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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된 여인의 은혜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진 교회의 은총-
이사야 54:1~8
우리는 이사야 53장에서 대속의 고난을 묵묵히 받는 어린 양과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여호와의 종의 노래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사야서 54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 곧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가 받아누리는 은총과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맥락의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가 그처럼 비참하리만큼 멸시를 당하고 간고를 겪고 창에 찔리고 채찍에 맞아 죽음을 당하고 장사되는 처참한 고난을 겪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택한 백성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참으로 쓰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로 인하여 교회와 성도가 얻게 되는 혜택은 실로 달고 풍성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사야 54장에서 교회를 남편에게 버림당하여 홀로 된 여인으로 비유하면서 그 홀로 된 여인이 다시금 남편에게 은혜를 입고 회복되고 넘치는 자비를 받고 그 자손이 번성하게 되는 복을 받아누린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된 말씀은 실제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과 신약 교회를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울 리가 이 말씀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교회와 주의 백성된 우리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다시금 깊이 깨닫고 용기와 힘을 얻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을 차례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여기서 교회는 자녀를 낳지 못한 여인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시집을 왔는데 자식을 낳지 못한 여인은 옛날 이스라엘 사회나 가부장적 사회에서 매우 불쌍한 처지입니다. 그는 할 일을 하지 못한 여인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러하며 레위인 엘가나의 아내 한나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제사장 스가랴의 아내 엘리사벳도 아이를 낳지 못한 중압감을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특히 선지자 사무엘의 모친 한나를 생각해봅시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둘째 부인 브닌나는 자식을 여럿을 낳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멸시를 많이 받았고 한나는 자격지심으로 매일 울고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 경험도 없고 아이를 낳는 산고의 아픔도 겪지 못한 여인은 참으로 우울하고 비참한 마음, 낙심한 마음 상태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런 모습의 여인을 교회의 상태로 비유하셨습니다. 불행한 그 불임의 여인의 상태는 교회의 외적 상태를 상징할 뿐 아니라 내적 상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구약 교회가 하나님의 그처럼 사랑을 받고 은혜를 입었으나 남편 되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되지 못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잡신을 섬기며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남편의 준엄한 책망을 듣고 징계를 받았으나 듣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여 자녀들인 주의 백성들이 매를 맞고 기근을 당하고 칼에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듣지 아니한 결과 마침내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 상태에 떨어졌습니다.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은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황폐해졌고 성전도 무너졌고 예루살렘 성벽도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상태는 곧 남편에게 버림받은 과부의 모습입니다. 남편 없는 홀로 된 여인으로서 아무런 희망도 없고 용기를 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외적인 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순결치 못하고 의롭지 못하고 남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참으로 안팎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수치스럽고 외로운 처지가 바로 교회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홀로 된 여인 같아서 버림받은 교회를 향하여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뭐라고 명하십니까?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 같은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은 노래하라고 명합니다. 외치라고 명합니다. 다시금 노래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상황은 형편없고 지금 버림받은 것 같고 남편 되신 하나님의 사랑과 애정을 직접 삶 속에서 경험적으로 누리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노래하고 외치고 기뻐하라고 명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제 그의 아내 된 교회를 향하여 그 마음을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종이 교회의 죄악을 온전히 담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화평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종이 죄로 인하여 마땅히 버림당한 처지에 있어야 할 교회를 의롭게 하며 그 교회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움이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로다!”
2절은 이제 그렇게 노래하고 기뻐하며 큰 소리로 외칠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여기서 홀로 된 여인은 하나님의 아내로 부름받았으나 그의 충성치 아니함, 순결치 아니함으로 인하여 버림당하고 이혼당한 처지에 빠진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는 자식도 없습니다. 외적으로 보면 신자가 없습니다. 형태만 남았을 뿐이지 그의 백성들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상태의 구약 교회가 그렇게 비참한 처지에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그 반면에 남편 있는 자, 남편 있는 여인은 이방 신을 모시는 이방 나라를 가리킨다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르둑 신을 주신으로 모신 바벨론 제국을 예로 들 것입니다. 그들은 자식들이 번성합니다. 그 백성들이 많고 그들은 다 번성하고 세력이 강합니다. 그래서 외적으로 보면 남편 있는 여인은 자식들도 많고 강성하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방 신을 남편으로 모시고 세상적으로 번성하고 부유하고 잘나가지만 사실 그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들은 한 순간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 남편은 헛것이요 그 남편을 믿고 자식이 많다고 자랑하던 그들의 번성함은 어느 순간 끝장이 납니다. 그 말씀대로 훗날 바벨론 제국 그 당당한 여인은 자식들을 다 잃어버리고 불쌍한 과부 신세가 되고 맙니다(이사야 47:8~9). 자기는 절대로 자기는 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그는 홀로 남아 비참한 과부가 되고 결국 슬픔 속에 사라지고 맙니다. 앗수르 제국이 그렇게 멸망했고 바벨론 제국이 실제로 그렇게 멸망하였습니다. 바벨론의 번영의 절정기에 고레스라는 페르시아 왕국의 창설자 고레스가 갑작스레 나타나 바벨론을 정복하여 바벨론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도성도 그 유적이 땅 속에 묻혀서 어디 있는 지조차 모를 정도가 잊혀져버린 바 되었습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심지어 이혼당한 것과 같이 홀로 눈물을 흘리며 자식도 거의 없는 상태로 전락했던 하나님의 아내 된 여인은 나중에 다시금 바베론에서 돌아와 다시금 번성하기 시작했고 때가 되어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고 대속의 고난을 당하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받고 난 하나님의 아내 된 교회는 이제 팔레스타인 지역을 넘어서 온 세상을 향하여 퍼져나갔고 수많은 인종과 방언과 백성들이 그 여인의 자식으로 불어났습니다. 참으로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액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은 성령으로 홀로 된 여인인 교회에게 명하기를 교회의 장막터를 넓히라고 명하였습니다. 