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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1989.02.12 (일), 한국 본부교회
오늘은 2월달을 맞아 두 번째 맞는 안식일입니다. 선생님의 생애에 있어서 어젯날이 생일이었다면 70을 먹는…. 만 69세를 넘는다 하는 것은 이젠 70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이제 이 70년대는 80을 향하는 기간입니다.
이 10년 간 어떤 일이 앞으로 전개될 것이냐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인들도 그렇겠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세계의 모든 뜻 있는 사람들이 바라볼 때에도 하나의 주목의 대상일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이 국가적 기준과 세계적 기준까지 올라가기 위한 과거시대를, 잊어버려야 할 시대의 길을 닦아 왔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무언가 남겨서 세계에 전수해 줘야 할 일들을 가꿔야 하는 시기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70세로 넘어서면서, 70세를 맞이하면서 첫번 되는 주일날도 돼요. 그래서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고향'입니다. 고향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나라를 생각하며 괴로워한 젊은 시절
아마 인간은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이가 젊었을 때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저도 이제 70이 되어서 옛날 어렸을 적부터 철들어 가지고 생각한 것 등 모든 과거의 일들을 생각해 볼 때, 그때는 대한민국의 8도, 물론 그때는 13도였지만, 13도 가운데 함경도가 어떻게 생기고, 평안남도가 어떻게 생기고, 황해도가 어떻게 생기고, 그다음엔 강원도로부터 경상남북도·전라남북도·충청남북도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그건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20대 전후해서 전국을 돌던 생각도 회상됩니다.
그때에 느끼던 모든 것이, 간절히 바랐으면 바랄 수 있는 상대적 나라―자기 나라지요―에 대한 것을 보고 느끼게 될 적에 그 고향이, 그때는 나라지요. 그 나라가 행복하고 평안했더라면 그렇게 인상적인 것이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어렵게 사는 마을 마을을 거치고, 혹은 산야를 넘나들면서 느꼈던 것이 `이 불쌍한 민족' 그런 거였어요. 그런 생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러면서 나는 이 민족 가운데 한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그 불쌍한 민족인 동시에―그때는 왜정시대였어요, 왜정시대―외세의 짓밟힘을 받으면서 자기의 심중과 자기의 생활환경을 자랑할 수 없는 비참상, 그 모든 내적인 고충이 크면 클수록 환경이 어려운 민족을 바라볼 때 그 충격적인, 기가막힌 사실들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을 지금 생각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그다음엔, 한국이 이렇다 할 때는 일본이 어떻고, 중국이 어떻고, 세계가 어떻고…. 이렇게 더 넓혀 생각하게 될 때, 일본이나 외국을 나가 보게 되면 대번에 비교되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 나라와 비교되는 거예요. 여러분도 다 그럴 거예요.
우리 나라가 일본이라든가 그 이외의 선진국, 잘사는 나라들과 비교해 보게 될 때,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비교되는 환경에서 차이를 느낌과 동시에 거기에서 환영을 못 받고 혹은 격리를 당하고, 자기 스스로 고충을 위로하는 환경이 못 됨으로 말미암아 사방으로 그런 고충에 에워 싸여 가지고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주었던 모든 환경적 여건들이 나라에 대한 부족을 다시 탄(歎)하게 되고, 앞으로 이런 부족한 나라를 어떻게 좋은 나라로서 이끌어 가느냐 하는 문제들을 두고 볼 때, 그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미치기에 부족한 자신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할 때에 거기에서 미쳐지는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가 관계됐던 사람과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영계
자, 이런 입장에서 그 범위를 넓혀서 우리의 인생살이가 비단 요 우리 일생, 70년 일생으로 끝난다면 별 문제지만,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영원한 문제를 중심삼고 살아 나간다 할 때에….
그러면 영계가 있다, 사후에 영계에 가게 된다 하면 무엇 갖고 생각할 것이냐? 무엇 갖고 생각할 것이냐 이거예요. 그 맞는 세계는 광대한 세계입니다. 여러분이 모르지만 광대무변한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에 들어가 가지고 대번에 느끼게 되는 것은 아, 내가 살던 고향 땅보다도 내가 살던 세상, 지구성, 지구성이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그걸 중심삼는 겁니다.
이 땅에 있어서 민족간의 차별이 있고, 배후에 문화적인 격차라든가 상충적인 생활상, 부대끼며 살고 있는 거기에서도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모든 것을 수습하고 싶고,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가치를 남기고 싶었던 과거지사가 그 옛날에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가서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자기가 측정하고 자기의 생각권 내에 자유로이 흡수할 수 없는 방대한 세계면 세계일수록 더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고향 땅, 혹은 지구성의 살림이 아니겠느냐? 난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저 영계에 가 가지고 영원한 세계를 그려 가는 그 생활을 하게 될 때, 언제 가서 그걸 잊어버리겠느냐? 몇 년이나 가겠느냐? 이런 걸 생각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며칠 갈 것 같아요, 몇 년 갈 것 같아요?
그 세계에 가 가지고 만나는 사람은 전부 다 생소한 사람이예요. 그런 생소한 환경에서 내가 만일 홀로 섰다 할 때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거기에서 생각하게 될 때는 자기가 그리는 사람, 지난날의 마음 가운데 뺄 수 없는, 정서적인 면의 관계를 맺었던 모든 인연들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대번에 그 세계에 가 가지고 생각한다면, 자기가 영계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어머니 아버지는 어떻게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됐겠느냐?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영계에 가서 제일 만나고 싶은 게 누구겠느냐?
영계를 제2의 고향으로 흠모하며 사는 사람들이 종교인
이걸 여러분들이 생각하게 될 때, 종교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뭐냐 하면, 그들은 일생 동안 영계를 표준하고 믿습니다. 벌써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여러분,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서 생활하려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모든 종주들이 남기고 간 경서(經書)의 내용은 인간 살림살이를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세계, 초연한 세계의 내용을 중심삼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 계신 곳과 하나님이 사시는 곳을 중심삼고 우리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준 거예요.
그러면 종교생활을 한 그 생활이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일생의 모든 문제를 다 버리고 넘어섰으면 넘어섰을수록, 하나님, 혹은 주님, 혹은 자기 종족 누구누구, 우리 교회,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그는 생애의 모든 것을 투입했다, 그는 종교를, 그런 사랑하는 종교의 목적을 위해서 사랑하는 부모를 버렸다, 사랑하는 고향을 버렸다, 사랑하는 조국을 버렸다, 사랑하는 지구성, 생애의 노정이 거쳐 넘어가야 할 이 지구성을, 세계의 인류를 극복하고 그것을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자기가 향하는 시선도 그것을 위하여, 모든 생각도, 자기가 움직이는 모든 활동의 목적도 이 하나를 중심삼고 투입했다 할 때, 여러분, 그가 영계에 들어가게 될 때 어떨 것 같아요? `아이고, 가고 싶지 않다' 그럴 것 같아요?
깊고 넓은 그 세계의 환경이 우리 인간세계와 다르면 다를수록 거기에 대한 관심사라는 건 `어떨까? 어떨까?' 하면서 궁금해 하듯이, 여러분, 시집 장가 못 간 처녀 총각들, 결혼 못 한 사람은 시집 장가 가면 `아이고 어떨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흠모의 심정을 가지고 제2의 고향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종교인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러면 그런 곳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생애를 투입하고 온갖 정성을 다 들이고, 또 그곳을 위해서 세상으로부터 매를 맞고, 천대를 받고, 감옥에 갇히고, 짓밟히고, 조롱을 받고, 침뱉음을 당한 모든 사실들이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자리입니다. 그런 심각한 입장에서 세상 만사를 다 알고 의식하면서 비교한 모든 결과 이것이 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걸 당할 때, 내게 부딪치는 외적인 모든 반대현상이 나로 하여금 후세에 있어서 어떤 소망의 기준을 가져다 줄 것이냐?
평탄한 종교 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 평범하게 생활하는 사람보다 심각한 자리에서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 그 종교를 믿고 살겠다는, 그 종교에 귀의해 가지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살겠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영원한 생명과 본질적인 가치를 위하여 살겠다는 사람 등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다면, 천태만상의 생애노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극한과 보통, 이 기준이 천태만상의 계열이, 계급이 혹은 방향이 남겨질 것이 아니냐?
고향의 인연을 확대하면서 살고자 하는 것이 인간
우리 인간은 몸을 갖고 있고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여러분의 몸의 고향과 마음의 고향이 다를 수 있느냐? 같아야 된다 할 때에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이 어디냐 이거예요. 또 영원한 내 몸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어디냐?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고향이라는 걸 생각하지만, 나도 고향 떠난 지 벌써 수십년 되지요? 혹은 외지(外地)로 돌아다니고, 혹은 감옥에도 들어가 살고, 다 이랬지만…. 그 가운데 내가 감옥살이 할 때 감옥 창살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게 될 때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미국 형무소면 미국 형무소에 살던 사람하고 한국 형무소를 아는 사람하고…. 또 우리는 뭐 일본 형무소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예요. 그리고 또 공산당 형무소도…. 그래서 그 햇빛이라는 것은 같은 햇빛이지만 햇빛이 전해 주는 그 내용은 심각한 것입니다. 거기는 한국을 눈물로 그리게 되고, 그다음엔 또 아시아를, 동양을 눈물로 그리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일본이 옛날에는 우리의 원수였지만 이런 감옥에 들어와서 일본사람을 만나게 될 때는, 이건 누구보다도 더 가까운 걸 느낄 수 있더라 이거예요. 이런 걸 보면, 먼 거리에서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가까운 거리의 원수는 원수가 아닌 것을 느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치 문제를 논할 때에 우리는 흔히 `그 사람 훌륭한 사람이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자기 고향에서만 살아 가지고는 나라를 몰라요. 또 대한민국에서만 살아 가지고는 대한민국의 귀한 걸 몰라요. 아시아를 거치고 세계를 거쳐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떨어지는 거리의 비례에 의해서, 또 시간에 비례해 가지고 고국을 떠나온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간절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람은 한 군데 정착해서…. 물론 정착해서 살아야 되겠지만 정착한 기지를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확대하면서, 인연을 가누면서 살고자 하는 것도 인간 생애를 엮어 가는 군상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부모는 슬픔과 기쁨의 동반자
그러면 진정 여러분이 몸 마음을 중심삼고 고향에서 살아 봤느냐? 이게 문제예요.
고향은 어떤 곳이냐? 고향은 그래요. 내가 이제까지 쭉 이렇게 지내고 보니까, 내가 자랄 때의 일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배울 수 있는 것의 80퍼센트 이상을 가르쳐 준 교재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은 간단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누구나 다 있는 어머니 아버지이지만 그 어머니 아버지를 대하는 입장에 따라서 천태만상의 가치 기준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슬플 때의 어머니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위로의 어머니 아버지, 기쁠 때의 어머니 아버지는 더더욱 자극시켜 주는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슬퍼하는 부모는 없어요. 그런 걸 볼 때 슬플 때에 같이 동반자가 되고 기쁠 때에 같이 동반자가 되어서 내가 철이 들어 알 때까지 먹고 사는 일체를 보살펴 주는 주체자로서 나의 동반자가 아니었더냐.
