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5(수)
나는 성도들로부터 그대가 진리대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요삼1:3)/나에게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습니다. (요삼1:4)/
→ 나는 내 아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를 따라 잘 살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이런 심정으로 이 편지를 쓴 것이겠지요? 베드로가 그랬듯이, 진리를 알고 누린 사람으로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와 동일한 기쁨을, 복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바라는 것을 누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요한은 이보다 더한 기쁨이 없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세상에 살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나 요한이나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직접 받은 사람들로서 그렇게 제자가 된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듯합니다. 나도 이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내게도 이런 기쁨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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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에게 할 말이 많지만 그것을 편지에 다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요삼1:13)/속히 그대를 만나 대면해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요삼1:14)/
→ 요한은 편지보다는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 했나봅니다. 편지를 더 써놨으면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글로 말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상호 작용이 아니고 일방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의 전달이 아나라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려면, 제자를 삼으려면 아무래도 대면해서 대화를 하면서 때와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잘 수행하려면 편지가 아니라 one to one, face to face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