2절과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여기서 하나님은 주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건널 때 만들었던 성막으로 비유하면서 그 장막 터도 널찍하게 만들고 휘장도 아낌없이 널리 펴고 천막을 고정하는 줄도 길게 하고 말뚝은 견고하게 박으라고 명합니다. 이러한 광대한 교회 장막에 대한 예언은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각처에 세워지되 유다의 영토를 넘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역에 퍼지고 수많은 교회 여인의 자녀들이 인종과 백성과 방언을 초월하여 이 광대한 장막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도 마치 이 본문 말씀에 나오는 홀로 된 여인처럼 자신을 느낀다면 이 말씀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이 되어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도 현실적으로는 고난이 많고 힘이 없을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 처지가 본문에 나오는 남편 없는 여인과 같아서 살기가 고단하고 나를 돕는 이들이 없고 외롭고 지치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반면에 주위를 둘러 보면,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모든 것이 넉넉합니다. 마치 든든한 남편이 곁에 있고 잘나가는 자식들이 즐비하여 아무런 근심이 없는 여인처럼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적으로 잘 나가고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그 세상 사람들보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눈물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홀로 된 여인과 같은 우리가 결국은 잘 될 것입니다. 자손이 번성할 것이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는 참된 남편을 가진 복을 받은 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남편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순결치 못하였고 그를 실망시키고 배신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의 대속의 공로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하셨고 품으셨고 사랑해주시고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권면대로 믿고 나가면 오늘 베푸신 약속의 말씀대로 복을 주시고 형통하고 번성케 하시는 복도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부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아직도 주의 백성들은 이러한 약속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으니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다시금 격려의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4절과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수치를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인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 인하여 겪은 상처가 크고 수치의 기억이 너무 깊고 상실의 경험이 너무 생생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소망과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해도 잘 안 믿어지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용기를 줍니다. 젊었을 때 남편에게 버림받은 수치, 과부로서 당한 설움의 기억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도록 해주시겠다고 보장해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기를 유다 백성들의 남편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내의 불충실함으로 인하여 그를 잠시 버렸으나 이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죄를 사해주시고 화평과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다시금 용서하고 그 패역한 아내를 다시 품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서 소박맞은 아픔과 수치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녀의 든든한 남편으로 모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는 버림을 받은 것처럼 온갖 수치와 고생과 비천함을 경험한 교회의 신실한 남편이 되어 권능을 행하시는 만군의 여호와로 자기를 증거할 것이고 그의 모든 빚을 다 대신 청산해주는 구속자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유다 백성,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땅의 하나님, 온 세상의 하나님이 되심도 보여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초라하고 비천한 일을 겪은 아내를 다시 품으신 하나님은 그 여인의 남편으로서 그의 능력과 위엄과 광대함을 온 세상에 표명함으로써 아내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가운데 남편을 자랑하며 자기를 뽐내던 여인들인 세상 제국들을 무너뜨림으로써 그들이 남편으로 믿고 자랑하던 신들은 헛것이요 거짓 신임을 드러내어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에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할 때 우리의 믿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할 것입니다.
시편 25:1 이하의 말씀에 다윗이 고백한 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이다”
라는 말씀이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성취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랑이 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굳게 믿고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수치를 결코 당하지 아니할 것을 굳게 믿읍시다. 어떤 다급한 경우를 만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마시고, 수치를 결코 당하지 아니할 것을 굳게 믿고서, 남편이신 주님이 곁에 함께 계심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고 고요하게 기도하면서 당당히 세상 가운데 태평히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6절로부터 8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다시 한번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아내 된 교회를 위로해주고 마음에 힘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파셨지만 그것은 잠시 그렇게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넘치는 진노를 자기 백성에게 부으셨지만 그것도 잠시만 그렇게 얼굴을 가리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다시금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데, 그것은 마치 어릴 때에 시집 왔다가 천바 지축 아무 것도 모르고 행하여 소박 맞은 어린 아내를 불쌍히 여긴 남편이 다시 그 아내를 부른 것처럼 이제 크나큰 긍휼로 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잠시 자비의 얼굴을 돌려 보지 않았지만 이제 영원한 자비로 긍휼히 여겨 바라보시고 사랑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자빠질 때가 있습니다. 죄를 범하여 남편이신 주님의 진노를 사서 고난의 심연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의 진노는 잠깐일 뿐이고 그의 긍휼은 영원합니다. 다윗도 시편 30:5 말씀에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라고 말슴하셨습니다. 다윗도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여 많은 눈물을 흘린 세월이 있지만 하나님께 받은 징계의 채찍이 비록 거칠고 아팠지만 하나님께서 가진 마음은 긍휼의 마음이요 사랑의 마음인 것을 매맞으면서 더 깊이 자각하곤 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1 말씀에도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 해도 그것은 잠깐이요 그것도 더 축복의 그릇이 되기 위함이요 훗날의 영광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징계를 받는 중이라도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굳게 믿읍시다. 우리에게 내리는 시련이 비록 오래 갈지 몰라도 사실은 잠깐이요 우리 주님은 한번도 나를 사랑하지 아니한 적이 없고 언제나 영원한 자비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읍시다. 이 모든 주님의 말씀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으시고 용기를 얻으시고 소망을 가지고 힘을 내어 믿음으로 달려나가는 주님의 복된 아내들 되시기를 주님께서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거센 고난을 만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품고 용기를 내어서 굳건한 믿음 가지고 힘차게 한 발 한 발 주님과 함께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