내가 외로우면 외로운 것을 위로하고, 어려우면 어려운 것을 위로하고, 병이 나면 병이 난 것을 전부 염려해 주고 위로해 주느니만큼, 내가 철이 날 때까지 자라는 데 있어서 나의 모든 심신을 중심삼은 동반자가 아니었더냐. 그 동반자가 변하면 곤란하다는 거예요. 동반자로서 영원까지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입장에 선 것이 부모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중심삼고, 변하지 않는 부모라는 것을 중심삼고 끈을 달아서 멀리 갔다가는…. 또 좋은 곳이 있으면 거기에 모셔다 놓고 싶고 말이예요. 빙빙 돌아다녀 보다가 그 가운데 좋은 곳이 있으면 어머니 아버지와 더불어, 세계 만방에 아무리 멀리 가 있더라도 그 가운데 좋은 곳이 있으면 그 좋은 곳을 나만이 갖고 싶은 게 아니라 동반자 되는 부모와 더불어 나누고 싶다 한다는 거예요. 그런 걸 느끼지 않아요?
어째서 그러냐? 부모는 내 마음과 몸의 변치 않는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외로울 때 외로움 가운데 있는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최대의 동반자가 부모요, 내가 기쁠 때 그 기쁨을 같이 찬양할 수 있는 최대의, 친구 이상의 최대의 동반자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변치 않는 동반자가 있는 곳을 중심삼고 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결론이 나와요.
그러면 고향에는 누가 있느냐? 부모가 있습니다. 또 부모 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는 다릅니다. 누가 가까우냐 하고 묻게 될 때, 철모를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가깝다고 보지만 오랜 역사를 두고 보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누구의 보호를 받았느냐 하고 추구해 볼 때, 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변치 않는 주체자로서 그리움을 갖는 거와 마찬가지로 어머니 아버지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 어머니 아버지는 어떠냐?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또, 그 어머니 아버지는 어떠냐?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종지조상(宗之祖上)은 어떤 분이냐? 우리 조상이 있는데 그 가운데 맨 중심에 설 자는 누구냐 할 때 우리 인간의 근본되는 조상이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그 조상의 조상이 있었다면 그 조상이 부모로서 모실 수 있었던 그 분이 아니겠느냐. 그런 분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요 우리 아버지라 할 때, 우리 부모의 마음을 영원히 끌어당길 수 있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을 영원히 끌어당길 수 있고, 수많은 조상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묶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심은 불가피한 것
사람은 아무리 멀더라도 근본을 떠날 수 없습니다. 변치 않는 심정적, 정서적인 근본을 떠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뿌리가 거기서 퍼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넘어설 존재가 없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심(向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이 잘생기고…. 뭐 고향이 잘생겼다면 말이 이상하지만 얼굴이 아니니까…. 고향이 좋고 나쁘고, 잘 생기고 못난 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좋고 나쁜 것을 떠나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어디 해외에 나가든가 먼 세계로 떠나면 떠날수록 거기에 있을 때 비가 온다 하면, 그 비는 마찬가지로 내리고 있어요. 비 오는 현상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비를 대하는 내 마음은 고향과의 거리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예요. 또 환경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혹은 친구와 만난다거나 누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반해서 거기에서 산다 하더라도 고향을 떠났을 때는 전부가…. 자기 아내도 나와 같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동반해 가지고 거기 가서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또 자기 아내뿐만 아니라 아들 딸도 고향에 데려가서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해 두었던 추억들을 나누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고향이라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교육의 재료를 80퍼센트 이상 공급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서 고향과의 인연을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학교를 가더라도 유치원 시대, 소학교 시대, 국민학교 시대, 그다음 중고등학교 시대, 그다음 대학, 그다음엔 사회에 나가 출세해서 성공한 시대…. 이런 걸 보면, 고향을 떠나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고향과 멀어지는 것 같지만, 여러분 마음 가운데 제일 잊혀지지 않는 것이 무어냐 하면 유치원 시대라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들과 노래하고 춤추던 것이 국민학교 다닐 적 것보다 철이 든 다음에 회상하면 그것이 더 강하다는 거예요. 중학교보다 국민학교, 고등학교보다도 중학교, 대학교보다도 고등학교, 그다음엔 뭐 대학원이라든가 박사코스 가게 되면 점점 갈라지는 거라구요.
전부 다 생각이 가정을 중심삼고는 어머니 아버지 형제를 생각하는데, 이것이 대학을 나와 점점 커 가면서 철이 들면 들수록 어디로 가느냐 하면, `내가 무엇이 돼야 되겠다' 하는 것을 중심삼고 바깥으로 나가려 한다는 겁니다.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면, 이것이 한 센터를 중심삼고 360도로 보게 될 때 이 간격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간격의 거리는. 십리 간 거하고 백리 간 거하고, 가서 보게 된다면 처음의 1도 차이라는 것은 무한히 된다 이거예요. 이렇게 갔던 사람들을 그냥 놔두면 떠나버릴 겁니다.
고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출세를 했더라도, 아무리 학박사가 돼 가지고 성공을 했다 할 때, 어디로 갈 거예요? `아, 내 여편네, 아들딸한테' 하겠지만, 아들딸 거느리고 어디로 갈 거예요? 고향에 가려고 한다구요,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떠나면 떠날수록 외로운 겁니다. 외로워진다는 거예요.
평생 잊지 못하는 정서적인 교재를 남겨 주는 곳이 고향
이와 같이 우리 인생살이에 여러분이 어느 환경에 있느냐 이거예요. 나라는 사람이 70이 넘다 보니 10대가 어떻고 20대가 어떻고, 이러한 사연이 많아요. 많겠지요? 고향에서 어떻게 했다는 것, 고향의 산천, 무슨 산 무슨 산, 무슨 산은 어떻고 어떻고…. 어렸을 때 거기서 전부 다 편답하면서 살던, 산에 올라가 가지고 야생화를 꺾고, 혹은 나물을 캐고, 이런 여러 가지 그 느낀 사실은 빼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나 어렸을 때 자기 집에 가까운 거리에 있던 나무, 혹은 밤나무가 있었다든가, 혹은 아카시아 나무…. 그 아카시아 나무는 가시가 많은 나무이기 때문에 기분 나쁜 것 같지만, 철따라 꽃이 피는 거예요. 그 아카시아 꽃이 피게 될 때는 향기가…. 그 향기는 참 고상한 향취 아니예요? 이런 모든….
그러면 그 아카시아 나무도 자기가 바라보기만 하지 않는다구요. 가지마다 올라다니고 말이예요, 올라가서…. 대개 까치 둥지는 아카시아 나무에 많이 틉니다. 그 까치가 영리한 새라구요. 그 높은 꼭대기에…. 그 아카시아 나무가 보통 나무와 다릅니다. 질긴 나무예요. 참 질긴 나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까치 둥지를 틀어도 제일 높은 데에 틉니다.
그리고 그 까치라는 것이 참, 여러분, 까치가 울게 되면 좋은 소식이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침에 깍깍깍깍 하면 좋고, 뭐 어떻다 이렇게 말하고 말이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까치는 뭐라 할까, 천문학에 대해서, 기후에 대해서 아는 거예요. 금년에는 비가 어디로 많이 올 것인가 하는 것을 아는 거라구요. 까치가 문을 내는 것을 봐 가지고 `아, 금년에는 무슨 바람이 많이 불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 금년엔 농사에 있어서…. 이거 전부 태풍이 불겠기 때문에 안 되겠구나' 해 가지고…. 바람 안 부는 데로 반대쪽에다 구멍을 뚫는다구요.
그런 까치 둥지에 올라가 가지고 내리고 말이예요, 이런 거…. 그리고 까치들이 전부가…. 참, 새끼 사랑하는 그 동물들의 강한 모성애, 부성애라는 것은 대단한 거예요. 어떤 때는 이거 생각하면 안스러워요. 까치가 알을 낳기 위해서 둘이 언제 만나겠노 할 때는 말이예요, 만나기는 언제 만나? 둘이 쌍쌍이…. 까치는 절개가 있는 새입니다. 한 쌍이 이래 가지고 알을 낳고….
일반 새를 보게 되면 알을 깔 때 만나는 새들도 있다구요. 그렇다고 만난 게 몇 달밖에 안 됐는데 그 모성애는 차이가 있을 것이냐? 차이가 없다구요. 내가 새 같은 것을 많이 잡아 봤어요. 안 잡아 본 새가 없지요, 이 한국에 있는 새는. 그래서 보면, 모성애라는 것은 오래 쌍쌍이 돼 사는 비둘기 같은 새나 무슨 새나, 전부 다 새끼를 사랑하는 데는 마찬가지예요.
까치 같은 건 둥지를 내리러 쓱 올라가게 되면 말이예요, 와서 쪼는 거예요. 쪼는 겁니다. 그래서 보통 나무에 올라갔다간 문제가 생겨요. 그런 걸 알아야 돼요. 그 높은 까치 둥지 같은 것을 말이예요…. 아, 이거 궁금하거든요.
그래서 보니까, 둥지를 나무 위에 갖다 틀고는 그다음엔 여기에 감탕을 물어다가 전부 다 때우는 거예요. 감탕을 갖다 때우고는 그다음엔 검부러기를 갖다 넣고 그다음에는…. 거 보면 참 새끼는 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요. 어디서 솜 같은 것, 포근포근한 것을 집어다가…. 아주 사람들이 잘 꾸며낸 안방보다 낫다구요.
이렇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는 말이예요, 이젠 암놈이 들어가 가지고 알을 낳는 거예요. 하나 낳고…. 그 까치알이 참 곱습니다. 아, 요것이 요렇게 생겼구만! 파르스름한데 금이 살살 갔다구요.
그게 관심이 있어서 매일같이 올라가네! 맨 처음엔 까치들이 죽겠다고 야단해요. 그렇지만 매일같이 올라왔다 가더라도 이상이 없거든요. 이상이 없다구요. 그러니 그다음에는 매일같이 올라가니까 쓱 까치들도 와 가지고 깍깍 하고 인사하는 거예요. `또 왔구만. 잘 보고 가' 그거예요. (웃음)
이래 가지고 오르내리면서 보면, 이것이 커 가지고…. 알 까고 난 다음에 자라는 건 새가 참 빨라요. 그러면서 정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 까치가 새끼 다 까 가지고 나가게 된다면 말이예요, 얼마나 서러운지…. 여러분, 그 까치 새끼들이 다 커 가지고 전부 다 날아갈 때 울어 봤어요? 얼마나 서운한지 몰라요. 그 철부지할 때 말이예요. 그걸 보고 아하, 나도 어지간히 정이 많은 사람이다 하는 걸 느껴 봤어요.
