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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문 > 제 1369호 전체 내용]
***이초석: 교회신문 > 제 1369호 야성을 잃은 독수리가 되지 말라 (요1:12~13)
소년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나무 위 둥지에서 알 몇 개를 발견하여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마침 집에서는 암탉이 알을 품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알들도 함께 넣어 주라고 했습니다. 21일이 지나 알들이 하나씩 부화했는데, 먼저 병아리가 나오고, 며칠이 지나 독수리도 태어났습니다. 독수리는 닭들과 함께 자라며 모이를 쪼아 먹고, 닭처럼 뛰어다니며, 위험이 오면 함께 도망쳤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거대한 독수리가 내려와 닭 한 마리를 채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린 독수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다른 닭의 모습과 전혀 다른 자신을 보며 정체성 혼란을 겪던 독수리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또 독수리가 나타나 또 닭을 채갔습니다. 이를 보고 독수리는 ‘혹시 내가 독수리는 아닐까? 생각하며 슬그머니 날개를 펴서 퍼덕거려 봤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날아지는 것입니다. 놀란 독수리는 더욱 날개를 세게 저으니 하늘 높이 올랐습니다. 독수리는 그제야 소리쳤습니다. “아, 나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였어.” 독수리는 마음껏 날개를 펼쳤고, 미련 없이 닭장을 벗어나 창공으로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
서커스단의 호랑이를 보신 적이 있으시죠? 밀림의 왕인 호랑이가 줄에 묶여 사람들의 눈요깃거리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이 주는 고기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애완동물인 줄 아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자신 안에 엄청난 야성이 있는 줄 모르고 말입니다.
여러분, 내가 누구인지 알면, 즉 내 정체성을 알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주려고. 독수리가 자신이 닭이 아니라 독수리란 것을 알게 되니 본성인 야성을 찾아 하늘을 날뿐더러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것처럼, 호랑이가 정체성을 찾으면 본능적으로 모든 짐승을 잡아먹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셔서 몸소 우리가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 자녀임을, 그래서 우리 안에 야성, 곧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있음을 확인시키셨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확립되면 그동안 우리를 조련하던 것들, 곧 악한 영들이 우리를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들을 쫓아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하신 예수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너희는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이 네 아버지란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듯 너희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란다. 자! 내가 하는 일을 봐라. 놀라운 이 능력이 너희에게도 있단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며,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불치병을 고치셨습니다. 그 말씀이 이 성경 구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악한 마귀는 우리가 우리의 신분을 알까 봐 걱정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방해합니다. 오래전에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세계 최대의 수족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큰 수족관에서 상어와 작은 물고기들이 함께 놀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본시 상어는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아야 하건만, 그들과 친구처럼 놀고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수족관 담당자는 이렇게 설명해줬습니다. “상어와 물고기를 같이 넣어놓으면 당연히 상어가 물고기를 잡아먹지요.
그런데 상어와 물고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쳐놓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상어가 여느 때처럼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덤비면 유리벽에 탁 부딪치게 되지요. 잡아먹으려고 하면 또 부딪치고…. 그걸 반복하다 보면 상어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려 하면 누가 날 치는구나. 절대 잡아먹지 말자.’라고 각인되는 겁니다. 그래서 유리벽을 제거해도 상어는 물고기를 잡아먹지 못하고 조련사가 주는 먹이만 먹습니다.”
마귀가 딱 이 수법으로 우리를 조련합니다.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쳐놓고 상어를 조련하듯 우리를 조련합니다. 간혹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안돼.”, “이게 내 팔자지.”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귀가 쳐놓은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갇혀 있어서 그런 겁니다. 상어가 유리벽을 경험한 후로는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듯, 마귀는 우리가 시도하지 못하게 낙담의 울타리를 쳐놓는데, 그것에 딱 걸린 겁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마귀가 쳐놓은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치우셨습니다. 그리고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자녀는 사람입니다. 개새끼는 개요, 소 새끼는 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이치상으로는 맞는데, 이상하다고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가 있다는 말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께 모든 권세를 넘기셨습니다(마28:18). 모든 권세를 이양받으신 예수님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 곧 우리에게 당신의 권세를 이양하셨습니다(눅22:29).
