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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내: 다미가 오늘……. 아무말도 하지 않아……..
가필: ……..
아내: 당신……. 기억나? 다미 8개월 때 경기를 일으켰잖아.
가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아내: 한 밤중에 갑자기 울더니 숨이 멈추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난 무서워서 울기만 하는 데 당신이 다미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가필: …….
아내: 난 당신이 그렇게 잘 달리는 줄 첨 알았어. 아이를 안고 달리는 데도 내가
따라갈 수 없었을 정도니까……..
아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는 가필.
아내: 병원에 도착했더니 의사는 흔히 있는 경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
가필: ……..
아내: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다미를 안고 있는 당신을 보면서 참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어. 그 때 당신이……. 정말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웠거든…….
다시 말이 없는 아내.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어 가필에게 내민다.
아내: 오전에 그 사람들이 와서 이걸 주고 가더라.
가필: (봉투를 보며)…….?
아내: 위로금이래……..
아내는 아무런 느낌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아내: 입원비는 퇴원한 다음 영수증을 보내주면 지불하겠데…….
다시 말 없이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아내: 나 들어가 볼게.
아내가 벤치에서 천천히 일어나 병실 쪽으로 걸어간다.
고개를 떨군 채 멍한 표정으로 무릎 위에 놓여 있는 흰색 봉투를 바라보는 가필.
INT. 다미의 방. 저녁
가필이 불도 켜지 않은 채 텅빈 다미의 방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가필의 시선을 따라가면 침대 옆에 아내가 준 위로금 봉투가 놓여있다.
Jump Cut To:
다미의 방 창문을 통해 새벽 여명이 밝아 온다.
가필은 다미의 침대에서 꼬박 밤을 새운 듯 얼굴은 피곤에 찌들어 있고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다.
다미 방에 걸려있는 액자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다미가 그런 가필을 내려 보는 듯 하다.
INT. 거실. 아침
가필이 거실 소파에 앉아 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다.
전화기 옆에는 ‘교감 홍직인’의 명함이 놓여있다.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비장한 표정의 가필, 수화기를 들고 있다.
잠시 후,
가필: 다미 아빠입니다. 장다미……. 기억도 못하십니까? ………….
그 놈에게 사과를 다시 받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그 놈 부모들의 사과도 꼭 받아야겠습니다. …….…….. 당신이 상관할 문제가 아닙니다. ………….
하여튼 난 그 놈과 그 놈 부모에게……..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듯 잠시 동안 수화기를 들고 멍하니 앉아 있는 가필.
EXT. 청학 고등학교. 오후
텅 빈 청학 고등학교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가필.
가필의 옆구리엔 무언가 둘둘 말려있는 신문 뭉치가 끼어져 있다.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에 가필은 현기증이 일어날 거 같다.
하지만 핏발이 선 가필의 눈엔 살기가 흐른다.
학교 건물 조금 앞까지 왔을 때 갑자기 한 무리의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승석의 반 아이들이다.
가필은 개의치 않고 아이들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 때 개중이 무심결에 가필과 부딪히고, 그 바람에 옆구리에 끼고 있던 신문지 뭉치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신문지 뭉치 사이에서 주방용 식칼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필, 당황하며 바닥에 떨어진 식칼을 집어 들자, 아이들은 웅성대며 가필의 주변을 에워싼다.
순간, 당황한 가필이 칼을 집어 들고 아이들을 위협하며 고함을 지른다.
가필: 강태욱 어딨어? 강태욱 나와!!
아이들은 가필의 손에 들려진 칼을 의식하고 가필의 주변에 흩어져 서 있을 뿐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뒤늦게 개중이가 가필을 발견하고
개중: 나.. 저 아저씨 본 적 있어…….
용기를 내어 개중이가 조심스럽게 가필에게 나서려 할 때, 이보다 먼저 아이들 무리 가운데
승석이 쓰윽 앞으로 나온다. 승석의 등장에 긴장하는 가필.
가필: 뭐…….뭐야, 너는…….?
승석은 가필의 말을 무시하고 천천히 가필 앞으로 걸어간다.
