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딤전 4 1:1∼4
제목: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신앙입니다.
딤전4:4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데요. 거룩해지는 대상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이라고 보여지는 번역본이 있고
새번역)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
‘음식’에 한정한 듯한 번역본이 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그것은 음식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
묵상자가 보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에는 성도들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피조물)은 선합니다.
딤전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창세기 1장의 사람들은 무죄 상태에서 특히 거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창1: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아담과 하와가 창세기 3장에서 원죄를 저지르기 전에는 무죄 상태였고 복을 받아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대상에는 성도들이 당연히 포함되고 일반인들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별되어 거룩해진 자들이 곧 성도이며 그리스도인들이라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믿는 참된 신앙인들입니다.
● 참된 성도와 위선자는 지금 당장에는 분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일에”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딤전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
누군가가 성도로 보였지만 갑자기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그 사람은 원래 성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위선자가 스스로 속고 남을 속이며 성도로 행세하고 가장을 한 것이겠지요. 참 성도와 위선자는 “후일에” 달라집니다. 성도는 아래 말씀에 해당되고 적용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참 성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에 있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이에 반해 위선자는 “후일에”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딤전4:4와 롬8:28 모두에서 “모든 것”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롬8:28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 자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가 거룩해지는 것이지요.
딤전4:4 (새번역)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딤전4:4의 거룩함에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이고 롬8:28∼30의 거룩함(칭의∙성화∙영화)에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성령께서는 애매하게 말씀하시지 않고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밝히”는 “분명히”(공동번역) “환히”(새번역)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도들이 믿음 안에 거하고 믿음을 붙잡을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성화되도록 도우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데요. 특히 기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이에 반해 미혹하는 영과 귀신은 사람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만듭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믿음을 떠나지 않고, 성령을 받지 않거나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한 자는 믿음을 떠납니다. 참 성도는 견인(堅忍)하고 위선자는 견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신앙의 본질보다 부수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갖는 분들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정체에 대해 매우 궁금하실 것입니다. 머리를 산발하고 하얀 소복을 입었거나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괴담과 전설의 고향 같은 것들을 상상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혹하는 영과 귀신을 성경적으로 담백하게 표현하면, 이런 악한 영들은 위선자들이 그나마 이어가던 기독교인으로 가장하던 삶마저도 아예 청산하고 더 노골적인 불신앙으로 가도록 합니다(딤전4:1 믿음에서 떠나). 본색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양심이 화인(火印)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하게 만듭니다.
딤전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
저급한 괴기영화∙오컬트∙이단적인 주장을 완전히 배제하고 미혹하는 영과 귀신에 대해 규정한다면
믿음에서 떠나고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게 하는 영 |
입니다. 그냥의 세대주의를 넘어선 극단적 세대주의∙구원파∙베뢰아 등의 이단들은 양심을 버리라고 주장한답니다. 양심을 버리게 하는 가르침이 어찌 성령의 가르침이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합니다. 착한 양심과 믿음은 함께 합니다. 화인 맞은 양심과 불신앙이 함께 하는 것처럼이요.
디모데전서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
양심을 버리면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한다고 말씀하는데,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은 양심을 버리고 도덕률을 폐기처분하라고 미혹합니다. 혹시라도 이 묵상을 읽는 분들이 다니는 교회나 목사가 양심을 버리라고 가르칩니까? 그렇다면 이단이나 사이비일 확률이 100%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딤전4:1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 4:2.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과 양심이 화인을 맞은 자들 중에는 아래와 같은 자들도 있습니다.
딤전4: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
딤전4:3과 같은 주장은 영지주의 사상의 영향입니다. 공교롭게도 천주교가 성직자의 혼인을 금하고 안식교 같은 이단들이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하는데요. 영지주의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 같습니다. 오징어 안 되고 사순절에 소시지 먹으면 안 되고 육식은 금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도 비성경적입니다. 이들은 아래 말씀을 읽지 않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딤전4:4.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
● 딤전4:5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단순히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나 말씀을 활용한 축복기도가 아닙니다. 거룩하게 되는 대상은 “모든 것”입니다(새번역)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모든 것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입니다. 이 피조물들 중에서 으뜸가는 것은 사람들이고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입니다.