그런 것, 그러한 아카시아 나무, 가시 돋치고 보기 싫은 나무지만 자기가 인연되었던 건 일생 잊혀지질 않아요. 어떤 때는 가지까지도…. 지금도 그래요. 가지가 요런 가지가 있고 요런 가지가 있고, 올라갈 때 어떤 때는 후루루룩…. 어머니는 참 걱정이지요. 그 높은 곳을…. 그 높이가 얼마나 될까? 50미터, 한 70미터 이렇게 높은 나무인데, 순식간에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데 한번 잘못하면 야단나겠거든요. 거 그러지 말라고 그래도…. 그러지 말라는 것보다도 내가 재미가 더 있는데요 뭐. 이래 가지고…. 그러한 잊을 수 없는 모든 사실….
그런 한 가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새면 새에 대해 비교해 가지고 생태를 연구할 수 있는 이런 교재가 많은 것입니다.
또 개울이 있다구요. 고향에 가게 되면 또 거기에 사는 고기라는 고기는 다 잡는 거예요. 미꾸라지가 있고, 뱀장어가 있고, 게가 있고 뭐 별의별…. 오만가지 담수고기를 다 잡는 거예요, 큰놈 작은놈….
이걸 잡아다가는 말이예요, 먹기 위한 것보다도 큰 못이 있으면…. 요즘엔 다 그렇잖아요? 집에서도 고기를 다 그렇게 기르고 그러지 않아요? 그럴 수 있는 못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랬으면 다 잡아 가지고 길러 봤으면 좋을 텐데 기를 수가 있어요?
그래 가지고, 그때는 뭐 철이 없으니까 구덩이를 파 가지고, 물구덩이를 파 가지고 말이예요…. 고기는 물 안에서는 다 사는 줄 알았지요, 이래 놓고 잡아 넣으면, 하룻밤 자고 나면 다 나가자빠져 죽어 가지고 있어요. 그걸 잘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왜 죽었느냐고, `정성들여서 널 살려 주려고 하는데 왜 죽었노?' 하는 거예요. 사정도 모르고 말이예요.
고향은 교육의 재료도 돼
그래 가지고, 그거 보면 선생님이 정적인 사람이예요. 고기 보고도 `야, 네 엄마가 울겠구나' 그런 거예요. 그거 죽었다니까 조그만…. `너 엄마가 울 텐데' 이래 가지고 말이예요, 그 고기 보고 운다구요. `내가 울어 줄께' 이러면서 혼자 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지내던 모든 전부가…. 자라는 데 있어서 정서적인 많은 교재를 남겨 주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산을 바라볼 때도 잊을 수 없는 모든 정서적인 그물이 쳐 있어요. 또 개울을 볼 때도 그래요. 개울이 있다면 거기에도 수많은 어족들이 살고, 수많은 벌레들이 살고 말이예요. 그런 것들을 전부 다 배움의 재료로 활용할 때는 자기가 크는 데 모든 지식을 공급하는 데 잊을 수 없는 기본적인….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고향의 산하에 있는 모든 동식물에 대한, 자연계에 대한 것을 교재로 삼아 가지고 자기 내적인 인간이 자라는 데 있어서의 풍요성을 갖추는 데서 많은 재료를 남기는 곳이 고향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고향의 산천이 그리워요. 그렇지 않아요? 봄이 되면 봄동산에, 저 아지랑이 피는 봄동산에 아늑한…. 전부 다 에워 쌓은 그런 동산 가운데서…. 내가 자연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산에 가서 앉아 가지고 낮잠을 자는 거예요. 큰 나무에 기대어 가지고 자연 가운데서 낮잠을 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물을 뜯어 먹고…. 거 보면 뭐 많다구요. 이런 전부를 잊을 수 없어요.
자, 그런 걸 볼 때, 자기가 인간으로서, 정서적인 인간으로서 자랄 수 있어서 기본적인 교재로써 나한테 제공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여러분, 옛날에 국민학교 시절에 책상에 구멍을 뚫었으면 지금도 생각나지요? 어디가 어떻게 돼 가지고 이렇고 하는 게 생각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산천의 모든 나무는 다 같은 나무라도 거기에 나무의 모양 모양이 자기 인상에 남은 것이 자기의 모든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추억에 남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하나의 교재로서 남겨진 박물관이었던 것입니다.
좋고 나쁜 것도 고향에서 배웠어요. 안 그래요? 고향에서 여러분, 그렇잖아요? 어렸을 때 어떤 때는 동네 애들하고 싸움하고 말이예요, 코가 터져서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게 되면 엄마 아빠 찾아가지요? 엄마 아빠 찾아가는데, 그 엄마 아빠는 `이놈의 자식아, 왜 싸워 가지고 또 피를 흘리고 들어와?' 하고 남의 사정은 모르고 꾸짖던 생각…. 거 왜 그랬을까 하고 지금 생각하니까 여러 가지로….
어머니로서는, 남자라는 자식이 나가 싸워 가지고 매 맞고 코가 터져 들어오면 안 되지요. 그런 걸 커 가지고 자식을 길러 보니 그런 심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귀한 것을 회상할 수 있는…. 그때는 `엄마가 왜 그랬을까? 코피가 나고 이러는데도 씻어 주지도 않고 도리어 투정한다고 야단이야' 이랬지만, 지금 철들고 보니 그때 엄마를 붙들고 `엄마, 고마워' 할 수 있었으면 그 엄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극과 극이예요. `음, 이 녀석 이게 보통이 아니구만' 꿈에라도 승리 얻을 수 있는 그런 인상이라도 남겨 줬으면 좋을 것인데…'
평안도 지방의 결혼 풍습
이렇게 보면 그 모든 재료 가운데서 제일 잊히지 않는 재료가 뭐냐? 그건 정서적인 면이예요.
우리는 형제가 많습니다. 형제가 많아요. 뭐 이런 얘기 하다가 시간이 벌써 한 시간이 됐구만. 그만둘까요? 얘기해요? 「좋습니다」 보라구요. 우리 맏누님이 말이예요, 내가 여덟 살쯤 됐을 때 시집을 갔어요, 아마 내가 8년 이상 10년 어린데, 우리 맏누님이 열 일곱살에 시집을 갔다구요, 나이도 적은데. 아, 이거 어떤 남자가, 매부라는 사람이 왔는데 말이예요, 그 매부가 뭔지 그때는 몰랐지요. 매부라고 하니 그저 그렇게 알았지. 아, 매부가 쓱 한번 선보고 가 가지고는, 약혼을 하고는 말이예요, 한번 이제….
평안도는 여기 서울과 다릅니다. 이남과 달라요. 신랑이 장가를 왔다가면 말이예요, 돌아와요. 돌아와 가지고는 그냥 그대로 색시를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건 좋은 풍속이라고 봐요. 왜? 그 신랑이 신부의 친척을 모르거든요. 집안 가문을 모른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장가를 갔다가 돌아와요.
3일, 혹은 일주일,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있다 오는 처가가…. 그건 뭐 부모들도 좋아하고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못 가게 하는 거예요. 이 철부지한 것은 가 가지고는 말이예요, 잘 먹여 주고 매일같이 잔치하거든요. 그건 뭐냐 하면, 그 일가가 백 집이 있으면 백 집의 일가가 전부 다 촌수를 따라 가지고 반살기(반살미)를 하게 되어 있다구요. 작은 잔치를 하는 거예요. 이러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돌아다니면서 얻어먹는 것이 근사하거든요. 그래, 못 했으면 그다음에, 장가왔을 때보다 간 다음에 해줘야 될 걸 생각하는 그런 풍습이 있다구요. 미풍(美風)이지요. 미풍은 미풍이지만 그건 소모가 너무 되긴 돼.
이래 가지고 장가가 가지고 첫번 처가에 가 가지고 오래 있을수록 인심이 좋다고 하는 거예요. 신랑네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가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돌아오지 않노? 색시한테 빠졌나?' 하기도 하고, `빠지긴 뭐 갑자기 그렇게 빠지겠나?' 하고, 이래 가지고 오기를 기다려요.
그렇게 한번 장가와서는, 색시집에 와서 인연을 맺고 돌아가 가지고 말이예요, 그다음에 날을 받아 가지고 데려가는 거예요. 어떤 때는 3년도 기다릴 때가 있어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어요. 신랑의 가문이 대갓집인데 그 사돈의 팔촌까지 어떻게 다 아나요? 그러니까 교육을 하는 거예요. 시아버지, 즉 아버지는 어떻고 어머니 성격은 어떻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가 가지고 요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하고 교육을 하는 거지요. 그렇게 문중 전체를…. 그래 가지고 시집을 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총각 녀석이, 뭐 매부라는 녀석이 왔는데 가만 보니까 잘생기지도 못했더라구요. 우리 누나는 얼굴이 두리두리한데 요건…. 요즘에 보니까 그래야 되겠다는 것을 내가 알지만 말이예요. 얼굴이 갸름하고 곱살한 남자가 왔어요. 우리 누나는, 저 문씨네 딸들은 장군 같습니다. 몸들이 튼튼하거든요.
아, 와서 이러고 저러고 하더니, 그다음 갔다 오더니 이게 누나를 도적질해 간다 이거예요. (웃음) 와 가지고는 말이예요. (웃으심) 그런데 데려가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을 보내 놓고는 말이예요, 어머니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데리고 있던 딸을 보내니까 얼마나 긴장해요? 얼마나 숙연해요? 시집보내는 것이 죽는 것과 아마 한 몇 촌 되는 모양이예요. 잃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나는 모양이지요?
또 그것도 그럴 거예요, 부모야. 시집 보내게 되는 그 시집의 가문을 알 수 있어요? 도적놈의 가문인지 무슨 가문인지….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을 것 아니예요? 그러니 그것이 돌아와 가지고 소식을 듣고 자리잡을 때까지 부모는 조마조마하다구요.
오늘날 통일교회 부모들은 복판에 앉았어요. 복판에 앉았다는 게 중앙에 앉았다는 게 아니예요. 복더미, 복덕판에 앉은 거와 마찬가지예요. 이 쌍것들은 말이예요, 자식을 가졌으니 걱정을 하나, 딸을 가졌으니 걱정을 하나. 딸은 못생겼어도 선생님이 다 시집보내 줄 거야, (웃음) 아들이 못생겼어도 선생님이 장가 보내 줄 거야 하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고향은 심정 가운데 남아진 박물관 같은 것
아들딸 하나 살리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 불쌍하다구요. 시골에서 많은 아들딸 거느리고 생활하려면, 옛날 왜정 때에 요즘처럼 돈 주고 싸구려로 살 수 있는 나일론 같은 것이 있기나 하나요? 전부 다 옷이라는 것은 무명이예요, 무명. 무명 알지요? 「예」 목화를 심어 가지고 전부 다 씨를 빼 가지고 갈라 가지고…. 그걸 물레질이라고 해요. 이래 가지고 길쌈을 해서 옷을 만든다구요.
