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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書 :The Book of Esther
영] The Book of Esther
구약성서 중의 역사서로, 제17번서. 현행역에 있어서는 역사서의 최종이다.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한 글이기도 하다.
1. 본서의 히브리어 성서에 있어서의 위치
본서는 히브리어 성서의 3구분인 I. 율법 II. 예언서 III. 제서 중의 III 제서에 속하고, 그 제서의 3부중 둘째인 [메길로트]5권 중, 최종의 서이다.
70인역성서에 있어서는 본서를 <<느헤미야>>의 뒤에 두고 있는데, 그것은 제재가 포로 귀환 후의 시대에서 취해져 있는 때문으로 본다. 마치, 사사시대의 부인의 사적인<<룻기>>를<<사사기>>에 이어서 편집하고 있는 것과 같다. 유다 율법학자의 구전 해설집(解說集)인 탈무드(Talmud)에서는 다니엘서와 에서라서 사이에 있었는데, 지금은 전도서의 뒤 다니엘서의 앞에 놓여져 있다.
2. 본서의 명칭
본서명은, 여주인공이며, 페르샤왕 아하수에로(Ahasueros 전 485-465)의왕비가된유대인처녀 [에스더 rTEs]a, ('es er)]에서 취하여, 에스더서라 부르고 있다. 에스더의 어의(語義)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바벨론의 여신 이슈타르(Istar, Ishtar), 가나안, 페니키아의 아스타르테(Astarte, A-shtoreth)와 동일한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이것은 오늘, 널리 지지되고 있지 않으나, 주의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본다.
3. 본서의 목적
본서가 기록된 것은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함과 동시에, 선민 유대인을 지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밀하신 섭리(성수 聖手)를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4. 본서의 내용
아하수에로가 바사(페르샤)의 왕이었던 때, 그 치세의 3년에, 바사의 수도수산에 있어서, 나라의 부와 빛나는 왕위(王威)를 과시하기 위해 왕의 호화로운 대주연이 개최되었다. 왕은 황후 와스디에게, 빈객앞에 나타나도록 명했다. 그러나 와스디는 이것을 거절했다(1:1-22). 노한 왕은, 와스디에 대신하여 황후로 될 자를 수년에 걸쳐, 두루 국중에 구하고, 드디어 황후의 관(冠)을 수산에 살고 있던 유대인으로, 베냐민족에 속하는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이며, 그 양녀인 에스더의 머리에 놓게 되었다(2:1-18). 그 후 얼마 아니하여, 모르드개는, 우연하게 왕을 암살하려는 기도를 발견하고, 왕의 생명을 구했다(2:21-23). 그 무렵 왕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라는 자를 총애하여 궁정에 있어서의 모든 귀족들 위에 두고 제신(諸臣)으로 하여금 그에게 무릎꿇어 절하게 했는데, 한 사람 모르드개만이 이것을 거절했다. 하만은 그를 증오하고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유다인을 학살하려 기도(企圖)하여, 왕에게 권해, 그 뜻의 조서를 여러 도에 발하게 했다. 살륙의 날을 부르(Pur-제비, lot의 뜻)에 의해 정해졌다. 아달월(유다의 제12월, 태양력 2,3월, 스6:15)의 13일이 뽑혔다(3장).
유다인은 탄식과 슬픔에 휩싸였다. 유다인을 구원할 자는, 왕비의 지위에 있는 에스더 밖에없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격려했다. 에스더는 생명을 걸고 일에 임하기로 결심했다. 모르드개가 가르쳐 주는대로, 그 몸을 사지(死地)에 두어, 간악한 하만의 계략을 분쇄하는데 성공하여 하만은 도리어 굴욕을 받고, 그가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 했던 나무에 오히려 달렸다. 뿐더러 모르드개는, 일찌이 왕의 생명을 구원한 것이 기록에 의해 분명해져, 발탁되어 이전 하만이 차지하고 있던 지위에까지 승진했다(4-7장). 에스더는 하만이 여러도에 써 보낸 유다인 학살의 조서를 취소하도록 왕에게 구했으나, 페르샤에서는, 일단 발해진 조서를 취소할수 없으므로, 왕은 모르드개에 명하여, 그들의 적과 싸워, 그들 자신의 생명을 방어하도록하라는 조서르 발하게 했다(8장). 그리하여 아달월 13일에 유다인에 대적하는 자 중 피살된 자는, 여러도에서 75,000인, 수도 수산에서 500인, 거기에 하만의 열 아들, 14일에는, 다시300인이 피살되었다. 이렇게 하여 아달월 14일은 여러 도에 사는 유다인의 휴식과 축제의날, 15일은 수산의 유다인의 휴식과 축제의 날로 제정되었다. 그리고 축일에 부림(푸림Purim)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8-9장). 부림이란 [제비]의 뜻으로, 하만이 제비에 의해 살육의 날을 정한데서 유래된 것이다(3:7).
