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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우리가 지난 시간에 시편 68편 13절 말씀을 통해서 곧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지라도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초록빛을 띤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가 같도다." 라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이렇게
내려오셨다 라는 말씀을 여러분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상징되고 있는 비둘기 은으로 그렇게 표현되고 있는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 그리고 황금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신성한 영광을 지니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또 초록빛 감도는 황금을 통해서 신성한 생명과 더불어 영광 가운데 영원히 빛나는 하나님의 본성을 여러분들과 교제를 통해서 이렇게 나눴습니다.
13절에 너희가 양우리 사이에 누울지라도 양우리 옆에 누워 있는 너희는 누구입니까?
여기에 여인들은 교회 곧 성도들로 형성되어 있는 교회를 아주 연약한 모습을 가진
그리스도 안에 모든 믿는 이들을 상징하는 것이 남자들이 아닌 여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짝된 자 아내 된 자들 그리스도의 모든 믿는 이들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얻으신 그 승리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여인들의 큰 무리가 되었다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누굽니까 너희가 양우리 사이에 누울지라도 바로 우리는 부활의 영을 통해서
조성되어진 우리에게 부어주신 날개가 은으로 덮이고 그 깃이 초록빛 황금으로 덮인
비둘기에 관하여 우리가 자세하게 이 말씀을 깨닫는다면 너희가 누구인지를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비둘기에 은 입힌 날개 초록빛 감도는 황금 입힌 그 깃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구속을
이루신 우리들을 의롭게 하기 위하여 죽음을 통해서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 그리고
황금을 통하여 신성한 본성을 지니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13절의 깊은 다윗의 시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땅에서 그 움직이심의
시작이 장막을 통하여서 광야의 모세를 통하여서 건축하게 된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던 곳으로 하나님의 집으로써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장막이 함께 이렇게 움직이심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 실체이신 하나님의 성전이었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중심이 되신 분이 하나님의 성전이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의 영에 의하여 구원받은 하나가 되어 영이 된 우리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움직이심의 중심이 성도들로 형성된 교회라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비둘기는 하나님의 영 “은”은 구속을 우리를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신 그분께서 죽음을 통하여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황금은 바로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을 지니신 하나님에 대한 그것을 상징하는 것을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비둘기와 은과 금이 이렇게 세 분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영 하나님이신 세 분 이시면서 한 분이신 삼일 하나님을 가르킨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비둘기는 움직이는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움직이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을 상징하며 은은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을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구원이 들어올 수 있도록 의롭게 하여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소유하신 가운데 죽음을 통하여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라고 은에 대해서 얘기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 하나님의 사랑하신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구속을
성취하신 구속주 이신 그리스도가 은입니다.
은은 가장 높은 고열을 통해서 제련을 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랜 시간을 섞여진 광물을 은을 만드는 제련자의 그 눈과 손을 통해서 지켜보고 집중하고 주의하고 관심 가짐으로
말미암아 마치 비둘기 같은 성령님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만을 이렇게 주시하고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원대한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의 그분과 함께
움직이심이 그러한 세심함과 보살핌과 안내하심과 인도하심 속에서 예의주시하면서
일거수 일투족 함께 하나 되어 연합된 삶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그 은으로 상징된 구속을
성취하신 구속주 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인 은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황금 초록빛 황금이죠. 초록은 신성한 하나님의 생명 황색은 신성한 영광 그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그 하나님의 본성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죠.
많은 것 가운데 그 영광과 능력과 빛 거룩하심 이러한 것들 중에서도 황색은 특별히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인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초록빛 황금이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신성한 영광으로 빛나는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과 신성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황금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얘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세 분 하나님의 그러한 놀라우신 비둘기로 표현된 하나님구속주
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은 황금을 상징하고 있는 그 신성한 생명과 함께 영광으로 빛나는 하나님의 본성을 온전히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인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그분이 죽음을 통하여 밖으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 영 이라는 존재
안에 내주하시기 위해서 해방되셔야만 됐습니다. 유출돼 나오셔야만 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34절에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이미 죽음을 확인하고
그 죽음을 재차 확인하는 차원에서 옆구리를 찌르게 되었는데 그 찔러짐을 당하는
과정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피와 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이 밖으로 해방되어 나타나게 되신 것입니다.