우리 어머니가 많은 아들딸을…. 일하는 게 참 빠르거든요. 설피다구요. 보통 열 새…. 요즘 신식 부인들은 열 새라고 하면 뭣인지 모를 거라. 그런 것 알아요? 여기 나이 많은 할머니, 아줌마들은 알겠구만. 한 새가 몇 올이예요? 「스무 올이요」 그래 스무 올이예요. 그래, 열 새면 좌우편으로 이래 가지고 2백 올이 이렇게 갈라져야지요. 그래, 보름 새 하게 되면 얼마인가요? 3백 올이 들어가요. 거 가늘지요. 광목보다 더 아름답다구요, 보오얗게.
어머니가 그렇게 길쌈을 잘하셨습니다. 보통 사람의 2배 이상이예요, 2배 이상. 열 새짜리를 치면 뭐 하루 한나절이면 마흔 자를…. 한 필이 마흔 자예요, 이게. 하루에 여덟 시간 하게 되면 말이예요, 열다섯 자, 스무 자를 짜는 거예요. 40자가 한 필인데 그걸 이틀 이내에….
보통 사람은 이 40자를 짜려면 하루에 다섯 자씩을 해도 8일이 걸릴 것인데, 어머니는 하루 반이면 돼요. 어떤 때 바쁠 때는 뭐 하루에 한 필, 여덟 새, 아홉 새 하루에 한 필을 짜는 거예요. 그런 등등….
어머니가 그렇게 많은 베를 짜면서 다리가 부어 가지고 와 가지고는 나한테 보여 주지요. 보여 주면, `다리 안 아파, 엄마? 종일 했으니 얼마나 아파!' 하면 `아프긴 뭘 아파? 그거 안 하면 어떻게 하노?'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다리를 보여 주며 `자, 이거 봐라' 해서 만져 보니까 다리가 쑥 들어가던 일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가지고 그걸 탄하지 않고 자기의 몸을 이기고 수고하던 그 어머니의 모습, 그런 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한 부모….
그렇기 때문에 그 부모를 중심삼고 모든…. 멀리 가면 갈수록 제일 그리운 것이 어머니예요, 어머니하고 그다음엔 자기가 놀던 형제들, 그다음엔 누이동생들, 자기가 몹쓸….
우리 누나가 있었어요. 손 위의 누나가. 나보다 두 살 위의 누나, 두 살박이 터울인 누나가 있었는데, 이 누나는 나를 참 사랑했어요. 누구보다도 사랑했다구요. 내가 무엇이 없어서 야단하면 자기…. 처녀 때는 그렇잖아요? 시집가기 전에는 말이예요, 요만한 보따리들을 다 갖고 있다구요. 여러분도 그랬어요? 그 보따리를 가지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나 무엇이 필요해' 하면….
엄마보고 뭐가 필요하다고 잉잉거리면 엄마가 매일같이 그걸 준비하나요? 그러면 이 누님은 가 가지고 보따리를 뒤져 가지고 나를 불러다가 `야야, 여기 있다. 여기 있다' 그러던 그 누나 생각…. 그런 모든 것이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엉클어진…. 그거 잊을 수 없는 것이예요. 요즘과 같이 이렇게 나이 많은 것보다 어렸을 때 그 모든 인상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자,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격 소양을 중심삼은, 자기를 키워 나가는 데 있어서의 정서적인 면이나 생활적인 면이나…. 전부 다 배우는 것 아니예요?
한국 사람 하게 되면, 한국 사람 옷을 말하자면 뭐 딴 데 가서 배우나요? 고향에서 다 배우지 않아요? 어떻게 입고 뭐 어떻게 하고 말이예요. 뭣이 좋고 나쁘고 다 배우는 거예요. 그다음엔 생활하는 모든 것, 어떻게 사는지 전부 다 배우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보게 될 때, 그 모든 전부가, 정서적인 배경이 깊어질 수 있는 모든 인연을 갖고 있고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생을 두고 볼 때, 그렇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서적인 것 가운데 제일 잊혀지지 않는 건 어머니한테 칭찬받은 것보다도 매 맞은 거예요. 잘못해서 매맞은 건 당연하지요. 이건 뭐 잘못도 안 했는데 매를 맞았다 이겁니다.
우리 성격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까닭없이 이랬다가는 일보도 양보를 안 합니다. 또 우리 어머니 성격은, 나를 낳아 놓은 어머니 성격이 뭐 나한테 지고 싶겠어요? (웃음) `요놈의 자식, 무슨 말대꾸야? 이거 하랬는데 뭐 이건 안 하고…' 한다구요. 그러면 `이거 안 됩니다' 하고 맞서요. 맞서게 되면 한마디 해서 안 듣고 두 마디 해서 안 듣고 세 마디 해서 안 들으면 이놈의 자식이 에미 속을 이렇게 썩인다고 그러던 것이 눈에 선해요. (웃음) 지금도 선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반항해요. `엄마는 언제나 그래, 언제나. 왜 그래? 엄마가 남의 엄마야?' 그러거든요. (웃음) 그런 것이 뭐…. 지금도 그런 고향에서의 인상적인 과거시대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 가지고 이놈의 자식 안 되겠다고 그저…. 그럴 것 아니예요? 나이 어린 애가 가만 놔두면 버릇이 없어지고 그러겠으니 교육삼아 가지고 한번 기합을 줘야 되겠다 하고 냅다 갈겨대야지요. 그러면 나 하나도 잘못 안 했다고…. 우리 성격이 얼마나 거세나요? 잘못하지 않은 데는 일보도 양보 안 한다구요. (녹음이 잠시 끊김)
뭐 그동안 어머니는 어땠겠어요? `아이구, 내가 잘 때려서 너 쓰러졌다'고 생각하겠나요? `아이구, 큰일났다!' 해 가지고 울고…. 알고 보니까 울고불고 야단하고 말이예요, 형제들 붙들고 `야야, 잘못했다' 이러면서 눈물 흘리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잘했구만! 잘했어' 그랬어요. (웃음) 그 말 들으니까 나쁘지 않더구만, 그게. (웃음) 그때서부터는…. 뭐 열두 살쯤 돼 가지고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거 안 되겠습니다' 이러면 벌써 알아요. 그런 얘기가 참 많지요. 그런 얘기 많다구요. 그런 것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 내가 어느 방에서 어디 앉고, 어머니는 얼굴이 어떻고 이러던 것, 선해 가지고 그 느끼던 사실…. 지금 와 보니 그것이 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하나의 중심으로 남아진 사실을 볼 때, 그것은 일반사람들이 싸움하는 것이 아니예요. 여기에는 정이 교류되면서 자기 일가를 생각하고, 자녀를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이 거기 꽂혀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이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할 때는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운지 말이예요. 그렇다구요.
그래, 어머니는 나쁜 것? 「좋으신 분」 어머니는 좋은 분이예요. 잘생겼든지 못생겼든지간에 어머니는 좋으신 분입니다. 물론 나쁜 부류도 있겠지요. 요즘에는 애기를 팔아먹고 뭐 그런 것도 있잖아요? (웃음)
이렇게 볼 때에 좋았던 일보다도 자기가 잊을 수 없었던 그런…. 매를 맞고 이러던 추억이 남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집을 중심삼고 이웃 동네와의 관계, 이웃 동네 고향 마을 있잖아요? 거기에는 친구도 있고…. 거기 마을 가운데는 전부 다 문씨만 사나요? 다른 성이 들어와 가지고 이씨도 와 있고, 김씨도 와 있어요.
이러면 말이예요, 고향 어른들이 전부 다 텃세를 하는 거예요. 동네에 자기네는 사촌·오촌·칠촌 많지만, 외로이 혼자 들어와 사는 김씨면 말이예요, 그 한 집안밖에 없거든요. 이러면 동네에서 뭐 어떻고 어떻고…. 자기네들은 사돈팔촌까지 나누어 쓰면서 말이예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안 빌려 주거든요. 그런 뭐가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난 못 견뎌요.
이래 가지고, 거 왔다 가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가 안 빌려 주면 내가 메어다가라도 갖다 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잘 못사는…. 남의 문중에, 자리잡고 있는 문중에 지나가는 손님이 들어와 사니 잘살 리 만무하거든요. 뭐 천대를 하고…. 이런 일은 못 견디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라던 그 모든 사실…. 아하! 그때 그 마음의 바탕이 오늘날 내가 이 통일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교육의 한 판도였구나 하는 사실들….
이렇기 때문에 고향은 자기의 잊을 수 없는 교재요, 심정 가운데 남겨진 박물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그래서 고향을 잊을 수 없어요.
과거의 사연은 자기를 어떤 목적으로 끌고 가게 했던 것들
서울에 처음 오니까 환경이 얼마나 다른지, 자기 고향에 살던…. 정주로 말하면 정주는 시골이지요. 그 환경에 있다가 도시로 들어오니 이거 얼마나 다른지 180도가 달라요. 또 얼마나 범위가 넓은지, 거기에 박자를 맞추면서 지내던 모든 사실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고향이 그리운 것이 말이예요, 그거 뭐 말할 수 없어요. 가게 되면 내가 이거 이거 하던 것을 다시 한 번 해 봐야 되겠다 하는 것이 많거든요. 그런데 첫번 여름방학 때 고향에 안 갔어요. 그리운 것을 극복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때부터 도 닦는 길이지요. 얼마만큼 간절한가…. 방학이 그때 한 달쯤 되는데 말이예요, 한 25일쯤 되면 고향에 가고 싶은 것보다도 이제 친구들이 돌아오는 거라구요. 그 친구들이 돌아올 텐데 그들이 돌아와 가지고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나 하는 게, 나는 고향에 못 갔으니까 그게 궁금하다구요. 그래서 이 녀석들이 돌아온 뒤에 불러 가지고 너는 한 달 동안에 뭘하고, 너는 뭘했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것 이런 것 했다고 해요.
그러면 나도 그랬을까…. 이렇게 되면, 다음에 내가 찾아갈 때 나는 이렇게 이렇게 프로그램을 짜 가지고 이렇게 해야겠다, 그러면서 심각하게 혼자 나날을 보내면서…. 그때는 자취를 하는 겁니다. 친구들은 하숙방에 있다가 전부 다 고향에 갔는데, 혼자 밥 먹기가 얼마나 어색한지, 그러니 나가 가지고 자취하는 거예요. `자취도 해 보자.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이러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내가 20대 전후한 그때에 있어서 서울만 해도 추웠어요. 보통 영하 17도예요. 한강이 안 언 때가 없었어요. 그렇게 추웠다구요. 그런 때에 자취하면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가지고 쭉 물을 쏟으면 그 두레박 쇠에 손이 얼어붙어요. 그러면서 방에 불을 안 때고 사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때 모본단 포대기를 깔아 놓고 쭉 자고 일어나면 짝짝 판이 박힌다구요. 그러면 그 판 박힌 것이 보통 때는 안 진다구요. 이게 6개월도 가고 그래요. 그게 인상적이예요. 그게 다 추억에 남아요.
