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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여러 가지 법들
1-12절, 십계명 순종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특히 도덕적 성결 즉 그가 모든 죄와 불결로부터 떠나 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불의와 악과 거짓이 없으시고 공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도 그의 거룩함을 본받아 거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증거하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오직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며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
[3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안식일들]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하셨다(출 20:12).
사람은 그의 부모를 공경하고 높이고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잠언 23:22는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말했고,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했다(엡 6:1-3).
성경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벧전 2:17) 서로 상대를 먼저 존경해야 한다(롬 12:10)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또 “나의 안식일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들’이라는 말은 주간 안식일 외에 구약 율법에 규정된 다른 안식일들을 가리킨다.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8-29장을 보면, 주간 안식일 곧 제7일 안식일 외에, 연중에 일곱 번의 안식일들이 있다. 그것은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 날, 맥추절, 나팔절(7월 1일), 속죄일(7월 10일), 초막절의 첫째 날과 여덟째 날 등 일곱이다. 안식년과 희년을 포함하면, 구약의 율법에는 모두 열 개의 안식의 날 혹은 해가 있다. 이런 안식일들에는 ‘성회’로 모이고 아무 일도 노동도 하지 말아야 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언약의 표이며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다(출 31:13-17). 에스겔 20장에 보면,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죄들을 열거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을 반복해서 강조했다(겔 20:13, 16, 21, 24).
안식일은 세상의 일들, 곧 직업상의 일들이나 육신적 오락들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공적 집회로 모이는 날이다.
[4절]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헛것’이라는 원어(엘릴림)는 ‘우상들’을 가리킨다.
우상들을 위하지 말고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2계명에 명령된 바이다.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처럼 위하는 것,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다 우상이며, 그것을 위하는 자들은 다 우상숭배자들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명백히 구분된다.
오늘날에는 돈이나 육신의 쾌락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이 많고 교인들 중에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교회생활에서 자기 절제가 도무지 없는 자들이 많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흥미를 위해 교회에 드나드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예배에나 성경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인내심이 없고 자기 절제심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 경외함이 없고 육신적 재미와 흥미만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부모 공경함이나 부모의 교훈을 귀찮게 생각하고 자신의 재미만 추구하는 철없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5-8절]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되도록 드리고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3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제3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화목제물은 감사와 서원과 자원의 뜻으로 드리는 제물이다.
레위기 7장에 보면, 그 제물은 규례대로 드려야 했다. 감사의 화목제물은 드린 그 날에 먹어야 했고 그 이튿날에 먹어서는 안 되었다. 서원이나 자원의 화목제물은 이튿날에 먹을 수 있으나 제3일에는 먹지 말고 불태워야 했다.
제3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할 것이며 부정한 자가 먹으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9-10절]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법은 레위기 23:22에도 나온다.
또 모세는 신명기 24:19-22에서,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신다. 그것이 선(善)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러한 선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교훈하였다(딤전 6:17-18).
[11절]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제8계명에 해당한다.
성경은 우리가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야 함을 명하고 남의 것에 손을 대는 것을 도적질로 간주한다. 부모의 것과 자식의 것도 구분되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도 구분된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제9계명 즉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에 해당한다. 우리는 남을 속이지 말고 서로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말했고(엡 4:25), 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고 교훈하였다(골 3:9).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5는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새 예루살렘성=천국] 밖에 있으리라”고 말했고,요한계시록 21:8은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했다.
[12절]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것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헛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3계명에 해당한다(출 20:7).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운 마음으로, 진실되이, 진지하게 사용해야 한다. 엄숙한 맹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이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큰 죄악이다.
본문에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세 번(3, 4, 10절),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한번(2절), 또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한번 나온다(12절).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참 하나님 곧 창조자와 섭리자이시며 모든 율법을 명하신 자이시다.
본문은 여러 가지를 교훈한다.
첫째로, 우리는 모든 죄악과 불결을 버리고 거룩하자. 우리는 말과 행실에 있어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자. 이 날 세상 일들을 쉬고 오락을 금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말씀과 기도에 힘쓰자(사 58:13-14).
셋째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경외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도 잘되고 복을 받는 길이다.
넷째로, 우리는 돈과 육신적 쾌락을 포함하여 우상을 멀리하자. 우리는 그런 풍조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바라며 자기를 부정하고 절제하자.