그 나타나신 세 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에 부어주시기 위해서는 생명의 주가 되셔서
인정받을 수 있는 죽음과 죄와 사망을 처리하고 나오신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
곧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이 드러나게 한 부활 사건을 통하여 그 생명의 영으로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는 신성한 생명을 주는 영이 되시기 위한 부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내적인 존재인 영 안에 들어오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초록빛 황금은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 영원한 생명과 영광으로 빛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신성한 본성을 상징하고 있다 라고 얘기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세 분 하나님을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활의 영이 되신 그리스도의 영 그 세 분 하나님을 그 비둘기와 은과 금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영광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와
바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그분을 우리가 누리고,
모시고 ,내주케 하셔서 분배 받기 위해서는 그분을 우리가 받아 들여서 친히 침투되어지시고 적셔지게 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신성하고 온전하신 그 영을 우리가 부여받기 위해서는 바로 12절에 무리를 이룬
여인들이 큰 군대가 되어서 사단의 세력 곧 악한 영들 어둠의 세력들을 완전히
다 패배시켜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으신 그 승리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왜냐하면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육체가 되시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그러한 승리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그분께서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조성시켜주시고 완결되신 그 영을 그냥 소유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왕들을 이긴 자가 되어서 정복한 자가 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그 승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취함으로 말미암아 이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탈취물은 승리한 자에게는 주어지는 정복한 자 이긴 자 대적자와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 그들을 패배시키고 이김으로 말미암아 손에 쥐어진 전쟁의 결과물로 취해진
것입니다.
예전 전쟁 역사들을 보면 대적자인 그 왕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왕의 목을
베고 그 왕이 소유했던 모든 것 그게 황금일 수도 있고요,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일 수도
있고요, 그가 소유한 모든 사람들일 수도 있고요, 그에 속한 모든 것들 바로 사단에게
속한 모든 것들 사단에게 속한 모든 것이 뭐죠? 죄와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죄를 무력화시키고 사망을 무효화시킨 이러한 결과로 거두어 들인 그것이 바로
우리의 누림이 되신 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영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전부를 우리에게 분배해 주시기 위하여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 바로 그 그리스도를 이렇게 살아계시게 하기 위해서 성육신하셔서 육체가 되셔서 죽음과 부활과 승천 안에서 사단의 세력과 어둠의 공중 권세 잡은
그 원수마귀와 계속적인 싸움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이러한 싸움을 통해서 불의한 자의 모습으로 뱀의 모습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으나 의로움이 판명되고 인정되는 부활을 통하여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전능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이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실 수가 있으셔서 그리스도의 많은 형제들을 산출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이 어둠의 세력과 이 죄와 사망의 권세자인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정복하시고 왕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 왕이 얻은 전쟁의 결과물로 거둬들인 그것이 우리의 누림이 된 것인데 그것이 바로 부활의 영이신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신성한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 그런데 초록색이 감돈다 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성을 상징하는 것이 황금인데 빛나는 하나님의 본성과 영광 안에서 너무나 광채 가운데 빛나는 하나님의 본성이 초록빛 감도는 황금이라고 표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성이 신성한 생명을 탈취물로 얻으셔서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 신성한 생명과 하나님의 그 신성한 본성이 우리 안에 부어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생명 주시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수 있도록 부활을 통하여 기틀을 만드셨고 그리스도께서 거두어들이신 그 전쟁을 통하여 사단의 포로가 된 자들 그리고
사단과 사단의 세력들 그 모두를 하나님께서 사로잡은 바 되어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취하여서 가지고 가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골로새서 2장 1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래서 이 깜깜한 어둠 가운데 스올이라는 죽음 안으로 들어가셨다가 부활을 통하여
그분의 영이 우리의 영을 발아시키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일으키시는 방면이 바로 부활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침례로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침례는 물속에 침수되었다가 위로 떠오르는 위로 일으켜짐을 받는 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이 침례에 일으켜 세워지는
방면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신성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죠.
죽은 자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우리 영을 발아시키시고자 자신이 부활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셔서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죄 때문에 영 안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13절에 죽은 자라고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지라도 우리를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죽은 자인 우리를 그분이 부활하실 때 어둠과 깜깜함 가운데 무덤이라는 스올이라는 곳에 이렇게 들어가셨는데 금요일 날 돌아가셨다가 토요일 날 무덤에 계시고안식후 첫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는 우리와 함께 죽고 부활을 통해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사건입니다.
육체가 끝나는 죽음과 그리고 영이 다시 발아하는 방면 일으켜지는 방면이 침례를 통해서 보여지는 것처럼 부활하실 때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고자
하였던 그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이 바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부활로 말미암아 부활을 통하여
그것이 성취되었다라고 베드로전서 1장 3절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이미 성취된 일입니다.
“1:3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송축하리로다.
그 분은 그의 풍성하신 자비하심을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예 놀라운 말씀입니다.