하도 추워 가지고 전구를 켜 가지고 화덕같이 끌어안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자다가 전기에 데어 까풀이 벗겨진 것, 그런 것이 다 인상적이예요. 그래, `서울' 하면, 그때 사실 내가 그랬지 하는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목욕탕에 들어가서 쓱 씻게 되면 `아, 그 시절…' 하는 것이 기억에 나요.
그때 내가 매일 일기 쓰던 것이 있으면 지금도 상당히…. 금은보화를 주고도 살 수 없을 거예요. 산을 더듬으면서, 마을 마을을 더듬으면서 그 자라던 시대의 심정세계를 그린 재료를 일본 형사들한테 끌려 다니면서 다 불태워 버렸다구요. 그런 여러 가지 사연이 많지만, 그 사실들이 결국은 자기라는 인간을 어떤 목적으로 끌고가는, 그 과거에 하나의 남겨진 유물이었더라!
지금도 그래요. 내가 서울 흑석동에 있었는데 옛날 생각을 가지고 몇 번씩 가 보았어요. 그런데 서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 흑석동에 한번 들어가면 자연 풍경도 있고 말이지, 추억 가운데 인상지어져 이렇게 흐르던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 가지고 가 보고는 낙심을 한 거라. 야, 이거 뭐 발전한 것도 좋고 이렇지만 이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옛날을 더듬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높은 산에 올라가 보니 상상도 할 수 없더라구요. 얼마나 들춰서 파 가지고 집들을…. 옛날에는 그 산골짜기가 깊다고 했는데 어떻게들 다 메우고 집들을 지었는지, 삭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 옛날에 있던 집을 찾아 봤어요. 찾아가서 집을 보니 알 수가 있나요? 가만히 이것 보고 저것 보고 이것 보고 저것 보니까 생각이 나더라구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을 잘 보존해야
자, 이렇게 볼 때, 고향에 찾아오게 될 때 옛날에 그런 것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반가운 것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나라를 떠난 대한민국 사람이 영계에 갔다 할 때, 찾아오게 되면 그런 것이 필요할 거라.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이 필요한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데 옛날 살던 흑석동 집을 그 모습 그대로 어디에 모형이라도 만들어 놓았으면 얼마나 반갑겠어요? 이건 이렇고 요건 요렇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잊을 수 없는, 뜻있는 물건은 추억으로 남기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의 요구다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정서적인 인연을 갖고 사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런 추억의 자료와 더불어 재차 자극을 느끼면서 더더욱 발전할 수 있는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런 것을 여러분 가문이면 가문에 남겨야 된다 이거예요.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이 협회장님 보게 되면, 이 사람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그럴 때는 소양이 덜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말씀한 것 요즘에…. 선생님이 김영휘에게 맡겼으면 그거 다 불살라 먹고, 유광렬이에게 맡겼으면 다 불살라 버렸을지 모른다구요. 보따리 지고 다니면서 하꼬방에 사는데 지나가는 사람의 담뱃불 하나면 다 태워져 버린다구요. 그럴 수 있는 보고의 재물인 줄을 모르더라구요. 잠을 어떻게 자요? 응? 「저는 좀 다를 겁니다(유광렬사장)」 (웃음) 뭐야? 「저는 조금 다를 거라구요」 뭣이 조금 달라? 「사람이…」 사람이 다르긴 뭐가 달라? 그걸 어떻게…. 이 사람들이 전부 다 한 5년 걸렸지? 선생님 말씀집 만드는 거 한 5년 걸렸지? 「예, 본격적으로 한 건 한 3년 걸렸습니다(유광렬사장)」 아, 글쎄 5년 걸렸지, 내가 알고 있는데. (웃음)
협회장은 돈 쓴다고 이래 가지고 `돈쓰고 뭐하러 할꼬?' 그렇게 생각했지?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웃음) 그러면 자기가 일년쯤이라도 돈을 협회에서…. 선생님이 돈 내겠다고 하면 돈 내지 말라고 하겠다고 그래야 할 텐데 눈 딱 감고 `좋구만! 선생님이 다 대 주니…' 그러고 있어요. 돈이 얼마나 들어갔어요? 일년에 한 5억씩 주었지? 저 편사부장인지 편사 무엇인지…. 편사 뭐인가? 「위원장」 위원장인지 뭔지, 장이 많구만. (웃음)
그래,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그리워 가지고 청파동 교회, 옛날에 청파동 교회에 있다 외국에 갔다 와 볼 때 청파동 교회가 이렇다 할 때 그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반가워요, 다 없어진 것이 반가워요? 「남아 있는 거요」 마찬가지예요.
역사의 유물이 필요한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그걸 찾아갈 때 많은 깨우침의 보따리를 가지고 찾아오면 거기에 비례해서 이 가치가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위인들의 유물, 위인들의 유물이란 게 별 거 있나요? 다 그렇고 그런 건데, 위인의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가 옛날에 지녔던 물건, 관계됐던 물건도 비례적으로 높아지는 것 아니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 선생님의 고향에 한번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가고 싶습니다」 `못 가, 못 가. 내 승낙 없으면 못 가' 이래 놓고 죽었다 할 때, 여러분 가겠어요, 못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못 간다고 한 선생님의 말을 절대적으로 들어야 될 것 아니예요? (웃음) 그럴 때는 못 간다고 한 말이 틀린 말이예요. 틀렸을 때는 가도 괜찮다고 판정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재료는 그런 의미에서 좋을 수 있는 길을 가야겠다 할 때는 그 길을 가려 가야 되는 거예요.
그럼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의 박물관이 있어요? 내가 산 박물관이지요, 산 박물관. (웃음) 선생님이 한 일, 이걸 보면 우리 협회에서 할 일이 많아요. 미국에서 우리 박물관을 만들면 말이예요,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 있던 감옥도 전부 다 해 놓고 수난부…. 수난부, 수난기록부 할 때는 거기에는 이북 형무소로부터 서대문 형무소, 미국에 있어서의 형무소까지 전부 다 찾아가 가지고 `몇 호실' 해 가지고 사진 찍어 가지고 다 비치해야 할 텐데, 사진 있어요? 그것 내가 해야 되겠구만.
윤박사도 재료를 모집하면서도 그런 건 생각이 없더구만. 「하고 있습니다」 뭘 하고 있어? 하고 있는 것이 뭐야? 옛날에 한국의 이름 있는 사람들 유물을 찾아다니지, 선생님 유물을 찾아다녀? 할 게 뭐야?
필요한 거예요. 누가 그것을 많이 갖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선생님이 박물관에 갖다 놓지 못할 그런, 국가의 박물관에 못 갈 그런 중간 패들이 많거든요. 그런 것을 갖고 있는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통일교회 사람들에 대한 마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그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통일교회 역사를 한번 보고 싶다 할 때는 어디로 데려가야 하겠어요? 박물관으로 데리고 가야 되겠지요? 「예」 하나님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도 어렸을 때 사진 보고 싶지요? 사진 보면 어때요?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코를 흘리고 뭐 똥을 싸고 이래도 `야, 이거!' 나쁘지 않거든요. 그렇게 자라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 나도 어렸을 때는 같구나' 하는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같은 사람이었구만' 하는 걸 알 수 있는 거예요. 어머니가 필요했고, 누나가 필요했고, 오빠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냐? 또 넘어와서는 동네 사돈의 팔촌, 나라가 필요한 같은 사람이다 이거예요.
이렇게 되어야지, 특별한 사람은 다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나도 그렇습니다. 문선생 자신을 보고 여러분을 보게 되면, 선생님을 특별하게 생각하지요? 사는 데는 특별하지 않아요. 우리 어머니도 필요하다 이거예요. 이 어머니, 색시도 필요하고 말이예요, 이거 다. 어떤 때는 이렇게 만지기도 하고…. (웃음)
내가 빨리 가야 돼요.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한정이 없겠다구요. (웃으심) 이러다 보니 옛날 과거 보따리 펼쳐 놓아야 밑천 못 구하고 망신당할 것밖에 더 있어요? (웃음)
고향은 심정적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
자, 결론은 그런 거예요. 고향은 모든, 자기가 자람에 있어서 80퍼센트의 원자재를 공급하는, 그 인격을 중심삼은 원자재를 공급하는 데 있어서 심정적 분야다 이겁니다. 심정적 분야를 중심삼고는 고향 이상, 어느 학교, 어느 유명한 대학의 어느 학박사가 되더라도 고향 이상 나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심정적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 고향에는 부모가 있고, 할아버지가 있고, 누나가 있는데 그들의 정서적 관계는 영원을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이예요. 일시가 아니예요. 죽을 때까지 그 마음에 품고 간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남편을 죽은 다음에 잊지 못하는 거예요. 일생 동안, 그 가슴에 녹아 없어지도록 품고 가는 것입니다. 아들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일족이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인 면에서 오랜 인연을 중심삼고 누구든지 살려고 하는 곳이기 때문에 고향이 귀한 것입니다. 그 귀하다는 것은 정서적인 변치 않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예」 안 그래요?
여러분들 일생을 중심삼고 볼 때, 그럼 이 일생이 중요한 것은 부모를 못 가진 사람,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은, 고향을 못 가진 사람은 불쌍하지 않느냐? 아니예요. 그건 정서적인 분야예요. 남자면 남자로서 여자를 맞이해 결혼해 가지고 사는 거기서부터 시작하지요, 심정적 생활이. 그렇지 않으면 고아원 생활이라든가 자기 심정의 세계에서 누구에게 신세를 지고 자랐던 거라든가, 그런 모든 전부가 추억의 대상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외로울 때 찾아 주고 위로하는 것이 귀하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아요?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요? 내가 지금 서울에 와 있으면서 잊을 수 없는 부인이 한 사람 있어요. 송씨 부인이라고 못사는 부인이예요. 그때 셋방에서 딸 하나 데리고 사는데, 뭐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예요. 딸 하나하고 사는데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해 가지고 겨우 밥을 먹고 사는 거예요. 그런 송씨 아줌마라고 있었어요.
이 아줌마가 말이예요,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내가 학생시절에 하숙하고 있으니까, 하숙집에서도 아침 주고 점심 주고 저녁 주면 그만 아니예요? 학생들은 그것 먹고는 배가 고프다구요. 그걸 알고 말이예요, 자기가 뭘 팔다 남으면 갖다 먹여 주려고 그래요.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자기 동생이 있었대요. 나와 비슷한 동생이 있는데 그 동생이 생각난다는 거예요. 저분이 여기 와 있는 것이 남같지 않다는 거예요. 거 아마 영적으로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지요. 이래 가지고 뭐가 생기면 자기 입에 들어가야 할 텐데 이 손이 이리 간다는 거예요. (웃음) 그러면서 늘 그 아주머니가….
