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무엇이든 받아 들여야
2016년 8월 28일(일) 09시 46분에 1호선 동두천 중앙역에서 조단스 씨모우 위짜추 까토나 넷이 만났습니다. 패노우는 최근에는 무더위로 산행을 기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류바는 이번에는 9월부터는 예전에 근무했던 빌딩에서 다시 출근하게 되었답니다. 오늘은 그곳의 직원들과 오찬 약속이 있어서 부득이 생략한다는 톡이 옵니다. 우리 나이에 아직은 불러주는 직장이 있다는 것에 동료로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온도 20℃ 전후로 하늘도 청명하니 완연한 가을 기운이 돕니다. 그토록 엄청난 찜통 더위로 한반도를 달구던 폭염이 꼬리를 내렸나 봅니다. 역 앞에서 택시에 배낭을 싣고 노객들이 오르곤 서울 재활병원을 지나서 천보산 터널 조금 못 미쳐서 하차를 합니다. 오른쪽에 칠봉산 입구(0.63km) 이정표가 보이며 오르막의 아스팔트 길을 따라 15분여를 오릅니다. 칠봉산 기도원 앞을 통과하니 바로 눈 앞에는 동두천 MTB라는 그림의 구름다리가 걸쳐 있습니다. 오른쪽이 칠봉산이며 왼편으로는 해룡산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구름다리에서 몇컷 스마트폰에 잡고 칠봉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흩뿌려져 있으며 정녕 가을정취가 물씬 나는 시원한 바람이 오히려 서늘함을 느끼게 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35℃를 넘나들던 날씨에 땀범벅이 되어 오르던 정암산이 생각납니다. 낮은 포복으로 30여분을 날파리와 가시덩쿨에 할퀴고 딩굴며 오르던 그날의 모습이 오늘은 그저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칠봉산( 돌봉,506m) 정상에 있는 바위에 정오가 안 되어 도착합니다. 모처럼의 시야도 탁 트이고 오늘은 모든 풍광이 선명하고 새롭기만 합니다. 가시거리도 오늘은 20KM는 충분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남쪽으로 발 아래 전개되는 동두천 시가지와 경치가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옵니다. 불곡산이 동두천 뒤편을 감싸고 멀리로는 도봉산과 북한산 인수봉의 자태도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 건너편에는 수락산이 마주하며 노객들의 마음을 한껏 가을 하늘로 띄워주고 있습니다. 북쪽을 바라보면 소요산 정상 봉우리가 가깝게 다가옵니다. 사방 팔방으로 확트인 전경이 막힘이 없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있습니다. 칠봉산은 일곱개의 봉우리로 정상인 돌봉을 비롯하여 수리봉 투구봉 석봉 그리고 여타 세개 봉우리 표지석은 볼 수가 없습니다. 정오를 조금 넘겨서 칠봉정이라는 사각정에서 준비한 간식으로 요기를 달랩니다. 너무나 평탄한 산길에 아쉬움이 있으나 동두천 시가지를 좌측으로 바라보며 하산을 시작합니다. 한 시간여를 거침없이 내려오던 산길이 철탑을 만나서는 길이 흔적도 없습니다. 오후 3시 35분에 공릉역에서 치빠흐를 만나서 함께 회식을 약속한 상태입니다. 다시 거꾸로 오르기에는 억울한 마음도 있어서 그냥 저 아래 보이는 농가 지붕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갈수록 잡풀과 쐐기풀 가시가 날카로운 산초나무들로 가슴팍까지 휘감고 있습니다. 발이 덩쿨에 걸리고 배낭과 등산복이 나무에 걸리고 무릎 아래에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혹시나 휘리릭 풀섶을 헤집고 파도치듯 지나가는 기다란 녀석이 발에 밟히지나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을 바람의 덕택으로 날파리들은 달려들지를 않습니다. 편안한 산행으로 모자란 듯 하던 심장 박동이 힘차게 전신운동의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온 몸은 땀으로 얼룩지고 숨소리는 가빠지지만 없는 길의 산행 맛을 오늘도 만끽합니다. 게다가 시원스레 내리는 가을비에 땀으로 젖은 온몸을 씻어주고 있습니다. 오후 두시가 채 안되어 조산마을 회관 앞에 버스정류장에서 60번 버스를 만납니다. 출발은 이십분 후에야 한다는 버스기사의 퉁명스런 대답을 들으며 오릅니다. 그동안 생리현상으로 속이 거북하다던 위짜추가 마을회관 화장실에 신세를 지고 옵니다. 승객은 우리들 네명뿐입니다. 