다섯째로, 우리는 가난한 자를 배려하자.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요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이다.
여섯째로,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자. 우리는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고 남의 것을 취하지 말고 도리어 구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일곱째로, 우리는 서로 거짓말하지 말자.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된 것을 깨닫고 모든 거짓을 버리고 서로 참된 것을 말해야 한다.
여덟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움으로 진실하게 사용하자.
13-18절, 공의와 사랑
[13절]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압제하다’는 원어(아솨크)는 ‘압제하다(NASB), 강탈하다, 속여 빼앗다(defraud)(KJV, NIV)’는 뜻이다. 그것은 폭력과 위협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는 그런 나쁜 사람들이 있지만 이스라엘 사회 안에는 그런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우리는 폭력으로 남을 해치거나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늑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늑탈하다’는 말은 강제로 빼앗는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앞의 명령 속에 내포된 바이기도 하다고 본다. 강도짓은 도적질보다 더 나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품꾼은 누구에게 고용된 일반 노동자를 가리킨다. 옛 시대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어떤 직장에 고용되어 매월 월급을 받는 자들이 많다. 하나님의 명령은, 매일이든지 매월이든지 주인이 일꾼들의 품삯을 미루지 말고 제 때에 주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신명기 2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신 24:14-15).
우리가 누구에게 일을 시키면, 그 값은 정중히 그 날 혹은 그 시간에 지불해야 하고 고의적으로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14절]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듣지 못하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고 보지 못하는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악한 일이다. 비록 귀먹은 자는 그의 저주를 듣지 못하고 소경은 그 장애물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들으시고 보시며 판단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귀먹은 자나 소경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을 첨가하신 것은 바로 이런 뜻에서 하신 것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그런 악한 일을 행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본절과 16절과 18절에,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모든 명령의 근거와 권위를 증거한다. 이 명령들은 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명령이다.
영원자존자 여호와 하나님,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홀로 섭리하시는 살아계신 주 하나님께서 이 모든 명령들을 내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명령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것들을 성심으로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15절]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재판은 사람들 상호간에 생긴 문제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재판은 하나님의 행위를 본받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재판장이시다. 그러므로 재판에 불의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3:3에서,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고 명하셨다.
모세도 천부장과 백부장 등을 세우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라”고 했다(신 1:17).
우리는 재판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일에서도 공정하게, 공평하게, 공의로 판단해야 하고, 어떤 일에서나 무조건 가족이나 친구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16절]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은, “너는 네 백성 중에 남을 중상하는 자로 다니지 말라.”
‘남을 논단하지 말라’는 원어(라킬)는 ‘남을 중상(中傷)하는 자, 즉 거짓 소문으로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남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3장에서,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라”고 명하셨다(출 23:1). 거짓 소문으로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것은 참으로 나쁜 일이다.
세상에는 이런 나쁜 사람들이 많고 이스라엘 사회에도 그런 악한 자들이 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니며 비방하는” 자들에 대해 지적하였다(렘 6:28; 9:4). 에스겔도 22:9에서 그런 자를 언급하였다. 한글성경에는 ‘이간을 붙이는 자’라고 번역되었으나 같은 단어이다.
시편이나 잠언도 이런 자를 정죄한다.
시편 15:3은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자는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는” 자라고 말하였다.
또 시편 101:5는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다.
잠언 11:13은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고 말하며, 잠언 20:19도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말하는데,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라는 원어가 바로 같은 단어이며, 그것은 남을 비난하고 헐뜯으며 돌아다니는 자를 가리킨다.
신약성경도 이 점에 대해 말씀하였다. 주 예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마 7:1-3).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에서, 장로와 집사의 아내들의 자격에 대해 말하면서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고 했다(딤전 3:11). 참소하는 것이 거짓말로 남을 헐뜯는 것을 말한다. 그는 또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한다(엡 4:31). 또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2:1에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한다. 성도는 훼방하는 일, 곧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일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웃이 잘못을 하면 그를 책망할 수 있지만, 그를 죽음에 내몰 정도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녀를 책망하는 것은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잘못을 깨우치고 고쳐 좋은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듯이, 성도의 책망은 상대방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깨우치고 고치려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책망은 이 정도의 선까지이며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이다.
