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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2일 성령강림 후 첫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186장입니다.
헌금/기도하겠습니다. 성경은 행2:1-4절(신188쪽)입니다.
제목: 오순절 성령강림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 후에 있을 오순절 성령강림을 위해서 택한 사도들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실하게 증거 하셨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1:3).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며 약속의 성령세례를 기다리라고 분부하셨고(1:4-5), 그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에, 성령이 오실 때 그들은 권능을 받게 될 것이며,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열흘이 지난 오순절 날에 주님의 말씀대로 하늘로부터 성령강림, 즉 사도들에게 권능이 나타난 성령세례를 받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주 안에서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을 받았습니다(엡1:13). 우리는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받았습니다(행2:38).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롬8:9).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통한 권능을 경험하시고 계십니까? 불행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성령님의 권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성령님을 통한 권능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행2:1-4)이 기록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그 해답은 무엇인지를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성령강림의 기사에는 누가(사람), 언제 그리고 어디(장소)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됩니다. 1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먼저, ‘누가(사람)’입니다. 오순절 날에 모인 사람들을 ‘그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1:15절에서 언급된 120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후 문맥을 보면, ‘그들이’ ‘열두 사도’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바로 앞에,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1:26)라는 구절이 있고, 바로 후인 베드로의 설교에서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2:14)라는 구절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2:32)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누가는 1:13절에서 다락방에 모인 열한 사도의 이름들을 소개하였고, 열한 사도를 중심으로 보인 형제들의 수를 ‘120명’이라고 언급(1:15)한 후에 ‘맛디아’를 사도로 선출하여 ‘열두 사도’를 채운 것을 기록하였습니다(1:15-26). 그러므로 ‘그들이’ 일차적으로 열두 사도를 지칭하며, 열두 사도를 기초로 하는 120명의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교회(교회는 하나), 즉 우리를 대표하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결과인 새 언약의 축복으로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족장들의 수가 열두 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계승한 새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상징한다는 의미로써 열두 사도를 택하셨습니다(마10:1-4, 계21:12, 14, 눅22:29-30). 그리고 ‘120명’이라는 숫자는, 당시 산헤드린 공회의 규칙에 따르면, 하나의 공동체가 그 자체적인 공회를 가지기에 합당한 수(최소한 120명)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열두 사도’가 대표하고 상징하는 하나의 제자 공동체(120명)인 교회가 세상에 대한 제사장 나라의 사명(출19:4-6)을 가진 ‘옛 언약의 이스라엘’을 계승한 ‘새 언약의 새 이스라엘’로서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세상에 대한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19:6), 즉 ‘옛 언약인 율법에 순종하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옛 언약의 이스라엘은 이 사명을 감당하는 데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율법 언약을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 언약의 이스라엘 중에 유일하게 남은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옛 언약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다 이루셔서 이스라엘의 사명을 감당할 조건인 ‘의롭다 함’을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눅22:20). 새 언약에 근거하여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이 택하셨고,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열두 사도(새 이스라엘)에게 옛 언약의 이스라엘과 동일한 선교 사명을 주시면서 성령세례를 기다리라고 하셨고, 승천하신 후에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그들에게 부어주신 것’(행2:33)입니다. 딛3:5-6절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사.”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요20:22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여기에 도마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요20:24). 그러나 옛 언약의 이스라엘을 계승한 새 언약의 이스라엘(교회)을 상징하며 대표하는 ‘열두 사도’로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우리)를 대표하여 공식적이며 단회적인 오순절 성령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열두 사도가 교회를 대표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또는 그의 교회에 속하여 있는 우리의 성령세례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믿음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갈3:26)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열두 사도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늘 본문의 성령강림 사건 안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세우신 새 언약 때문입니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그들이’ 다 주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는 그의 진정한 제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명령(마28:19-20)에 따라 그의 제자가 아닌 사람을 세례를 줄 수가 없습니다. ‘바실’은 주님의 제자가 무엇인지를 먼저 설명함이 없이는 세례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주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었고, 주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성령세례를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렸다는 사실은 그들이 주님의 진정한 제자로서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들처럼 우리도 주님의 진정한 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이것이 그들과 우리와의 다른 점이 아닐까요?
