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장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 (찬 546)
1.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은 단지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지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단 지파다. 이들은 여호수아 생전에 분배 받은 땅이 있었지만(수 19:40~46) 그 땅을 정복하는데 실패하고 도리어 아모리 사람들에게 밀려나고 말았다(삿 1:34). 그래서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경홀히 여겨 포기하고 다른 땅을 넘보기 시작했고 이제 북방에 있는 땅을 조사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파견하였다. 단 지파가 보낸 다섯 정탐군은 미가의 집에 이르렀고 그 집의 제사장이 된 레위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 레위인은 자기의 말처럼, ‘고용된’ 자다(4). 정탐군들은 이런 레위인에게 자신들의 일의 성공 여부를 타진한다.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종교적 위안이고 이것만 채워지면 참과 거짓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레위인은 그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평안(샬롬)을 약속한다(6). 하지만 모든 것은 속고 속이는 허위일 뿐이다. 레위인이 이런 평안을 그들에게 약속하는 이면에는 그의 탐욕이 연결되어 있었다. 정탐군들은 북방에서 라이스 성을 발견하게 된다. 라이스는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성벽이 없는(‘염려 없이 거주하는’) 성이었고 레바논 산맥에 둘러싸여 있어서 고립된 지역이었다(7).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정복하지 못했던 단 지파의 정탐군들이 보기에 이 성은 정복하기 쉬운 곳이었다. 형제들에게 돌아온 정탐군들은 마치 믿음으로 말하듯이 “하나님이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한다(9~10). 이들에게도 신앙은 형식일 뿐이었다.
2. 단 지파 600명의 용사들이 라이스 정복 원정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다시 미가의 집에 들렀는데 이유가 있었다. 600명의 용사가 무기를 들고 미가의 집 입구에 서고 다섯 정탐군은 미가의 집 신당에 들어가 신상들과 에봇, 드라빔 들을 가지고 나왔다. 도둑질이고 강도질이었다. 그리고 레위인에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될 것인지,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될 것인지 선택을 요구했다. 이미 종교 장삿군이 된 레위인이 한 가족 보다 더 크고 더 안정된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20).”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나중에 사람들을 모아 뒤쫓아온 미가에게 단 지파는 무력으로 위협한다. 타락한 시대에 진리도 정의도 죽고 남은 것은 오직 힘의 논리였다. 결국 단 지파는 빼앗은 신상과 제사장을 데리고 가서 라이스를 정복하고 지명을 단이라 하고 거기에 ‘자기를 위하여’ 신상을 세웠다(30). 이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은 미가 집안의 제사장이 되었다가 나중에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레위인의 족보와 이름을 소개한다. 그는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었다.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구원자 모세의 집안도, 그 무너진 시대의 타락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명문가의 후손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에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단 지파를 따라가는 미가 집의 제사장 요나단의 모습은 타락한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는 더 나은 보수를 바라고, 더 큰 집단을 추구하며 자기 성공을 위하여 사는, 하나님의 소명을 버린 자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시대가 사사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모세의 손자까지도 타락한 시대에 돈의 종이 되고 말았다. 교회에서 신앙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돈과 권력이라는 ‘힘의 논리’만 남는다. 힘으로 이기고 힘에 굴복하며 힘을 추구한다. 힘은 크기(교회 성장의 논리)나 부로 나타난다. 이것은 바벨론의 속성이다. 이런 논리가 교회 안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있는지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과연 거룩함과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더 크고 더 부유해지려는 것인가?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말끝마다 하나님을 말한다고 그것이 신앙은 아니다. 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는 찾을 수 없고 정욕과 탐심과 우상만 가득하다. 신앙이 없으니,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남겨진 것은 폭력, 힘의 논리 뿐이다. 또 부모의 신앙이 자녀의 신앙일 수는 없다. 할아버지가 모세라도 그것이 손자의 신앙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사기는 타락한 시대에 정신 차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살아가라고 도전한다.
4.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희 삶에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들을 누리며 힘의 논리, 바벨론의 가치가 아니라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따라 살게 하여 주옵소서.
타락한 시대에 깨어서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개혁주의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