아!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실 때 주님께서 가지셨던 아버지의 그 신성한 생명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부활하면서 성취시켰고 2천년 전에 이루어진 일이 이미 성취되었고 우리는 그 믿음을 통해 이것을 지금 체험하면서 이기는 삶을 계속
살고 있는 것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단과의 어둠의 세력과의 그 33년 반 동안의 생애 가운데서 특별히
공생애를 시작한 3년 반 동안의 삶에서 그 어둠의 권세자인 사단과 사단에 속한 그 악한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 그렇게 그리스도를 잡으려고 이 땅에 붙잡아 매어 두려고 애썼던
발목을 붙잡고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 그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왜냐하면 하늘로 돌아가게 되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하늘로 운반하게 되는 사건이 보여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가룟 유다를 통해서 사도 베드로 수제자를 통해서 그분을 붙잡아 두려고 애를 썼지만 죽었으나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함을 통하여 땅에 속한 사단의 손아귀에서 취하여진 그 탈취물을 모두 거두어 들이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의 표시입니다.
부활과 승천 안에서 싸움을 통해 이기셨다는 표시죠 싸움의 여러 과정 육체의 인간적인
생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통하여 부활이라는 것을 통하여 승천이라는
것을 통하여 결국 마지막 승천을 통하여 그 취하신 탈취물들을 가지고 올라가죠.
그런데 그 탈취물의 근본은 사단의 세력 안에 붙잡힌 바 된 타락한 죄인들의 모습으로
우리가 볼 수 있지만 그것은 결국은 타락한 죄인들을 의롭게 하여서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보여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해 주시고 소유케 하시고 내주케 하시고 분배하시는 사실은
세 분 하나님인 것입니다.
타락한 죄인들을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탈취하게 된 사건은 그 안에 함께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하나님의 성전이었던
하나님의 집이였던 그리스도 안에 그 세 분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움직이심의
중심이 되어서 승리하게 되고 이기게 되어서 그러한 여러 과정들을 통해서 이기고 또
생애를 통해서 이기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기고 부활을 통해서 이기고 한
그것을 탈취물로 가지고 올라가는 사건이 바로 승천 사건입니다.
골로새서2장15절에 보면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그리고 18절에 보면 “아무도 꾸며 낸 겸손과,
천사 숭배로 너희를 속여, 너희의 보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런 사람은 자기가 알지
못한 그것들 속으로 밀고 들어가, 자기의 육신적 생각에 의하여 헛되이 우쭐대면서,”
아직도 이런 울타리 안에 복종하는 삶을 삽니까 라고 하시면서 그러한 삶을 사는 율법에
매여서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의 뜻대로 따라 살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라는 말씀을
이렇게 하고 있고 또 12절에 보면 집에 머무는 여인도 탈취물인 전리품을 나누어 갖는다 라고 하시는 것은 바로 그분께서 큰 힘을 가진 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의 세력들을 전멸시키고 폐하여서 승리함으로 소유하게 된 세 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3절에 비둘기 은 입힌 날개에 황금 입힌 그 깃 비둘기는 하나님의 영이시죠 은은 바로 구속을 이루신 아들 그리스도시죠 금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 신성한 본성과 초록색 감도는 황금이라고 말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충만하고도 신성한 생명을 얘기하죠. 하나님의 신성하고도 영원한 생명과 본성을 우리에게 주시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 바로 이것이 진정한 탈취물의 그 결국인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조금 더 알기 위해서 시편68편 25절 26절 27절
말씀을 한번 읽겠습니다.
"68:25 소고 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따르나이다
68:26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서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찌어다
68:27 거기는 저희 주관자 작은 베냐민과 유다의 방백과 그 무리와 스불론의 방백과
납달리의 방백이 있도다."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라고 왜 여기에 이러한 탈취물을 이 삼일 하나님의
그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 하나님의 영 아들 하나님의 우리를 완전한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취하게 된 것이 바로 사탄의 세력이 아담을
타락시켜 범죄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오는 통로를 다 막고 단절시켰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 하여라 하면서 작은 베냐민들과 유다 방백 이렇게 쭈욱
나오고 있는데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죠.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찬양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하신 죽음에 대한 방면과 그리고 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길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그 승리와 함께 승리를 맛본 자들이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복음의 아름다운 말로 선포하고 확산하는 이러한 것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 하나님께 드린 찬양
26절에 회중들 가운데서 하나님 곧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선민
하나님의 백성들 이스라엘의 원천에서 나온 베냐민과 유다 족장들과 스불론 족장들과
납달리 족장들이라는 것입니다.
베냐민에게는 여러분들 이름이 두개 있었죠. 하나는 베노니 고통의 아들이라 칭하는
어미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내 고통의 아들 그 길가에서 요셉의 어미였던 그를 통해서
야곱이 사랑했던 그 아내가 요셉을 낳은 후에 또 길을 가던 중에 이 마지막 12번째 아들인 야곱이 칭해준 이름 베냐민을 낳게 됩니다.