끝으로, 이 글(책)은, 역사서에 따라, 왕과 모르드개의 기타 사적이 [메대와 바사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음을 말하고, 끝나있다(10장).
-내용구분(內容區分)-
에스더서는 다음6부로 구분할 수가 있다.
(1) 1:1-22 왕비 와스디 폐위되다.
(2) 2:1-3 에스더가 왕비로 되다.
(3) 3:1-4:17 하만의 승진과 유다인 암살 음모
(4) 5:1-9:19 하만의 실패와 유다인 해방
(5) 9:20-32 부림절의 제정
(6) 10:1-3 부록-아하수에로왕과 모르드개에 대한 후일담
-내용분해-
(1) 1:1-22 아하수에로왕과 왕비 와스디
1. 1:1-9 아하수에로왕의 180일에 미치는 주연
2. 1:10-15 왕비 와스디의 불순종
3. 1:16-22 왕비 와스디 폐위되다
(2) 2:1-23 에스더 왕비로 되다
1. 2:1-4 왕비의 선택
2. 2:5-14 왕비 후보자의 참집
3. 2:15-18 에스더 왕비로 되다
4. 2:19-23 왕암살 음모의 두 사람을 모르드개 왕께 고하다
(3) 3:1-15 하만, 유다인 전멸을 꾀하다
1. 3:1-6 하만의 승진과 유다인 전멸의 계획
2. 3;7-15 유다인 전멸의 칙허를 얻은 일
(4) 4:1-16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활동
1. 4:1-3 유다인의 비탄
2. 4:4-9 모르드개, 에스더에게 실정을 알리고 왕께 중재를 의뢰 하다.
3. 4:10-17 에스더의 결심
(5) 5:1-14 에스더의 주연
1. 5:1-8 왕이 에스더의 초청을 허락 하다
2. 5:9-14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려는 하만의 음모
(6) 6:1-14 모르드개의 승리
1. 6:1-11 하만의 제안에 의한 상이 모르드개에 주어지다
2. 6:12-14 하만의 몰락 시작되다
(7) 7:1-10 하만의 처형
1. 7:1-6 에스더, 하만을 왕께 고발 하다
2. 7:7-10 왕, 하만의 사형을 선고하다. 하만 모르드개 달려던 나무에 자기가 달리다
(8) 8:1-17 유다인 적대자를 살해하라는 칙령의 발표
1. 8:1-2 모르드개, 하만의 지위에 임명되다
2. 8:3-8 에스더, 왕께 칙령의 취소를 원하고, 새로운 칙령을 얻다
3. 8:9-14a 모르드개, 하만의 율법을 무효로 하는 급서를 발송하다
4. 8:14b-17 유다인 그들의 구원을 기뻐하다
(9) 9:1-27 여러 도에 있어서의 살해와 부림절의 기원
1. 9:1-15 아달월의 13일
2. 9:16-19 부림절이 2일에 걸치는 이유
3. 9:20-32 부림절의 유래
1) 9:20-28 부림절 준수의 모르드개의 명령
2) 9:29-32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추가 명령
(10) 10:1-3 부록(附錄)-모르드개의 위대
5. 본서의 저자와 저작연대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상정이 행해지는데, 결론으로서는, 불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대교의 [탈무드](바바 바스라 15a)에 있어서는, [대회당의 사람들이 기록했다]고 되어 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의하면(<<잡록1:21>>), 모르드개이고,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하나님 나라18:36>>) 에스라로 생각된 듯하다. 그러나 저자 불명이라고는 해도 다음의 일은 상상된다. 즉, 저자는 바사의 수산에 사는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궁정에 출입할 수 있는 지위에 있던 인물이다. 그는 에스더서의 사건을 구두전승에 의해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느 기회에 이 전승을 기록하려고 결의했다. 이 기회라는 것은, 애굽의 나일강에 있는 엘레판티네 섬(테베에서 롬으로 약 240km)에사는유대인식민단이 박해를 받고, 그들의 성전이 파괴된때가 아닐까고 생각된다. 이것은 전411년의일로서,이사건은 <<에레판티네 문서>>의 발견에 의해 오늘 유명한데, 당시 이국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불안한 사건이었다. 유대인은 횡적 유대가 강한 민족이었으므로, 이 박해사건은 바사의 유대인에게도 충격을 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서, 그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던 <<에스더 이야기>>가 문서화되어, 하나님은 이국 땅에 있는 유대인 사회를 지키신다는 것이 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집필 연대는 전 410년-400년경으로된다.