그러면 예수님 같은 권세가 우리에게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세상은 이걸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걸 알 리가 없지요. 그래서 사람에게 배우면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독수리가 닭에게 배우니 닭처럼 땅이나 파고, 주는 먹이나 먹고 구구거리며 사는 겁니다. 독수리는 독수리에게 배워야지요. 그래야 하늘을 날고, 모든 것을 잡아먹는 기술을 익히는 겁니다. 호랑이가 호랑이에게 배워야 포효하고, 숲을 누비며 밀림의 왕으로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께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어마어마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지배하던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이단아 취급하는데, 그게 맞을지 모릅니다. 세상에서는 절대 터득할 수 없는, 들어본 적도 없는 진리이거든요. 자고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이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우리의 적이요, 원수를 멸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인 마귀와 그의 졸개 귀신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싸우게 하는데, 그것들이 없으면 천국 생활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적이 없으면, 원수가 없으면 평안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신 증거가 있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하신 것입니다. 내 자식이니까 이런 특혜를 주시는 겁니다. 이웃집 애가 뭐 사달라고 하면 사줍니까? “네 부모님에게 말씀드려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니까 구하는 것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맞지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 자녀에게 주시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 권세를 믿음으로 사용하여 악한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건강과 축복과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 자녀답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팔자타령 그만하고 네 신분을 알라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요 독수리 새끼도 독수리다
***예화; 11596. 교회신문 > 제 1369호 커버스토리. 부지런한 자의 밭에는 잡초가 없다. 잠12:24
2026 중고등부 연합수련회(7월 27일~29일)
7월의 끝자락, 장성 예루살렘기도원에서는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제28회 전국 중고등부 연합수련회’가 개최되었다.
“수련회다운 수련회란 오직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는 영적 전지훈련이다!”
수련회를 앞두고 선포하신 총회장 목사님의 메시지는 이번 수련회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해주셨다. 목사님의 선포대로 이번 수련회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말씀, 기도에 전념하는, 밀도 높은 영적 단련의 장으로 진행되었다.
첫날 저녁 집회, 단상에 오르신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부지런한 자가 돼라.’고 가슴판에 못을 치듯 말씀하고, 또 말씀하셨다.
“얘들아,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단다. 바로 부지런했다는 거야. 조금 전에 내 영상을 봤을 거야. 나는 한 명을 놓고 철산리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세계교구’라는 꿈을 가졌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어냈다. 지금 세계 76개국에 복음을 전하고 있지. 어떻게 이뤘냐고? 오직 부지런했단다. 나는 부지런히 기도했고, 부지런히 성경을 상고했고, 부지런히 배웠고, 부지런히 길을 개척했단다. 그랬더니 꿈이 현실이 되더라. 부지런이란 무기보다 좋은 무기는 없고, 부지런이란 연장보다 좋은 연장은 없고, 부지런이란 열쇠보다 좋은 열쇠는 없거든.
얘들아! 예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을 봐라. 이분들이야 말로 부지런의 대명사란다. 예수님의 삶을 봐라. 예수님은 미명에 산에 올라 기도하시고, 낮에 귀신을 쫓으며 복음을 전하시고,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밤에는 기도하시지 않았니? 그래서 마침내 뜻하신 바를 이루신 거야.
맞다. 부지런한 자의 밭에는 잡초가 없고, 해충도 없다. 그래서 꿈을 이룰 수 있단다. 그러나 게으른 자의 밭에는 잡초와 해충만 득실거리지. 꿈이 잡초로 덮여 무산되고, 벌레가 먹어 치워서 되는 게 없단다. 그래서 게으른 자에게 기대할 것이 없는 거야. 나는 평생에 게으른 사람이 성공한 것을 못 봤단다. 하나님은 게으름은 악이요, 무책임이라고 말씀하셨고, 게으른 자들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고 하셨지.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싫어하시거든. 나도 게으른 자가 정말 싫다.
성경은 부지런한 자는 사람을 다스려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당하고(잠12:24), 부지런한 자는 풍족하나 게으른 자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잠13:4). 너희의 미래가 어떻게 되길 원하니? 지지리 궁상이나 떨면서, 남에게 손이나 내밀면서 살래? 아니면 머리가 되어 다스리고, 풍성해서 남에게 주면서 살래? 나는 너희들이 각 분야에 뛰어난 인물이 되고, 잘 살고, 건강하고, 멋지게 살게 할 자신이 있단다.
