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18)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29장 오자서(伍子胥)의 분노 (1)
- 내정은 안영(晏嬰), 군사는 전양저(田穰苴).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면서부터 제경공(齊景公)은 한결 손발이 편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복잡한 일에서 벗어나 마음껏 군주 생활을 즐겼다.
날마다 사냥과 술로써 소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齊)나라는 날로 안정되고 부강해져갔다.
지난날 제환공(齊桓公)이 관중과 영척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자신은 실컷 즐긴 것과 흡사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제경공(齊景公)은 희첩들을 거느리고 술을 마셨다.
그런데 밤이 깊었건만 웬일인지 흥이 나질 않았다.
제경공은 문득 안영 생각이 났다.
측근 시자(侍者)에게 분부했다.
"술과 음식을 재상 안영의 집으로 옮겨라. 내 거기 가서 재상과 함께 이 밤을 즐기리라."
궁중 신하 몇 사람이 먼저 달려가 안영에게 통보했다.
"주공께서 이리로 행차하십니다.“
안영(晏嬰)은 황급히 관복을 갈아입고 띠를 두른 후 홀(笏)을 잡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제경공의 수레가 당도했다.
그가 수레에서 내리기도 전이었다.
안영(晏嬰)이 황망히 그 앞으로 나가 제경공에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습니까? 아니면 국내에 무슨 변이라도 생겼습니까?“
"아니,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소.“
"그러시다면 무슨 일로 이 밤중에 신의 집에 행차하셨습니까?"
"밤도 깊고 한데 혼자 술 마시기가 심심하여 경과 함께 놀고자 왔소.“
그러자 안영(晏嬰)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나라에 관한 일이나 다른 나라 제후에 관한 일이라면 신이 능히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과 음악과 노는 일에 관해서라면 다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신은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
안영의 말에 제경공(齊景公)은 무안하고 쑥스러웠다.
수레를 돌려 사마 전양저의 집으로 향했다.
전양저(田穰苴)도 제경공의 행차 소식을 듣고 갑옷 차림에 창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 제경공을 영접했다.
"다른 나라 제후들 중 누가 군사라도 일으켰습니까? 아니면 대신들 중 누가 반역이라도 도모했습니까?"
"그런 일은 없소.“
"그러시다면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신의 집까지 행차하셨습니까?“
"과인이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
장군과 함께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즐기기 위해서 왔소.“
전양저(田穰苴)가 정색하고 대답했다.
"적군을 막고 역적을 죽이는 일이라면 신을 불러서 상의하십시오.
그러나 좋은 술과 좋은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신하라면 주공 좌우에 얼마든지 많습니다.
어찌 갑옷 입은 신하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경공(齊景公)은 이내 흥취를 잃었다.
좌우 시자들이 물었다.
"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제경공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니다. 어찌 그냥 돌아갈 수 있겠는가. 대부 양구거의 집으로 가자.“
시자 한 사람이 양구거의 집으로 가 제경공의 행차를 선통했다.
이에 양구거(梁丘據)는 손으로 악기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큰길까지 나와 제경공을 맞이했다.
제경공(齊景公)은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양구거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술과 음악을 즐기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궁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이었다.
안영(晏嬰)과 전양저(田穰苴)는 함께 궁으로 들어가 제경공에게 지난밤의 일을 사죄한 후 간했다.
"앞으로는 밤중에 신하의 집에 찾아가 술을 즐기시는 일을 삼가십시오.“
제경공(齊景公)이 대답했다.
"그대들 두 사람이 없다면 과인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소?
하지만 양구거 같은 사람도 필요하오. 그 같은 사람이 없다면 나는 무료해서 미쳐버릴 것이오.
나는 그대들의 직무를 방해하지 않을 터이니, 그대들도 나의 일에 너무 간섭하지 마오.“
돌아보면 제경공의 반생은 술과 사냥으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명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제환공과 더불어 명군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만큼 제(齊)나라를 안정시키고 부강케 했다.