내가 학생때는 늘 점심을 안 먹었습니다. 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수양하는 자들은 일생을 통해서 평상시에 수양해 놔야 된다 해 가지고…. 그때 학교 다니면서 주일학교 학생들도 지도하고 다 그랬거든요. 흑석동 교회에서도 그랬고, 서빙고 교회에서도 그랬어요.
그때는 한강이 얼어 가지고 밤에, 추우니까 강이 얼어 가지고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뺑! 지지지지지…' 그런다구요. 그러면 혼자 있으면 무섭다구요. 그런 한강을 건너 다니면서 서빙고에 있는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내가 주일학교 학생들을 잘 가르쳤지요. 지금은 얘기를 재미있게 못 하지만 그때는 재미있게 했던 모양이예요. 내가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되면 전부 다 엉엉엉엉 하면서도, 매번 울고 야단하면서도 말이예요, 한번 울었으면 기가 막힐 텐데, 그만 울게 해 주기를 바랄 텐데 또 해달라는 거예요. 따라다니면서 말이예요. 그렇게 얘기해 주고 했어요. 그러면서 다니던 일….
그런데 하루는 뭐냐 하면, 합동예배를…. 몇 시간 됐나? 한 시간 되었나? 이제 한 시간밖에 안 됐어요? (웃음) 한 시간 20분인가? 아, 20분부터 시작했는데, 20분 가까이, 17분부터 시작했는데. (웃음) 「돌아가야 할 시간이…」 아, 내가 알고 말하는 사람이야. (웃음) 아, 이래 가지고 이제 합동예배를 보는 거예요. 그때는 나도 총각시대입니다. 나는 어떤 색시를 얻을까, 하늘이 원하는 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꿈이 부풀었던 시대예요.
그래 가지고, 점심도 안 먹고 주일학교 학생들, 두 곳의 학생들을 모아 놓고 말이예요, 점심 때 선생님이 없어졌거든요. 자기들하고 같이 안 먹거든요, 점심을 안 먹으니까. 그래 혼자 가 가지고…. 옛날 모래사장, 거기에는 자갈 치는 배가 있었다구요. 여기 서울 사람은 알 겁니다, 서빙고 앞강에. 이래 가지고 못을 쳐 가지고 또 맘에 안 맞으면 빼 가지고 이렇게….
거기에 자갈돌, 모래판이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게 되면 아주 고약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갈돌 더미 사이의 모래판에 가 가지고 전부 다 모여 앉아 가지고 예배를 보고 다 그랬어요, 주일날이면. 그런데 점심때에 선생님이 없어졌다 이거예요. 나는 남이 점심 먹는데 저기 가 가지고 기도하는 거예요. 외로운 생활이 필요해요. 인간들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생활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누나도 보고 동정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정하고, 그 마음을 두고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생활을 해 가는 것이 도의 생활에 필요해요.
하나님도 보게 될 때 그렇지 않아요? 학생들이 점심 먹을 때 점심 안 먹으면 배 고픈데…. 거 왜 그러느냐? 밥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예요. 점심 먹을 수 있는 값을 쳐 가지고는 전부 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요. 그런 놀음을 하느라고….
자, 그걸 아는 이 송씨 부인이 말이예요, 몇 번 그래도 번번이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 벤또(べんとう;도시락)를, 어디 간다 하게 되면 내 벤또를 만들어 가지고 오는 모양이라. 이래 가지고…. 그것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외로울 때 방문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끼리 좋아하는 것은 다 흘러가요. 그러나 어렵고 못 견디는 자리에 찾아주고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 그것을 거기에서 배웠어요.
그 송씨 아주머니는 얼굴도 잘 못생겼어요. 궁둥이가, 허리가 꾸부정하고 이 뽈때기가 고생하게 생겼지요. 그래 가지고…. 그 얼굴 가지고 뭘 나르는 걸 보면 밉지 않더라구요. 그런 모든 정서적인 면에 관계되어 있는 것은 잊혀지지를 않아요.
자기가 거하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고향
자, 이 얘기를 중심삼고 볼 때 고향에서 떠나와 서울에 왔다면 서울이 외지예요. 그러면 평안도 정주 땅이 고향땅이 되고, 자, 외국에 나가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서울이 고향이 돼요. 서울이 고향이 된다구요. 옛날에는 서울 사람을 만나면 경기도 패, 뭐 경기도 깍쟁이 이러는데, 외국에 나가게 되면 경기도 사람이든 경상도 사람이든 전라도 사람이든…. 전라도 사람은 뭐 할라꾼이라고 해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렇지만 외지에 나가면 전라도 사람이고 뭐고 없다구요. 자기 동포라는 거예요.
동포라는 그 자체, 우리 나라 사람이라는 거예요. `우리 나라' 할 때는 엄마 아빠 형님 누나 다 들어가거든요. 엄마 아빠를 좋아하고, 엄마 아빠가 같은 환경에…. 모든 풍습도 같고, 생활환경이 같은 거기서 사는…. 그때는 연장된 형제와 같이 생각한다구요. 전라도 사람이라도 어려움이 있으면 말이예요, 내가 누나를 도와주던 마음같이, 딱 그렇더라구요.
이게 이게 더 멀어져 가지고 땅끝에서부터, 또 이게 멀어져 가지고 영계에 갔다 이거예요, 영계에. 여러분이 영계에 갔다 할 때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어디를 그리워하겠어요? 이 지구성. 이 영계에 가게 되면 말이예요, 몇천 년 전에 산 영인들을 만나요. 어느때 사람이냐고 물어 보면 당신들은 모른다고 합니다. 모르지요. 몇천 년 전 사람을 알 게 뭐예요? 그러면 어느 지역이냐 하고 물어 보면 아시아 지역이라든가 뭐 이런 것을 그래도 그들은 알고 있다구요.
영계도 마찬가지예요.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이 고향이 있다 할 때는 영계가 고향이겠어요, 지구성이 고향이겠어요? 영계에 살면서도 고향이 어디냐 하고 묻게 된다면 지구성이라고, 지구성 어디라고 얘기한다는 거예요. 이걸 볼 때에, 거 왜 그러느냐? 지구성이 자기 고향과 얼마나 멀어요? 부락으로 말하면 뭐 수백만 개 가운데 하나밖에 안 되는데 그걸 다 포괄하고 있는 지구성이 내 고향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왜? 자기 나라라는 말,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예요.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문씨를 사랑하는 것이예요. 여러분들 문씨 종족들은 다 반갑지요, 어디 가면? 무턱대고 김해 김씨면 김해 김씨가 아무리 너저분하게 많더라도, 어디 외지에 나가서 김해 김씨끼리 만났다면 백 퍼센트 하나는 살인 강도고 하나는 무슨 강도인데 이런 사람들이 서로 만났다 하더라도 믿는다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 「예」 거 왜? 정서적인 거리가 동위권에 섰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영계에 가서 자랑할 것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딴 거 없어요. 돈 잘 쓰고, 문총재가 영계 가 가지고 `너 지상에서 뭘하다 왔느냐?' 하고 하나님이 묻는다면 아이구, 내가 돈 가지고 잘 쓰고…. 돈 많이 썼지요. 돈도 많이 쓰고 있잖아요. 뭐 어떻고 어떻고…. 그거 다 문제가 아니예요. 얼마만큼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았느냐 이거예요.
부모와 같이…. 열 자식을 가진 부모가 있다면 그 열 자식이 동서 사방으로 사는 그 나라는 가까운 거예요, 먼 거예요? 부모의 마음 가운데는 가깝다는 거예요. 미국이고 어디고…. 소련에 가 있으면 소련이 공산당 주체국이고 말이예요, 이북에 가 있으면 이북이 공산당 주권국이라 해도 그곳이 멀지 않아요, 멀어야 할 텐데.
그렇기 때문에 환경적 국가의 형편, 문화의 배경, 사회적 체제에 상반되는 입장을 극복, 초월해 가지고 정서는 통일적 감정으로 움직이는 걸 알 수 있어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원수시할 수 있는 환경에 있지만 자기 아들이 저기에 묻히게 될 때는 그 나라가 원수의 나라가 아니예요. 그 아들을 위하게 될 때는, 아들이 거기에 신세를 지고 살 때는 그 공산당 국가도 밉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것 이해돼요?
마찬가지로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세계 인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그 인류들이 가 사는 곳이 좋다는 거예요. 앞날에 영계에 간다 할 때 그 모든 인류들이 자기를 대해서 자식들이 부모를 위하듯이 `아이구 당신!' 이렇게 환영할 것이 아니냐.
내가 만약에 영계에 척 들어가 가지고 눈 감고 갈 데가 없어서 주저하게 된다면 누구, 보는 어느 나라 사람이…. 영계는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누구 보고 싶다 하게 되면…. 그러니 여러분 정신통일이 필요해요. 영계에 가게 된다면 마음과 몸이 박자가, 뭔가 텔레파시, 그게 맞아야 돼요. 전파로 말하면 삐― 하고 라디오 전파가 맞으면 소리가 나잖아요? 그와 같이 딱 자세를 갖추면 누구를 보고 싶으면 대번에 나타나는 거예요.
어떤 모습으로? 친하면 친한 모습을 하고, 원수면 원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제일 잊을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런 세계니만큼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연되었던 사람들을 중심삼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했다 할 때에 영계에 간 모든 위함을 받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다 나를 옹위해 가지고 환영할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거기는 국가가 없어요. 국가는 하나예요. 여기서는 영국·불란서·이태리·독일 등이 있지만, 하나예요. 하나라구요. 그건 다 잊어버려요. 다 없어지고 최후에는 정서적인 추억의 기준만이 남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해
그래서 고향을 사랑하듯이…. 왜? 고향에는 자기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주체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형님이 계시고…. 형님이나 동생이 어디 이남 갔다면 잊어버리나요? 사랑하는 동생 어디 갔나 하지요. 여러분은 잊어버려요? 누나가 어디 갔다 해도 다 잊어버리지 않아요.
나도 그래요. 지금까지 나같이 형제들 앞에 책임 못 한 사람이 없지요. 다 잊어버리려고 애썼으니까. 남들은 기억하려고 애쓰지만, 나는 잊어버리려고 애쓴다구요. 왜? 아벨보다도 가인적인 전체를 사랑하고 아벨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원리의 길이기 때문에.