가필은 승석의 거리낌 없는 태도에 겁을 먹은 듯 칼을 쥐고 있는 손이 떨린다.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 승석을 보며 조금씩 뒷걸음질치는 가필.
가필: 저리 가! 저리 가!!!
그러나 승석은 가필에게 점점 다가온다.
승석의 왼쪽 눈썹 위의 상처가 붉게 변해 있다.
마침내 가필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승석을 향해 가필은 눈을 감고 칼을 내민다.
순간, 순식간의 동작으로 승석은 가필이 내미는 칼을 피하며 돌려차기로 가필의 안면을 강타한다.
가필은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진다.
가필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고 승석을 비롯한 아이들이 가필을 내려다보고 있다.
/ Fade Out
INT. 아지트. 오후
가필이 의식을 되찾아 천천히 눈을 뜨면 가필은 어느 낡은 소파에 누워있다.
가필이 있는 곳은 학교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창고 같은 곳이다.
개중: 정신 들어요?
개중이가 웃음 띤 얼굴로 가필을 내려다보고 있다.
개중이 옆에는 수빈이 있고 승석은 창가에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다.
승석 앞에는 가필이 들고 있던 칼이 얌전히 놓여있다.
가필은 벙찐 표정으로 개중을 바라본다.
개중: 저 기억나세요? 병원 옥상에서…….
그제야 개중을 기억하고 가필이 소파에서 일어난다.
가필,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한번 흔든 후 개중에게
가필: 담배.. 있니?
가필, 개중이 주는 담배를 받자, 창가에 앉아있던 승석이 책에 시선을 둔 채 무심히 말을 던진다.
승석: 담배 피면 암걸려요…….
승석의 무게감에 눌려 개중에게 받은 담배를 들고 어쩌질 못하는 가필.
아이들이 자기소개를 한다.
수빈: 안녕하세요. 우린 같은 반 친구들이에요. 저는 채수빈이라고 합니다.
개중: 오세중이에요. 아빠가 세상에 중심이 되라고 세중이라 지었는데 친구들이
개포동에 중심부터 먼저 되라고 개중이라고 불러요. 우리 아빠도 그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승석 차례가 되었지만 승석은 책만 볼 뿐 말이 없다.
수빈이 나서서 승석을 소개한다.
수빈: 저기 저 스카페이스 이름은 고승석이에요.
가필, 승석을 바라본다.
수빈: 그런데 태욱인 왜 찾은 거죠? 그것도 칼까지 들고……..
가필: ……..
개중: 그 놈이 아저씨한테 무슨 짓을 했나요?
가필: ……..
개중: 사실 저희도 태욱이 그 자식 별로 안좋아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흴 믿고 얘기해 주지 않으실래요?
가필, 담배만 만지작거리며 말을 하지 못한다.
INT. 체육관 / Insert
태욱이 무서운 기세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다.
INT. 아지트. 오후
가필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여 있다.
승석은 여전히 창가에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수빈이 먼저 말을 꺼낸다.
수빈: 그렇지만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필: 자네들은 내 기분을 몰라. 내가 내 딸을 어떻게 키웠는데…….
개중: 아버지가 살인자로 체포되면 딸이 슬퍼하지 않을까요?
가필: 난 우리 딸에게, 내가 지켜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그럴 수만 있다면 목숨을 걸어도 상관없어.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던 승석이 불쑥 대화에 끼어든다.
승석: (냉정하게) 그런데 칼은 왜 들고 다녀요?
가필: …….?
승석: 목숨을 걸어도 좋다면서요? 그럼 목숨을 걸고 태욱이랑 붙으면 되지 칼은
왜 들어요?
가필: …….
승석: 폼 잡지 말아요. 아저씬 결국 아저씨 자신이 중요한거야.
자기 몸은 다치기 싫으니까, 태욱이네 집안과 태욱이 주먹이 무서우니까
칼 따위나 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런 식으론 아저씬 소중한 걸 지킬 수
없어요.
가필: …….!
가필, 반론의 여지가 없어 고개를 떨군다.
이때, 수빈이 무언가 반짝이는 생각이 떠오른 듯
수빈: 내 생각엔 지금 상황에서 아저씨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거 같애요?
