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척박한 대한민국의 ‘봄바람’♤
<2009-04-09 나재필(충청투데이 편집부 차장)>
경상도 산골소년 박정희는 여섯 살 때부터 황소를 끌고 다녔다.
뒷산에서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이며 가난을 곱씹었다.
농투성이의 아들이었던 그는 40년 후 대통령이 됐고,
자신이 사랑했던 황소만큼이나 ‘황소고집’으로 유명했다.

그는 봄이면 농촌에 가서 모내기를 하고 가을엔 벼베기를 했다.
‘쇼’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농촌을 사랑했고
농민을 사랑했으며 막걸리를 사랑했다.
그의 황소고집은 오로지 가난을 물리치기 위한 독단이었고 천착이었다.

▲수확의 기쁨이 넘치는 젊은 지도자.
5.16혁명의 해인 1961년 10월 9일 경기도 수원에서
추수감사절 기념식에 참석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벼베기 작업을 하면서 기념 촬영한 모습이다. ⓒ 국가기록원
국민들을 절대빈곤에서 탈출시켜 제대로 먹고 입게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집념이었고, 그래서 새벽종은 울렸다.
2600만의 배고픈 국민은 풀떼기를 벗어나
통일벼로 양껏 배를 채웠다.

논두렁에 앉아 총각무를 안주삼고,
봄볕을 친구삼아 막걸리 한 잔을 하게 만든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저렴한 위무였다.
그 노동요에 우리보다 잘살던 북한도, 미국도 꼼짝 못했다.

부국강병, 잘 먹고 잘 살자던 그의 외침은
‘독재자 박정희’가 아니라 ‘인간 박정희’였기에 가능했다.
그는 척박한 대한민국의 ‘봄바람’이었다.

(글, 펌. 編: 동해바다)


첫댓글 댓글달기운동해보아요..
고맙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동해바다선배님은
그리움입니다
그냥 예전꺼도 많이 올려주시구
그래서 아버지 생각나고
박근혜대통령님을 더욱 좋아할수 밖에 없는
그런 동심을 맹글어 주시고 계세요
너무 과찬이십니다. 글다 떨어지면 우짤라구요. ㅎㅎㅎ 암튼 고맙습니다. 좋은 시간되세요.
그래서 울카페 보물이기도 하십니다♥♥
그 건 아님니더. 그냥 제가 박정희 육영수 여사님이 좋아서 올리는 것입 그 왜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