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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토)
우크라이나의 오페라하우스에 다녀왔다. 왕궁같이 번쩍번쩍하고 화려했다.
예술의 전당보다는 약간 작은 듯 했지만, 그래도 꽤 크고 천장도 높았다.
우리는 인어공주 발레 공연을 봤는데, 정말 한마디 대사 없이 오직 발레만 하는 공연이었다.
오페라하우스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비해서는 아쉬운 공연이었다.
공연이 딱 시작되면 숨쉬는 것도 눈치보일만큼 쥐 죽은 듯이 조용해야 하는데,
웅성웅성하고 정신이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몇분 후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리도 층을 나누면 좋을텐데 1층만 있어서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중간중간 플레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몰입이 잘 안되고 뭔가 어수선했다.
나는 이것들을 모두 핑계 삼아 공연 도중에 꾸벅꾸벅 졸았다.
관중의 이런 저급한 태도 또한 공연의 급을 낮추는데 한 몫 했으리라.
그러니 사실 나는 공연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자격도 없지만..
어쨌든 갈색 유니폼과 모자를 맞춰입은 어린 남자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4/29(일)
오후 2시까지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터키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걸어 항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왠 청천병력같은 소린가. 배가 하루 지연됐다는 것이다.
항구말고는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이곳.
내일까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24시간. 몸에 남은 배터리 제로.
나는 주저앉고 싶었다. 이미 이곳까지 걸어오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렸고
더이상 무언가를 찾아 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럴 때 우리 가족이라면. 짜증을 내거나 가만히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대장님과 써니쌤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이 우리가 하루를 머물 숙소를 찾으셨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까지 보도하기로 결정하셨다.
숙소까지 약 3킬로미터, 걸어서 1시간정도 걸릴 것이라는게 우리가 아는 전부였다.
나는 1시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숫자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배낭을 들어올렸다.
대형 화물차들이 도로를 쌩쌩 달려가는데, 저 정도면 23명은 태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차로 3키로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가는길에 좀 태워주면 얼마나 좋을까.
23명의 우렁찬 감사인사를 들을 수 있을텐데. 정말 우리의 영웅이 될 수 있을텐데.
하지만 어떤 차도 우리를 보고 선뜻 멈춰서거나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어찌 이렇게들 정도 없고 차가운지.
‘나중에 길가에서 힘들게 불쌍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꼭 내 차에 태워주리’라는
다짐만 단단히 했다.
걸으며 정말 힘들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지만 언젠가는 끝날거야. 나중에는 이 순간을 추억하게 되겠지.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자주 원망하곤 했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시간에게 감사했다.
어떻게든 흘러가주니까.
내가 벅차보였는지 써니쌤께서 내 스키복 윗옷을 가져가셨다.
그러고는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주셨다.
나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는데..이렇게 나의 물건과 또 작별인사를 하게됐다.
이젠 추위앞에 꼼짝도 못하게 생겼다.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솔직히 말해서는 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 걷는데 나만 멈춰서 있을 순 없으니까.
모두 똑같이 힘든데 나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순 없으니까.
혼자였다면. 혹은 의지할 가족이 있었다면. 쉽게 포기해버렸을 일들을 이곳이기에 내가 하고 있다.
그 순간엔 죽을 것 만큼 힘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는 내가 신기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는 하루 머물기엔 너무 아까울 만큼 깨끗하고 좋은 곳이었다.
수영장도 있고, 밥도 주고. 무엇보다도 화장실에 샴푸가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숙소를 이렇게 표류 중에 만나게 되다니.
우리에게 이런 숙소를 주시기 위해 신께서 일부러 배를 지연시키신 건 아닐까?
4/30(월)
지원형님께 나의 손전등을 양도해드렸다. 가방이 조금 가벼워졌다.
숙소는 좋았지만, 걸리는게 하나 있다면 숙소 주인이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우리를 거지 취급하며, 어떻게서든 돈을 더 받으려고 하더니.
결국 우리는 나가는 길에 이 아줌마한테 발목을 잡혔다.
이불 하나가 없어졌다며 훔쳐간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작은 가방에 이불을 넣는다는 건 상식상 불가능한 일인데.
아줌마는 그냥 어떻게든 흠을 잡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아줌마앞에서 모두 한명씩 가방을 풀어 보여드렸다.
(문제는 써니쌤과 찬희쌤의 훌륭한 말솜씨로 어떻게 어떻게 잘 해결됐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갖고 있던 좋은 인상이 그 자리에서 싹 사라졌다.