기타의 여러가지 설을 종합하면, 다음 셋으로 대별할 수가 있다. 전 2세기의나카비시대(R.H. Pfeiffer), 또는 전 450년견(R.Sinker-<<엘리코트 주해서 III>>), 그리고 전350년경(R.K.Harrison)으로 된다. 마카비시대로 하는 근거는 부림절의 일이, 구약 외전의 <<벤 시라의 지혜>>(전 200년경성립)라든다<<마카비서 상>>(전 100년경성립)에등장하지 않고, <<마카비하>>(전 50년경성립)의15:36에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에스더서는 바사의 유대인 사회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므로, 부림절은 전 2세기의전반에는아직팔레스티나에서 제도화 되어 있지 않았다. 다음으로 전 450년경이라는설은지나치게 조기(早期)이다. 본서는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의 사후 상당한 기간을 두고서 기록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에1:1,13,14,4:11,8:8,10:2). 또한 전 350년경으로하는설은,유다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구약 성서의 각권 성립의 최종시기(에스더서를 포함)를 바사왕 아닥사스다 1세 시대(전 464년-424년)에두고있는 것과 모순한다(<<아피문 반박론 1:8>>).
그런데서, 일반 전통적 입장에서 한다면, 구약 성서의 각권 성립의 최종시기를, 정전결집 확정시기와는 별도로, 전 400년경으로두는것이무난하다.
6. 본서의 성전으로서의 수용(受容)
본서는 하나님에 의한 영감의 서(書)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통파의 유대인은 오랫동안 이것을 성전에 넣는 것을 거부했는데, 90년 구약성서 정전 결정의 회의가 개최된 얌니아(Jamnia)의 회의에서 아가서 및 전도서와 함께 최후에 성전으로 수용되었다.
[文獻]
A.W. Streane: Ester in the Camb. Bible, 1907;
T.W. Davies:Ezra, Nehemiah undEsther, in the Cent. Bible, 1909;
L.B. Paton:The Book of Ester in the I.C.C., 1908;
T.K.Cheyne:"Esther" in the Ency. Britannica13, 1926;
J.A. McClymont: Book of Ester inHasting' D. of the Bible, 1902;
S.R. Driver: Introduction to the Literature of the O.T.,Revised Ed. 1914;
S. Talmon: "Wisdom" in the Book of Esther." Vetes:, VIII, 1963,p.419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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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Esther(인명)
(rTes]a, , Esther) 「별」
베냐민 사람 아비하일의 딸이다. 히브리 이름이 `하닷사라'하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조실부모한 고아였으므로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자기 딸같이양육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셀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들이 사로잡혀 갈 때 그들도 같이 잡혀 갔다(에 2:5-7).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은 그의 치세제 3년에 나라의 부함과 왕위의 혁혁함을 시위하기 위해 일대 향연을 베풀었다. 제 7일에 왕은 7인의 어전 내시에 명하여 왕비 와스디를 불렀다. 그것은 왕비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왕명을 거역하여 나오지 않았다. 분노한 왕은 법률과 규례에 능통한 일곱 방백 중 하나인 므무간의 의견에 따라왕후 와스디를 폐하고 새 왕비를 맞게 되었다(에 1:21,2:2-4). 왕의 치세 제 7년 10월 와스디에 대신하여 에스더가 피택되어 왕비가 되었다(에 2:16,17). 그녀는 복잡다난한 때에 왕비가 되었으나, 그 때에는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것이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왕은 하만을 중용(重用)하였다.