너희들이 내 말을 듣고 실천하면 된다. 제발 부지런해라. 지금은 공부할 때니 부지런히 공부해라. 부지런히 책을 읽어라. 그리고 부지런히 기도해라. 나에겐 두 친구가 있는데, 기도와 노력이란다. 나는 41년 동안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노력했단다. 그냥 오늘의 내가 있는 게 아니야. 나는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단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하루 두 끼만 먹는다. 너희도 이 두 친구와 사귀길 바란다.
얘들아, 오늘의 계란을 먹지 말고 내일의 암탉을 키워라.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꿈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라. 비록 지금은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꿔야 해. 꿈이 없는 자는 게으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꿈이 너를 부지런히 달리게 할 거야. 목적이 너를 이끌어 줄 거야.
그리고 부지런이 속도라면,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야. 방향을 잡고 부지런히 달려야 한단다. 방향을 잘못 잡고 부지런히 달리면 더욱 목표에서 멀어질 뿐이다. 하나님 말씀을 푯대 삼으면 인생의 방향이 확실하게 잡히니 절대 다른 길로 가지 않게 된단다.
얘들아, 늘 말하지만, 인생은 운명이 아니야. 네가 만드는 작품이야. 이왕이면 명작, 대작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니? 사냥꾼으로 살 것인가, 사냥감이 될 것인가? 즉 ‘지배하고 살 것이냐, 지배당하고 살 것이냐’를 늘 생각하고, 게으른 나를 쳐서 부지런하게 만들어라. 그것이 너를 멋지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내일로 인도할 거야. 배움의 끝은 시작이다. 게으른 자들이여,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중고등부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결단하기를 바란다.
***예화; 11597. 교회신문 > 제 1369호 붕우칼럼. 가면을 벗어라
경찰서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야,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이런 사람이야! 나 건들면 안 좋아. 이러이런 사람이 내 친구야.”
경찰관에게 큰소리를 치며 자신의 인맥과 지위를 내세우는 사람들. 그러나 그 말속에는 진짜 자신감이 아니라 ‘혹시 내가 처벌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큰소리는 강함의 표현이 아니라 불안의 표현이다.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어대듯.
우리 주변에도 인맥을 자랑하고, 성공을 자랑하고, 외모와 재산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자신의 다른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쓰는 가면이다. 그래서 옛말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한 것 아니겠나.
게는 속살이 매우 연하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두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처받기 싫고, 약해 보이기 싫어서,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자존심이라는 두꺼운 껍질을 두르고, 허세라는 가면을 쓴다.
아람 군대의 총사령관 나아만은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권력자였다. 그러나 갑옷 속에는 아무에게도 보여 줄 수 없는 문둥병이 있었다(왕하5). 화려한 갑옷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옷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의 아픔을 감추는 가면이기도 했다.
나아만은 두꺼운 갑옷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몸을 담갔을 때 치유를 받았다. 내 모습 그대로를 드러낼 때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가면을 벗자. 부족함을 인정해야 채움을 받을 수 있고, 상처를 드러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회탈을 쓴 채 울고 있다면 누가 그 눈물을 알겠는가?
하나님은 가면 속까지 다 보고 계시지만, 우리 스스로가 가면을 벗길 원하신다. 우리의 연약함과 괴로움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시며, 회복시켜주시고, 다시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삶을 허락하신다.
우리, 가면 쓴 사울이 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 다윗이 되자. 다윗이 받은 은혜와 평강이 넘치리라.
***예화; 11598. 교회신문 > 제 1369호 세상을 보는 창. 광고해야 안다. 롬10:14-15
아프리카 오지에 콜라병 하나가 떨어진다. 놀란 원주민들이 콜라병을 내려놓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한 콜라 업체의 TV 광고다. 아직까지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그 광고효과와 위력이 대단한 것 같다.
15초, 그냥 흘러버릴 수 있는 잠깐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기업은 사활을 건다. 기업들이 광고에 공을 들이고 과다하다 싶게 투자하는 것은 광고의 위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광고가 무엇인가? 기업이나 개인, 단체가 상품, 서비스, 이념, 신조, 정책 등을 세상에 알려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투자하는 정보활동이 아닌가.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광고에 주력하는 것이다.
얼마 전, 월드컵 때 경기장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광고 문구를 보았을 것이다. 사실 눈이야 공 쫓아다니느라 그것을 눈여겨보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그것이 우리 뇌에 각인 된다. 그래서 광고주들이 거금을 아끼지 않고 경기장 외곽에 광고를 넣는 것이다.