바실 아저씨, 카텔리나, 올렉이 열심히 가꿔놓았던 좋은 이미지를 하루만에 이 주인 아줌마가 짓밟아놓은 것이다.
시민 한 사람의 힘이 이만큼 크다.
내가 여기서 배울 것은 이 아줌마처럼 나라의 이미지에 먹칠하지 않도록 잘 행동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더 신경써서 외국인들을 친절히 대하고, 머문 곳도 깨끗이 치워야겠다.
드디어 배에 탔다. 밤 12시에 출발하는 배에, 우리는 오후 4시쯤 올랐다.
출발하지 않는 배에 이렇게 오래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배’하면 왠지 무섭고,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배에 타자마자 가장 먼저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후 출구의 위치를 파악했다. 다행히 우리방은 바로 옆에 문이 있었다.
구명보트도 어딨는지 확인했고 사고가 나면 어떻게 이동할지 대략 상상도 했다.
그럴일 없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5/1(화)
배위에서 북공연을 했다. 그랬더니 선장 아저씨가 조종실 구경을 시켜주셨다.
원래는 아무나 안보여준다는데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선장아저씨는 리투아니아 사람이고 아버지를 따라 자신도 선장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따로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모든 기계를 컨트롤 한신단다.
어쨌든 선장아저씨는 매우 좋은 분인것 같았다.
적어도 사고가 났을 때 우리만 두고 혼자 빠져나갈 사람 같지는 않아 안심이 되었다.
5/2(수)
24시간 배를 타고, 수요일 오전 1시쯤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우리는 4시까지 더 자다가 배에서 내렸다.
오리엔트 호스텔에 도착했다.
하반하 여행을 하며 거의 9년 동안 터키에 올때마다 이 호스텔에 묵었다고 한다.
숙소까지 걸어가자 벌써 주인 아저씨가 문 앞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써니쌤과 주인아저씨가 인사를 했는데 서로 친구 같이 편해보였다.
써니쌤도 이 숙소의 방과 시설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고,
주인 아저씨도 우리 학교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듯 했다.
터키라는 먼 나라에 이렇게 아는 친구와 아는 숙소가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것 같다.
내가 나중에 슬로바키아나 우크라이나에 간다면, 미로아저씨나 카텔리나가 내게 이런 친구가 되어줄까? 적어도 그들이 한국에 왔을 때 내가 그들을 가장 먼저 반겨줄 수 있는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
써니쌤과 대장님이 제일 좋아하신다는 터키 음식점에 갔다.
수염이 길고 키가 큰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반겨줬다.
우리는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두 번 이곳에서 밥을 먹었는데,
써니쌤은 매번 주문을 따로 하지 않으시고 몇시에 몇명이 먹을지만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요리’같이 아저씨가 차려주신 음식을 먹었다.
고기 덮밥, 수프, 파스타 같은 것을 먹었는데 모두 맛있었다.
요즘 여행하며 느끼는거지만 생각보다 외국음식이 내 입에 잘 맞는것 같다.
여행 전에는 외국음식에 적응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는데,
여행와서 더 잘 먹고 있다. 물론 대장님의 훌륭한 요리 솜씨 덕분이기도 하겠지만.ㅎㅎ
어쨌든 외국 음식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후식으로 이 약과 비슷한 달달한 것을 먹었는데 정말 달았다. 최근에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달았다.
집에 사다두고 스트레스 받을때마다 하나씩 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인심 좋으신 이 식당의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아침에 조깅할 때면 식당 문앞에서 우리에게 손 흔들어주셨다. 조깅하러 갈때, 돌아올때, 잠깐 외출할때. 나갈때마다 아저씨와 인사를 건넸다.
참 좋은 길목과 식당과 주인아저씨였다.
써니쌤과 대장님이 여행하시며 이곳저곳에서 가꿔놓은 관계가 참 멋지고 부럽다.
친구, 숙소, 당골음식점 모두.
좁은 한국, 내 집과 회사 주변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 가도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멋지다.
같은 지구에 살고 있으면서도 써니쌤과 대장님은 더 넓은 세상에 살고 계신 것 같다.
어딜가든 ‘사람을 만나러가는 것’이라고 써니쌤께서 말씀하셨다.
여행하는 동안 나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끈끈한 관계를 맺어보고 싶다.
