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 대하여 (불편한 진실)
몇 년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호평에 반하여 악평도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재미는 있을지 망정, 과연 세간의 떠들썩한 호평처럼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평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음을 고백하며 영화를 보고 난 후 참으로 불편했던 나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자 한다. 물구나무서기로도 세상을 볼 수 있어야 세상의 이면이나 양면을 진실로 보는 게 아니겠나. 대다수로부터 호평받은 작품에 대해 호의롭지 못한 평을 한다는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호평만이 전부는 아니기에 내 감정을 토로해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인간의 품위를 무참히 짓밟는 영화다. 영화를 굳이 이렇게 만들어야 하나 반문하고 싶다. 똥은 누구나의 뱃속에 상존하며 누구나 배설하고 있다. 하지만 뱃속에 누구나 갖고 있다고 해서 구린내 나는 똥을 아무렇게나 아무 곳에서나 배설한다든지 대화에서 똥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최소한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함이다. 오히려 감춤으로서 생체리듬에 있어 배설의 한 요소인 중요한 결과물로서 똥을 똥답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누구나 보는 곳에서 엉덩이를 까발리지 않으며 최소한의 인간다움과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역사 이래 고래로부터 사람 사는 사회에는 빈부격차가 상존해왔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종류의 하층민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다수의 상류층들도 함께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는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계급의 갈등을 희화화시키려 했지만 어설펐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이들로는 하층민을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한 차원 높은 철학적 사고를 가져야한다. 육체와 정신은 같은 것이다. 정신적 활력이 없으면 육체적 기력을 잃는다. 마찬가지로 육체적 활력이 없으면 정신도 희미해진다. 대비해보면 물질과 정신은 일정 부분 등가성을 갖는 것이다. 살아보니 물질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던가. 그리고 정신은 물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던가. 물질과 정신은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보완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물질은 물질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정신은 정신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있는 자 없는 자 이분법으로 재단할 것은 아니다. 그들 각자 살아가는 세계의 삶에 각자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표현의 자유라지만 인간을 아주 좀비스럽고 저질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표현의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인간의 품위를 무한정 떨어뜨린 영화라고 감히 평하고 싶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예술은 인간에게 당장에 먹고사는 데는 필요치 않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게 예술이다. 예술은 인간 정신세계의 확장과 우리네 삶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에 존재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하는 것이다.
보편적이고 서민적인 한 가족이 어느 날 부잣집 취업을 위해 떼거리로 합세하여 비열하게 남을 쫓아내는 자연스럽지 않은 스토리 전개, 영화의 종반부를 집단살인극으로 마감하는 상식 밖의 엔딩 설정에서 이 영화의 완결성에 하자가 있다고 본다. 개성과 차별성, 낯설게 하기도 누구나 공감이 가는 객관성이 바탕이 되어야 작품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어지지 않고 반전을 기하는 연속된 긴장감의 전개 방식은 재미있어 좋았다. 오락성으로는 성공하였으나 품위 있는 예술성으로서 가치는 많이 부족했다.
‘Gone with the wind’, ‘Doctor Zhivago’ 등 이런 영화를 보라. 왜 우리는 이런 품위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까. 생존경쟁의 고단한 삶 속 생채기 난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과 치유를 주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찬식/ 부산광역시청 사무관 퇴임시인, 수필가,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