그때 자기의 사랑과 자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삶을 살게 될 이 아들에 대한 크나큰
고통의 삶의 여정을 보고 내 고통의 아들이라 하는 뜻에서 바로 베노니 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부인이 라헬입니다. 요셉의 어미이기도 하죠 그러나 하나밖에
없었던 요셉에 이어 또 하나의 아들인 이 베냐민을 출산하는 과정 중에 죽어갈 때 그 자라나는 성장 과정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그를 보살피지 못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 가운데 출생한 아들이란 뜻에서 베노니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고통의 아들이란 뜻이죠. 창세기 35장 18절 말씀입니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베노니:슬픔의 아들〕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그러니까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실 때부터 시작하여 인간 생활을 하시는 동안에는 베노니로 상징된 고통의 아들 어미 없이 살게 될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고통의 아들인 베노니의 삶을 사셨다 라는 것이 이사야서 53장 3절 말씀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성육신하셔서 육체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 33년 반 동안의 생애를 사시는 동안에
곤고하고 고난과 외로움과 슬픔과 조롱과 온갖 이런 고통의 아들로서의 삶을 사셨고 ,
그리고 고통 가운데 죽음을 당하십니다.
그 고통 가운데 죽음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고통 가운데 살았던 그리스도가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서 못 박히셔서 죽으십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사셨다가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그분이 3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것을 이 영적인 신성한 관념 안에서 신성한 계시를 통하여 야곱이 베냐민이라는
고통의 아들이라는 그 고통의 사람을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죠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에서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오른편 보좌에 앉아 계셔서 영광을 다시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 훨씬 우월하고도 존귀한 만유의 주로 하나님 아버지께도 인정받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고통의 아들이 오른손의 아들이 되었다는
이것이 마태복음 26장 6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예 그렇습니다. 이것이 시편 68편 27절에 이렇게 기록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가 되셔서 사시면서 시작부터가 베들레햄 떡집에서 태어나셨는데
이 아브라함의 씨이고 다윗의 가문이었던 그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잉태되셨고
10개월 동안 여러분 마리아는 죄악된 본성을 가진 첫 사람 아담이 허리에서 산출된 자입니다. 거기서부터 고통은 시작됐던 것이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깜깜함과 어둠이 있는 죄악된 본성 안에 숨을 쉬지도 못하고 10개월 동안 있으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10개월 동안 깜깜함 속에서 숨도 못 쉬고 있으셨던 그분이 세상에 나오셔서는 온갖 형제들부터 나사렛 출신이라는 비천한 가문의 소유자라는 그리고 또비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셨던 그분이 생애를 사시는 동안 그 베노니 라는 고통의 아들 슬픔의 아들 슬픔의 사람이 되셨지만 죽으실 때까지도
그 제자 유다에 의해서 은 30세겔에 팔림을 당하게 되고 사랑하는 제자에 의해서 정말
배신을 당하는 그런 어떤 슬픔에 정말 고통의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셨지만 3일 후에 부활을 통하여 그 베노니 라는 슬픔의 사람 고통의 아들 슬픔의 아들이 바로 베냐민 이라는 오른팔의 아들 영광과 존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오른편 보좌에 앉아 계신 오른손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시편 80편 17절 말씀과 마가복음 16장9절 말씀입니다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마가복음 16장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이 다윗을 통하여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그 영께서는 고통의 아들 베노니가 베냐민이라는 아버지의 오른편의 아들이 되실수가 있는 것은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부활하기 전에는 이런 고통의 사람 슬픔의 사람 고통의 아들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을 다스리는 작은 베냐민이 있었고 고통 안에 사시고 고통 속에 있었던 그 베노니 라는 사람이 베냐민이 됨으로 말미암아 회중들 가운데서 여호와를 찬양하게 되는 대표적인
그러한 자가 됐던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육체가 되시고 이 땅에서 인생을 사실 때는 슬픔의 사람 고통의 사람 이었지만 이사야서 53장 3절처럼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러한 고통 이런 슬픔을 감수하고 감당하고 그런 고통과 슬픔 안에서 사시고 죽으셨으나 그 결과로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야곱이 가장 사랑하였던 라헬을 통하여 얻은 그 길을가는 여정의 행로 가운데
출산하게 된 그 아들을 베노니 라고 이렇게 이름 지어졌으나 야곱이 이 사실을 영적인
신성한 관념 안에서 신성한 계시를 그 영께서 성경으로 기록하게 해 주셨습니다.
즉시로 바로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바꿔놨습니다.
비록 그가 그러한 슬픔과 고통의 삶을 사는 고통의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오른손의
아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신 그들 위에 하나님께서는 또 하나의 다른 이름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아름다운 소식 기쁜 소식 복음의 아름다운 말로 여호와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35장 18절 말씀입니다.
