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기 시작한 지 언 1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주로 넘어와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주와 사랑에 빠졌고
3개월의 시간을 넘어 1년 아니 2년 혹은 평생을
제주와 함께 하고자 한다.
나는 현재 제주에서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주에 산 지 이제 1년 하고도 6개월이 흐르고 있다. 웬만한 여행지는 다 섭렵한 나기에 지금은 설렘보단 익숙함이라는 감정이 더 크다. 그런 내게도 문득 생각나는 곳들이 있다. 어떤 곳은 그날의 기억과 감정이 좋아 생각이 난다면 또 어떤 장소는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좋아 생각이 난다. 내게는 조금 특별했고, 사랑스러웠던 여행지 2곳을 나는 오늘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장소는 협재해수욕장이다. 이미 유명한 여행지인 협재해수욕장이 문득 생각난다는 것이 어쩌면 모순으로 들릴 수도 있고,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협재해수욕장은 여름날의 추억을 선사한 사랑스러운 장소였고, 그 어느 곳보다 여름을 기다리게 만드는 곳이었다. 붉은 듯 분홍빛을 내는 석양 아래서 맞이했던 20년 지기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 그때의 기억이 좋아 협재해수욕장을 나는 문득문득 기억하고, 찾는다. 언제나 평화만이 있는 협재해수욕장. 그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협재해수욕장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2497-1
한림읍 서해안 지대에 위치한 협재해수욕장은 조개껍질이 많이 섞인 은모래가 펼쳐지는데,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수영 초보자에게도 알맞은 해수욕장이다. 올레 14코스의 일부이기도 한 이 협재해수욕장은 제주 서쪽에서 가볼 만한 해수욕장 1,2위로 뽑힐 만큼 유명하고 아름다운 해변으로 금능해수욕장과 이웃하고 있는 쌍둥이 해수욕장이기도 하다. 투명한 물에 에메랄드빛 물감을 서서히 풀어놓은 듯한 바다 건너편에는 백패커의 상징 비양도도 눈에 들어오는데 그 위로 떨어지는 석양은 또 하나의 장관이다.
푸른 바다 협재해수욕장 옆의 판포포구까지 함께 가는 것을 추천한다.
협재해수욕장에서 20년 지기와의 물놀이는 다시 우리를 어린 시절 초등학생으로 만들었다. 누구나 그런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유치한 말이 재밌고, 모든 장난이 즐거운 그런 친구들. 20년 지기 친구들은 그런 친구들이었고, 홀로 타지인 제주에서 살아가는 내게 가장 큰 행복을 선사해 준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모든 것을 두고 온다는 의미. 물론 내가 선택한 제주살이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 하지만 문득 그리운 친구들의 향수는 어쩔 수가 없다. 가끔 그들이 찾아오면 제주 여러 곳에 흔적을 만든다. 그리곤 회상한다. '아 이곳은 내 친구와 왔던 곳이지' 하면서 말이다. 협재해수욕장은 우리를 초등학생으로 만들어준,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사랑스러운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친구들의 향수가 그리운 날이면 협재를 찾고, 삶 은연중에 협재를 기억한다.
이번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머릿속에 문득 생각 나는 여행지가 어디인지 기억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곳에 누가 있었는지를 떠올려보자. 내 옆에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이 그 기억 위에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문득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사람의 향수 때문이라면, 지금 소개할 장소는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지기에 기억에 남는 곳이다. 첫 번째로 소개한 곳이 푸른 바다였다면, 지금 소개할 곳은 초록색 이끼들이 나를 반기는 천국의 문, 그리고 효돈천 이끼 폭포이다.
효돈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서귀포시 상효동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남원읍 하례리를 지나 남동쪽 하효동의 해안으로 합류하는 이 효돈천은 제주도 권역의 지방하천이다. 하천의 이름은 본래 영천천이었으나, 조선시대 말에 하천 주변에서 가장 큰 마을인 효돈촌의 지명을 따서 효돈천으로 바뀌었다. 하천 유역의 모양은 상류부는 유역폭이 큰데 비해 지류하천 합류점에서 폭이 급격히 감소하여 전체적으로 주걱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하천은 거의 물이 흐리지 않는 건천이지만, 일부 구간에서 상시 물이 흐른다.
특히 여름날이면 효돈천 이끼폭포 위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환상적인 모습을 선사한다.
천국의 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516로 815-41
효돈천 천국의 문은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조금씩, 조금씩 암암리에 소문이 나고 있는 장소이다. 인적이 뜸한 숲길을 지나면 만나는 효명사. 그 절 안에 있는 천국의문은 마치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초대하는 것만 같다. 특히 여름날 천국의 문 옆으로 떨어지는 효돈천 이끼 폭포의 모습은 천국의 문과 함께 조화롭고도, 신비로운 모습을 선사한다.
효돈천 천국의 문은 내가 힘들고 외로운 시기에 찾게 된 곳이다. 어떠한 기대를 얻고자 간 것도 아니고, 어떠한 가르침을 원해 간 것도 아니다. 그냥 기분 전환을 위해 검색하고, 단순하게 예뻐 보인 다는 것, 그거 하나로 찾게 된 천국의 문. 나는 이곳에서 커다란 위로를 받고 올 수 있었다.
사람 한 명 없는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 내려간 나는 계단에서 왠지 다른 세계로 통할 것만 같은 천국의 문을 만나게 돠었고, 그 문을 넘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 상상과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한 걸음, 한 걸음 천국의 문을 향해 계단을 내려오며 간절히 빌었다. '요새 너무 힘든데, 제발 이겨낼 수 있게 해주세요. 이 문을 넘어가면 다 괜찮게 해주세요.'라며 말이다.
물론 문을 넘었을 때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훗날 그 행위가 계속 머리에 남았고, 그 기억으로 나는 힘든 시기를 극복했다. 우리에겐 그런 주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자연의 풍경에 주문을 걸어보자. 다 괜찮아질 거라는 주문. 그렇다면 정말 괜찮아질 것이고, 그 장소들이 기억에 남아 문득문득 힘을 주며, 또 그 향수가 진하게 남아 더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