[17절]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責善)하라.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미움은 살인의 시작이다. 살인은 미움에서 시작된다. 미움은 마음의 살인이다. 남을 미워하는 자는 이미 마음으로 그를 죽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했다(요일 3:15). 우리가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이웃에 대한 미움부터 없애야 한다. 미움은 상대에 대한 독한 비난을 만들고 기회가 되면 그를 죽이게까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責善)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웃이 잘못을 행할 때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권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 이웃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뜻이다. 참된 사랑은 이웃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27:5-6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신약성경 데살로니가전서 5:14도,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勸戒)하라”고 말하였고, 또 히브리서 3:12-13도,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하였다(히 3:12-13).
[18절]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 대해 공의로 보복하실 것이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잠언 20:22는,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말하였다.
주 예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9-42),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눅 6:27-28).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교훈하였다(롬 12:17, 19-20).
하나님께서는 또 “동포를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을 하다가 잘 안 되면, 우리는 남을 원망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그 현실을 달게 받고 잘 대처하고 이겨나가야 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교훈하였고(빌 2:14), 또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교훈하였다(약 5:9).
하나님께서는 또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은, 주께서 하나님의 계명들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두 개 중 두 번째의 계명이다. 마태복음 22:35-40,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완성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0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웃을 폭력으로 위협하거나 빼앗지 말아야 한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의 소유물을 강제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도적질보다 더 나쁜 악한 일이며 그렇게 얻은 이익은 복이 되지 못한다.
셋째로, 우리는 일을 맡긴 자에게 그 삯을 뒤로 미루지 말고 약속대로 정한 때에 주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은 그 삯을 간절히 기다린다.
넷째로, 우리는 못 보고 못 듣는 이웃을 저주하거나 해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다 보시고 다 들으시고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다섯째로, 우리는 모든 일을 공의로 판단하고 처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을 미워하시고 모든 일을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여섯째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거짓되이 헐뜯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남의 명예와 평판을 떨어뜨리는 것은 참으로 나쁜 일이다.
일곱째로, 우리는 이웃을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책망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지 죽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여덟째로, 우리는 형제들을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그를 죽인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아홉째로,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보면 지적하고 책망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방관하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열째로, 우리는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한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우리는 그 대신에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열한째로, 우리는 이웃을 원망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인정해야 하고, 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자신의 부족을 반성하며 기쁨과 감사함을 잃지 말고 담대히 대처해야 한다.
열두째로, 우리는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상의 법들은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법들이며 모든 사람이 유념하고 지켜야 할 생활 법칙이다.
19-28절, 순수한 종교
[19절]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규례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본문의 교훈이 하나님의 규례, 곧 하나님께서 주시고 정하시고 세우신 규례들임을 강조하시며 그것을 지키라고 명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가축들의 이종교합(異種交合)을 금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수나귀와 암말의 교합으로 노새를 낳게 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관습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혼잡케 하는 일이다. 수노새가 생식력이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혼잡을 인정치 않으신다는 단적인 증거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밭에 씨를 뿌릴 때, 벼와 보리, 밀과 수수를 섞어 뿌리는 것을 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식물들도 각각의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각각의 종류대로 재배되고 추수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두 재료로 직조(織造)한 옷을 입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아마포(리넨)와 양모, 혹은 면사와 명주실로 섞어 만든 옷 같은 것을 입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에는 섞어 짠 천으로 만든 혼방 옷이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율법에서 이런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셨다.
위의 세 가지 규례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혼잡케 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이 규례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들과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상들을 혼합시키는 혼합주의 즉 오늘날 말로 종교다원주의를 금하는 영적 교훈을 준다고 본다.
[20-22절] 무릇 아직 속량(贖良)도 되지 못하고 해방도 되지 못하고 정혼한 씨종과 사람이 행음하면 두 사람이 형벌은 받으려니와 그들이 죽임을 당치 아니할 것은 그 여인은 아직 해방되지 못하였음이라. 그 남자는 그 속건제물 곧 속건제 숫양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의 범한 죄의 사함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여종과의 행음의 죄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한 여종이 어떤 사람과 약혼하였으나 아직 속량되거나 자유롭게 되지 못한 상태에서 주인이 그와 행음하면, 그들이 벌을 받을 것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 여종이 아직 자유케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규정이다.