고통의 아들 슬픔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이러한 슬픔
가운데 삶을 사셨지만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위치로 그 영광과 존귀에
높이 솟아 올라가는 삶을 산다 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바로 야곱이 즉시로 바꿔서 지어진 이름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바꿈으로 말미암아 부활과 승리와 승천 안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의 아들로서 하늘들 안에서 평강의 왕으로서 사역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8장 1절 2절 말씀이죠.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그 오른손의 아들로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유의 주가 되시는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오른손의 아들이 됨으로 오른편에 자리함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에서 왕으로서
만유의 주로서 사역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구속을 적용하시는 중재자
로서 기도하는 자로서 바로 그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육체가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는 베노니라는 이름을 가진 슬픔의 사람 고통의
사람으로 사셨지만 부활과 승천을통하여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베냐민 하나님의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존귀한 이름을 얻었고 승천을 통해서 영광과 존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오른손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부활 안에서는 베냐민인 영광과 존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오른손의 아들이 되시고
잉태를 통해서부터는 고통과 슬픔 가운데 삶을 사셨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존귀한 자로 영광을 소유받은 자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잡은 하나님의 오른손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작은 베냐민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작은 베냐민이라는 이러한 정말 고통에서부터 슬픔 가운데에서부터 시작하셨던
그분이 연한 순처럼 커다란 생명나무의 열매가 되는 것을 바로 작은 베냐민 이라고 표현
했다면 무리를 이룬 유다에 대한 얘기를 또 하고 있습니다.
사자로 표현하고 있는 유다에 대한 말씀이 계시록의 5장 5절에도 나오는데요.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된 자신의 열두 아들들 가운데 유다에게 능력과 지휘봉을
가진 사자 이 사자는 짐승 가운데 왕입니다. 그래서 사자는 능력과 지휘봉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화를 주는 평화의 왕으로서 실로가 되신 그리스도의
예표가 바로 창세기 49장 8절과 9절과 10절에서 표현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축복의 기도 가운데 유다에게 이렇게 전한 말씀인 것입니다.
“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실로1[ Shiloh ]: ‘안식의 장소’란 뜻. 혹은 ‘메시야’의 고유명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로가 오시기까지’(창 49:10)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으나 메시야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추론한다. 실로가 문자적으로 ‘안식의 장소’이기 때문에 이 말은 ‘안전하게
되는 때까지’ 혹은 ‘평안의 때까지’로 해석할 수 있다. 곧 문맥상 유다가 대적을 다 물리치고 안전하게 될 때까지 규(圭), 곧 왕권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나아가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실 메시야의 왕권이 영원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베냐민은 그러니까 그 슬픔과 고통의 방면을 다룬 사람 안에서 신성이 인성안으로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된 인간의 본성 방면에서 보여준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겁니다.
인성 방면에서 그는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슬픔을 당한 분으로 보여졌지만
그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인자 되신 그분이 존귀하게 되었다 라는 바로 그리스도의 예표가인성 방면에서 베노니라는 것을 통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신성한 방면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원래 이 세상에
성육신하시기 전에는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신성만 가지셨던 분입니다.
그분이 인성은 없으셨어요. 인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육신 되심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되셔서 인간의 삶 생애를 똑같이 피와살을 가진 자로서 육체가 되셔서 사셔야 됐던
것입니다.
유다는 육체를 사신 인자로서의 인성 방면이 아닌 신성한 면에서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래서 신성한 방면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가지고 오게 할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이 계셨고요 아버지 하나님의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체현이십니다.
인간의 본성을 입고 오시기 전에 그분은 신성을 소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고통의 사람이나 고통의 아들이나 슬픔의 아들이 아니라 정말 능력과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자라는 것입니다.
사자는 신성을 상징한다 라는 면에서 능력과 놀라운 큰 힘과 위엄과 존귀함을 가진 그래서 사자를 보면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그 갈기 그 수사자를 보세요. 힘이 넘치는 숫사자는 그 갈기가 동물들의 왕임을 보여주는 위엄이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볼수 있습니다.
사자가 한번 포효하면 산천초목이 떨 정도로 모든 동물이 숨죽이고 몸을 사리고 숨는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은 바로 유다가 신성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에 그러한 특이한 구별된 동물로 이렇게 상징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다는 신성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승리를 주고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고 제거하는 승리자가 되고 또 실로 평화의 왕이 되셔서 예루살렘 성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멸하고 어둠의 세력을 악한 영들을 죄와 사망을 무효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평화의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가 바로 신성 안에서
보여준 사자로 나타난 유다인 것입니다.