말없이 수빈을 바라보는 가필.
수빈: 첫째,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태욱이 쪽에서 벌써 다 손을
썼을거니까 아저씨에겐 승산이 없다 봐야죠.
가필, 고개를 떨군다.
수빈: 둘째!
가필, 다시 기대에 찬 표정으로 수빈을 바라본다.
수빈: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가필: 안돼. 그건…….
수빈: 그럼 마지막 방법으로……. 우리한테 도움을 받는 거예요.
가필을 비롯한 모든 아이들이 수빈을 바라본다.
수빈: 우리가 복수할 무대를 만들 테니까 아저씬 죽을 각오로 노력하는 겁니다.
가필: …….?
개중: …….!
수빈: 오늘부터 우린 방학이에요. 아저씰 승석이한테 맡길 테니까 트레이닝을
해서 일단 강해지면 그 동안 우리가 계획을 세울게요.
승석: 잠깐! 무슨 소리야?
잠자코 있던 승석이 수빈의 말을 자른다.
수빈의 제안에 이번엔 개중이 흥분한다.
개중: 승석인 십칠 대 일로 싸워서 이긴 적도 있어요.
승석이한테 배우면 태욱일 작살 낼 수 있어요.
승석: (단호하게) 싫어.
개중: (사정조로) 야, 고삐리 생활 피날레로 한판 벌이자.
수빈: 그래. 한번 해보자.
가필도 원하듯 승석을 바라본다.
승석: 니들끼리 해. 난 관심 없다…….
승석이 가필과 아이들만 남긴 채 동아리 방을 나간다.
개중: 인정머리없는 새끼…….
수빈: (가필에게)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세요. 그게 젤 좋겠네요.
가필,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EXT. 포장 마차. 오후
가필이 포장마차에 있다.
가필: 순대도 1인분 주세요. 떡복기에 만두도 좀 넣고요.
주인: 포장이시죠?
EXT. 병원 입구. 오후
가필이 음식이 담긴 검정비닐봉투와 꽃다발을 들고 병원 입구에 서 있다.
무척이나 망설이는 표정이다.
용기를 내어 병원 현관문으로 들어가는 가필.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검정비닐봉투와 꽃다발을 그대로 든 채 나오는 가필.
다시 현관문 앞에 서 있다.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병원 현관문을 들어가는 가필.
잠시 후, 황급히 다시 뛰어 나오는 가필.
이 때 병원으로 가던 개중이 가필의 모습을 발견한다.
현관문에서 뛰어나온 가필은 조금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기고는 현관문 쪽을 바라본다.
잠시 후, 휠체어를 탄 다미가 아내와 함께 나온다.
숨어서 이들의 모습을 보는 가필.
가필과 다미를 번갈아 바라보는 개중.
다미의 모습에 점점 빠져드는 듯한 개중의 표정.
잠시 후, 휠체어를 타고 있던 다미가 갑자기 토하기 시작한다.
놀란 표정의 가필. 그러나 다가가지는 못한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개중.
INT. 아지트. 오후
승석과 개중 그리고 수빈이 아지트에 있다.
수빈: 토해?
개중: 나랑 친하게 된 간호사 누나한테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정신적인 문제래.
충격 땜에 바깥에 나가는 게 무서워서 그런거래.
지금까지 무심하게 옆에서 책만 보던 승석이 개중을 바라본다.
개중: 그래서 상처는 대충 나아가는 데 퇴원은 시간이 걸릴 거 같애.
승석, 무언가 생각에 잠긴다.
EXT. 공원. 저녁
가로등이 켜져 있는 어느 공원, 겨울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다.
어느 벤치 위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떡볶기와 순대가 놓여있고 그 옆에 빈 소주병 하나가 있다.
가필이 비를 맞으며 앉아 있다.
INT. 가필의 집. 저녁
가필, 집에 들어오면 거실에 불이 켜져 있고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의아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면,
아내: 오늘부터 저녁 땐 집에 들어올거야. 금방 끝날 일도 아닌 거 같아서…….
