고하는 동안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이미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하길 당신은 왜 불필요한 노력을 하느냐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느라 많은 시간, 물질을 투자하는 사람을 경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본문 25절에 보면 모두가 시련의 과정을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옵니다. 홍수가 밀려옵니다. 그리고 바람까지 붑니다. 이제 두 집의 현저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모래 위에 집은 무너졌는데 반석 위에 집은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여기서 비와 홍수와 바람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온 시련입니다. 보세요, 우리의 신앙, 지금 나의 신앙이 참되냐, 거짓되냐를 볼 수 있는 내 신앙의 테스트는 시련 앞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칠 때 견디어 내느냐? 무너지고 마느냐? 의 차이입니다.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이 무너져 버리면 얼마나 허무하고 억울합니까? 그리고 그 집안에 살고 있는 주인의 운명은 얼마나 위험합니까?
반면에 큰 바위를 기초로 삼아 그 위에 튼튼하게 집을 지어 아무리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와도 심지어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기는 커녕 별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면 고생한 보람이 있고 그 안에서 거하는 주인은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 보면 인생의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인생과 가정을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질병의 비바람에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어떤 이는 경제적인 비바람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은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자포자기합니다. 가난하다고 집을 나가는 주부도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실직했다고, 사업에 실패했다고 노숙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떤 이는 가출하고, 어떤 이는 자살하고, 어떤 이는 탈선하고 요지경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시험과 고난이 다가와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않는 중병을 발견해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와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절망하지 않고 잘 견뎌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의 이 고난과 시련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시련이요 하나의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이 과정을 지나면 가나안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인생의 비바람을 만났어도 요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인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려움을 견뎌내고 조금도 불행해지지 않고 행복을 지켜내는 아름다운 가정과 인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사나운 인생의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서 버텨내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보이지 않는 기초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당을 건축할 때 기초를 보았습니다. 지하를 파니까 큰 바위들이 나왔습니다. 더 이상 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위에 1미터이상의 철근을 총총히 깔고 콩크리트를 붓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도 없는데 적당히 하지 왜 그렇게 두껍게 할까' 처음에는 불평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음 생각해보니까 정말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기초 공사는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공사입니다. 기초공사는 땅 속으로 내려가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지만 기초가 중요합니다. 보이는 건물은 보이지 않는 기초에 그 기반을 두기 때문에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집에 흔들리거나 기울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일에 노력을 경주합니다. 그래서 약삭빠른 사람들 편에서 보면 어리석은 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을 뜨고 바라보면 오히려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고 복받을 일에 투자한 것이 됩니다. 기초 공사의 진가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평상시가 아니라 위에서 비가 내리고 아래에서 창수가 나고 양 옆에서는 바람에 부딪칠 때 그 건물의 기초를 측량해 볼 수가 있습니다.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나옵니다. 크게 보면 산상설교 전체를 의미합니다. 짧게는 13절 이하의 '좁은 문으로 갈 것인가? 큰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거짓 선지자를 따를 것인가? 참 선지자를 따를 것인가?'를 지적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러므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 참 선지자를 따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먼저 '나의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바로 들으려면 듣는 귀가 열려져야 합니다. 듣는 귀가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목사의 말로, 사람의 말로 받습니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듣고 그래 그 말씀대로 살아야지 마음으로 결심하고 아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난 내 고집대로 살거야, 내 생각이 훨씬 유익해,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행했습니다. 많은 권능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말씀도 전하고 귀신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행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하였습니다. 그 때는 잘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님앞에 결산할 때에 주님이 이렇게 심판하십니다.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왜 모릅니까? 우리가 언제 주님의 말씀을 어겼단 말입니까? 나는 그래도 신앙생활 한다고 한 사람입니다.