여러분 유다는 신성의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승리와 평화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사단의 죄와 사망을 무효화시키고 무력화시킨 승리의 왕이며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나귀를 타고 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나귀는 원래 짐을 지고 전쟁의 때이거나 또는
살기 어려운 때에는 곡물을 운반하는 것인데 실로의 왕 평화의 왕으로 상징되는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가셨다는 것은 어둠을 물리치고 죄를 제거해 주고 사망과 죽음을 무효화시키고 무력화시킴으로 말미암아 평화의 왕으로서의 입성하는 장면이 실로의 왕으로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예루살렘 성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는 장면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다는 신성의 방면에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택한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승리의 왕 평화의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속을 적용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구속을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서 사망과 죽음을 무효화시키고
무력화시켜서 우리를 안전하게 안식 가운데 있게 하신 평화의 기초를 놓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는 승리의 왕이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구속을 적용할 때 평화의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에베소서 2장 14~15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대 종교를 믿는 유대인들이나 그리고 이방인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믿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는 유대교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기독교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
안에서 하나된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죠. 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자들 믿는 자들을 위하여 완전한 죽음을 통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는 그 죽음을 통하여 완전한
구속을 성취하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화평이 되고 조화가 되어
이 둘을 하나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화평의 왕 실로의 왕 평화의 왕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류는 원래 첫 번째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그 허리에서 산출된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타락하고 죄악된 본성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타락한 죄인들인 우리를 불쌍하게 보시고 이처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신 것처럼 선민을 부르셔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원래는 분리되어 있었는데 십자가의 죽음 구속의 문제를 성취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분리된 것이제거되었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구속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도 곧 이스라엘도
이방인들도 주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으므로 말미암아 화평의 왕, 평화의 왕, 실로의 왕이라고 이렇게 우리가 일컬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의 지파인 이 유다는 신성한 관념 안에서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정하신 바에 따라 유다에게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유다의 후손을 통해서 바로 왕의 씨들이 왕의 신분을 가진 자들을 두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왕의 지파인 유다에게는 항상 그를 돕는 유다 지파 영역에 가장 가까이 가장 하나의 영역으로 표시된 곳이 바로 베냐민 지파의 영역이죠. 그들이 항상 가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도움과 하나되고 연합되는 삶을 통하여 바로 유다의 어깨 위에 앉은
자로 예루살렘 성이 그러한 존재자로 부각됨으로 말미암아 항상 유다와 베냐민은 이긴
자로서 등장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이렇게 등장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리적인 지도를 이렇게 구분해서 볼 때 이 유다와 베냐민이 하나로 연결된
그 영역 속에 하나가 되어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지도를 보면 유다 바로 아래에 베냐민이 속해 있는 지경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을 이루시고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인성과 신성
안에서 완전히 승리하는 이 베냐민과 유다 족장들을 이렇게 등장시킴으로 말미암아
인성과 신성 안에서 연합이 되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를 이루는 무리로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이 바로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그 지리적인
위치가 그렇게 함께 하나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들이 하나하나 세심한 면까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배려하시고 예의주시하시고 계신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성 방면에서 베냐민은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바로 유다는 신성 안에서는 바로
능력과 승리를 통한 평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예표 신성의 관념에서 유다는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이 인성과 신성 방면에서 베냐민과 유다를 이렇게 드러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인성
방면에서는 베냐민을 통해서 인자로서 구속의 성취를 이루는 것을 보여주시고
신성 방면에서 사자로 보여진 그리스도의 예표인 이 사자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승천 안에서 부활 다시 살아나시고 특별히 40일 후에 승천하는 일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 교회를 산출시켜 주신 구속의 적용의 결과가 바로 승천을 통하여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통해서는 인자되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한 구속의 성취와 그리고
유다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의 구속의 적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놀라운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작은 베냐민과 무리를 이룬 유다 족장들이 있다 라고 얘기하면서 스블론과 납달리 열두 아들 중에서 이 두 아들의 얘기를 끝마치고 스불론 족장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복음 전파에 있어서 배를 타고 이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전달과 확산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지역적 위치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는 바닷가 스불론은 바닷가에
위치하고있죠. 그래서 주로 그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인 거 여러분 아십니까?
갈릴리 사람을 주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셔서 제자로 두신 것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빠른
전달과 빠른 확산을 위해서 바로 이 복음 전하는 이들의 바닷가가 되시는 예수님
예전 고대시대에는 아직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상태 이기 때문에 어떤 교통 수단이
요즘처럼 좋지는 않았을거 아닙니까 배 또한 노를 저어가는 그런 배가 아니라 이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선민들이 사는 그 땅에서 저쪽 지중해를 건너 다른 세계로 가고자 할 때는 태풍의 힘 바람의 힘으로 향해를 해야 했는데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움직이게 하시는 능력 있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 비들기 같은 영 비둘기는 날개가 있죠.