지금도 내가 하나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감옥에 있을 때 우리 누이동생이 돌아갔다구요. 어머니가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기 힘들어서 우리 이모가 와 가지고 아이구, 형님은 아기도 많고 이런데…. 그 이모는 딸이 없다구요. 그래 `제발 우리한테 딸 하나 주시오. 내가 길러서 시집까지 다 보내 줄 테니까' 이래 가지고 평양의 우리 이모네 집에 갔다구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동생이예요. 이래 가지고 동생을 보내 놓고 내가 울던 생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거 보면 형제가 그렇게 좋은 모양이지? 그래 가지고 내가 서울 왔다 갔다 할 때는 그 이모네 집에 들러 동생을 만나 가지고 얘기해 주고 말이예요, 만나면 참 눈물이 어려 가지고 얘기하던 것이 지금도 추억에 남아요. 그렇게 사랑하던 누이동생이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병도 무슨 병인지 모르게 슬슬 아프다 돌아갔거든요. 그것을 옥중에서는 몰랐다구요. 그런데 한번은 쓱 영적으로 나타나 가지고, 흰옷을 입고 인사를 하더라구요. 나는 이렇게 됐다고 말이예요. 그때가 영계에 간 날이었던 모양이지요? 예쁘장하게 생겼던 누이동생인데. 그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정서적인 추억의 내연이라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는 힘이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사랑에서 나서 사랑을 중심삼고 살게 마련이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생애에 모든 추억의 감성을 되돌아 생각하게 될 때에 사람은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영계에 가서 높은 자리에 가고 싶은 사람은 그 누구보다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되라구. 부모의 마음과 같이, 부모의 몸과 같이….
빚 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빚 지우는 사람이 되라
내가 밥을 잘먹고 잘산다고 편안히 생각하지 말라구요. 남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볼 때 `저 집이 우리 빌딩이다'라고 자랑하지 말라 이거예요. 그 집이 눈을 부릅뜨고 `이놈의 자식, 너희가 빌딩을 지을 때 국민을 전부 다 착취하고 나라를 전부 다 기만해 가지고 네 멋대로 해 가지고 지었지? 이놈의 자식아!' 한다는 거예요. `이 고얀지고' 한다구요.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같은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 많이 노력했어요. 일년 동안에 돈을 수천억을 썼어요. 어디에 썼는지 모르지요. 교수님들에게 작년 일년에 한 백억 가까이 썼을 거라. 그렇게 쓰다 보니 돈이 어디로 다 도망갔는지 모르겠어요.
이러다 보니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들도 한 3천 3백 명이 미국 데려가 달래요. 중고등학교 교장선생 한 사람 갔다 오는 데 한 2백만 원 든다면 말이예요, 2백만 원에 중고등학교 교장 한 사람씩 산다면, 협회장! 사야 되겠나, 안 사야 되겠나? 사야 되겠어, 안 사야 되겠어? 「사야겠습니다」 협회장 집을 팔아서라도 해야 되겠나, 안 해야 되겠나? 다리 하나 잘라서라도 해야 되겠나, 안 해야 되겠나? 「해야 되겠습니다」 (웃음) 그거 아주 실리적이예요, 실리적.
아, 2백만 원이야 어디서 벌면 생기는 거지요. 그러나 중고등학교 교장선생 하나 되기가 쉬워요? 값으로 치면 몇천만 원, 몇억원 밑천이 들어갔지요. 2백만 원도 안 들어가 가지고 전부 다 갔다 와서는 문총재가 자기 할아버지보다 더 고맙다고 이래 가지고 치하가 대단하다구요.
통일교인들은 말이예요, 내 생일날 예물도 하나 안 갖다 주더구만. (웃음) 생일 지냈나, 안 지냈나? 지냈어, 안 지냈어? 「지냈습니다」 지냈지. 요전에 말이예요, 종교협의회 중진들을 미국에 데리고 갔다 왔는데, 그 패들이 말이지요, ―나 처음 봤어요― 금소를 만들어 가지고…. 금으로 황소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크지는 않아요. 황소를 큰 것은 아니지만 만들어 가지고 그다음에는 구루마를 만들고 거기에 짐을 실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돈 짐이예요. 돈을 가득 싣고 황소가 이러고 문총재한테로 간다 그거거든요. 그거 생각만 해도 통일교회보다 얼마나 근사한지 모르겠어요.
거 갔다 온 사람들이 이마를 맞대고 얼마나 연구를 했겠노? 갑론을박하면서 당신 아이디어가 좋고 내 아이디어가 좋고, 전부 다 이러면서 얘기했을 거 아니예요? 그래 가지고 총회에…. 그것이 근사해요.
여러분 총회에 대해서 한번 그런 생각 해 봤어? 선생님이 좋아해요, 나빠해요? 「좋아하십니다」 생일밥은 공짜로 얻어먹고? (웃음) 뭐 그렇다고 내가 생일밥 해 달라는 것도 아니예요. 지나간 역사가 그렇듯이 여러분도 흘러가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거예요. 주고받아야 돼요. 정서적으로 주고받아야 돼요. 받는 사람은, 빚진 사람은 종이 되는 거예요. 주인이 못 돼요. 절대 빚지는 사람은 주인이 못 돼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신세지겠다는 사람은 통일교회 저 끄트머리를 따라다니고, 언제나 얼굴을 숙이고 사는 사람이 돼요. 통일교회에 신세를 지우는 사람은 전부 다 선생님 앞에서 얼굴을 쑥 내밀 수 있는 거예요. 거 왜? 통일교회를 선생님같이 사랑했다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디 가든지 나는 그 동네에서 제일 높은 데를 찾아가요. 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이 동네에서 살고 간 모든 영인들이 이 동네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내가 여기 왔으니 사랑하던 선령들이 있거든 내가 이 동네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내가 여기 왔으니 사랑하고 싶은 그런 마음 앞에 다리가 돼 줘'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자기보다 사랑하는 양(量)이 말이예요, 높이가 높지 않아 가지고 낮은데 `사랑해 주려 하니 도와줘' 이렇게 되면 도와주겠나요? 못 도와준다구요. 그렇지만 높은 자리에 서 가지고 `선한 영들이여, 내가 높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이 동네를 축복하려고 하니 도와줘' 하면 후루룩 한다는 거예요. 복을 빌면 복을 빈 것이 그 땅에 심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동네에 좋은 선생이 오기를 바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 고을에 좋은 도지사가….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그런 심정을 중심삼고 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부모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높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있어서 만민을 걸머쥐고…. (마이크에서 떨리는 소리가 남. 웃음)
말하지 말라고 그러나, 말을 더 하라고 그러나? (웃음) 그런 걸 생각해야 될 거 아니예요? 문총재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행동은 저렇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지. (웃음)
본성은 쓱 손을 벌리고 `내 품에 이 밤을 잘 자시오' 할 수 있는 할아버지 마음, 어머니 아버지 마음,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심각히 잠자리에 들어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될 때, 거기서 살다가 간 선한 영들이 볼 때 눈물 짓겠어요, 안 짓겠어요? 안 지으면 조상 죽은 뒤에 손님이 오거든 `아이고, 아이구' 그렇게 울기라도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벼락이라도 맞는다는 거예요, 안 울고 있으면.
지금 내가 세계를 대하면서 그래요. 세계를 다니면서 그런 마음을 가져요. 1965년에 미국 땅에 내리게 될 때 `이 땅을 디디는 문 아무개는 이 땅을 찾아왔던 과거의 손님과 달라. 나는 빚을 지기 위해서 오는 사람이 아니야. 빚을 지우기 위해 오는 사람이야. 부자 나라인 미국에 온 사람들은 전부 다 돈을 바라고 왔지만 난 돈을 바라지 않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한 거예요.
그 땅의 산수들은 그걸 안다는 거예요. 변치 않는 산이나 변치 않는 자연은 안다는 겁니다. 땅은 아는 거예요. 디디는 땅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이겁니다. `내가 이 땅 위에 너희들이 바라던, 역사상의 어떤 누구보다도 어버이 심정을 가져 가지고 제일보를 디디니 슬펐던, 요사스런 모든 과거사를 잊어 버리고 나와 더불어 오늘부터 새로운 세계로 출진할지어다!' 이러면 말이예요, `와―! 아멘'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모르지요? 여러분은 그걸 몰라요. 그러나 자연은 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게 되면…. 뭐 목사들 말이예요, 목사고 무슨 기독교를 잘 믿고 이런 사람들 도적놈 심보 가지고 `좋은 것은 다 가져 와' 이래 가지고 천국 가겠어요? 천국이 그런 것이 아니예요. 천국은 위해 살던 사람들이 가는 거예요.
천국에서 넘버 원이 되는 사람
자, 그러면 저나라에 가서 `아! 우리 천국에 있어서, 영계에 있어서 역사 이래 찬양하고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할 수 있는 제일 넘버 원이 누구겠느냐? 죽어간 영인들, 조상들을 위해서 그들의 한을 풀어 주려고 하고, 이 땅 위의 현재의 곡절을 책임지고 풀어 주려고 하고, 앞으로 후대 후손들 앞에 한스러운 것을 남겨 주지 않기 위해서 내 시대에 사랑을 중심삼고 청산짓겠다고 동서남북을 개의치 않고 몰리고 쫓기면서 쉬지 못하고 밤잠을 못 자고 살다가 쫓겨 왔다 하더라도, 그런 양반이 저나라의 모심의 중심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은, 틀림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여러분 욕심 많은 여러분 심보를 중심삼고 현재 입장에서 비판해 가지고 그거 틀릴 것 같소, 맞을 것 같소? 「맞을 것 같습니다」 맞지는 않고? (웃음) 「맞습니다」 맞을 것 같다니까 조금 낫지. 아니라는 것보다는 낫지. 그걸 알아야 돼요.
영계에 가 가지고 `오호― 이!' 하고 소리 지르면 벌써 안다는 거예요. 저거 무슨 소리구만, 어떤 녀석의 소리로구만 하고 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화음을 갖춘 그런 주인공이 되어서, 그런 공을 지닌 사람이 되어서 `오호― 이!' 하게 되면 구름떼같이 밀려 온다는 거예요. 그런 세계가 여러분 앞의 영원한 생애노정에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인격을 찾아…. 또 무한한 세계를 여행하면서….
별나라 가고 싶지 않아요? 수천억이 되는 별나라가 우리의 활동무대예요. 그러면 무엇을 갖고 갔다가 돌아오게 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예요. 그들이 그리워서, 못 견디겠어서 멀리 가지 못해요. 그 심정의 모체와 같은 그런 것을 중심삼고 확대되었다가 돌아와도 피곤하지 않아요. 가더라도 돌아올 걸 생각하면 피곤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아내를 먹여 살리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천리길을 돈벌이를 떠날 때, 무한히 어려움이 많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할 때 넘어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무한한 세계로 활동무대가 확대되더라도 피곤치 않게 자유자재로 갔다왔다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
인생살이가 그렇지 않아요? 자고 깨고, 가고 오고, 좋고 나쁜 것 아니예요? 그거예요. 좋고 나쁘고, 자고 깨고, 가고 오고…. 무엇 중심삼고 자고 깨고, 무엇 중심삼고 가고 오고, 무엇 중심삼고 좋고 나쁘고? 여편네들이 열녀 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말이예요, 자고 깨도 뭣 중심삼고? 「남편이요」 남편 중심삼고. 오고 가도 무엇 중심삼고? 「남편」 그다음에 좋고 나쁜 것도 무엇 중심삼고? 「남편」 자기 중심이 아니예요. 남편 중심삼고. 그것이 행복한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예요.
