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저마다의 사연에 따라 느낌이 다른 법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빙판 위를 달리더라도 삶의 의욕이 넘치는 모습은 싱그러워 보이는 법이고 곳곳마다 장애로 가로 막혀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고 삶을 지탱하기 위한 애절한 선택이라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인 것이다.
내가 남대문 경찰서 형사계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이었는데 관내인 다동 유흥가에서 헬멧을 쓰고 군용 잠바차림으로 허름한 오토바이에서 내리던 용식이를 만났다. 음식점에 참기름을 배달 나왔다고 했다. 용식이 아는 사람의 소개로 거래처를 어렵게 얻은 모양이었다. 도봉구에서 무교동까지 눈 오는 날 빙판 위를 달려 온 것을 보면 호구지책이 절실했던 것 같았다. 탈랜트로 막 이름을 날리려는데 저간의 사정으로 참기름 장사를 다니는 모습을 보니 영 마음이 씁쓸했다.
내가 용식이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졸업한 이듬해였다. 그당시 나의 형이 청진동에서 상록학원을 운영하였는데 용식이가 그 부근에 있는 양영 학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몸이 몹시 비대했다. 왜 그렇게 살이 쪘느냐고 했더니 용식이 특유의 웃음을 보이며 90키로그람이 넘어야 군대를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래서 일부러 살을 찌게 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해서 군대를 가지 않았는지 그 내막은 잘 모른다.
그 이외에도 용식이가 참기를 장사를 하기 전에 탈랜트 생활을 열심히 하여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었을 때였다. 나는 모 기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방송국에 갔다가 용식이와 마주쳤다. 우리 둘이는 미아리로 향했다. 어느 주점에 들어갔는데 나는 그 당시 말 술을 하던시기이고 용식이는 그때도 술을 못했다. 목욕탕(?)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미아리 캬바레에 놀러 갔다. 용식이를 알아 보는 눈들이 많았고 인기도 있어서 그날 저녁 아주 즐거운 한때를 보내게 되었다.
5공화국이 끝나고 나서는 용식이가 노는 차원이 달라졌다. 움직이는 것이 곧 돈인 것 같았다. 수원의 어느 유흥 식당에 용식이 쑈를 보러 갔다. 아빠의 청춘을 부르면서 전후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에 배꼽을 잡았다. 무대가 끝나고 우리가 앉은 자리로 용식이가 오자 많은 시선이 우리한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제법 어깨가 으쓱해지는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용식이는 앉자 마자 씨익 웃으며 메뚜기도 한철인데 열나게 벌어야지 하여 한바탕 웃게 되었다.
한번은 양평에 후배가 음식점을 하는데 자기가 홍보를 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데리고 가기도 하고 느닷없이 찌그러진 자동차 정비하는 회사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하면 시내 곳곳에 용식이의 얼굴이 나붙기기도 했다. 용식이에게 너무 이것 저것 많이 하다가 골병 들겠다고 하면 엄지와 검지를 오므리며 쩐이 좋잖냐 하며 너스레를 떠는 것이 영 밉지가 않았다.
용식이와의 사연은 어디 그뿐이겠는가. 나도 이정도인데 다른 친구들은 또 얼마나 많은 사연과 추억이 있을까. 중국의 장가계에 가서도 저 혼자 가마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배에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원맨 쑈를 하기도 했다. 용식이는 글자 그대로 탈랜트였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그런데 용식이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풍토병인지 뭔지 알다시피 용식이는 자기 건강은 끔찍하게 챙기는 친구인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이냐. 그깟 풍토병 하나 이기지 못하고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나게 되어 그 슬픔을 비길데가 없다. 삼성병원 영안실 15실에서 용식이하고 해후했다. 슬픔을 깨물고 영정 앞에 서서 용식이를 바라보는 순간 눈물대신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아 잠시 당황했다. 용식이가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장난끼 많은 그 웃음이었다. 용식이 말대로 또 무슨 썰을 푸는 것 같았다.
“애들아 뭐 그리 슬퍼들 말어. 내가 조금 먼저 가는 거라고 생각해. 저옆에 쭈욱 서있는 아이들하고 처하고 좀 걱정이 되는데 내가 그동안 쩐 좀 모아놓은 것이 있으니 큰 걱정은 안해도 될거야” 하는 것만 같았다.
만남과 이별은 어쩔 수 없는 인생사이다. 살다 보면 많은 이별을 겪는다. 그러나 좋아하거나 미워하거나 이별이라는 것은 막상 그 순간이 닥치면 아쉽고 섭섭한 감정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하기야 우리가 이젠 70을 바라보면서 조금 일찍 간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마는 어떻든 이별은 이별이잖은가. 이왕이면 함께 살다가 같이 가면 이별도 없고 얼마나 좋으련마는 그것도 순서가 있으니 가는 사람과 남은 사람들이 서로 찢어져야 하는 감정을 처리하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뜻있는 일들을 많이 한 사람은 먼저 가고 별 볼일 없이 세월만 죽여 온 사람은 저 세상에 가는 것도 그 순서가 한참 뒤처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먼저 갔는지 세워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많은 친구들이 앞에 갔다(아마 50명이 유명을 달리한 것 아닌가). 그중에 내가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이 찬주가 있고 병섭이가 있고 용식이다. 그러고 보니 하늘나라에서 필요한 사람만 골라서 데려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하늘나라에 요즘 곤란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옛날에는 하늘나라는 천국이라 근심 걱정이 없는 별천지라고 했으나 요즈음 달나라에도 가고 하다 보니 하늘 나라에도 벌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져서 찬주를 급히 데려 간것 같다. 그리고 하늘나라에도 인원이 늘다 보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 병섭이를 불러 예쁜 간판을 요소요소에 잘 만들라고 한것 같고, 맨날 하는 레퍼토리로 지겹기도 하고 재미도 별로 없어 삭막해지자 분위기를 띄우려고 용식이를 또 다시 데려 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이 친구들은 이승을 떠나면서도 선택 받은 사람들이니 슬퍼할 것만은 아니다. 다만 여기 남아 있는 우리들이 용식이와 먼저 간 친구들의 추억만 안고 살아 가야하니까 그것이 무척 안타깝고 서운한 것이다.