성경도 광고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10:14~15).
우리 교단의 계절 축제인 하계산상집회가 8월 3일부터 13일까지 2주간에 걸쳐 전라도 장성 예루살렘기도원에서 열린다. 산상집회는 영적 전지훈련을 받고, 영적 보양식도 챙기는 귀한 시간이다. 귀한 것일수록 함께 나눠야 하는 법,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 모두가 영·혼·육이 새로워지고, 강건해지기를 소망한다.
예수중심편집실
***예화; 11599. 교회신문 > 제 1369호 세상을 보는 창. 말(言)이 끌고 가는 인생. 잠18:20-21
젊은이!
말(馬)이 끄는 수레를 본 적이 있나? 말이 제멋대로 가는 듯 보이지? 그러나 그렇지 않네. 말은 주인이 고삐를 어느 쪽으로 당기느냐에 따라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정하지. 곧 고삐에 따라 목적지가 달라진다는 거야.
우리 인생도 똑같다네. 말이 인생을 끌고 간다는 거야. 다만 수레를 끄는 말(馬)이 아니라 우리 말(言)이라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종착역, 도착지가 달라진다네. 그런데 그 말은 고삐를 쥐고 있는 자의 생각으로부터 나오지.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살아가거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다윗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사도 바울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 요셉
“죽으면 죽으리이다” - 에스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예수님
그리고 “세계는 내 교구다!”라고 외쳤던 이초석 목사의 말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향해 삶을 이끌어 간 믿음의 고백이었네. 이들의 말은 단순한 긍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선언이었고, 그 선언이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목적지로 이끌었네.
말이 끄는 수레라고 하니까 너무 옛날이야기 같나? 그렇다면 자동차로 비유해 봄세. 자동차는 운전자에 의해 움직인다네. 아무리 수천 마력의 엔진을 가진 최고급 자동차라도 운전자가 핸들을 꺾는 방향으로 갈 뿐이야. 목포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부산에 도착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지.
인생도 마찬가지라네. 우리 생각은 운전대고, 말은 액셀이야. 생각이 방향을 정하면 말은 그 방향으로 인생을 가속한다네. 그래서 늘 실패를 말하는 사람은 실패를 향해 속도를 내고, 늘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은 가능성을 향해 달려가는 거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는 메뚜기 같다”, “우리는 죽는다”고 말했다네. 자꾸 그쪽으로 핸들을 꺾으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반대로 핸들을 꺾으려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며 애를 썼네. 그러나 다수가 그쪽으로 핸들을 꺾으니 그걸 누가 막겠나. 계속 그 방향으로 달린 거지. 결국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다 광야에서 고꾸라져 죽었네. 반대로 꺾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고.
젊은이! 일부러 떨어질 벼랑으로 수레를 몰 게 뭔가? 일부러 절망의 나락으로 자동차를 몰 게 뭔가? 인생은 일생(一生)인데 한 번 멋지게 살다 가야 하지 않겠나?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내가 몰고 가는 수레요, 자동차인데, 내 생각대로, 내 말대로 된다는데 그걸 못한다면 말이 되겠나?
부디 불평보다 감사의 말을, 두려움보다 믿음의 말을, 포기보다 도전의 말을, 저주보다 축복의 말을 선택하게. 세상은 운명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자네 믿음의 말을 통해 역사하신다네. 자네 생각을 바꾸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네.
오늘도 핸들을 잘 붙잡게나. 괜히 잘못 생각해서 이상한 데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나는 할 수 있다”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젊은이! 말(言)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자네 인생을 끄는 말(馬)이라네. 생사화복이 자네 말에 달려 있으니 오늘도 믿음의 말을 붙들게. 그 말을 타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최고의 목적지까지 힘차게 달려보게나!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0~21).
2026. 7. 붕우 이초석 목사
***예화; 11600. 교회신문 > 제 1369호 세상을 보는 창. 예배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려 할 때
얼마 전 청·장년부 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예배 전 기도하고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겼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감정이 상해 말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문득 앞에 있던 물티슈가 눈에 들어왔다.
물티슈 겉 포장이 뱀의 형상처럼 보였고, 마치 혀를 길게 날름거리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우리가 이렇게 다투는 것도 악한 것의 공격이고, 영적인 방해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에 마음을 가다듬고 감정을 추스른 후 남편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남편도 이것이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라 악한 영의 방해라는 것을 인지하고 서로 화해하였다.
