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 선운산에 자리 잡은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과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을 갖고 있다. 불교활동이 제한을 받던 조선말에도 선운사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의 요사를 거느렸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은 많은 기암괴석과 천연굴이 있고 깨끗한 계곡으로 절경을 이룬다. 계곡을 따라 선운산에 오르면 서해와 변산반도 일대가 내려다보여 감탄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 절경을 직접 보진 못했다. 선운산이 가진 또 하나의 절경은 동백림이다. 우리나라 동백 관광의 대표주자는 선운사 동백이다.
봄날 이른 아침 일주문을 들어서니 왼쪽은 계곡 오른쪽은 완만한 경사가 선운산으로 이어진다. 계곡물은 곳곳에 소를 이루어 때마침 핀 벚꽃과 함께 겨우내 간직했던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가을 단풍이 우거진 광경을 상상하며 널찍한 경내에 들어선다. 고풍스럽고 큼지막한 대웅전이 주변 산세와 어울려 명찰이 주는 편안함에 한껏 취한다.
대웅전 뒤쪽 동백림으로 갔다. 동백이 만발할 계절은 아니지만 선운사 가서 동백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동백꽃이 피어 있다. 그런데 명성에 비해서는 초라했다. 강진 백련사에 있는 동백림과 비교하니 수령도 짧고 꽃의 크기도 작다. 꽃이 반드시 커야 좋은 건 아니지만 수 미터 높이로 무성한 숲을 이룬 백련사 동백림에는 비교되지 못했다.
거기서 경내를 내려본다. 관광객 몇 명이 한적한 경내를 다니는데 전체적으로 여유가 느껴진다. 왜 그런 여유가 느껴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공적인 흔적이 적기 때문인 것 같다. 배흘림기둥은 자연적인 굴곡을 살려 원목을 최대한 활용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깎은 배흘림기둥으로 엄격해 보이는데 선운산 대웅전의 자연스런 굴곡은 편안함을 준다.
시선이 대웅전 건물 옆면에 집중되었다. 풍판 아래 세칸 사이 공간을 가로 기둥과 판자로 장식한 모양이 다른 유명 목조건물보다 장식적이긴 하지만 결코 화려하진 않아 편안한 전체 이미지를 해치지 않았다.
선운사 일주문에는 ‘도솔산’이라 쓰여 있고 소개할 때도 ‘도솔산 선운사’로 나와 있다. 도솔산은 불교에서 온 이름이다. 우리나라 산 이름은 불교, 절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가끔 산의 이름과 절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달라 혼동을 준다.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은 영취산이라고도 불려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산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백제 지역인 선운사 창건에 느닷없이 신라 진흥왕이 등장하는 것은 후대에 꾸며진 이야기일 것이다. 선운사가 내소사까지 말사로 거느린 큰 절이다보니 엉뚱한 진흥왕 창건설화가 생겼을 것이다. 보통 절 안내글에 오래 전 유명한 분을 거론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