그러나 그 주인은 숫양을 속건제물로 삼고 그것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와야 하며 제사장은 그의 범한 죄를 위해 그 속건제의 숫양을 드려 여호와 앞에 속죄해야 하고 그리하면 그의 범한 죄가 사함을 얻을 수 있었다.
[23-25절]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3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제4년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제5년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서 난 곡물(穀物)을 먹게 하셨다. 그들이 길갈에 진 치고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을 때, 그들은 유월절 이튿날 그 땅의 소산 즉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수 5:10-11). 곡식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허락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과일나무를 심을 때는 3년 동안 할례받지 못한 나무로 간주하여 그 과일을 먹지 말고 제4년에는 그 과일을 하나님께 거룩히 드리고 제5년부터 그 과일을 먹으라고 규정하셨다. 과일은 필수적인 식단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것은 가나안 땅으로부터의 성별을 교훈하신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거기에 사는 거민들과 모든 가축들을 다 죽이게 명하셨다. 그런 정신에서 보면, 그들이 가나안 땅의 나무들의 과일들도 다 버려야 마땅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3년의 기간을 주셨던 것이다. 이 규례는 가나안 땅의 과일나무들이 성별되어야 함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거민들과 구별된 거룩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다.
[26절]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 채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레위기 17:12, 14에서 이미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노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끊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복술을 하다’는 원어(나카쉬)는 ‘점을 치다’는 뜻이고, ‘술수를 하다’는 원어(아난)는 ‘예언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악령들의 활동으로 점을 치거나 예언을 하는 등의 신비적 행위를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다. 거짓된 신비주의는 참된 경건을 떠나게 한다. 이것은 신약시대에도 적용되는 교훈이다.
[27-28절]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말며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머리 가를 둥글게 깎고 수염 끝을 손상시키는 것은 그 당시 이방인들의 풍습이었고 죽은 자를 위해 살을 베고 몸에 무늬를 놓은 것, 즉 문신(文身)을 새기는 것도 당시 이방인들의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행위와 풍습이었다고 한다(Harrison).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의 그런 풍습들을 본받지 말기를 원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진리의 혼잡을 조심하자.
하나님께서는 다른 종류의 가축들 간의 교합이나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는 것을 금하셨고 두 재료로 직조한 옷도 입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질서를 혼잡케 말라는 뜻을 가지는 동시에, 참된 종교를 이방종교와 혼잡시키지 말라는 뜻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기독교와 이방종교를 혼합시키지 말아야 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보수하며, 기독교를 이방종교와 혼합하여 변질시킨 천주교회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해야 하고 또 오늘날 각종 이단사설들을 배척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거짓된 신비주의를 조심하자.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악령의 활동으로 점을 치거나 무당의 예언을 듣는 거짓된 신비적 행위를 금하신다.
신약성경도 우리가 거짓된 신비주의를 경계할 것을 교훈한다(마 24:24; 계 13:13, 15; 살후 2:9-12). 우리는 오늘날 초자연적 은사들을 추구하여 방언과 예언과 병고침을 강조하며 기적을 행한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과 신사도운동가들의 거짓된 말들과 허풍들을 매우 경계해야 하고, 오직 성경의 바른 교리를 배우고 믿고 생활교훈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 문화를 조심하자.
하나님께서는 머리 가를 둥글게 깎는 것이든지 수염 끝을 손상시키는 것이든지 죽은 자를 위해 살을 베거나 문신을 새기는 것을 금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과 구별되기를 원하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문화를 조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앞이 많이 파진 옷과 매우 짧은 치마를 입고 시끄럽고 광란적이고 음란성이 있는 노래들도 듣고 부르고 춤도 추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그런 풍조를 배격하고 멀리해야 하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단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29-37절,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라.
[29절] 네 딸을 더럽혀 기생이 되게 말라. 음풍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네 딸을 더럽혀 (혹은 범하여) 그로 음행을 하게 하지 말며, 온 땅이 음행하며 온 땅이 죄악이 가득하지 않게 하라].