케밥을 제대로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 터키에 왔을때 조금 먹어봤지만,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판명지은 후 부터는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스키장에 케밥집이 거의 10년간 상주하고 있었는데도 그 집에서 케밥을 먹은적이 단한번도 없다.
그러나 이날은 문득 ‘왜 내가 그동안 케밥을 안먹었었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무슨 맛인지, 왜 싫어했는지도 기억이 안났다.
저녁으로 빵 안에 고기가 들어있는 케밥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어쩌면 내가 케밥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겨울엔 꼭 스키장 케밥집에서 케밥을 사먹어봐야 겠다.
5/3(목)
터키에 오기전부터 왠지 터키가 고향같고 편하게 느껴졌다. 터키에 도착하면 모든게 다 익숙하고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번 와봤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영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 터키에 방문했었다.
내 기억 속 터키는.
길거리에 고양이가 많은 곳.
개가 무섭게 짖어대며 따라오는 곳.
이상한 항아리에 케밥을 먹는 곳.
열기구가 뜨는 곳.
찜통같은 버스를 타고 하루에도 몇시간씩 이동해야하는 곳.
머플러 같은 것을 얼굴에 칭칭 감는 곳.
이런 곳이다.
나는 마침 이때 폐렴에 걸려 끙끙 앓았기 때문에 더이상의 좋은 기억이 남아 있을리는 없다.
지금 17살이 되어서 다시 방문한 터키에도 여전히 고양이와 개들이 많다.
도대체 어디서 온 애들인지 참 의문스럽다. 고양이야 그렇다 치지만, 개들까지 도로에 벌렁 누워 자는 모습은 매우 낯설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한 터키의 아주 큰 특징은
바로 단 음식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가는 길목마다 ‘터키쉬 딜라이트’라고 불리는 달달한 젤리, 과자, 빵들을 팔고 있었다.
이렇게 달달한 음식이 많다니, 터키에 대한 나의 애정이 급상승했다.
많은 과자들 중 기다랗고 안에 견과류같은 것이 들어 있는 롤이 있는데, 터키를 떠나기 전에 이걸 꼭 먹어보고 싶다.
한달 뒤 이스탄불에 돌아왔을 때, Hafiz mustafa 1864에서 당당히 이 롤을 살 수 있기를.
구질구질하게 시식만하고 도망치지 않도록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5/4(금)
5/4(금)세상에서 가장 좁은 해협이라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녔다.
이 다리의 이름은 ‘갈라타’이다. 다리를 사이로 한쪽에는 술탄아흐멧 광장(성 소피아 성당, 블루모스크)이 있는 올드시티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탁심스퀘어가 있는 뉴시티가 있다.
우리는 탁심스퀘어로 갔다.
낚시대를 잡은 사람들이 다리 끝까지 촘촘히 서있었다.
생선 비릿내가 진동했다.
뙤약볕에 몇시간 동안 서서 이렇게 열심히 낚시를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집에 가져가서 저녁으로 먹을 계획인가? 아니면 팔려고 하나?
탁심스퀘어는 한국의 명동같은 곳이다. 상점들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악마의 눈’을 다시 발견했다. 이 팔지를 한때 끼고 다니곤 했었는데, 다시 보니 또 반갑다.
터키에는 마른 빵들이 참 많다.
모든 아저씨들이 이렇게 똑같이 생긴 수레에 똑같은 빵을 쌓아놓고 판다.
가운데가 뚫려있는 깨빵 같은 것을 반으로 갈라 그속에 뉴텔라를 발라주는데, 맛있을 것 같다.
터키쉬 딜라이트를 먹은 후 돈이 남으면(?) 먹어어봐야겠다.
승환이 부모님께서 터키 아이스크림 돈두르마를 사주셨다.
이 아저씨 정말 아이스크림을 줄꺼면 빨리빨리 줄 것이지, 줬다 뺐었다, 코에 한번 묻혔다, 팔씨름까지 하고서야 아이스크림을 줬다.
아이스크림이 쫀득쫀득하다 못해 질겼다. 아이스크림을 씹어 먹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배도 훨씬 불렀다.
무사히 사고 없이 터키에 잘 도착해서 참 감사하다.