로마서 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로마서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의 사랑에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피조물도 간섭할 수 없고 끊을 수도 없습니다.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묵상자가 나름 받은 바 은혜를 나눈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시간 나는 대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사랑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곧 거룩하여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GODpia 성경: 아가페출판사>, “귀신”
비교적 작은 힘을 가진 악령을 말한다. 구약 한글 개역 성경은 히브리어 '쉐딤'만을 “사신”(邪神)으로 번역하고 있다(시 106 : 37 ; RSV “demons” ; KJV “devils” ; NIV “demons” ; 70인역).
이 단어는 수호신(참조. 아카드. '쉐드'[šêdu]는 앗수르 신전이나 궁전들의 입구에 있는 큰 황소상을 의미함)이나 어떤 악한 영 또는 귀신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티로스'(영. Satyrs ; 히. '세이림' – “털이 많은 자” ; KJV “devils”)는 수염소(레 17 : 7 ; 대하 11 : 15, “수염소 우상”)로 표현된 귀신들이거나 실제적인 수염소들(사 34 : 14 ; 13 : 21, “들양”)이다. 신약의 일반적인 단어는 헬라어 '다이모니온'('다이몬'의 축소형)이다. 그리고 '다이몬' (마 8 : 31)과 '디아볼로스'는 비교적 덜 사용되고 있다.
Ⅰ. 구약
구약은 천사와 영들의 존재를 종종 언급하고 있으나, 귀신이나 악한 영들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있다.
히브리인들은 광야에서(레 17 : 7), 후에는 여로보암 1세의 명령으로 가나안에서(대하 11 :15) 수염소 우상(사티로스)을 숭배하였다. 그 당시에 그들의 숭배는 염소에 비유한 귀신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귀신론(demonology)을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그러한 숭배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신 32 : 17 ; 참조. 시 106 : 37).
즉, 그것은 우상 숭배 금지와 같은 것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속죄일에 희생 제물인 염소가 내보내어지는 광야의 귀신 이름을 '아사셀'로 보고(참조. 레 16 : 5-10), 폐허에 거주하는 올빼미귀신의 이름을 '릴리트'(Lilith)로 부르고 있다(사 34 : 14).
Ⅱ. 신약
중간사 시대 귀신론의 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신약은 사람에게 해로운 영향을 행사하는 악령이나 우상들을 통해 숭배되는 이방신으로 귀신을 서술하고 있다(행 17 : 18 ; 참조. 계 9 : 20에서는 귀신과 우상을 구별하고 있음).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은 육체적•정신적 질병들 뿐만 아니라 또한 귀신에게 사로잡힘으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하고 있다.
복음서는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를 구별하고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서로를 동일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마 17 : 15-18에 나오는 간질은 귀신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며(참조. 눅 9 : 39), 막 1 : 26 ; 9 : 18, 20, 26에서 귀신은 병자의 경련과 발작의 원인자가 되고 있다. 거라사 사람(막 5 : 1-20)과 일곱 귀신의 지배를 받은 막달라 마리아(눅 8 : 2 ; 막 16 : 9)와 같이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는 능력을 가지셨던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에 이끌렸다기보다는 이같은 귀신 축출의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에 대한 사단의 권세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눅 11 : 20 ; 10 : 18 ; 요 12 : 31).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한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들이 그들의 행동과 말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약초를 사용해서 귀신들을 내쫓았던 유대 지도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단지 귀신에게 '나오라' (예. 막 1 : 25)고 명령하셨다.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였는데(눅 10 : 17 ; 행 16 : 18) 이 방법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유대인 귀신 축출자들(exorcists)도 이 방법을 받아들였다(막 9 : 38 ; 참조. 행 19 : 13).
복음서는 사람 안에서 귀신의 활동들을 제어하는 예수님의 사역을 서술한 반면에 다른 신약의 기자들은 귀신의 다른 활동들을 드러내고 있다. 바울은 결혼을 금하고 금식을 장려하는 '귀신의 가르침'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딤전 4 : 1-3).