왜 비둘기 같은 영이 예수님 위에 내리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움직이게 하는 놀라운 큰 능력이 하나님의 영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리스도를 이렇게 바닷가가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바닷가에 배들인 갈릴리 사람들과 그 제자들을 통해서 배가 이 가나안 땅에서 지중해를 건너 저쪽 세계로
가고 저쪽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또 이쪽 세계에 와서 그 복음 전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구속을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부활을 통하여 승리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라는 이 기쁜 소식을 갈릴리 사람들 제자들을 통하여 전하여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사도행전 2장 7절에 잘 나타나있는데요. 오순절 다락방에 바로 하나님의
영이 크신 움직이는 능력의 영으로 오셔서 120문도 120척의 배들에게 그 전진기지인
바로 갈릴리 바다를 통해서 초대교회로 산출되어진 이 열두 제자들과 갈릴리 120명의
사람들과 함께 복음의 확산을 위하여 갈릴리 바닷가를 떠나는 장면이 바로 창세기
49장 13절 말씀에 기록돼 있다라는 것입니다.
“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이것은 그분이 인성을 통하여서 구속의 성취를 이루시고 신성을 통하여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오른팔이 된 그 인성과 신성 신성과 인성의 연합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성취 문제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오른팔이 됨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주가 되신 이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온전한 이 복음을 완전하게 전파하기 위해서 완전한
전달과 확산을 위해서는 바로 바닷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갈릴리 사람들로 이루어진 12 제자들이 기초가 되어서 120척의 배와 함께 복음의 배들이 하나님의 그 크게 부는 바람에 의해서 그래서 바람 얘기를 사도행전에 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영은 바람이십니다. 크게 움직이시는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영이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부어주고 계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교제를 통해서 주님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
이 기쁜 소식 그리스도의 복음 이것을 빠른 전달과 빠른 확산을 위해서
이제 이 인터넷이라는 유튜브라는 이런 매체들을 이용해서 빠르게 확산이 되고 있죠.
배는 바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러한 기구이기 때문에 정말 빠른 복음의 확산과 빠른
복음의 전파와 전달을 위해서는 바로 이 갈릴리 바닷가로 상징되고 있는 예수님을 통하여 그 갈릴리 사람들인 제자들을 통하여 120척의 배들을 통하여 오순절날 복음의 확산이
시작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 그래서 작은 베냐민 무리를 이룬 유다 족장 스블론 족장들 끝으로 납달리 족장들이
나옵니다. 납달리는 창세기 49장 21절에 아버지 야곱 곧 이스라엘을 통해서예언의
말씀이며 축복의 기도였던 그 신성한 관념 안에서 신성한 계시를 통하여 그 이스라엘의
고백으로 나타난 그 계시의 말씀은 납달리는 풀어놓은 암사슴이라는 것입니다.
“49: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아가서 2장 8절 9절에도 있죠.
“2: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2: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이 납달리로 상징되고 있는 풀어놓은 암사슴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하여서
죽음에서 해방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을 주시는 영을 주실 수 있는 복음의 기틀을 마련
하셔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죽음에서 해방하시고 부활하셔서 이 생명 주시는 영이신 바로 그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말이 필요하겠죠. 아무리 배를 통해서 빠른 전달과 빠른 확산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아름다운 말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그 달콤한 사랑과 하나님의 그
놀라운 생명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 안에 하나님의 달콤한 사랑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면
그 생명은 무의미하게 되고 무익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참 생명 주시는 영 그리스도의 달콤한 하나님의 달콤한 사랑이 내재되어 있는
그 생명의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말을 하시는 바로 누가 이런 아름다운
말을 했습니까? 세상에서 이러한 가장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존귀하고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에 있어서 그분의 아들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보다도 더 적합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가장 존귀한 자로 가장 높은 자로 위대하신 자로 살아계신
자로 최고의 분으로 그렇게 적합한 아름다운 말을 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바로 아름다운 말을 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예표가 납달리인 것입니다.
납달리는 풀어놓은 암사슴처럼 그 기쁨 이 암사슴이 여러분 우리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무엇인가에 목이 감겨서 묶여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묶여 있던 암사슴이
영원 안에서 나와 묶여 있던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영원 안에서 영원 바깥으로 오시는
성육신 사건을 통하여 정말 풀어놓은 암사슴 으로서 완전한 자유함 가운데 완전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만족함을 가지고 이리저리 초장을 찾아다니면서 쉴만한 물가로 다니면서 그 초장 그 자기가 먹은 그 생명의 양식인 푸른 초장과 생명수가 되시는 푸른 물가에서
그 물을 마셨던 그 풀어놓은 암사슴이 바로 목자가 되셔서 우리안에 갇혀져 있던 그들을
자기에게 이끌리게 하여 주셔서 생명의 양식이 있는 푸른 초장으로 생명수가 있는 푸른
물가로 인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삶을 사신 분은 바로 풀어놓은 암사슴으로서 아름답고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서
최상의 하나님을 표현한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그리스도는 바로 납달리로 상징되었던 것입니다. 납달리는 풀어놓은 암사슴으로 예표하고 있죠
마태복음 28장 18절 19절 20절 말씀입니다.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이 성경의 어떤 그러한 면의 예표를 통해서 스불론과 납달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성육신하셔서 육체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이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는 이 기쁜 소식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육체로 사는 생애가 있었겠죠.