이것은 가정에서의 성결을 명하신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의 순결성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계명 준수는 가정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 또 부모는 자녀들로 하여금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엄하게 교훈하고 지도해야 한다. 자녀들이 부모의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부모는 그들을 엄하게 징벌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교훈하였다(고전 6:18-2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회의 도덕성을 염려하신 것은 신약교회의 도덕성을 염려하신 것이다. 세상은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교회만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와 성도들의 삶에는 음란 풍조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 또 나아가서, 성도들은 이 세상과 세속 사회에 선한 본이 되어야 한다. 주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4).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면, 이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30절] 내 안식일[들]을 지키고 내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내 안식일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들은 우리의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다. 모든 날이 하나님의 날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안식일들을 구별하여 휴식과 공예배의 날로 지키게 하셨다. 안식일들은 온종일 또 온 식구가 잘 지켜야 했다. 특히 주간 안식일에 대해서는 그 날을 범하는 자에게 죽음이 경고되었다.
출애굽기 31:14-15,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聖日)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7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내 성소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다. 제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인 성막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장소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소를 공경해야 했다. 성막은 후에 성전이 되었고 오늘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귀히 여기고 교회가 모이는 장소인 예배당도 귀히 여겨야 할 것이다.
신약 성도는 교회에 힘써 모여야 한다.
히브리서 10:25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한다. 또 성도는 교회를 욕하거나 어지럽히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고린도전서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31절]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것은 거짓된 신비주의를 금하신 말씀이다.
26절에서도,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다(마 7:15-16, 22-23).
우리는 거짓된 신비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32절] 너는 센머리[흰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교훈을,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교훈과 함께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노인 공경의 교훈도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어진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는 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내포된 바이다. 우리는 집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교회나 사회에서는 노인들을 공경해야 한다.
또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는 말씀대로(잠 20:29), 노인들은 흰머리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인생의 아름다움인 줄 알고 감사해야 하고, 또 젊은이들은 머리가 희어진 노인들을 공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잠언 15:20은,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고 말했고, 잠언 30:17은,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말했다.
또 에베소서 6장에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한다(엡 6:1-4).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부모를 공경하고, 또 우리 자녀들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되게 양육해야 한다.
[33-34절]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학대하지 말고 동족같이 사랑하고 배려하라고 명령하셨다. 신약성경도 우리에게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한다. 주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나그네된 형제를 돌보지 않은 것이 주님을 돌보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35-36, 40).
또 감독의 자격 요건들 중 하나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다(딤전 3:2; 딛 1:8).
히브리서 13:1-2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찾아온 새얼굴들부터 따뜻하게 영접하자.
[35-36절]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것은 재판을 할 때나, 장사를 할 때나 공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해야 할 것을 명하신 것이다. 우리는 더러운 이, 즉 불의하고 부정당한 이익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하는 자와 장사하는 자는 정직하고 진실하게 해야 자신에게 복이 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장로와 집사의 자격 요건들 중의 하나로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것’을 꼽았다(딤전 3:2; 딛 1:8).
[37절]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6)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했다. 오늘날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가 성경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義)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데살로니가후서 2:15,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일을 지키고 교회를 귀히 여기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복된 일이다. 우리는 주일에 온 식구가 교회에 나와 그 날을 온종일 거룩히 지키도록 노력하고 또 교회를 귀히 여기며 사랑하자.
둘째로, 우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따르지 말자.
우리는 오늘날 교회들 안에 유행하는 거짓된 신비주의와 은사주의를 조심하고 배격하고 오직 성경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노인들을 공경하자.
우리는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기쁘시게 하고 보답하고 순종해야 하고, 또 교회와 사회에서는 나이든 이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배우자들을 학대하지 말고 또 신입교인들을 사랑으로 영접하자.
우리는 그런 자들을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하며, 또 교회의 신입교인들을 사랑으로 영접해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음란한 행위와 풍조를 조심하자.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거룩을 실천하고, 우리 자녀들을 음란한 세상과 구별되게 단정하고 순결하게 키워야 하며, 우리의 교회를 거룩한 교회로 세워야 한다.
여섯째로, 우리는 재판이나 상거래에서 공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하자.
우리는 모든 일을 공정하게 판단해야 하고, 상업 활동에서 결코 불의하고 더러운 이익을 취하지 말고 공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일곱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교훈을 행하자.
신구약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법칙이며, 거기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교훈을 순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