가필: 다미는……. 어때?
아내: 많이 좋아졌어.
아내, 무심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고 다시 혼자 남는 가필.
INT. 승석의 집. 밤
승석이 잠이 들어있다.
악몽을 꾸는 듯 고통스런 표정이다.
Cut To:
승석의 꿈 - 온통 시뻘겋게 핏발이 선 어느 남자의 눈동자가 Close Up으로 위협적으로
보여 진다.
Cut To:
승석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우두커니 앉아 정신을 차려 보려 애를 쓰는 승석.
INT. 어느 창고 안. 밤
비교적 넓지만 허름한 창고 안에 백열등 불이 켜져 있고 그 한 가운데 승석이 서 있다.
상의를 벗은 승석의 탄탄한 몸은 땀에 젖어 있고 추운 날씨 탓에 몸에서 김이 난다.
서서히 몸을 움직이는 승석.
두 팔을 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 올려 일단 멈춘 다음, 약간 무릎을 굽히고 마치 날갯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바닥을 향해 뿌린다.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동작들이다.
다시 날개를 어깨까지 들어 올린다음, 발레 댄서처럼 한 바퀴 빙글 돌며 완벽한 원을 그린다.
승석의 날개가 그려놓은 원의 궤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무릎을 펴고 가볍게 발끝으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뜯어져 나간 천장 사이로 별빛이 빛난다.
승석은 마치 천정을 뚫고 하늘이라도 날듯이 날개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린다.
EXT. 창고 밖
여전히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승석이 있는 창고 안에서 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카메라, 천천히 크레인 업 하면, 허름한 창고가 있는 판자촌 마을 전경이 드러나고, 이어 멀지
않은 곳에 고층 아파트와 그 너머 있는 69층의 타워 팰리스와 아크로 빌 건물이 화려한 조명과
함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 Fade Out
EXT. 가필의 회사 앞. 아침
가필이 침울한 표정으로 회사로 들어가려 한다.
가필, 문득 걸음을 멈추고 회사 정문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뒤돌아서 걸어간다.
EXT. 어느 거리. 오전
여전히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있다.
가필이 우산을 쓴 채 어느 노래방 앞에 서 있다.
잠시 망설인 후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는 가필.
누군가 그런 가필을 보고 있는 듯 하다.
INT. 노래방.
노래방 어느 룸에 혼자 앉아 있는 가필.
멀리서 여학생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멍한 표정의 가필의 눈동자. / C.U
EXT. 어느 거리. 오전
여전히 비가 내리는 거리를 가필이 힘없이 걸어간다.
가필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어느 한곳에 시선이 집중된다.
가필의 맞은편에 우산을 쓴 행인들이 가필을 지나쳐 간다.
행인들 사이에서 우산을 쓰지 않고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어오는 세 명의 남학생들이 보인다.
태욱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태욱의 복싱부 친구 상민과 용철이 있다.
태욱은 일행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필 쪽으로 걸어온다.
우두커니 서 있는 가필과 태욱의 눈이 마주친다.
가필, 잔뜩 긴장한다.
하지만 태욱은 가필의 얼굴조차 기억 못하는지 흘긋 바라보고는 그냥 지나친다.
가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어이없어하는 낮은 웃음을 흘린다.
가필이 웃음을 거두고 돌아서 태욱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가자 마침내 태욱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필, 코트 속주머니에서 끝이 날카로운 샤프펜슬을 꺼내어 움켜쥔다.
가필, 곧이어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까지 이른다.
샤프펜슬을 쥐고 있는 가필의 손이 떨린다.
신호가 바뀌면서 태욱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다.
가필이 태욱 바로 뒤에 서 있다.
태욱 앞으로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간다.
가필, 생각이 바뀌었는지 샤프펜슬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가필, 발을 조금 움직여 태욱 바로 뒤까지 다가간다.
그리고 마치 태욱을 도로로 떠밀려는 듯 천천히 태욱의 등을 향해 손을 뻗는다.
태욱의 뒷모습,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그리고 살의에 찬 가필의 눈동자와 태욱의 등을 향해 뻗어가는 가필의 손이 숨 가쁘게 교차 편집 된다.