그러나 바울은 또한 어떠한 '권세자'(NIV(“귀신들”)도 그리스도와 성도들 사이의 사랑의 결속을 끊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야고보는 귀신들조차도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는다고 하는 자극적인 비평을 하고 있다(약 2 : 19).
그러나 그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는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부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은 '귀신의 영' 곧 최후의 전쟁 날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고 온 세상의 통치자들이 준비하게 될 짐승에게서 나오는 '더러운 영'을 묘사하고 있다(계 16 : 14).
황폐하게 된 바벨론 포로기 이전 상태를 언급하고 있는 18 : 2에서 요한은, 인류의 교만한 업적을 더럽고 가증한 생물들의 귀신의 처소로 비유하고 있다. (→마귀, 사단)
※ 참고 문헌G.B. Caird, Principalities and Powers : A study in Pauline Theology(Oxford : 1956) ; S. Eitrem, Some Notes on the Demonology of New Testament. Symbolae Osloenses Sup.12(1950) ; E. Langton, Essentials of Demonology(London ; 1950).
@장코뱅 아가페출판사의 귀신 설명은 비교적 상세하고 학문적인 것 같습니다. 공부가 많이 되네요.
딤전1:19-20에서 양심을 버리고 믿음의 파선을 한 대표적 인물
<GODpia 성경: 아가페출판사>
“후메내오”
바울의 적대자 가운데 하나로 헬라의 결혼 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후메내오는 거짓 교사인 알렉산더(딤전 1:19-20)와 빌레도(딤후 2:17-18)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 그는 마지막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가르침으로써 믿음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울은 후메내오가 훼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예. 교회로부터의 추방;딤전1:20).
“알렉산더”
믿음을 버리고 사단을 추종했던 에베소의 이단 지도자이다(딤전 1:19, 20).
그의 직업은 구리 세공인이었으며. 바울에게 많은 해를 끼쳤다(딤후 4:14, 15).
양심을 버리고 믿음의 파선을 하자고 종용하는 이단적 가르침이 교계에 은연중 퍼져 있는데요. 엄히 경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페셜 성경>, 딤전4:3
물질적인 세계는 악하다는 잘못된 개념으로부터 비성경적인 금욕주의가 생겼다. 이 개념은 영지주의 이단의 중심 사상이다.
딤전4:3에서 영지주의나 유사한 이단의 행태가 보일 수 있도록 평상시에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해 놓아야 하겠습니다.
<스페셜 성경>, p.393
영지주의자들과 그들의 경전
요한일서 4장 영지주의는 가장 초기에 나타난 기독교 이단 중의 하나였다. 영지주의 문헌들은 많고 다양하며, 대부분 신약과 이방 종교의 신화에서 인용한 비유를 플라톤주의의 개념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러 편의 영지주의 문헌들이 1945년 이집트의 나지함마디에서 발견되었다. 대체로 사도들의 이름을 사칭한 위작으로 도마복음, 야고보 외경, 베드로가 빌립에게 보낸 서신 등이 그 예이다. 이를 통해 영지주의 문헌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가능하다.
◆ “지식"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gnosis에서 유래한 영지주의는 하나님에 관한 은밀한 지식을 알려준다고 주장하는 운동이었다. 신봉자들은 세상의 창조주이신 성경의 하나님을 열등한 신으로 간주했다.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따르면 물질세계는 본질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이를 창조한 신은 열등한 신에 불과하다.
◆ 영지주의에서 구세주는 죄를 속해주기보다 인간의 "참된" 신적 근원을 알게 하여, 그들을 무지에서 구하고, 물질세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한다.
◆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영적 기름부음, 혹은 영적 존재의 일종)가 세례를 통해 인간 예수에게 강림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떠났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신성과 인성의 영원한 연합이 없다고 믿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참 그리스도는 육신의 몸이 없다.