터키에서의 한달이 기대된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는 보지 못했던 터키의 많은 모습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그전에는 말이야~ 조금 늦어도 다른 아이들의 보고서보다 특별히 더 늦게 올라오지는 않았거든, 은재 보고서가. 근데, 이번 주는 평소보다 더 늦어지길래, 내심 어찌 어찌 지탱하던 체력이 스스로 배낭을 탁! 짊어지고 나서 무리가 되었나? 몸살인가? 살짝 걱정을 했었단다. 좀 전에 써니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디베이트(?) 동영상에서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열띤 모습 보면서 안심 한 번. 평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이 보고서를 보면서 한 번 더 안심!! 건강하네. ^^ 이번 보고서는 은재가 여행하며 느끼는 개인적인 생각들이 더 많이 들어 있어서 또 다른 느낌.. 좋구나~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것!’ 써니 선생님의 그 말씀은 나도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야.
학교에, 직장에 매여 여행에서 사람을 사귀고 관계를 이어갈 만큼의 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생각해 보면,
그걸 직접 경험하며, 배우고 즐기고 있는 너희는 복의 한가운데에 있는거네~!
* 갑판 위 의자에 앉아 즐거운 모습으로 찍힌 민수 사진 고마워~ 자연스럽게 사진 찍히기 어려운 녀석인데... 편안해 보이고, 즐거워보이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졌네~
* 터키를 떠나기 전에 달달한 터키쉬 딜라이트를 get 할 수 있기를~ 화이팅 !!!
은재-
다행히 몸살에 걸리진 않았어요~ 와이파이 문제로 올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멋지고 좋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인 것 같아요. 여행보내주신 부모님들께 아이들 모두 감사하고 있을 겁니다ㅎㅎ 민수는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하반하에 잘 적응해 있고, 지금은 대장님 아래에서 각종 도구 제작자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음식 휘젓는 막대기도 만들고, 윈드서핑 모형도 만들고. 요즘은 찬희쌤의 요청으로 야구방망이를 만든다고 두꺼운 나무들을 주우러다니고 있습니다.
다음번엔 민수의 작품도 사진찍어 올려야겠네요^^
@임해인 도구제작자 민수,,우왕. 너무 멋지다 ㅎㅎㅎ 민수 작품 기대기대^^
꼭 터키쉬 딜라이트 아이들에게 골고루 먹이겠습니다~^^ 은재는 사먹더라도~^^
은재-열심히 돈을 벌어서 당당히 사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ㅎㅎ
은재야, 터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구나. 맞아~ 너는 터키의 수영장 딸린 호텔에서 꼭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했었잖니 ㅋㅋㅋ 신랑신부입장은 다이빙으로 입수해서 수영하면서 하고 싶다고 했고 ㅎㅎㅎ 밤에 결혼하는 터키 풍습처럼 밤늦게까지 불빛 화사하게 밝히고 춤추면서 흥성스럽게 노는 결혼식하고 싶다고 ㅋ 달디단 디저트로 애정 지수 상승한 터키에서, 좋은 추억들을 더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외국 음식들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 다행이고 기쁘다. 터키 디저트는 견과류가 많이 들어있어서 너의 마음을 더 사로잡을지도 몰라^^
은재-
아. 생각해보니 그 진흙 수영장이 터키였네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결혼식을 몇차례씩 하려고 했었는데ㅋㅋㅋ
근데 추운데 과연 물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갑자기 걱정이 되네요ㅋㅋ 요즘 서핑하러 물에 들어가면서 약간 물 공포증 같은게 생겨서ㅋ 어쨌든 터키에 다시 돌아와서 너무 반갑고, 왠지 고향같고 그래요^^
왜 그때 왔을때는 터키쉬 딜라트를 몰랐나 몰라요.. 엄마,아빠랑 왔을때 왕창 사서 먹었어야 하는데. 그때는 뭘하고 지금 같이 궁핍할 때 이런걸 발견했는지., 터키쉬 딜라이트가 쫙 진열되어있는 가게들을 보며 내내 참 안타까웠어요ㅎ
은재야, 니가 들으면 믿을 수 없는 소식 하나를 전하자면, 쭌이 오빠가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왔단다. 놀랍지? 두 군데 합격하고 두 군데 면접을 남겨두었는데, 합격한 곳 중에 한 곳으로 정할 것 같아. 세상은 사람들마다 다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 쭌이는 쭌이의 방식대로~ 은재는 은재의 방식대로~자신의 결대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안그래도 오빠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는데. 매우 기쁜 소식이네요ㅎ
오빠! 대학입학을 축하하고. 이번엔 진짜 노력해서 합격한 거 맞지? 난 오빠가 인생에 한번쯤은 정말 열심히 죽어라 노력해서 성과를 얻기를 바래왔거든. 운 말고ㅎ 어쨌든 중국에서 나름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할게^^ 이제 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겠네?(평소에도 그랬지만ㅋㅋ) 나 대신 실컷 놀고 먹고 자고 그러고 있어. 이제 할일도 없을테니 댓글도 좀 꼬박꼬박 달아주고ㅎㅎ오빠가 하반하에서 버텼다는게 나는 실로 믿기지가 않아. 오빠가 정산을 다 포기하고 놀았다는 소문도 있던데ㅋㅋ어쨌든 날 위해 기도좀 해주라. 보고싶어 오빠.