그는 놀기는 좋아하되 방탕하지는 않았다. 도를 넘지 않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안영의 충간과 가르침 덕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도 안영(晏嬰)은 재상을 역임하는 동안 내내 제경공이라는 평범한 군주를 교육시키며 지내지 않았을까.
제경공과 안영 사이에는 술과 관련하여 이런 일화도 전해온다.
어느 날, 제경공(齊景公)은 궁중으로 대신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
안영도 참석했다.
취흥이 절정에 달하자 제경공이 대부들에게 말했다.
"예의는 필요 없소.“
상하 관계를 따지지 말고 신나게 마셔보자는 제안이었다.
대부들은 기뻐했다.
그런데 안영(晏嬰)만이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주공의 말씀은 잘못되었습니다.“
군주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신하는 힘과 용기를 가지고 있다.
힘과 용기를 가진 자가 그 군주를 해치지 못하도록 장치해놓은 것이 바로 예의다.
그러므로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애초에 예의(禮儀)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예의를 던져버리면 금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힘이 센 자가 지배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인다.
그래서 매일 우두머리가 바뀐다.
그러나 사람의 세계는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바로 예의(禮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안영의 이 직간으로 술자리의 흥은 깨졌다.
제경공(齊景公)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모두들 안절부절못하는 중에 안영(晏嬰)만이 그 자리에 앉은 채 술잔을 기울였다.
제경공은 더욱 기분이 상했다.
'무례하다.‘
내궁으로 향하던 제경공이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안영(晏嬰)이 어떤 모습으로 술을 마시는가를 봐야겠다.“
제경공이 다시 술자리로 돌아왔다.
모든 대부들이 일어나서 맞이했다.
그러나 여전히 안영만은 자리에 앉은 채 술잔을 입에서 떼지 않았다.
제경공(齊景公)은 분노를 삭힌 채 안영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대가 그처럼 술을 좋아하니, 나와 한번 대작해봅시다.“
주량으로 안영의 기를 꺾으려는 것이었다.
서로 술잔을 채웠다.
이런 경우 군주가 먼저 마시는 것이 예의였다.
그런데 안영(晏嬰)은 술잔이 차자마자 먼저 훌쩍 마셔버렸다.
마침내 제경공의 분노가 폭발했다.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며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대는 조금 전에 예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소.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오?
그대는 내가 와도 일어나지 않았고, 술잔을 나누면서도 먼저 마셨소.
이것이 그대가 말하는 예의인가?"
그러자 안영(晏嬰)이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올리며 대답했다.
"신이 어찌 스스로 말한 것을 잊었겠습니까.
신은 다만 무례(無禮)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만일 주공께서 예의를 버리기를 바라신다면 모든 대부는 이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안영(晏嬰)은 진심으로 제경공이라는 군주에게 애정을 가졌던 것이 틀림없다.
이런 일도 있었다.
추운 겨울 아침이었다.
조당에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제경공(齊景公)은 몸에 냉기가 스미는 것을 느꼈다.
무심코 안영에게 청했다.
"미안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겠소?“
안영(晏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은 상을 나르는 관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두꺼운 가죽옷이라도 가져다주시오.“
"그 일은 신의 임무가 아닙니다. 할 수 없습니다.“
제경공(齊景公)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럼 그대는 무엇을 하는 신하인가?“
"신은 사직(社稷)의 신하입니다."
안영의 대답에 제경공(齊景公)이 따지듯 물었다.
"사직의 신하라는 것이 무엇이오?“
"사직(社稷)의 신하는 나라를 존립시키며, 상하의 본분을 판단하며, 도리를 알고 백관의 서열을 정하여 그 역할을 알게 해줍니다.
또한 사령(辭令)을 만들고, 사방에 널리 지키게 합니다.
이것이 신하의 임무입니다."
한마디로,
- 나는 제경공 개인의 신하가 아니라 제경공이라는 제나라 군주의 신하다.
라는 것이었다.
제경공(齊景公)은 섬뜩함을 느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내가 경에게 비례(非禮)를 저질렀소. 용서하시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