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무덤, 빈 마음: 모든 곳에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 파스카 성야(마르16,1~7)
세종 성 바오로 성당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이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시길 빕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 가운데 부활하셔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곳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이미 당신 피로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부활의 기쁨은 실로 엄청난 은총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로움입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마지막 어둠인 죽음을 죽음으로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우리가 이제는 당신과 함께 죽음으로써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부활하셨다는 그 자체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요 주춧돌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주님 체험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우리도 영원히 살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모진 박해 앞에 이내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이 바로 죽은 이들의 부활이기도 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토마스 사도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1코린15,12~14.20).”
우리의 온 몸과 온 영(靈)이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역시 부활 할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해 믿으려 애쓰지만 왜 마음에는 깊이 와 닿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가 주님의 부활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 자신의 부활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도 부활하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은 한 가지, 그 답은 바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하는데,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과 함께 살고 예수님과 함께 죽기로 다짐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 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중심에 두지 못하고
우리 자신을 그 중심에 둘 때가 많습니다.
필요할 때는 주님을 찾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자신을 중심으로 내 뜻대로 살아갈 때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인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적으로 죽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제 무덤 안에 머무르시지 않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 해 들어오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뜻과 자신의 것에 대해 죽는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무덤에서 나와 일상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알아 뵈올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는 은총을
오늘 우리는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고 감사드리며,
오늘 우리 자신의 부활을 위해 자신에 대해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청하도록 합시다.
우리의 상처와 우리의 죄와 우리의 허물을 주님께 모두 맡겨 드리고
새로운 눈으로 자신과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바라보며
여인들과 함께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사랑으로 전하도록 합시다.
“이 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