은재양 갈수록 편해지는 모습이네요 보고서는 참 볼때마다 엄지척하게 되네요
준우도 요즘 굉장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자기 일도 잘하고, 선생님들께도 이쁨받는 모범생이에요ㅎㅎ
준우 많이 칭찬해주세요~~
오늘도 은재 보고서 재미있게 잘 읽었어. 돌아온 후에 책을 내도 좋겠단 생각. 고양이를 좋아하는 준형이의 독사진도 고맙구. 건강관리 잘 하고 다음번 보고서 기대할께 ~!! <준형맘>
은재-
보고서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주부터 준형이와 같은 정산팀이 됐어요~준형이는 항상 자기일도 열심히 하고, 마음도 순수해서 같이 잘 정산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돈 벌어 좋은 소식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ㅎㅎ
흥미지진 은재히 보고서는
마치 함께 여행하고 있는듯한 착각을
하게되넹~딜라아트 꼭 먹기.~
은재-
흥미진진하게 봐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보고서 열심히 올려서 한국에서도 저희가 있는 이 멋진 곳의 분위기와 사람들과 풍경들을 계속 느끼게 해드리고 싶네요ㅎ
댓글 읽으며 힘을 낸다는 얘기에 시간이 날때마다 은재와 대화하듯 댓글을 남겨볼게~
은재야. 해야할 많은 일들 모든 것을 다 맘에 들게 잘 할수는 없어. 사람마다 잘 하는 것은 다르고 잘하는데 필요한 시간의 양도 다르고~현실적으로 어떤 것은 힘을 좀 빼고 가야하는것도 있고. 지혜롭게 힘과 시간을 배분하는 훈련을 지금 해본다 생각하면 좋을거 같아.
많은 일들에 덜 스트레스를 받는 방법은 일을 적절하게 덜어내는 방법이지 ㅋ. 그러나 그럴수 없을때는 한정된 자원을 잘 사용하는 방법 뿐. 너의 고질적인 고민을 해결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보고서의 퀄리티가 떨어져도 엄마는 절대 실망하지 않음 ㅋㅋ
엄마 너무너무 보고싶어요. 하고 싶은 말이 진짜로 많거든요.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대며 몇시간씩 엄마와 수다를 떨어야되는데. 2주 동안 하고 싶은 말들을 꾹 참기가 참 힘드네요ㅜㅜ 할일들 빨리 빨리 끝내는게 어려워요. 사실 한국에서도 매번 겪어던 문제라 여기서 꼭 해결해가고 싶은데. 어쨌든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조깅을 할때도, 윈드서핑을 할때도, 밥을 먹을때도, 재래시장에 다녀올때도. 언제나 엄마 아빠 생각을 했어요. 엄마아빠가 왔으면 참 좋아했을 것 같거든요. 오늘은 윈드서핑을 할때 엄마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봤는데, 물에 들어가서 즐겁게 탈 것 같아서 저도 그렇게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정말보고싶어요
@임해인 우리 은재 진짜 보고 싶으다. 은재가 고군분투하는 그 모든 과정들이 이미 눈부시다^^ 너의 글로 한 편의 로드무비를 상상해보곤 하는데, 그 영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은재이고~너는 엄청나게 힘들고 눈물 쏙 빼고 있지만 이 영화는 매우 재밌고 흥미진진해. 특히 주인공이 넘 멋져 ㅎㅎㅎ 니가 주인공인 한편의 영화를 찍는 중이라고 생각해봐 ㅋㅋㅋ 풀밭에 철썩 주저앉아 있다가 엄마 생각을 하면서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 서핑을 즐기는 주인공. 가끔씩 너의 모습을 감독의 눈으로, 제3자의 눈으로, 관객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너만의 감정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새로운 느낌과 만날 수 있을거야^^ 사랑한다. 울 은재~~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 송중기 대사가 떠오른다.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제가'
송중기는 이쁜 송혜교 덕분이었는데 은재는 강인한 하반하 덕분인가?