악한 영들은 늘 우리를 공격할 틈을 찾는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무기가 있다. 예수 이름의 권세! 총회장 목사님께서 늘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방법을 알려주셨으니, 우리는 수시로 예수 이름을 선포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기도하면 된다.
찰스 스펄전이라는 영국의 설교자도 예배를 앞두고 성도의 마음을 흔드는 여러 방해가 찾아올 수 있음을 가르쳤다고 한다. 가족 간에 사소한 말다툼이 생기거나 갑자기 몸이 피곤해지고, 작은 일에도 마음이 예민해져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험을 겪지 않은 성도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순간들을 단순히 우연으로 넘기지 말고, 영적 방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돌아보면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를 준비할 때 이상하리만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곤 했다. 사소한 다툼이나 마음의 분주함 때문에 예배에 집중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도로 마음을 지키면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부어주셨다. 우리,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예배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놓치지 않고, 그 축복을 받아 누리자!
정효경 집사
***예화; 11601. 교회신문 > 제 1369호 세상을 보는 창. 명의의 처방. 잠4:23
엄마가 소천하신 후 1년쯤 되었을 때, 뉴질랜드에서 홀로 유학 중이던 내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외로움과 공허감에 어떠한 즐거움도 없었다. 청승맞게 슬픈 노래를 들으며 노을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면서 눈물 흘릴 때도 많았다. 전화 넘어 아버지도 내 상태를 인지하시고, 이초석 목사님께 통화를 부탁드렸다.
“어, 나다!”
전화기 너머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사님은 아버지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으셨다며, 갑자기 ‘운동은 하냐?’고 물으셨다. ‘따로 하는 운동은 없다’고 말씀드리니, ‘지금 바로 동네 한 바퀴를 뛰고 오라’ 하시고, ‘거긴 지금 몇 시냐?’ 물으셨다. ‘밤 10시’라 답하니, ‘그럼 30분 후에 다시 전화하겠다’ 하시곤 끊으셨다. 어리둥절했지만 바로 나가 뛰고 오니 10시 30분에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할 줄 알았냐?”, “네, 목사님”, “네가 나를 믿는다는 뜻이다. 땀이 좀 나느냐?”, “네, 조금 납니다”, “그래, 그럼 이제 얼큰한 걸 좀 먹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푹 자라. 성경은 읽느냐?”, “네, 전도서 읽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네 나이에는 맞지 않다. 복음서를 읽어라. 내가 기도할게!”
이후 정신을 차리고 휴학 후 한국에 돌아와 군에 입대하였다. 그때는 어리둥절했지만 돌이켜보니 목사님은 내게 딱 필요한 처방을 해주셨다. 운동으로 몸에 땀이 나면 활기가 생겨난다. 얼큰한 음식을 먹으면 또 땀이 나고, 에너지가 생긴다. 그리고 푹 자고 나면 의욕이 생겨난다.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서 말씀을 되뇌던 내게 예수님의 역동적인 사역을 보여주는 복음서를 통해 시각을 바꿔주셨다.
내가 내 몸을 통제할 수 있다. 보는 눈, 입술의 말, 내 발걸음으로 마음을 지키자. 땀이 날 정도로 뛰고, 잘 먹고, 푹 자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라. 목사님이 내게 해주셨던 그 처방은 당신에게도 분명 통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예화; 11602. 교회신문 > 제 1369호 세상을 보는 창. 장마철, 장 건강을 지키는 지혜
장마철에는 높은 습도와 기온으로 인해 음식이 쉽게 상하고 세균과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쉬워집니다. 이 시기에는 장염 환자가 크게 늘어나므로 평소보다 음식과 위생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장염의 주요 증상
장염은 바이러스나 세균, 오염된 음식 등에 의해 발생하며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설사, 복통과 복부 불편감, 메스꺼움과 구토, 발열, 탈수로 인한 무기력과 어지러움이 있으며,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는 탈수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으므로 충분한 수분 섭취와 적절한 치료가 중요합니다.