가필의 손이 떨린다.
이 때 신호는 파란색으로 변하고 태욱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건넌다.
뻗친 손을 힘없이 떨군 채 멀어져가는 태욱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혼자 서 있는 가필.
들고 있는 우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고개를 떨군다.
지나치던 사람들이 그런 가필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누군가 그런 가필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우산을 주워 가필에게 건넨다.
가필, 고개를 들어보면 승석이다.
가필과 승석, 말없이 잠시 서로 바라본다.
승석: 어떻게 하고 싶어요?
가필: …….?
승석: 태욱일 어떻게 하고 싶냐고요?
난 철학이 없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가필, 잠시 고민을 한다.
가필: 난……. 난 이 손으로.. 내 딸이 맞은 만큼.. 태욱이란 놈을 패주고 싶어.
그리고 내 딸을 데리러 갈거야.
떨리는 목소리에 가필의 결연한 마음이 느껴진다.
승석, 잠시 가필을 바라본다.
INT. 가필의 회사. 휴게실. 아침
가필이 책상을 마주하고 동료직원과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서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가필을 바라보는 동료직원
동료 직원: 다음 달 인사이동 있어.
가필: 알아.
동료 직원: 요즘 우리 회사도 심상치 않아. 이럴 때 휴가신청을 한다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야.
가필, 잠시 말이 없다가
가필: 자네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멋지게 보인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해?
동료 직원: …….?
가필: 강한 남자가 되어 돌아올게.
동료 직원, 잠시 가필을 바라보다가.
동료 직원: 자네가 회사에 돌아올 때까지 내가 언제 아버지로서 멋있었는지 기억해 볼게.
두 사람, 마주 보며 씨익 웃으며 악수한다.
EXT. 남산 케이블카 승차장. 오전
가필이 양복차림으로 허겁지겁 케이블카 승차장에 도착한다.
승석과 수빈, 개중은 이미 도착해 있다.
수빈: (가필에게) 20분 지각이에요.
가필: 미안……. 차가 너무 막혀서…….
책을 보고 있던 승석이 말없이 일어나 케이블 승차권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가필도 아이들 틈에 끼어 승차권을 받으려 한다.
가필 앞에 온 승석, 가필의 눈앞에서 가필의 승차권을 찢어버린다.
승석: 아저씨는 걸어서 올라와요.
아이들 키득대며 웃으며 유유히 케이블카에 올라탄다.
EXT. 남산 계단.
가필이 남산 타워에 까지 이르는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다.
계단 끝이 아득하게 보인다.
케이블카가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헉헉대며 케이블카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가필.
EXT. 남산 봉화대
추운 날씨여서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벌써 도착해 각자 봉화대 하나씩 사이에 끼고 서울시 전경을 내려다 보고 있다.
개중이 사랑에 빠진 표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개중: 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그런 개중을 이상한 듯 바라보는 승석과 수빈.
마침내 가필이 헉헉대며 봉화대에 이른다.
Jump Cut To:
가필이 윗도리를 벗고 몸에 달라붙는 내복차림으로 추위에 떨며 잔뜩 몸을 움츠리고 서 있다.
수빈: 두 손을 들고 만세 하세요.
가필이 얌전하게 손을 들어올리자 개중이 줄자로 가필의 가슴 사이즈를 잰다.
가슴 다음은 허리, 그 다음은 엉덩이……. 수빈은 수첩에 숫자를 적어 넣는다.
다음에 체지방 측정 기능이 있는 체중계를 가져온다.
기계에 수치가 나온다.
수빈: 오늘 시점으로 체중은 73 킬로그램. 체지방율 32퍼센트. 가슴둘레 95센티미터. 허리둘레 36인치. 엉덩이 둘레 98센티미터. 아저씨 키는 어떻게 돼요?
가필: 165 정도…….?
수빈: 태욱인 라이트 웰터급이니까 60에서 63.5 킬로그램 사이에요.
공정하게 같은 급까지 내려서 결전의 날을 맞이해야죠.
가필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개중: 앞으로 매일 측정할 겁니다.