암튼 하반하에서의 시간만큼 단단해져가는 은재 보기 좋다.
은재-
ㅋㅋㅋ사실 저도 글쓰면서 그 대사가 생각났어요ㅋ
지원형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조금씩 단단해져가는 것 같습니다^^사실 지원형님이 제 롤모델이에요. 형님은 무거운것도 번쩍번쩍 잘드시고, 운동도 잘하시고. 너무 멋있어요. 어제 축구하다가 발바닥이 조금 다치셔서 오늘은 서핑을 못하셨는데, 얼마나 슬퍼하시던지. 저로써는 이해가 안갔지만, 그래도 하나에 이렇게 열정을 보이는게 정말 멋졌습니다. 지원 형님 정말 훌륭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ㅎㅎ
엄지 척!!!
은재-
짧지만 임팩트있는 댓글 감사합니다ㅎ
정말 엄지 척인줄 알고 뿌듯해하겠습니다ㅋㅋ
이미 멋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걸~
어떤 상황에서도 그냥 지나치지않고 배우고 고쳐나가려하는 은재의 반짝 반짝하는 생각들~~
앞으로의 은재가 더 기대된다!
은재-
사실 저는 세훈이가 정말 부러워요. 세훈이는 하루하루를 정말 즐겁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 같거든요^^
세훈이처럼 즐기며 살기가 제 목표인데.. 이룰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ㅋ
은재야. 돌아올 때는 열 손가락 사이로 공기를 가득 흘려보내며 추억만 가지고 건강하게 오는 것도 멋져...짐을 하나씩 날리는 모습이 '공기 입자를 지고 입국하는 은재'를 떠올리게 하는구나...ㅋㅋㅋ. 그리고 언제든지 심호흡을 열번하는 건 참 좋은 휴식이야...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배가 불룩해지면 입술을 약간만 틔워서 10초쯤 공기를 천천히 뱉아..그렇게 10번쯤 하면 좀 달라질 걸??? 뭔지 다 내려가고 텅 빈 느낌이 들거야. 정신도, 감정도, 뭔가 거북한 음식도...너 어릴 때부터 멍 하니 숨쉬기 선수였지 아마??? ㅎㅎㅎ.
은재-
제가 이 댓글을 다신 분의 정체를 한번 맞춰봐도 될까요? 희우이모? 아니라면 죄송합니다ㅜㅜ그분을 떠올리게 하는 댓글이거든요^^ 어쨌든 심호흡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지금 댓글 쓰면서 열번 해봤는데 정말 뭔가 쑥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틈틈이 생각날때마다 하면 좋을 것 같아요ㅎㅎ
@임해인 은재야, 이분은 너의 예측대로 희우이모님이시다^^ 지난번 글에 정체를 밝히셨는데 ㅎㅎ 이번 글 댓글만 봤구나. 너의 일상이 너무 바쁘고 인터넷 이용이 자유롭지 않아 희우이모한테 소식을 못 전하겠다 싶었는데, 희우이모가 이 사이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너의 글을 찾으셨다지 뭐냐^^ 맞아맞아. 희우이모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댓글이야 ㅎㅎㅎ
살만하냐 ㅎㅎ 우리 4기들은 말이야 동남아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유럽이면 깨끗하고 좋은줄알렴 ㅎㅎ이 오빠는 인민대+상해교통대이과+상해교통대 의대붙었고 복단대 면접준비중이란다..여행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거야 가끔 힘든일도 생기고 울고싶을때도 많을테지만 고난과 역경속에서 가장 큰 성장이 일어난다는점 잊지않았으면한다. 가끔 또 댓글달아줄게 ㅋㅋㅋ 파이팅!!
은재야. 준이 오빠는 글로벌 스타일이야. 대학 가서부터 열심히 공부하는 :)
은재야. 네 글이 너무 생생하고 재미있어서 볼 때마다 시원하게 샤워하는 느낌이야. 한 가지 아쉬움은, 네 글에 종종 우리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나오는데......그건 완전히 네 오해란다. 우리도 여행하다가 힘든 일 만나면 짜증 안내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야!
By the way, 아빠가 이번에 상하이 여행하면서 “홍탕”이라는 중국 전통 민간상비약을 샀어. 배가 살살 아프거나 생리통 있을 때 직효래. 진한 각설탕 맛이야. 터키시 딜라이트 못지않게 맛있을 걸?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