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유종인
전생(前生)의 빚쟁이들이 소낙비로 다녀간 뒤
내 빚이 무엇인가
두꺼비에 물어보면
이놈은 소름만 키워서
잠든 돌에
비게질이다
단풍은 매일 조금씩 구간(舊刊)에서 신간(新刊)으로
한 몸을 여러 몸으로 물불을 갈마드는데
이 몸은
어느 춤에 홀려
병든 피를
씻기려나
추녀 밑에 바래 놔둔 춘란 잎을 어루나니
서늘타, 그 잎 촉(燭)들!
샛강 물도 서늘했겠다
막걸리 몇 말을 풀어서
적막 강심(江心)을
달래야겠다
-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실천문학사, 2012)
* 감상 : 유종인 시인.
1968년 인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립 인천전문대(현 인천대학교 제물포 캠퍼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6년 <문예중앙>에 시 ‘화문석’ 외 9 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그 후 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되었습니다. 특히, 2003년에는 아내 문성해 시인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당선되면서 부부가 함께 경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문학과 지성사, 2001), <교우록>(문학과 지성사, 2005), <수수밭 전별기>(실천문학사, 2007), <사랑이라는 재촉들>(문학과 지성사, 2011), <양철지붕을 사야겠다>(시인동네, 2015>, <숲시집>(문학수첩, 2017) 등이 있으며, 시조집으로 <얼굴을 더듬다>(실천문학사, 2012)가 있습니다. 지훈문학상(2016), 송순문학상, 지리산문학상(2007), 김만중문학상(2019), 백교문학상(2021)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며칠 전 늦은 밤에 갑자기 예고도 없이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이 비를 보면서 유종인 시인의 이 시가 생각 난 것은 아마도 시인이 표현한 마치 '전생의 빚쟁이들이/ 소낙비로 다녀간 뒤'라는 시어가 생각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뜰에 나서니 언제 그랬냐는 듯 비 온 흔적은 전혀 없고 울긋불긋 단풍잎들만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시나브로 가을이 깊어졌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잘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그간 각종 문학상을 수상 할 때마다 심사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유종인의 시는 세련된 언어 감각이 빛난다고 평가였습니다. ‘말의 뉘앙스와 결을 잘 살려 낡고 별것 아닌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빚어내는 탁월한 언어 감각’이 있다는 것인데, 이 시에서도 잘 쓰지 않는 순우리말로 어김없이 그 감각을 살리고 있습니다.
첫 연에 나오는 ‘비게질’은 소나 말이 가려워서 자신의 몸을 벽이나 나무에 비비는 행위를 말하는 순우리말입니다. 둘째 연에는 ‘갈마든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무슨 일이 ‘서로 번갈아들다’는 뜻입니다. ‘낮과 밤이 갈마들다’라든지 ‘희비가 갈마드는 인생’ 등과 같이 활용할 수 있는 우리말입니다. 이 밖에도 ‘어느 춤에 홀려’라든지, 마지막 연의 ‘어루나니’ 등의 시어들은 시인의 특별한 언어적인 센스를 잘 말해주는 시어들일 것입니다.
이 시를 읽고 문태준 시인이 댓글로 쓴 감상문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한로와 상강이 지났습니다. 찬 하늘에는 기러기가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국화 그늘을 만지작거렸습니다. 한유는 국화를 보고 “주머니 속에 누런 금색의 조가 늘어서 있다”라고 썼지요. 가을비가 다녀간 마당을 보며 시인은 전생의 죄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천형(天刑)을 받은 듯 흉측한 외양의 두꺼비에게 물어도 이놈은 가려운 곳을 긁느라고 돌에 몸을 대고 비비고만 있습니다. 숲은 채색을 바꾸고 있습니다. 꼭 그 모습이 예전에 나온 책을 새로이 낸 듯합니다. 시인은 이 산색(山色)의 몸 바뀜을 보며 인간의 몸에 잦게 찾아드는 병을 걱정합니다. 가을 강만 적막한 것이 아니어서 시인의 심중(心中)도 강의 한복판처럼 적막합니다.
시인은 탁주로 시름을 잊고자 합니다. 그러나 왜 가을의 적막한 심사(心思)를 버려야 합니까. 이 적막도 짧아 곧 물이 얼 것이니 적막을 춘란 잎 어르듯 어를 일입니다.]
더 이상의 감상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 시를 읽고 너무도 완벽하게 잘 쓴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창 코로나가 창궐하여 사람들이 갑갑증을 느끼며 불안해하고 있을 지난 2020년 여름, <시인수첩> 여름호에는 유종인 시인과 문태준 시인, 두 서정 시인을 초대하여 대담한 글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실렸습니다. 아마도 그 자리가 계기가 되어 같은 길을 걸어가는 전업 작가의 동병상련이 통했는지 이렇듯 서로의 마음을 잘 들여 다 볼 수 있는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쯤에서 그의 시 중에서 '이렇게 말을 이쁘게도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의 표현에서 공감이 되는 시 하나를 더 소개해 봅니다.
신문
- 유종인
활자들만 모른 체하면
신문은 이리저리 접히는 보자기,
나는 신문이 언론일 때보다
쓸쓸한 마른 보자기일 때가 좋다
그 신문지를 펼쳐놓고 일요일 오후가
제 누에발톱을 툭툭 깎아 내놓을 때가 좋다
어느 날 삼천 원 주고 산 춘란 몇 촉을
그 활자의 만조백관들 위에 펼쳐놓고
썩은 뿌리를 가다듬을 때의 초록이 좋다
예전에 파놓고 쓰지 않는 낙관 돌들
이마에 붉은 인주를 묻혀
흉흉한 사회면 기사에 붉은 장미꽃을
가만히 눌러 피울 때가 좋다
아무래도 굴풋한 날 당신이
푸줏간에서 끊어온 소고기 두어 근
핏물이 밴 활자들 신문지째로 건넬 때의 그 시장기가 좋다
이젠 신문 위에 당신 손 좀 올려보게
손목부터 다섯 손가락 가만히 초록 사인펜으로 본떠 놓고
혼자일 때
내 손을 가만히 대보는 오후의 적막이 좋다
- <현대시학>(2015년 7월호)
이 시는 신문을 마른 보자기 삼아 넓게 펼쳐놓고 손톱이나 발톱을 깎아 본 사람이면 똑같은 경험 때문에 금방 공감이 가는 시입니다. 장 봐온 대파며 양파를 신문지 깔고 다듬어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신문의 진짜 기능은 ‘언론의 기능’이어야 하는데,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신문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시이지만, 시인답게 꾸짖는 모습이 이쁘고 귀엽기까지 합니다. 사회면 활자 속에 있는 만조백관들의 썩어빠진 모습들을 낱낱이 기록하지 못하는 신문 위에, 곱디고운 춘란을 펼쳐놓고 그 썩은 뿌리를 가다듬자고 노래하는 시인의 '이쁜 언어'가 참으로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시에도 등장하는 낯선 단어, ‘약간 배가 고프다‘는 뜻의 순우리말인 ’굴풋하다‘는 시어가 눈에 쏙 들어옵니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만 하지 않고 그 신문지 위에 초록 색깔 사인펜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 본 떠 놓았다가, 살포시 그 위에 내 손을 포개보면서 따스한 오후 햇살을 만끽하는 여유롭고 느릿한 사랑 노래로 마무리한 시인처럼, 입동을 며칠 남겨 두지 않은 이 늦가을을 보내며 자발적인 '쓸쓸한 적막'으로 마음을 달래야겠습니다.
아, 아쉬운 이 가을이여.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