가필: 근데……. 태욱이랑 승석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개중: 글러브 벗고 뜨면 승석이한테 껨이 안돼죠.
근데 승석인 엄마랑 약속했데요.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쌈 안하기로.
가필: …….!
Jump Cut To: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승석과 가필만 마주 서 있다.
가필은 잔뜩 긴장해 있다.
승석: 앞으로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을 알려 주겠어요.
첫째, 이제부터 난 스승이고 아저씨는 내 제자야. 그러니까 사부 간에 예의는 반드시 지켜야 해요.
가필: 알았어.
순간, 승석이 가필을 매섭게 노려본다.
가필: …….요…….
승석: 둘째, 앞으로 일체 질문 같은 건 하지 마. 훈련 도중 아저씨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네’밖에 없어.
가필: …….네…….
승석: 셋째, 사부가 제자한테 아저씨, 아저씨하면 이상하잖아.
그래서 앞으로 아저씰 ‘짱가’라고 부를거야.
가필, 흠짓 놀란다.
승석: 왜? 맘에 안들어?
가필: (씨익 웃으며) 아니..요
승석: 마지막으로 다시 묻는데…….맞으면 아프고, 때리면 괴로워. 그래도 할거야?
가필, 잠시 머뭇대다가
가필: 이미 결정했어…….요…….
승석: 기초가 뭐라고 생각해?
가필: …….?
승석: 기초란 필요 없는 걸 버리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거야.
지금 짱가 머리와 몸에는 쓸데없는 걸루 가득 차 있어.
가필: …….
승석: 당분간 기초부터 다질 거야. 오늘은 이상 끝!
승석이 이야기를 마치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필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얼굴은 가필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이다.
가필이 그냥 가만히 있자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가만히 가필을 바라보는 승석.
그제야 샐러리맨 특유의 자세로 45도 각도로 황망히 고개를 숙이는 가필.
이때 승석이 가필의 뒤통수를 때린다.
가필, 영문을 몰라하며 승석을 쳐다보면
승석: 절대로 적에게 눈을 떼서는 안돼! 이소룡 영화도 안 봤어?
INT. DVD Shop. 저녁
가필이 DVD Shop에서 영화를 고르고 있다.
가필이 이소룡의 ‘용쟁호투’ DVD를 꺼낸다.
EXT. 버스 정류장. 저녁
가필이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왠지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샐러리맨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가필, 무슨 생각에서인지 정류장 15m 앞 즈음에서 문득 걸음을 멈춘다.
샐러리맨들이 가필을 바라본다.
잠시 생각에 잠긴 가필,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벗어 가방 안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샐러리맨들은 그런 가필의 행동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하자 샐러리맨들은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탔지만 버스는 출발하지 않는다.
뚱뚱한 운전기사가 15m 전방에 서 있는 가필을 바라본다.
뭔가 당혹스런 표정이다.
잠시 후, 운전사는 포기한 듯 버스 문을 닫는다.
가필은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고 크게 숨을 들이쉰다.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면서 천천히 가필을 지나친다.
동시에 가방을 끼고 가필이 달리기 시작한다.
버스가 멀리 사라져가지만 가필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뚱뚱한 운전기사가 사이드 밀러로 그런 가필을 바라본다.
EXT. 가필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저녁
숨을 헐떡이고 거의 휘청거리며 노란색 표지판이 있는 곳에 가필이 도착한다.
가필: 골인!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가필은 무릎 위에 손바닥을 대고 허리를 굽힌 채 거친 숨을 고른다.
가필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가필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가 잠시 고민을 한다.
그리고는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가필, 양복 상의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낸다.
달력이 있는 페이지를 펼치고 날짜에 빗금 하나를 긋는다.
INT. 가필의 집. 거실
늦은 밤. 가필이 거실에 불도 켜지 않고 헤드폰을 쓰고 TV 앞에 앉아 용쟁호투를 보고 있다.
EXT. 호수공원 광장. 오전
넓은 광장에서 사람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뚱뚱한 운전기사가 벤치에 앉아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운전 기사는 인라인을 신고 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보지만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 채 미끄러져 넘어진다.
