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5곡】 두 번째 고리, 애욕의 죄인들
그렇게 첫 번째 고리에서 두 번째 고리로 내려갔다.
그곳은 더 좁고 구불구불했으며
전보다 더한 비통이 깔려있었다.
이 두 번째 고리의 입구에는 미노스가 죄를 조사하고 판단하여 아래로 내려 보냅니다. 미노스는 순례자를 보더니 "왜, 이곳으로 들어가는가!"라고 하니, 선생님이 뜻하는 것을 행하시는 권능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니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한탄 소리와 무수한 통곡이 뒤흔드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미노스의 심판대인 허물어진 벼랑으로 영혼들이 휩쓸려 내려 갈 때 비명과 한탄과 통곡이 밀려옵니다. 이 비명과 한탄이 밀려드는 가운데, 그들이 이성을 욕망의 멍에로 씌워 욕심에 굴복시킨 자들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역죄를 지은 영혼들이 번민을 덜어줄 희망도 없이, 소리 내어 울부짖는 폭풍우에 실려 이리저리 지치도록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내 앞으로 다가오는 그림자들을 보았다.
“선생님! 검은 바람의 도리깨질로 벌을 받는
이 영혼들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까?“
베르길리우스가 말해줍니다.
이 무리 중 네가 알고자 하는 첫 번째 사람은 수많은 나라의 여제였다.
그 이름은 세미라미스.
세미라미스는 니누스가 죽자 아프리카까지 정복하여 정복 전쟁과 국가사업으로 전설적인 인물이 된 여제지만 정욕이 너무 강해 음란을 합법화한 여왕입니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 클레오파트라, 헬레네, 아킬레우스(트로이 전쟁 중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딸 폴리세네를 사랑하여 그로 인해 계략에 말려 죽었다), 파리스(헬레내를 데려와 트로이 전쟁이 시작), 트리스탄('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트리스탄, 켈드족의 전설)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살다 죽은 영웅들과 여자들의 명성에 대한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때 순례자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머리가 어찔했습니다.
어두운 바람에 실려 거품처럼 가볍게 손을 맞잡고 떠도는 저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니 선생님은 그들을 인도한 사랑의 힘으로 간청하면, 그들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순례자는 여러 무리들 중 한 쌍의 연인인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를 주목합니다.
이 영혼들은 라벤나 영주의 딸 프란체스카와 그의 시동생이자 연인인 파올로입니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다 남편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프란체스카는 단테가 자신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단테의 관심에 자신들이 애틋한 사연을 이야기 합니다.
리미니의 군주 말라테스타는 그의 장자 장치오토를 라벤나의 군주 구이도 폴렌타의 딸 프란체스카와 결혼을 시킵니다. 이 결혼은 속임수 결혼으로 신랑인 장치오토가 추남에다 꼽추여서 결혼식장에 대신 왔던 파올로는 신랑의 동생이었습니다. 결혼식에 왔던 신랑, 신부 그러니까 형수와 시동생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결코 놓아주지 않으니,
이이에 대한 차오르는 기쁨으로 나를 사로잡았어요.
보다시피, 이이는 내 곁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어요.
“내 곁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어요.”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그녀가 죽는 장면이 아직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영원히, 벌거벗은 애인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죽었던 장면이 영원한 형벌입니다. 그(파올로)는 그녀 곁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으며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와 그녀의 후회를 계속 일깨우고 있습니다. 로댕의 지옥의 문에서도 벌거벗고 애인과 함께 있는 모습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하나의 죽음으로 이끌었지요.
우리를 죽인 그자를 카이나(지옥 아홉 번째 고리)가 기다리고 있어요.
이런 말들이 우리에게 들려왔다.
‘하나의 죽음’은 사랑의 뜻도 담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불러왔지만 그 죽음도 역시 사랑이기에,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랑 자체보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결합이, 죽음까지 뛰어넘고 있음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프란체스카여! 어떻게 사랑이 당신의 숨은 열정을 알려주었단 말이요? 라는 단테의 물음에
당신의 선생님은 아시겠지만,
비참할 때 행복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만큼
괴로운 것은 없어요.
프란체스카가 단테에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사랑이야기도 이 지옥에 온 것도 거짓으로 이야기합니다. (허영과 가식이 있습니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와 함께 읽고 있던 책을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을 바꾸어서 이야기해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려합니다. 랜슬렛의 사랑이야기에서 여왕이 먼저 키스를 했는데 랜스렛이 했다면서 파올로가 먼저 키스해서 자기가 따라간 걸로 합니다.
한 영혼이 말하는 동안
다른 영혼은 울고 있었다. 비통한 소리에 에워싸인 나는
그들이 불쌍해, 죽어 가는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시체가 쓰러지듯 지옥의 바닥에 무너져 버렸다.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듣고 순례자는 그들의 사연이 가슴이 아파 정신을 잃을 정도였기에 그녀의 무죄를 확신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단테는 하느님의 구원을 인간을 궁극적 목표로 제시하는 이성을 놓치지 않고,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지옥에 두기에 알맞은 애욕의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순례자의 생각과 단테의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로댕의 지옥의 문, 2019년 파리 여행에서
로댕의 지옥의 문에 있는 왼쪽 위 아들을 안고 있는 우골리노 백작
그 아래 서로 팔을 뻗고 있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2019년 파리 여행에서
즉 순례자는 프란체스카의 애절한 사연에 감성이 앞서 사랑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단테는 규정과 법칙에 어긋나는 사랑을 애욕의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파리에 ‘로댕 미술관’이 있습니다. 로댕 미술관 정원 왼쪽에 로댕의 ‘지옥의 문’ 조각 작품이 서 있는데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주제로 로댕이 '지옥의 문'이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단테가 ‘생각하는 사람’이란 작품으로 문 위 팀파늄에 앉아 있고, 문 중간에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조각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발가벗고 둘이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우골리노와 그의 아들들' 있습니다.
지옥의 문'은 단테가 목격하고 기억하고 기록을 한 모습(신곡에서)을 로댕이 주관적으로 재현한 지옥의 모습입니다.
로댕은 지옥의 문에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을 비련으로, '우골리노와 루지에르 대주교'를 배신의 대명사로 보는 이의 기억에 남을 조각을 남겼습니다.
로댕 미술관에 갈 때 마다 꼭 ‘지옥의 문’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