에스더가 왕비가 된 지 5년 후(에 2:16,3:7) 하만은 자기에게 `꿇지도 아니하고 절도 하지 아니하는' 모르드개를 비롯하여왕국에 사는 온 유대인을 학살하려고 했다. 그는 막대한 뇌물(은 1만 달란트:국고의2/3에 해당)을 왕에게 바치는 한편, 유대인들이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으며, 자기네의율법과 풍속을 고수한다고 왕에게 참소하여 유대인 학살 승낙을 얻어 왕의 조서를 각도에 발송했다(에 3장).모르드개는이사실을 에스더에게 말하여 유대 민족을 하만의마수에서 지킬 것을 부탁했다. 왕이 부르지 아니한 자는 그 누구도 왕 앞에 나아갈 수없고, 만약 이같은 법을 어기는 자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런데 왕이 왕비인 그녀를 찾지않은 지가 한 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왕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동족 모두와 함께 3일간의 금식 기도를 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죽음을 각오한 다음, 왕에게 유대인의 구명을 부탁하려고 결심했다. 그녀가 죽기를 무릅쓰고 왕에게 나아갔을 때 의외로 왕은 그녀를 기쁘게 맞아 주었다. 이제 그녀는 비상한 신중성과 기지로 하만의 음모에 대하여 왕의 주의를 끄는 절호의 기회를포착했다. 즉, 그녀가 마련한 3일간의 연회석상에서 기분이 상쾌한 왕의 제안에 따라그녀가 요구한, 그녀 자신의 생명과 동족의 생명의 위급함을 왕에게 알리고, 함께 참석하고 있던 하만이 그 주모자라고 지적하자, 사태는 일변하여 모르드개를 죽이려고준비했던 높이 50규빗의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었다.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으므로 왕은 새로운 조서를 각 도에 내려 유대인 스스로가 생명과 재산을 지키도록 했다. 유대인의 학살 예정일인 12월 13일은 그들의 위대한 승리의날이 되고, 모르드개는 왕 앞에서 큰 자가 되어 존귀함을 받게 되었다(에 5:1-8:17). 이는 하나님께서 한 연약한 여자와 믿음의 사람 모르드개를 통하여 이방의 사지(死地)에서도 자기의 백성들을 보호하신 역사적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부림절'로 지키고 있다.
에스더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만일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는 것처럼, 아하수에로 왕이 크세르크세스라면 에스더는 그의 아내 중 하나이며, 오타네스의 딸이나 손녀이며, BC 479년, 즉 왕의 치세 7년인가 8년에 왕비로서 기록되어 있는 아메스토리스였던 것처럼 생각된다. 와스디는 제 3년, 즉 헬라와의 전쟁에 관해 대회의를열은 해에는 이미 권력있는 왕비였다(에 1:3,9). 에스더는 제 7년 10월에 왕비의 자리에 올라(에 2:16,17) 12년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에 3:7,5:3).
<참고〉
`에스더'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일 것이며, 또 후일 히브리인들은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반짝이는 샛별에서 따온 이 이름을 붙혔을 것이다(사 14:12,계 22:16). 그러나 `에스더'와 별의 신 `이슈탈'을 동일시하는 것은 어원학적으로 긍정할 수 없다.`에스더'의 두 문자는 a(아레프)로 시작하고, `이슈탈'은 [(아인)으로 시작하고 있다.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바벨론에서 발견된 토기 위에 쓰여져 있는 유대인의 주문(呪文)에 `이슈탈'의 복수(複數)의 두 문자가 a로 쓰여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토기의연대가 분명치 않으며, 혹 에스더서와 같은 연대일찌라도 그것은 하나의 퇴화한 밴형에 불과하다. 여하튼 `에스더'와 `이슈탈'을 동일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당시 바사에서는 별을 `스태라'라고 말했다. `하닷사'가 신부를 뜻한다고 하는 것은옳으나, 이것이 여신들의 이름에 쓰인 확증은 없다. 다만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 `하닷사'가 앗수르어의 `하닷사'와 비슷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기 쉬우나, 이것은 오히려 `아다삿'이라고 발음되어야할 말이지 `하다삿'이 아니다.
<출처: The King 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