오늘 용식이가 하늘나라에 오르는 날이다. 하늘도 무심치 않으시고 아침부터 잔뜩 찌푸려 떠나 보내는 사람들의 슬픔을 대신해준다. 그래도 용식이가 썰로 항상 밝은 반전을 주듯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비친다. 벌써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환한 웃음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했는가보다.
장가계를 오르는데 용식이가 가마를 타고 나타났다.
"용식아, 몸을 그렇게 아껴서 뭐하냐"
"이몸이 곧 돈이다 허허"
내가 외쳤다
"쉬이 물렀거라 , 여기 돈 나가신다" 했더니 용식이가
"야, 진철아 좀 조용히 해라, 쪽팔리잖아" ㅋㅋㅋ
천하제일문을 지나니 구름다리가 나타나고 난간에 수많은 자뮬쇠통이 걸려 있었다.
용식이는 구름 다리위에 서서 자물쇠를 만지작 거리며 지상에서 맺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늘나라까지 와서 자물쇠를 채우고 간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이 죽으면 동전 한닢도 못가지고 가니까 이렇게 미리 무거운 쇠떵어리를 갔다 놓는 것이라고 했다.
구름다리 아래로는 수천길 낭떨어지라 내려다 보기도 어지러울 뿐아니라 안개에 가려 사물이 보이지도 않았다. 용식이는
"진철아 너 같은 거구가 저 밑에서 왔다 갔다 해보았자 여기서는 보이지도 않겠다" 고 하며
무슨이유인지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한다. 용식이는 이미 천상유희를 쌔달은 것 아닐까.
용식이는 한평생 무대위에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항상 긴장하고 사는 우리들을 위해 잠시나마 마음을 풀어 헤치라고 웃음을 선사하는 배우로 살았다. 말은 쩐 때문에 뛴다고 했지만 그게 용식이의 본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내려 놓고 갈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리 대단히 여겼을리가 없다. 아마도 쩐도 받지 않고 뛰어 다닌다면 너무 심심해서 그랬던 것 같다.
용식아, 하늘나라에서는 전후좌우로 뛰지 말고 후전 우좌로 돌거라 그리고 이젠 웬만하면 그만 무대에 서고 네가 관객이 되어 좀 쉬거라. 용식이는 인생을 관조하며 즐기고 간 참다운 광대였다.
첫댓글 서운하다. 이러 저러한 사연이 있기야 하지만...이제는 년말 송년모임에서도, 어쩌다 만나면 자리한번 만들자며 씩 웃던
용식이릉 다시는 볼수가 없구나. 용식이 아들이 운영하는 커피집에 가서 "아빠 요즘 바쁘냐? " 라고 묻던때가 아직 생생한데. 용식아 ! 잘가...
정총재가 섬섬옥수 헤아리면서 용식이를 보낸 친구들의 서운함과 함께 위안이 되는 글을 잘 써서 고맙소이다.
어제 기독인회회원을 비롯한 여러명의 동기들이 먼저가는 용식이의 장례, 화장, 유골안장식까지 참석해서 먼저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영원한 안식을 갖도록 기도했지요.
정말 서운하다. 가슴이 아프다, 말로 표현못할정도로. 눈물이 난다.
정말보고싶다. 그리운친구야 좋은데 가시게.
언젠가 친구들과 포커를 하고 있었는데 누구한테서인가 계속 전화가 온다. 용식이가 야간업소에 있는데 늦더라도 갈테니 파하지 말고 기다려 달란다. 거의 끝판에 도착해서 모두들 보는데 주머니를 터는데 전부 꼬깃꼬깃한 돈이다. 손님들이 준 팁이란다. 언놈은 "니가 전두환이냐" 하면서 쥐어 박고는 팁을 주고 언놈은 "영광입니다" 하면서 팁을 주고... 이제 그간의 노력 덕분에 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는데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가다니............ 에이 나쁜 친구야..........
젤 왼쪽 애기가 지금의 내 네 손주들 할머니
정영숙 - 장모님, 이순재 - 장인, 임동진 - 중신애비,
박용식 - 내 아버지.
1985년 주말연속극 열망, (78부작) -사진을 클릭.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모든 (행동을) 하는 법은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꿈과 환상과 물거품과 그림자와같고
如露亦如電 여로역여전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마땅히 이렇게 볼 지니라.
이렇게 친구들이 한명씩 갈때마다 남길 추억이 있으려면 건강할때 서로 서로
자주 만나야 되겠지.
사실 용식이 같은 경우에는 나보다 더 자주 만나던 친구들이 많았기때문에
추억이 많을거야..거렇지만 아무말 하지 않고 입을 다물면 영원히 묻혀 버리겠지.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도 떠나가는 친구를 기리는
일이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