출발 즈음에 등산객이 홀로 버스에 오릅니다. 하산 중에 바위에 걸터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던 노객으로 그냥 스쳐 보았던 산객입니다. 연배는 우리들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하산할 때 산길이 없어서 헤매다가 걸려 넘어지고 주저 앉으며 몹시 힘들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들이 내려온 방향으로 하산한 것입니다. 아내는 10여년 전에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습니다. 말 한 마디 못 하고 홀연히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슬하에는 대학생 자식이 셋으로 그저 막막하고 온통 세상이 지옥 같고 텅 비어 버린 것 같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아내를 부르며 술에 쩔어 인생을 포기하려 합니다. 알콜 중독으로 비쩍 말라 버린 체중에 급성 간염으로 온 몸이 누렇다 못 해 검은색으로 변합니다. 숨 쉬는 것도 버겁고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짜증이 날 뿐입니다. 이제는 하루 빨리 아내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어느 날 울부짖는 자녀들의 통곡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하아얀 시트로 내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주렁 주렁 매달은 주사약 팩들을 바라봅니다. 흰 까운을 입은 의사가 청진기를 가슴에 집어 넣습니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은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심근경색에 간 섬유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간염으로 복수까지 가득찬 상태입니다. 그리고 대장암 3기까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삶의 종착역이 다가 온 것입니다. 머리를 가로 젖는 의사 모습에서 아들 딸 셋이 모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눈물을 가득 먹음은 채로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은 딸에게서 따스한 온기를 느껴집니다. " 아빠 이제는 제발 일어 나세요, 안돼요, 아빠 ! 아빠 ~`~`아 " 흐느끼는 막내 딸의 목소리가 벌떡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 선생님, 살려주세요, 살고 싶습니다, 나는 꼭 살아야 합니다, 내 딸과 아들을 위해서라도 " 중환자실은 우리들의 울음 소리는 통곡으로 변하고 맙니다. 나이 지긋하신 의사선생님이 내 손을 꼬옥 잡아 줍니다. 최선을 다 해 보겠다는 다짐입니다. 대장암 수술과 항암치료도 받으며 간염 심근경색의 스텐트 시술등등으로 이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하여 6년의 세월이 흐르고 자식들은 모두 다 출가들을 하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친손주 외손주 녀석들을 바라보면서 다짐을 합니다. 이 녀석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결혼하여 증손주를 볼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기 공기 좋고 산세가 아름다운 동두천으로 몇 개월 전에 이사를 왔습니다. 아내는 떠나고 홀로 살고 있지만 항시 아내 사진을 가슴에 품고 이렇게 매일 산행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며 고혈압 당뇨 심장약들을 복용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모든 병치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술은 가끔 한잔씩 할 뿐이며 담배는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살아 생전에는 30년 이상을 함께 한 아내이건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말았습니다. 처자식 먹여 살린다는 핑게로 허그 헌 날 술에 쩔어 골아 떨어지기 일수입니다. 다음 날에는 응당 아내는 해장국을 끓여 주고 야채즙을 갖다 받치는 것을 당연시 하였습니다. 