다 소용없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무서운 심판입니다. 영원한 실패입니다.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인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씀을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듣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설교를 들음으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개선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닮아 가십니까? 더욱 믿음이 강해졌습니까? 교회안에서 섬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공동체의 기쁨과 영광을 보고 있습니까? 말씀과 기도생활이 회복되었습니까? 이웃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습니까? 이웃과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비판하는 태도가 없어졌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의 핵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들이 내 제자가 되려면 이 모든 것을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듣기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들었다면 반드시 행함이 뒤따라야 제자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떠내려가고 맙니다. 죽은 신앙은 세속에 밀려 떠내려갑니다. 향락에 밀려 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거센 물결을 헤치고 전진합니다. 산 신앙만이 창조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산 신앙만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우리 모두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반석은 '페트라'라는 말로, 흔들림이 없는 바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반석은 영적으로 무엇입니까? 마16: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반석 위에 교회를 짓겠다고 하셨는데 이 반석은 그 앞 절인 15절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 위에 즉 말씀과 진리의 터 위에 교회를 짓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고전10: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또 고전 3:11절에서도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되는데 그 반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3:12-13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여기서 여섯 가지의 재료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인데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보석으로 집을 짓고, 또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습니다. 어떤 것으로 짓는 집이 가장 쉬울까요? 풀이나 짚으로 짓는 사람이 제일 쉽습니다. 그 다음 나무로 집을 짓는 것이 그 다음으로 쉽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집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값이 비싸서 구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오실 때 불의 심판이 임할 때 타는 것은 가짜이고, 안타는 것은 진짜입니다. 여기 나오는 금은보석은 불에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지으면 불로 공력을 심판할 때 다 타버립니다. 여기 금은보석은 우리의 믿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은 값을 지불하면 지불한 만큼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갈6:7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냥 저절로 "때가 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은 신앙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값싼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행한다는 것은 그만한 희생과 아픔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초보는 하나님도 이해하십니다. 감정중심으로 행동할 때도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신앙의 초보가 아닌 사람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성숙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삶의 기초를 쌓아야 합니다. 모든 삶의 기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적당히 신앙생활하면 뭔가 되겠지! 천국가면 되지! 아닙니다. 절대 적당히가 아닙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험해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길을 가는 길은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자아를 거슬러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순간순간 나와야 합니다. 여러 분은 지난 한 주동안 이런 기도를 얼마나 하셨습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25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이스라엘은 이른 비가 있고, 늦은 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따금씩 큰비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큰비가 내릴 때는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집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비가 쏟아지니까 그때는 땅이 그 많은 비를 흡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급류가 되어 골짜기를 따라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창수가 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가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큰비가 내릴 때는 지중해 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에서는 비가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고, 땅에서는 창수가 나고, 옆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분다 할지라도 끄떡하지 않는 집이 있습니다.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집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홍수가 쏟아집니다. 위에서 비가 내립니다. 창수는 밑에서 올라옵니다. 바람은 옆에서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갑자기 그의 직업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커다란 암세포를 발견하게 됩니다. 또 그의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냈는데 단지 몇 개월 사이에 삶에 온통 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때 이 사람은 "하나님,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라고 소리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련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때입니다. 바람이 불어 집에 강하게 부딪히는 역경을 통하여 우리의 기초를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련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어떤 신앙의 기초위에 집을 짓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이런 믿음의 시련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의 성품은 시험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그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이라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서 바로 서기만 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무너지지'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가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인격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신앙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을 지켰네'라는 찬송도 있습니다. 신앙이 튼튼한 사람은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몰아쳐도 가시밭의 백합화같이 향기를 날리게 됩니다.
찬송가 413(내평생에 가는 길)장의 가사를 지은 스패포드는 현대판 욥이라고불리웁니다. 호레이시오 스패포드는 시카고의 성공한 변호사였을 뿐 아니라 린드대학교와 시카고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요 신학교이사 및 운영위원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세계적인 전도자인 무디와 절친한 친구로 무디 교회의 회계집사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71년의 시카고 대화재에서 그는 전 재산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재난 직전에는 그의 아들도 잃었습니다. 엄청난 시련앞에서 스패포드와 그의 가족은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873년, 그는 아내와 네 딸과 함께 유럽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습니다. 영국에 있는 동안 스패포드는 친구 무디의 전도여행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패포드는 가족과의 유럽여행을 몇 일 뒤로 미루며, 나중에 따라갈 요량으로 아내와 네 딸을 먼저 배에 태웠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스패포드의 아내와 네 딸을 비롯해 많은 승객을 태운 프랑스 여객선은 뉴욕항을 출발하여 순항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깊은 잠이 든 22일 새벽 2시, 그 배는 대서양한 가운데서 영국 철갑선 '라키언'호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배는 226명의 생명을 안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 와중에 스패포드의 딸들은 모두 배에 잠기고 부인만 물 위에 떠올라 구명정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9일 후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웨일즈의 카디프에 도착한 스패포드의 부인은 '혼자만 구조됨' 이라는 짤막한 전문을 남편에게 보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받은 스패포드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들을 잃고 정신없이 헤맬 그의 부인이 걱정되어 부인을 데리러 가기 위해 배에 올랐습니다.
배에 탄 후, 선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장은 스패포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딸들이 잠긴 물위를 지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애써 잔잔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스패포드의 마음에 커다란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선실로 돌아와 아픔과 슬픔으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믿음이 혹시라도 실족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절망하며 탄원하며 기도하던 스패포드에게 갑자기 놀라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아직까지 체험해 보지 못한 평안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모든 고난과 절망을 바꾸시는 주님의 강렬한 임재와 세상을 초월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아침이 되자 스패포드는 주님이 주신 영감으로 시를 써내려 갔으며 그 시가 바로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였습니다.
"(1)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2)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후렴)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 찬송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쓴 시입니다. 가장 깊은 고난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깊은 감사의 시입니다.
여러분, 기초를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기초를 다시한번 다지고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성패도 어쩌면 그 기초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그 기초에 달렸습니다. 여러분 학문을 하려고 해도 기초실력이 필요합니다. 한 폭의 그림을 그리려 해도 그 기초실력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집을 지을 때 보이지 않는 기초를 반석 위에 세워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정금같은 믿음을 가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집을 짓는 건축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기초를 모래위에 집을 짓습니다. 당장은 유익하게 보입니다. 속도가 빠르고 짓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매 무너져 버렸습니다. 또 한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그 기초를 반석위에 두었습니다. 당장 보기에 어리석은 것같습니다. 미련하게 보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이 길을 걸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반석위에 집을 지어가기 때문입니다. 시련의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정금같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저는 오늘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이런 믿음으로 반석위에 세운 집처럼 영원히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위에 집을 짓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