무엇 중심삼고 주고받고 싶어요? 빵이예요, 떡이예요? 친구끼리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예요? 무엇이 좋아요? 얼굴이예요? 손이예요? 정이예요. 사랑이예요. 불행한 사람은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나 남편이 죽은 그런 아내의 입장에 서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높고 큰 것 줄 수 있게 될 때는 남편을 저나라에 가서 부활시킬 수 있는, 끌어올릴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아내가 될 수 있는 길을 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 아내를 잃고 서러워도 그걸 넘어서 아내 이상 큰 본연의 심정을 가지고 영원한 터전을 만들어서 그 세계에 가서 불쌍한 그 아내를 해방시킬 수 있는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은 얼마나 당당하겠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돈도 아니예요. 세력도 아니예요. 지식도 아니예요. 오로지 본질적으로 흘러 나오는 부모의 사랑, 본질적으로 흘러 나오는 동포애, 전부 애(愛)예요, 애.
여러분, 충(忠)·효(孝)·열(烈), 이게 유교사상인데 말이예요, 충의 중심이 뭐예요? 그 사상의 본질이 뭐냐? 사랑이예요, 사랑. 군신간의 나눠질 수 없는 사랑이 일체를 만드는 거예요. 효자가 뭐예요? 부자간에…. 어머니 아버지는 전부 늙었지만 자식은 젊어요. 나이를 생각하면 40년, 혹은 60년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하기는 예순 살에 낳으면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예요. 40년 차이가 있는 그런 상대화할 수 없는 먼 거리에 있지만, 자식이 어머니를 찾아가 가지고 그 쭈글쭈글한 어머니 얼굴에 새파란 젊은 얼굴이 가 닿는 게 보기가 싫어요, 좋아요? 흉해요, 안 흉해요?
우리 어머니 지금 나이가 몇인가? 나보다 위인가, 아래인가? 「아래입니다」 그렇지만 가짜 사랑일망정 순정을 가지고 찾아오는 남편이게 될 때 미워요, 좋아요? 「좋아요」 엄마한테 물어도 좋아해야지 뭐. 우리 엄마, 그렇지? (웃음) (녹음이 잠시 끊김)
대우주권의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어
그러면 우리가 고향 땅을…. `고향'이 오늘 말씀의 제목인데, 고향이란 제목을 중심삼고 영원히 안식해 살 수 있고, 행복의 터전을 무한한 세계에 확대했다가 무한한 세계로 축소시킬 수 있는 힘의 모체인 사랑의 왕궁이 있다 할 때 나는 거기에 가서 살고 싶어요. 여러분은? 「저희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어요. 나는 그런 본향 땅, 본향의 고향을 갖고 싶어요, 여러분은? 「갖고 싶습니다」 정말이요? 「예」 쉽지 않아요. 쉽지 않아.
여러분은 일방향성의 세계에 가서 정착하려고 할 것이냐, 사방성, 입체성의 세계의 고향에 가서 정착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의 일생에 남은 과제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본래의 심정적 도량이라는 것은 무한합니다. 동서남북 전후좌우 구형체를 확대해 우주까지도 접선할 수 있는 본바탕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이 무한히 확대하려고 그러는데, 이것이 나인데, 내 확대한 본성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확대한 사랑의 본성을 얼마만큼 협조해 주느냐 이거예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전후좌우로 뻗고 싶은 본성의 사랑의 심정권이 내 본성인데도 불구하고, 얼마만큼 내 자신이 그 힘을 주어 가지고 뻗어 나갈 수 있는 원조자가 돼 있느냐, 혹은 반대자가 돼 있느냐? 어떤 것이예요? 어떤 거예요? 「원조자요」 원조자가 될 때는 모든 우주 전체가 내 고향이 된다는 거예요. 제한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고향도 평안도 정주가 내 고향인데, 정주에서도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 한 점인데, 이것이 확대하면 무한히 커져요.
고향을 생각하듯이 삼천리 강토를 생각해 봤느냐
그러면 고향을 생각하듯이 삼천리 강토를 생각해 봤느냐? 외국에 가서 외국의 감옥에 가 있으니까 그 자리를 넘는 것을 나는 발견했습니다. 아, 감옥이 불행한 곳이 아니구만 하는 것을. 외국 감옥에 들어가 보니까 한국의 감옥이 그리워요. (웃으심) 알겠어요? 야, 이거! 그렇게 생각할 때 `감옥살이가 불행한 것이 아니구만. 그러니까 한국에서 나를 잡아 감옥에 처넣은 원수들도 사랑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자리에, 내가 여기 있을 때 그 원수가 찾아와 가지고 옛날에 한국에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은 이 불쌍한, 용서받을 수 없는 원수가 찾아왔노라고 눈물을 흘리게 될 때는 받들고 찬양하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아,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판도권 내에서 한 것이 아니구만. 천상세계의 도리를 알고 대우주권 내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볼 때에 이거 부락에서 싸우고 코피 터지고 그와 같은 것을 용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겠구만' 하는 걸 느꼈어요. 그거 이해돼요 「예」
그렇기 때문에 심정을 중심삼고 풍상을 많이 겪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 아니예요. 영계를 알고 보니 그래요. 못산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예요. 자식 하나를 위해서 억천만금, 대한민국 땅을 주고 살 수 없는 보화의 가치로써 한 달 자기 월사금을 내는 부모의 그 기대는 천지가 동화한다는 거예요. 못사는 것이 불행이 아니예요. 그런 끈기 있는 부모들의 자손을 통해, 그런 어머니들의 계통을 이은 그 후대 가운데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성자들이 태어났느니라! 「아멘」
마음의 영원한 본향을 찾아가려면
우리는 고향을 찾아가야 됩니다. 육적인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고향은 정주지만, 영적인 고향은 저세계, 하나님의 심정…. 육적인 고향은 횡적인 고향이지만, 영적인 고향은 종적인 고향이예요. 횡적인 고향을 더듬어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야 종적인 고향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구에서 사는 것도 횡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훈련장이었더라. `나 한국 사람이지만 만민과 결혼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할 때, 오색인류를 자기 누이같이 사랑하고, 자기 아내와 같이 품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하늘의 마음 아니겠어요? 고향을 추구하는….
오늘 제목이 고향이니만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육의 고향은 자기의 난 곳이지만 영의 고향은…. 그러면 이 영은 말하기를, `영적 고향은 저버리고 육적 고향인 정주에 가자' 안 그래요. 나를 다 잊어버리고, 어머니 아버지 다 잊어버리고, 우리 형제 다 잊어버려도 하나님을 사랑해라 이거예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제일 황족을 사랑하라고 영적 고향에서는 훈시하더라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마음의 고향의 복지를 찾아가야 할 인생의 행로 앞에서 탈락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고향을 넘어서, 이 나라를 넘어서, 인류를 넘어서 사랑하고 나서 하나님과 저나라의 선조들과 앞으로의 후손을 품고 사랑하며 가겠다는, 고달픈 생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높은 하늘의 고향에 있어서 주인에 가까운 자리에 머물 것이다 하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죽어 보라구요, 내 말이 맞나, 안 맞나.
나는 그걸 알았기 때문에 욕 먹는 세계…. 세계 사람한테 욕먹었지요? `세계 사람이 쳐라' 하며 간 거예요. 내가 이 횡적인 길을 바로 가야 할 텐데 사방으로 전부 다 치니까, 사방으로 밀어 치니까 `지그재그로 갈 수 없어. 쭉― 곧게 가기 위한 시련이구만' 한 거예요. 그러니까 만사가 다 해결되지, 원수도 문제가 아니예요.
그래, 횡적인 일생 행로를 거쳐 가지고 종적인 천상세계의 본향에 아버지를 찾아가 가지고 그 영원한 아버지 집에서 행복스러울 수 있는 아들 딸이 될지어다! 그런 것이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소망의 기지가 아니겠느냐? 그래, 얼마만큼 정성들여야 되겠는가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기도
사랑하는 아버님! 고향이 그립기에 그 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생애의 노정인 것을 저희들은 더듬어서 헤아렸습니다.
여기 선 자식도 육을 중심삼은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 우리 어머니 아버지 중심한 형제와 그 마을과 그 환경을 잊어 버릴 수 없듯이, 우리 본향 땅에 있어서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데에 내가 육적인 고향보다도 하나님을, 육적인 형제보다도 하늘나라의 황족을, 육적인 나라보다도 하늘나라의 왕국을, 백성을 더 생각하겠다고 하는 생활을 한 사람은 틀림없이 하늘나라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헤아려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고향은 좋은 곳입니다. 왜? 영원히 변치 않는 부모의 사랑이 깃든 곳, 형제의 사랑이 깃든 곳, 마을의 사랑이 깃든 곳, 그 누가 뭐라 해도 천년 수난길이 덮치고 또 덮치고 또 덮치더라도 그걸 넘고 나와서 또 그리워하는 것이 고향인 것을 생각할 때 사랑이 위대한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 생애에 있어서 하늘 고향을 중심삼고 가는 길 앞에 핍박이 가중되고 어려움이 가중돼도 또 살아나는 그리움의 마음, 영원한 주체 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고향의 부모를 대한 마음, 일생을 넘고 또 넘고 영원히 갈 수 있는 이런 심정의 사무침과 흠모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두 세계의 고향을 가진 행복자인 것을 이 시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가 주고 싶을 때 주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그와 같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세계를 향하여 스스로 살 수 있는 오늘의 자기 일생행로를 수습하고, 그 표준을 정해서 엄숙히 본향에, 마음 깊고 큰 그 세계에 박자를 맞추고 그 길에 협조할 수 있는 몸의 판도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부끄러운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에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끔, 그것을 염려해 스스로 하루하루의 생활을 통하여 생애의 노정, 일생의 노정을 다짐지으면서, 조여 가면서 살 수 있는 통일교회 신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70세를 맞이하여 처음 맞는 주일인 이 날에 고향을 말했습니다. 내가 나이를 먹음에 따라 고향에 가까워지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갖추어야 할 모든 준비가 미진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금후의 10년, 혹은 그 이상의 해를 놓고 온갖 충성과 온갖 노력을 가중시켜야 할 책임을 느끼면서 오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들이 이 말씀을 통하여 마음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본향을, 본성의 고향을 그리워하기에 모든 것을 잊고 넘어갈 수 있는 자랑스럽고 담대하고 강한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허락하신 그날 그 고향 땅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랑받고 환영받기에 당당한 아들딸이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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