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숨 쉴적 마다 산소 흡입과 공기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주어진 우리의 필수적이고 긴요한 대기의 체계가 인간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체계 또한 생활하는 기본 터전인 사회라는 것에 의존하고 생존에 유리한 덩어리를 키우며 살아왔기에 너무도 당연존재로 여기고 있어 주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성의 결여와 실종에 대한 예후는 어린 아기들이 지금 자라는 가정이나 유치원 환경에서 극명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단지 성인들이(어른이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눈이 감겨있거나 애써 외면하기에 보이지 않을 따름입니다.
어린 아이가 튼튼한 관절과 뼈 마디를 사용하지 못하고 실내에 갖혀 앉아 지내면서 인간발달의 신체성을 기대할 수 있을 까요?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따로따로 떨어져 앉아있으면서 서로 부딩켜 안고 부딛히며 엉겨붙는 체험이 없는데 사회성을 기대할 수 있을 까요?
마치 없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었던 인류와 기성세대의 당위성이 지금 아이들의 신체적 접촉 결여로 빚어지는 사회성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입시지옥 체계의 좌뇌편향식 교육에서 조차 무너지지 않았던 온 몸으로 이루어진 우리들의 튼튼한 사회적 발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에, 저절로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몸들의 일체적 사회성이 흔들리고 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말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누리 교수에 의하면 독일 아이들 대부분 22세기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품 하나를 살 적마다 죄책감을 느끼며 미래생명의 부재성에 대하여 절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인류이며, 마지막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가 국민으로서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뿌리깊은 여성 살해와 남녀간 혐오의식의 확산, 우울증과 자살율 1위, 출산율 저하 1위 등과 같은 인간 생명성의 위태로운 현상 등 인류세의 모든 것을 첫번째로 치루고 있입니다. 이러한 사태로 인한 인간 필수적인 안전한 생활의 위태로움과 생존이 위협되는 환경체계는 우리에게 또한 기회로 여길 각성을 촉구하며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생명에 대한 책임의식과 우리사회의 기본 구성 자체, 인간성에 대한 질문과 교육관련 이슈 제기와 담론 자체가 생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 김현정의 뉴스 쇼에서 현직교사의 '온라인 교육 1학기.. 한글도 못 뗀 초1이 교실에'라는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교육현장은 언론조차 취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교육방송마저 학교와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 볼 생각을 안합니다. 방송의 부재로 학교 교육 인구가 반절이되고, 모든 국민적 관심사가 됨에도 '없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어제 현장교사의 인터뷰 중간제목도,/4월까지 이어진 휴업사태..공백 길어/원격 수업 못 따라간 아이들 태반/학력 격차 심각..중위권이 사라졌다/ 코로나로 이어진 학교 휴업사태로 이어진 뒤의 2문장은 학력격차를 고민하고 있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약간의 신체성 즉 /정서 교육, 영양불균형 문제도 심각 /이라고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입시적 공부를 우선하는 시각이며 기초적인 삶의 생성지로서 학교교육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장교사에게 이야기를 들어보고 아이들의 자라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없다시피합니다. 코로나19 발생 학교문제가 된지가 6개월이 넘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감염병에서 자유롭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지속적, 장기적인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출생 성장하는 아이들의 세계가 조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조차 동물의 왕국세계를 매스미디어로 다루면서 인간 아이들에 대하여는 교육방송조차도 코로나19 세계로 빚어지는 세계를 관심갖고 들여다보고 있질 않습니다. 값비싼 운동화 시리즈별 1000 켤레 주문하는 연예인에게 보험상담해주는 것을 교육방송이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성, 동물성, 집단성의 집약적인 사회성은 학교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공기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큰일 났습니다.
인간세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학교가 해야 할 일을 깊이 들여다보고 재구성하는 일이 지금 필요합니다.
강아지들도 바깥 바람을 좋아하고 안아주지 않고 자기들의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난,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것은 카레닌(개)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세계와 동물들의 세계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아이들은 그래도 그전 중학교까지 신체적 공동체 생활을 마음껏 누려서 교사인 나도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 앞으로는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대안도 없는 절벽 위에 서 있습니다.
인간에 대하여, 학교에 대하여, 교육이라는 것에 대하여 누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해야 합니다.
내가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