*장염 예방법
장염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식사 전과 화장실 사용 후 비누로 30초 이상 손 씻기, 음식은 충분히 익혀 먹기, 조리된 음식도 실온에 오래 두지 않기, 냉장 보관을 철저히 하고 유통기한 확인하기, 생선회, 육회 등 날음식은 가급적 피하기, 설사가 심할 경우 물과 전해질을 충분히 보충하기
* 장마철에 좋은 한방 건강차
① 생강차
장마철 가장 추천하는 차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해 냉한 기운을 줄여줍니다. 소화를 돕고 속이 더부룩한 증상을 완화하며, 감기 초기나 목이 칼칼할 때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손발이 차가운 분, 비 오는 날 몸이 무겁고 피곤한 분, 속이 냉해 쉽게 설사하는 분에게 좋으며, 열이 많거나 위산 역류, 속쓰림이 심한 분은 과다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② 건강차(乾薑茶)
건강(乾薑)은 생강을 말린 것으로, 생강보다 몸을 더욱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비위(脾胃)를 따뜻하게 하여 소화 기능을 돕습니다. 장이 차서 반복되는 설사나 복통이 있을 때 도움이 되며, 장마철 냉방으로 인해 배가 차고 불편한 분에게 적합합니다. 평소 몸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분,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설사를 잘하는 분, 장마철 냉방 후 복부가 차고 불편한 분에게 도움이 되며, 입이 마르고 열감이 많거나 변비가 심한 분은 과다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마철에도 건강한 식습관과 충분한 휴식, 따뜻한 생강차와 건강차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평안과 은혜가 모든 가정에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Dr. 설재현 집사
***예화; 11603. 교회신문 > 제 1369호 세상을 보는 창. Good News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받는 선물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싼 선물을 아무 조건 없이 준다면 어떨까요? 아마 놀라면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이미 그런 선물이 주어져 있습니다. 바로 ‘구원’이라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이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결국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선물)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선물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받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영접하기만 하면 이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을 위해 준비된 이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받아보시지 않겠습니까?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초청해보세요. 당신의 삶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고 죽은 뒤에는 영생복락의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상화평 목사
***예화; 11604. 교회신문 > 제 1369호 객원컬럼. 575% 버핏지수의 경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종목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 달하는 반면, 실질 GDP에 대한 기여도는 9.5%에 불과합니다. 이를 주가와 실물 경제의 괴리를 보여주는 버핏 지수로 산정하면 무려 575%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대기업의 글로벌 성과가 국내 실물 경제로 흐르지 못하는 낙수효과 소멸 현상을 명확히 방증합니다.
한편, 이 구조는 한국 경제가 미국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Hyperscaler)들의 투자 동향에 극단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향후 AI 투자 수요가 둔화될 경우, 그 충격파는 지속적인 환율 급등과 금리 인상 압박으로 이어져 외환, 금융, 그리고 부동산 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급격히 확산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반면, 2026년 1/4분기 기준으로 명목 GDP 대비 시장의 통화량(M2)은 53%가 초과(153%대)되어 있고 가계부채 잔액은 85%선을 차지하고 있다는 집계는, 단순히 자원의 왜곡된 분배 차원을 넘어 내부 체계의 치명적인 구조적 하자가 존재함을 시사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미세한 외부 충격에도 내부의 취약한 고리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Fragile) 구조라는 사실을 명백히 경고합니다.
현재 글로벌 패권 환경을 살펴보면, 미국 정부는 하이퍼스케일러들에게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며 전 세계 민간 자본의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있고, 중국은 과거 ‘대장정(長征) 정신’으로 국가 주도형 자급자족 가치사슬을 개발하여 국내외 시장에서 실질적인 매출을 동시에 실현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타 산업에 대한 구축효과는 장기간 지속될 것이며, 상당한 기간 동안 산업 불균형, 유동성 편중, 그리고 스테그플레이션 형태의 장기 침체는 확정적입니다. 따라서 규모와 상관없이 존속을 위해 재원을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조직이라면, 유동성이 낮은 자산과 부채의 규모는 최소화하고 유보현금의 규모를 최대화해야만 합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종적으로 파산, 혹은 해체된 일부 대기업군의 공통점은 최고결정권자들이 참모와 관계자, 심지어 기여도가 미약한 거래처나 대중의 평판까지 의식하며 무리하게 사업을 다각화한 것에 있었습니다.
또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리먼브라더스와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치명적인 부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실적과 시장의 반응에 편승하여 제삼자에게 전가한 결과 중국은 투자 손실을 감당하였지만, 미국에 대한 의존을 축소하는 시점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조급이 죄이고, 이는 자신은 물론 주변에까지 피해를 전가한다며, 오리를 가려면 십 리를 갈 준비를 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임윤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