오히려 가끔 반찬 투정으로 큰 소리나 치며 고맙다는 말도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짙은 화장품 내음을 풍기는 여인네 치맛자락에 버얼건 동태 눈알이 되도록 헛발질도 합니다. 남자는 모두 그렇게 그런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애틋하고 짜릿한 아내의 치마폭의 향기가 밤마다 잠을 설치게 합니다. 당연히 매일 옆에 있어야 할 아내가 없으매 옆구리가 너무 허전합니다. 하지만 희망과 꿈이 생겼습니다. 바로 나의 손주 녀석들이 내 삶의 전부이며 꿈이요 희망입니다. 다만 당신들처럼 함께 할 수 있는 벗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하니 부러울 뿐입니다. 씨모우와 주고 받는 대화에서 뒷 좌석에 홀로 앉은 노객의 지난 날들의 삶의 영상을 나름대로의 상상을 유추해 봅니다.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이 먹먹해지며 저며오는 느낌입니다. 말끝을 흐리며 버얼겋게 충혈된 그 눈동자를 차마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우리는 어느새 동두천 중앙역에서 하차를 합니다. 이것이 너와 나 우리 노객들의 현재 삶의 단면을 볼 수가 있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착잡한 마음을 추스리며 공릉역에서 하차를 하여 치빠흐를 만납니다. 전에 한번 가서 회식을 하였던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쳤던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비와 땀에 젖었던 노객들을 다시 한번 씻어줍니다. 돼지갈비와 시원한 맥주 막걸리 맑은 쐬주 각 한병으로 답답하던 가슴을 시원하게 깨끗이 씻어 내립니다. 이어지는 우리들의 백년지기 권주가는 한껏 흥취를 돋우며 삶의 희망을 가슴마다에 심어줍니다. 아쉬움은 언제나 쌩맥으로 채우며 더 나아가서 곱창구이로 맑은 소주가 우정의 열기를 더해줍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아프지 않은 사람 있으리요마는 더구나 노객들에게는 이제는 삶의 동반자가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오늘처럼 산행을 하면서 가끔은 무성한 가시덩쿨등을 만나서 헤매기도 하는 길이 아닌 길 없는 길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던져지는 삶의 무게를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받아 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해서 더 늦기 전에 이 밤도 홀로 자고 있는 아내에게 사랑의 세레나데(SERENADE)를 함께 불러 보심이 어떠하려는지요. 1분으로 끝내는 어설픈 연주가 아닌 숙달된 기교로 10분 이상으로 만끽할 수 있는 부루스로 말입니다.
2016년 8월 30일 무 무 최 정 남
이
첫댓글 동두천 칠봉산을 가기위해 동두천중앙역에서10시쯤에 카토나,시모노,조단스,그리고 나등4명이 만났다. 오늘은 등산로를 제데로찿아 순탄하게 정상(506미터)까지 완주를하고 준비한 간식으로 맛있게 요기를 했다.. 모든게 일사천리라 다른산보다 좀높지만 아주쉬운산행을 하나보다 하였으나 하산길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엮시 길을잃고 말았다. 보슬비가 제법오는 산비탈 우거진숲과 가시밭길을 카토나가 인도하는데로 내려왔지요.! ~~ 공릉역에서 3시에 치파흐를 만나 푸짐한 돼지갈비로 5명이 술과함께 맛있는 식사를 만끽하면서 우리들의 권주가로 기세등등하게 나이도잊은체 회포를 불었다. 야! 즐거운 오늘은 다음에도 또~~
위짜추님의 댓글 역시 반갑습네다. 헤매더라도 즐겁고 반가운 백년지기들입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없는 길을 만나려지는지 기대가 됩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의 협조가 항상 고마울 뿐입니다. 앞으로 30여년 짧지 않은 세월 빠짐없이 만나서 즐겨보자요
카토나,! 3년이아니라 30년을 잘못 기재한것 같네요? ㅎㅎㅎ. 길잃은 일은 없도록 해야지요? 될수만 있으면 정도를 걸어야 되지 않겠어요? 항상 카토나가 즐겨쓰는 말처럼 우리는 노객이니까요, 그럼 오늘도 우리 "노객"들 파이팅.!!!
눈썰미도 좋으시네 길을 잃어도 회식 장소는 간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