◆영지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인 “가현설"은 예수님은 실제로 인간의 몸으로 보여지는 하나님의 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몸은 진짜 육체가 아니라 환영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요일4장 2절(“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은 이러한 가르침을 반박하고 있다. 아마도 요한이 대적하였던 자들은 후에 영지주의 문헌을 기록한 종파들의 시초가 되었을 것이다.
요한의 경고는 이단이 여러 형태로, 종종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위장하여 접근해 올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단이다. 또한 물질세계, 즉 피조계를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여기는 교리는 오도된 것이며 매우 위험하다.
@장코뱅 영지주의에 대한 체계적 설명을 잘 읽었습니다. 스페셜 성경도 괜찮네요.
“인간은 즉시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왕으로 등극하며, 모든 하등한 피조물들을 지배하는 권세를 부여받는다.”
◆ 인간 창조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역이었다. 인간 창조에 관한 기록 앞에 나오는 서술에서 사용된 몇 가지 표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만물의 창조가 간접적 창조임을 보여준다. 다음과 같은 표현에 주목하라.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물들은 생물로 번성하게 하라."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 이 표현들을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표현과 비교해 보라. 앞의 표현들에 나타난 간접적 창조의 암시가 여기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간접적이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만드실 때 먼저 존재하던 물질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조차도 영혼 창조 시에는 배제되었다.
◆ 하동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물고기, 새, 짐승은 그 종류대로, 즉종 특유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같이 창조되지 않았다. 더욱이 하등 동물들의 형상으로 창조되지는 않았다.
인간에 관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 말이 함의하는 바에 대해서는 인간의 원래의 상태를 다룰 때 논의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이 말씀이 인간 창조의 독특성을 보여준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넘어가자.
◆ 인간의 본성의 두 가지 다른 요소들은 명백히 구분된다. 창 2:7에서는 몸의 기원과 영혼의 기원이 명백히 구분된다. 몹은 흙으로 형성되었다. 몸을 만들 때 하나님은 먼저 존재하는 물질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영혼의 창조는 먼저 존재하는 물질을 재료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생산이다. 여호와께서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간단한 어구에서 인간의 이중적 본성이 명백해진다. 이와 같은 인간의 이중적 본성은 전 12:7: 마 10:28: 눅 8:55: 고후 5:1-8; 빌 1:22-24: 히 12:9과 같은 다른 본문의 지지도 받는다. 두 요소는 몸과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명의 숨 혹은 생령이며, 양자가 결합됨으로써 "살아 있는 영혼(soul)" 곧 "살아 있는 존재" 가 되었다.
◆ 인간은 즉시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왕으로 등극하며, 모든 하등한 피조물들을 지배하는 권세를 부여받는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그의 통제 하에 있는 모든 자연과 모든 피조된 존재들을 자신의 뜻과 목적에 복종시킬 의무와 특권이 부여되었는데, 그 목적은 그와 그의 영광스러운 통치를 통하여 전능하신 창조주와 우주의 주를 영화롭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창 1:28: 시 8:4-9).
『벌코프 조직신학』, p.261.
@장코뱅 조직신학이지만 내용이 너무 은혜로운 것 같습니다.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양심을 버리고 믿음에서 파선한 자들=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의 등식이 성립하는군요.
양심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부여하신 영혼의 창문으로써 양심이 불량하면 영혼도 심히 부패하여 쓸모 없는 존재로 떨어지고 마는 것인데 양심을 무시하면 안되는 거죠.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적어도 양심은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양심은 종교성과 연결되어 있네요.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으로써 거룩한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데, 곧 말씀과 기도로써 거룩하여질 수 있음을 이 묵상의 성경 본문이 가르쳐 주고 있네요.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이야말로 거룩한 자들로서 모든 피조물들, 특히 인간을 거룩함에 이르도록 이끌어주고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귀한 자들로 여김을 받는 것 같습니다. 천상에서도 지상에서도 가장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바라고 하니 얼마나 우리의 사명과 책임이 막중한지 더 실감이 납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메시아를 고대하며 구원을 바랐던 일이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매우 깊고 풍성하며 본문을 잘 요약한 좋은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좋은 댓글이에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