이제 ‘언제(시간)’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부활)의 날로부터 50일이 되는 날로서 처음 익은 밀과 보리 열매를 추수하고 감사하는 이스라엘의 축제입니다(출23:16, 민28:26). 특히 신구약 중간기가 끝날 무렵에 오순절은 시내산에서 옛 언약과 그 율법을 부여받은 축제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출애굽 한 지 50일 후에 일어났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에서 ‘이미 이르매’라는 말은 ‘오순절 날이 완전히 채워졌을 때’라는 의미입니다. 누가가 단지 오순절 날이 되었다고 하지 않고 오순절 날을 향해 채워져 갔다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시고 열흘이 지나서 오순절 날이 완전히 채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행2:33절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이처럼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의 결과인 새 언약의 축복으로서 교회를 대표하는 열두 사도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열두 사도를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은 교회에 오신 성령님은 세상 끝날까지 교회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어디(장소)’입니다. ‘한 곳에 모였더니’입니다. ‘한 곳’은 같은 장소인 ‘집’(2)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다’(1)에서 표준원문에는 ‘다같이’라는 단어 대신에 ‘한마음으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KJV 영어 성경에는 ‘한마음을 가지고’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14절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를 살려서 보면, ‘그들이 한마음으로 동일한 장소인 집에 모였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열두 사도가 대표하는 교회, 즉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동일한 장소에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동일한 장소에서 모인 교회(모든 사람)가 가졌던 한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복음에 믿음으로 한마음이 되었고, 특히 주님이 명령하신 선교적 사명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권능을 받아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약속의 성령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앉아 있었습니다(2). 유대인은 기도할 때 서서 기도하기에, 그들이 앉아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설교나 말씀을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성령강림을 사모하면서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님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복음을 믿고 주님이 주신 선교 사명에 한마음이 되고 선교를 위한 권능을 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한마음으로 사모하면서 설교를 듣고 있을 때 홀연히 성령의 충만함이 우리에게 임하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교회의 기초와 대표가 되는 열두 사도가 오순절에 받은 성령세례를 살펴보겠습니다. 2-3절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의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여기서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와 ‘갈라지는 불의 혀들’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성령세례를 표현합니다.
이것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과 율법 언약을 체결하시려는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현현’과 연결됩니다(출19:16-18). 출19:16절의 ‘우레와 나팔 소리’와 출19:18절의 ‘온 산이 크게 진동하매’라는 청각적인 표현은 2절의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와 대구를 이루고, 출19;16절의 ‘번개’와 출19:18절의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는 시각적인 표현은 3절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과 대구를 이룹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순절 성령세례는 세상을 위한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위한 이스라엘의 율법 언약(옛 언약)을 갱신한 새 이스라엘, 즉 교회와 새 언약을 세우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새 언약의 축복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이 교회에 임한 것입니다. 새 언약은 성령의 언약입니다(겔36:25-28, 고후3:6).
성도 여러분, 이처럼 새 언약의 축복으로 교회에 임한 성령세례는 주님의 말씀(1:8)대로 하늘의 권능을 나타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3).
여기서 성령강림이 공동체 전체와 그 공동체에 속한 각 개인 위에도 하나씩 임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열두 사도가 대표하는 교회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교회에 속한 각 개인도 죽음과 부활, 승천하신 주님과 함께 성령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다, 즉 하늘과 땅을 소유하신 주님의 권능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세례로 하늘의 권능을 받은 열두 사도(교회)에게 나타난 결과는 무엇입니까? 4절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 ‘다른 언어(방언)를 말함’을 성령세례의 증거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공식화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눅24:49, 행1:8) 성령님이 임하실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분명하지만, 그 능력이 언제나 다른 언어(방언)를 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여기서 언급한 ‘다른 언어(방언)’는 그들이 전에 배운 적이 없는 다른 언어, 즉 외국어를 가리킵니다(5-8, 11). 그러므로 여기서 ‘다른 언어(방언)’는 말하는 자나 듣는 자가 알아 들 수 없는 고린도전서의 방언과 다른 것입니다. 만일 성령세례의 유일한 증거가 다른 언어(외국어)라고 한다면, 우리는 선교를 위해서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열두 사도는 성령세례와 동시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열두 사도(교회)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들로 ‘하나님의 큰일’(11), 즉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복음의 진리와 전도의 열정으로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마치 물이 넘칠 정도로 차 있는 그릇은 조금만 건드려도 물이 밖으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성령의 충만을 받은 교회나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교회(우리)를 대표하는 열두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의 결과로서 새 언약의 축복으로 오순절 날에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사역들이 단회적이듯이 오순절 성령강림도 단회적이기에 반복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듣고 회개와 믿음으로 세례를 받음(2:38)으로 성령님이 계신 교회에 속하게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듯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도 참여(연합)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새 언약의 축복인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순절에 성령강림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보좌에 앉게 하시고 이 땅에서 선교할 권능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천국 백성이 된 우리에게 주님을 믿고 순종할 권능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새 언약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런 권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세례받은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사모하시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엡1:19절입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기도가 진정으로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찬송 190장을 부르신 후에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