INT. 남산 케이블 카 승차장. 오전
양지 바른 곳에서 승석이 책을 읽고 있다.
승석 앞에 누군가 나타난다.
승석, 고개를 들면 가필이 바바리 코트를 입고 승석 앞에 서 있다.
가필, 바바리맨처럼 코트를 활짝 열면 코트 안에 노란색에 까만 줄무늬가 있는 이소룡 의상을
입고 있다.
가필: 안녕하삼~?
가필, 씨익 웃어 보인다. 그러나 승석의 반응은 썰렁하다.
승석: 나 먼저 갈게 계단으로 올라와.
제한 시간 10분. 시간 내 도착 못하면 다시 반복이야.
황급히 계단을 향해 달려가는 가필.
아지트
아지트에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다.
커다란 탁자 위에 ‘O' 'X' 표시가 되어 있고 그 위에 아이들이 돈을 올려놓고 수빈과 개중이 테이블 의자에 앉아 아이들의 이름과 액수를 적고 있다.
남산 정상. 봉화대
양지 바른 벤치에 앉아 책을 보는 승석.
잠시 후, 가필이 거의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모습을 보인다.
가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며 승석이 앉아 있는 벤치 앞에서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승석, 시계를 보며
승석: 7분 늦었어.
좌절하는 가필.
승석: 인간의 몸에는 세포가 얼마나 있는 지 알아?
가필,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승석: 약 육십조. 아저씨는 지금까지 그 세포를 얼마나 사용했을까? 사용하지 않은
세포를 얼마나 남겨 두고 죽을 거야?
가필은 대답 없이 숨만 헐떡인다.
승석: 뭐해? 다시 내려가지 않고.
가필, 기를 쓰고 일어나 계단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걸어간다.
그런 가필의 등 뒤에 대고 승석이 소리친다.
승석: 올라올 땐 산책로로 뛰어올라와. 제한 시간은 30분.
가필, 허둥지둥 계단을 향해 달려간다.
남산 산책로
경사가 진 산책로를 달리는 가필.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달린다기보다 흐느적거리며 간신히 발을 옮기는 수준이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가필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멀리 벤치에서 책을 보고 있는 승석의 모습이 보인다.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승석을 향해 가는 가필.
승석, 그런 가필을 힐금 보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핸드폰 카메라로 가필을 찍는다.
금방 쓰러질 듯 어기적거리며 달리는 가필의 모습이 핸드폰 카메라에 찍힌다.
INT. 아지트
수빈의 핸드폰에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수빈, 메일을 확인하면 승석이 찍은 가필의 사진이다.
수빈: 왔다!!!
수빈이 외치자 모여 있던 아이들 중 일부는 환호성을 지르고 일부는 실망한다.
남산
가필은 승석 옆에서 숨을 헐떡이며 늘어져 앉아 있고 승석은 편의점 봉투에서 이온 음료 패트를 가필에게 던진다.
가필은 단숨에 이온 음료를 벌컥이며 마셔버린다.
승석: 다리 뻗어봐.
승석이 벤치에서 일어나 가필의 다리를 뻗게 한다.
가필이 다리를 뻗자 승석이 가필의 다리를 맛사지 해 준다.
그런 승석을 가필이 바라본다.
승석: 그만 봐.
가필: 얼굴에 상처는 왜 생긴거야?
승석: …….
가필: 십칠 대 일로 싸울 때 다친 거야?
승석: 짱가 세계랑 내가 사는 세계는 달라.
가필: 수능 잘 봤어?
승석: 나 대학 안가?
가필: 왜?
승석: 가서 뭐해? 기껏해야 회사원 밖에 안 되는데.
가필: 회사원이 싫어?
승석: ……..
가필: 부모님은 뭐하셔?
승석, 다리 맛사지를 멈추고 가필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승석: 벌써 규칙 잊었어? 일어나 이제…….
가필: 끝난 거 아니…….에요?
절망적인 표정의 가필.
EXT. 공사장
겨울철이라 공사가 중단된 5층 정도 높이 건물 아래 서 있는 가필과 승석.
종두: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