성경은 그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또 육체가 되시는 생애를 사시기 위해서는 육체로
태어나시는 과정이 있었겠죠.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곧 죄들과 허물들 그리고 뱀의 독성을 모두 제거해 버리셨고 사단을
이렇게 패배시키셨다 라는 이 기쁘고도 놀라운 소식을 확산하고 퍼뜨리는 한 무리를 형성하는 것이 스블론 족장들과 납달리 족장들이고 스불론 족장들은 갈릴리 바다에서의 배를 통해서 처음에 그 120척의 배를 가지고 확산시키고 전달하고 한 이 바닷가 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또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의 바람을 통해서 확산 시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 선생님에게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너와 나의 낼 세금 한 세겔을 이렇게 끄집어내라 하시기도 하시고 또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것은 바로 갈릴리 바다를 염두에 두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者)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先生)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17: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世上) 임금들이 뉘게 관세(關稅)와 정세(丁稅)를 받느냐 자기(自己)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17: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免)하리라
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誤解)케 하지 않기 위(爲)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爲)하여 주라 하시니라.“
바다는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물은 죽음의 물 홍해 바다 피의 바다 죽음 홍수 그러한
물은 사단으로 말미암아 기인된 이 세상을 황폐하게 하고 공허하게 하고 깊은 어둠
가운데 있게 한 사단으로 말미암아 엉망 진창이 되어 훼손하게 된 이 세상을 창세기
1장 2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 하셔서 암탉이 알을 품듯 자기
새끼를 알을 품듯 그렇게 품으셔서 황폐함과 그 공허함과 깊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계속 운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구속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구속을 이루신 것은 하나님이 품고
계셨던 세상에 그 황폐함과 공허함과 깊은 어둠 가운데 있었던 세상의 무질서한 세상을
온전한 세상으로 바꾸게 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이기 때문에 이것을 배를 통하여 그리고
납달리 그 풀어놓는 암사슴을 통하여 아름다운 말을 하게 하시는 스불론은 바닷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납달리는 풀어놓은 암사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유다 족장은 신성한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베냐면은 인성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을 위한 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결과물로 가져온 구속의 성취를 적용하는 면에서 바로 베냐민과 유다를 하나로 묶으셨고 스블론 족장들과 납달리의 족장들을 묶으심으로 한 무리로 연결시키시고 묶으심으로 말미암아 베냐민을 통해서는 구속의 성취 인성을 통해서 유다에게는 신성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승천 이렇게 해서 한 무리를 적용하셨고 스불론 족장들과 납달리의 족장들을 통해서 또 이렇게 한 무리로 연결시키고 통합시킴으로 말미아마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는 기쁜 소식을 퍼트리는
한 무리를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불론 사람들과 납달리 사람들이 지금 등장되고 있는데 이 모든 사람들은 다
어디 사람들이에요. 갈릴리 사람 갈릴리 바닷가 사람들 바로 마태복음 4장 12절부터 17절까지 기록된 것이 납달리와 스불론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은
기록 하고 있습니다.
“4:12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4: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地境) 해변(海邊)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4:14 이는 선지자(先知者)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4: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江) 저편(便) 해변(海邊) 길과 이방(異邦)의 갈릴리여
4:16 흑암(黑暗)에 앉은 백성(百姓)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死亡)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者)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장 11절에도 그것이 기록되고 있어요.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들을 통해서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빨리 확산되고 빨리 전달되고 빨리 전파
되어 널리널리 퍼져 나가서 지금 우리에게 그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온전한 구원을 성취하시고 완결시키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완결 시키신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을 주시는 영 부활의 영 예수님의 영을 통해서 그 영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이기는 자의 삶을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하나하나 그리스도의 구속이 단순한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고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한 사건이 아니라 여기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그러한 세 분 하나님의 애씀과 수고와 피를
토하는 그러한 삶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몸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생명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것은 이와 같은 삶의 유형들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고자 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에 이러한 성취를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시고 그 구속의 성취를 이루신 것을 또 적용시키기 위해서 이 베냐민이
있게 하시고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만드셔서 또 유다 그 흠이 많고 결함이 많은 유다를
족장으로 삼으셔서 스불론 족장들과 납달리 족장들을 통해서 기쁜 소식인 구속의 십자가 이 피의 효력을 온전하게 전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인성 안에서 신성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인하여 산출되어진 바로 그 영을 소유받는 일만이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은혜로 갚는 길이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마무리 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